• "나는 왜 호기롭게 탈당 못하는가 "
        2008년 01월 18일 09: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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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또한 ‘신당파’ 동지들이 왜, 어떤 심정으로 무엇을 주장하는지 알고 있다. 민족해방파, 자주파, 주체주의, 종북파 등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워 온 ‘친북민족주의 운동권’들과 지내는 건 정말 귀찮고 괴로운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들과 함께 지내는 건 참 괴로운 일이지만

    하지만, 이른바 ‘진보판’에서 시쳇말로 발에 채이는 게 ‘자주파’인 이상, 그들과 얼굴 마주 대하지 않고 살기는 정말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다.

    한때 이른바 ‘평등파’도 ‘소비에트형 사회주의’를 추구하던 시절이 있어, 그나마 ‘지향이 아니라 경로가 다르다’고 마음의 위안을 구할 수 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 사회주의가 세계의 수많은 좌파들에게 두통을 안기며 와해된 이후, 그조차 불가능해졌다.

    집단 이주로 지구당을 탈취하고, 일가친척 다 동원해 당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당을 장악하고서도 정당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려고도 들지 않았다. 정체한 경향이 자주 그렇듯, 심지어 그 속에서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여, 가장 편협하고 현실무시적 흐름이 내부를 주도했다.

    결국 그 결과는 ‘민주노동당의 칠천량(임진왜란 당시 거제 인근 칠천량에서 벌어진 전투. 원균 함대의 참패로 조선 수군은 거의 궤멸 수준까지 갔다-편집자)’이라 할 3%의 참패로 돌아왔다.

    필자 또한, 결국 그런 결과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한두 번이었는가? 그들은 이미 두 번이나 같은 패착을 저질렀고, 반복될 때마다 그 파장은 더욱 커졌다. ‘86년 건대 옥상에서 끝난 ‘애학투련’의 ‘오버’는 ‘자민투’를 위기에 몰아넣지만, ‘96년, ‘97년 연이어 벌인 ‘한총련’의 ‘단무지’ 투쟁은 학생운동을 와해시켜 버렸다. 그리고 10년 후, 이제 원내 진보정당의 존폐 위기를 불러왔다.

    OK, 질릴 만하다. 화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 와중에 ‘나 역시 알고 있고, 또 동감 한다’는 사람이 왜 “이 따위 당 미련 없이 떠나자”고 호기롭게 말하는 대신, 굳이 나간다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한 번, 제대로 싸워보자"고 말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민주노동당 당원과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여 대선 이후 당의 진로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
     

    1. 8년 전에는 몰랐나?

    혹자들은 말 한다. "그들은 북조선 정권을 가치의 준거로 삼는 스탈린주의의 잔재이고, 민족주의, 국가주의와 절연할 수 없으며, 패권주의와 독단을 당연시 여기는 세력이다. 그들은 변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거의 다 맞는 말이다. 강산이 두 번 변하도록 본 일이다. 다만, 내가 ‘분당을 통한 신당론자’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단 한가지이다.

    “그럼, 그걸 8년 전에는 몰랐었다는 말인가?”

    자주파가 당내에서 벌인 일은 마찬가지로 그들이 생물학적으로는 좀 더 젊었으되, 사상으로는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늙어있던 과거에 학생운동, 노동운동, 사회단체에서 항상 해왔던 일의 연장선이다. 그 뻔한 ‘자주파적 상황 전개’에 대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운동권’ 출신의 평등파들이 대체 2007년 겨울에 딱히 새로 배워야 했던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8년 전 그들과 함께 당을 만들었을 때, 그 이유는 ‘자주파가 어떤지 몰라서’는 아닐 것이다. 분명 그때는 ‘객관적 조건’을 이유로 자주파와 함께 진보정당을 할 수 있다/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을 것이다.

    일각에서 말하는 ‘대중적 정당 활동을 하다보면 자주파도 합리적 태도로 바뀌지 않을까 기대했다’는 식의 이야기는 정말 무의미하다. 상대가 변할 것을 전제하거나 기대하는 ‘세력연합’이라니. ‘통일전선’도 그렇게는 만들지 않는다.

    통일전선도 그렇게 만들지 않는다

    ‘전국연합 9월 테제?’ 읽어 본 사람이 꽤 되는 그 문서는, 결국 연합 세력의 내부 문건이다. 그럼 ‘개량적 노동자당에 대한 입당 전술’을 공언한 ‘다함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당의 강령을 사회민주주의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민주노동당을 변혁적 사회주의 정당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현장좌파’류 그룹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당내 민주주의를 허깨비로 만드는 패권성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당 원칙과 위배되는 주장을 다수라는 이름으로 당의 실천에 투영하려 드는 독단성은 비난받아야 한다. 자주파는 분명 도가 지나쳤고, 특히 당권파로서 당의 정치적 실패에 책임을 져야 할 입장이다.

    그러나, 거기까지, 딱 거기까지이다. ‘9월 테제’를 들먹이는 이야기는 ‘분당파 문서’를 떠벌이던 모 자주파 인터넷 매체의 꼼수와 동급의 이야기 이다.

    따라서, 민주노동당 밖에서 신당을 주장한다면, 지금 답할 것은 딱 한가지 밖에 없다. 객관적 조건, 오직 객관적 조건에 대해서만 답하면 된다. 미안하지만, 진보정당을 바라보고 표를 줄지 말지 가늠하는 대중들은 당 활동가들의 주관적 인내심이나 곤혹스러움을 판단의 근거로 삼아주지 않는다.

    심지어“세계관이 다른 부류와는 함께 당을 할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이론과 사상의 일원성을 주장하던 과거 전위정당 노선에서나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이다.

    설명해야 할 말은, 객관적 조건이 어떻게 바뀌어서 자주파와 따로 정당을 만들어도 되는지/만들어야 하는지 뿐이다. 8년 전에는 “단일 노총-단일 정당”이 진리였는데, 지금은 무엇이 어떻게 얼마나 바뀌어“(단일 노총?)-복수 정당”도 가능하다고 말하는가?

    정치는 그런 것이다. 내가 나를 규정하는 것 보다, 어떻게 규정되는지를 먼저 보는 것, 내가 어떻게 구분하는지가 아니라, 대중적 정치행위 속에 어떤 구분선이 가능한지를 우선적인 판단준거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자주파의 패착도 결국 이를 무시한 주관주의의 결과이다.

    2. 앞서서 나간 이들에 대한 예의를

    객관적 조건의 중대한 변화가 아니라면, 8년 전에도 민주노동당은 아예 만들어지지 말았어야 하는 정당이다.

    그렇다면 신당을 주장하는 동지들, 특히 민주노동당 당내 좌파 동지들이 지금 하고 다녀야 할 첫 번째 ‘행사’는, 사회당과 당외 좌파 동지들에게 사과하는 것 아닐까? ‘진보연합정당’을 반대하던 사회당과 당외 좌파들을 대중의 시야에서 단절된 흐름으로 만들어간 것에는 상대적으로 거대한 민주노총-민주노동당의 존재도 한 몫 했기 때문이다.

    자 말해보라, 대체 왜 8년 전에는 지금 당외 좌파로 존재하는 동지들 대신, 전국연합과 손을 잡고 당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지금 그 결정을 뒤엎겠다고 나선 동지들이라면, 가장 올바른 태도는 이미 8년 전부터 그 길을 걷던 사회당과 같은 동지들에게 "당신들이 옳았다"고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다 꺼내보자. 지금 ‘분당-신당’을 말하는 민주노동당 좌파들의 언어는 10년 전 ‘사회당 계열’의 주장을 거의 빼박았다. ‘노동, 여성과 소수자, 생태, 평화를 아우르는 새로운 좌파 패러다임’… 이 역시 사회당 계열에서는 10년 전부터 주장하고 논쟁하던 내용이다.

    신당파와 자주파의 유사성

    그럼 단순한 질문 하나가 남는다. 이미 10년도 더 전에 민주노동당 분당-신당 그룹들이 주장하던 대부분의 내용을 선취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동안 공부도 실천도 당신들보다 딱히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자주파/종북파를 포함하는 단일 진보연합정당’이라는 판단이 옳지 못했다고 지금 말하는가? 자, 그럼 왜 사실상 "이제껏 우리의 판단이 오류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새 좌파정당의 주도권을 쥐어야 하는가.

    ‘사회당 쪽 사람들이 소수자운동이나 평화,인권 운동에서는 덩치에 비해 많은 역할을 했다’고 말하면 ‘그런지도 모르지만…’하며 ‘진정추식 피식거림’을 보이던 일부 당내 좌파들의 반응을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당신들이 ‘적록흑’의 ‘반주사’정당의 깃발을 들었다. 왜 먼저든 사람은 오류이고 지금 든 당신들은 올바른가? 그것은 ‘너희들이 해온 독자적 정치세력화는 관념적 급진성이고 우리의 진보정당 참여는 역사적 결단’이라던 자주파의 태도와 얼마나 다른가?

    3. 머릿속의 훈장부터 떼라

    민주노동당을 넘겠다면, ‘민주노동당 중심주의’는 포기해야 한다. 그것은 사실 ‘당 혁신’이나 제 2창당을 말해도 마찬가지이다. 민주노총-민노당 모델의 중심성에 대한 선험적 전제를 포기함 없이는 사실 거의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쉽게 고개 끄덕이지 말라. 그동안 자칭 ‘민주노동당파’, ‘민주노동당의 본류’라고 주장해 오던 것이 대체 누구인가? 그 이야기는 ‘민주노동당이라는 정파합의’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당신들은 지금 그 합의가 오류라고 선언했다. 그럼 왜 사회당 혹은 ‘노동자의 힘’ 보다 하필이면 ‘민주노동당 좌파 주도의 신당’에 더 우선적인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가?

    차라리, 민주노동당의 ‘제2창당’이 사회당을 비롯, ‘진보연대’ 밖의 좌파세력들이 충분한 입지를 지니고 합류할 수 있는 새로운 진보연합 정당이 되도록 당 내외에서 작업하든가, 아니면 ‘사회당 중심의 진보신당’을 위해 기득권 포기 선언을 하는 게 정당한 입장이라는 생각 들지 않나? 뭘 당신들끼리 CMS니 사무실 임대이니 벌써부터 난리인가?

    차라리 사회당 중심의 진보정당을

    ‘적록흑 연대에 기반 한 반자본주의 정당’에 끽해야 (그나마도 정식화되지 않은)‘사회경제적 민주화’ 수준의 민노당식 당면과제 프레임에 비해, ‘탈 배제’라는 훨 세련되고 확장적 개념에 기반 한 ‘사회적 공화주의’를 당면 노선으로 내건 사회당도 있지 않는가.

    이는 비아냥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이라는 틀을 상대화할 작정이라면, 당신들 머릿속에 남아 있는 훈장도 떼야 하는 것이다. 특히, 10년도 늦은 이야기를 지금에야 복기하며 ‘이제부터 논의해서 (우리가) 만들어 가면 된다’고는 이제 그만 말하라. 민노당의 우물 밖에는 그 10년 동안 나름 열심히 연구하고 논쟁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당 밖의 사람들이 ‘탈 노동의 급진적 대안’을 논쟁할 때, ‘내 머리 속의 민주노총’ 즉, ‘노동자주의’도 지우지 못한 게 민주노동당의 수준이었다. 왜 민주노동당이 비정규 문제에 무력했고, 실업노동자는 챙기지 못했고, 빈곤 의제는 거의 잊고 살았다고 생각하나?

    ‘노동자는 하나다’는 외침이 무망해지는 현실의 사태 속에서, 하다못해 ‘90년대 초 ‘PD’들의 트렌드 상품이던 ‘알튀세-발리바르’류의 ‘계급은 계급투쟁 속에서 (재)구성된다’는 논리조차 꺼내 쓰지 못한 게 바로 민주노동당 좌파 아닌가?

    4. 지금 필요한 것은, ‘자주와 평등의 당’을 넘는 것

    8년 전에도 나는 ‘진보/좌파의 종류’는 현실적인 대중정치적 구분선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심지어 ‘반주사-반개량’이라는 이론적-정치적 구도를 두 개나 붙인 좌파정당은 실패할 노선이라고 여겼다. 그 결과 나는 지금 민주노동당에 있다.

    민주노동당이 생사의 경각을 헤매는 지금도 나는 ‘진보/좌파의 노선적 종류’ 그 자체는 아직 대중정치적 구분선으로 작동할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제3의 길 보다 왼편’의 구성으로 우리는 되돌아올 것이며, 그 구도에서 (정말 매우 쉽지 않겠지만) ‘편향된 친북적 태도’와 ‘통일지상주의’에 대한 일정한 자기 비판이 있다면 (‘반신자유주의 우선성-남북평화공존’정도를 매개로) 자주파라는 ‘스탈린주의적 구좌파’라도 완전한 절연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자주파가 가장 심하게 보여준 종파적 독단성, 패권성, 주관주의를 제어할 추가적인 합의와 장치를 마련할 수는 있지만, 한국의 진보/좌파에게 주어진 역사적 정세가 ‘자주파가 자주파라는 이유’로 배제할 수 있는 유효한 대중정치적 합의선이 마련될 조건인지는 좀 의문스럽다.

    자주파 배제의 대중정치적 합의 가능한가

    나는 지금 필요한 것은 현재 민노당식의 정파 담합적, 봉합적 합의를 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력의 주장, 저 세력의 주장을 적당히 섞어주고, 역시 서로 주특기 병과에 따라 따로 노는, ‘자주(파)와 평등(파)의 당’이라는 운동권 연합체식 합의는 파기되어야 한다.

    정파 봉합적 관리형 컨센서스 대신, 객관적인 사회적 요청 속에서 모두가 공통적으로 할 수 있는 것에 근거한, 대중정치적 실천적 컨센서스가 자리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정파연합을 형성하며, 특히 자주파를 받아들이며 망가뜨린 핵심 사항은 바로 그 영역이기 때문이다. 정파들의 주관적 주장을 오냐오냐 하며 받아들여 절충한 반(反) 실천적 합의가 민주노동당을 망가뜨려왔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북조선 체제를 대안으로 간주하는 것은 진보/좌파 진영 내에서도 동의될 수 없으니, ‘북조선 체제를 대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합의 밖에 할 수 없다. 통일이 무조건 선이라는 합의 역시 불가능 하며, 연북통일운동을 적극적, 우선적 과제로 삼는 합의는 더욱 불가능하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실천은 사민주의자나 사회주의자는 물론이요 자주파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면 우리가 만들어도 되었던 당은 딱 반신자유주의 정당이다. ‘왜 좀 더 화끈한 연북 통일운동 안하느냐’는 식의 정파적 투정을 받아주지 않아도 함께 할 근거는 충분했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 NL과 PD가 ‘통일’과 ‘노동’을 영역분담 하던 논리로 그 합의를 처리했다. 그 결과는 정파들의 주관주의에 대한 통제력이 상실된 담합정당으로의 퇴행, 진보정당에서 운동권 연합단체로의 퇴행이었다. 이제 그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 당 혁신, 제2 창당, 새로운 진보정당… 모든 이야기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운동권 짓 그만 하고 대중 정치를 하자

    운동권 짓 그만하고 이제 대중-정치를 하자. 비단 신당파가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나누든 합치든, 대중이 실질적인 문제로 받아들일 구분선이 어디에 그어질 수 있는지 이해할 때, 의미 있는 정치적 실천이 가능하다.

    나는 그것이 ‘자주파’와 ‘평등파’ 사이가 아니라, 80년대 운동권의 관성을 벗어나기 거부하는 ‘낡은 진보’와 오늘의 대중과 현실의 요청에 답하는 ‘새로운 진보’사이에 그어진다고 생각한다. 누가 가장 완강히 저항할지는 대체로 인식을 함께 할 것 같다. 그러나 ‘사람’이 같다고 ‘정치적 범주’가 같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정치적 범주’, ‘정치적 구분’이 대중이 의미를 부여할 사실로 드러나기 가장 좋은 장소는 어디일까?

    승전의 첫 걸음은 ‘지형’에 대한 올바른 파악이다. 3백명이 수만명을 격퇴할 자리가 있는가 하면, 백만대군이 패잔병이 되는 자리도 있다. 부디 신당파의 ‘제 3지대’가 자기 무력화의 마지노선이 아니라, 제2창당의 ‘호치민 루트’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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