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군철수 평양 안전 보장 않는다”
        2008년 01월 17일 05:4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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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핵실험 성공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한반도는 다시 전쟁의 위기로 치달을 것 같았다. 10월 15일 유엔이 대북 결의안을 채택하고 북한이 2차 실험 의사를 밝힐 때만 해도 다시 북핵 위기가 재발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다시 6자 회담은 재개되었고 현재 평화체제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한반도의 냉전체제

    53년 체제는 국제정치적으로는 한반도에 휴전선을 경계로 소련-중국-북한 북방 3각동맹과 미국-일본-남한 남방 3각 동맹의 대립체제를 의미한다. 각각의 동맹체제는 정전협정 체결 당시의 상황을 반영한다.

    소련은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었고, 중국은 정부가 아닌 의용군 형식의 당사자였으며, 북한은 완전한 독립적 주권자로서 당사자였다. 미국은 UN군의 대표로서 정전협정에 서명했다. 한국은 작전지휘권을 이양한 상태로 당사자가 아니었으며, 일본은 참전하지는 않았고 후방 지원을 담당하는 수준이었다.

    이후 미국과 관계에서 힘의 열세가 분명한 소련과 중국은 직접 미국과 대면하는 것을 회피하려 하고 북한은 매우 자주적인 행위자로 등장한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초기 작전을 소련 군사고문단이 지휘하였고, 중국군 개입 이후 인민군의 작전지휘권이 중국군에게 넘어갔던 것에서 보여주듯이 북한이 독자적으로 한반도에서 미국과 대립한다는 것은 관념적인 허구이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불리함 때문에 군대 주둔, 조약, 작전통제 등 매우 구체적인 기제를 필요로 한다. 일본은 구식민지배의 관계로 인해 표면적으로는 남한과 동맹을 맺지 않고 있으나 미-일 동맹, 한-미 동맹의 결과로 실질적인 동맹관계를 가지게 된다.

    북방 3각 동맹은 중국과 소련의 갈등, 중소와 북한 민족주의의 갈등이라는 두 개의 축이 취약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역사상 임진왜란, 청일전쟁, 만주사변 등 역사가 보여주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중국은 북한의 최후의 보루로 남는다.

    남방 3각 동맹은 식민지 지배 역사라는 과거로 인한 한일 간의 갈등, 군대 주둔에 대한한국 민중의 반감으로 인한 반미 민족주의라는 두 개의 축이 취약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49년 미군 철수가 한국전쟁으로 이어졌고, 이 한국전쟁에 개입해 미군 3만 7천 명이 사망했다는 역사적 경험 때문에 한미 간의 갈등은 어느 선을 넘지는 않아 왔다.

       
      ▲김정일 위원장은 아버지의 유훈을 어기고 핵무기를 개발했다. 사진은 북한 영화 ‘위대한 선군영도의 길에 함께 계시여’의 한 장면. 
     

    전쟁은 안 된다

    이미 잔뜩 폭탄을 안고 사는 사람한테 핵폭탄이 하나 더 추가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은 아니나 대단한 일도 아니다. 한국인은 자기 소득에서 걷어간 세금이, 북한이 핵폭탄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것에 분노하지만, 북한의 핵무장이 전쟁을 무릅쓰고 막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북한 핵을 가지고 줄다리기 하는 동안 일이 잘못되어 전쟁이 나면 어쩌나 하는 것이 더 걱정이다. 한국 정부가 대북강경책을 논의하는 것은 가족을 미국으로 빼돌리고 벼랑끝 전술을 추구한다는 의심을 받기 십상이다.

    미국은 더욱 의심을 받는다. 1994년 1차 핵위기 때 전쟁이 검토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미국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을 초래했다. 그래서인지 미국이 오히려 전쟁을 감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서울의 민심을 잃는다면 동북아에서 미국의 국가 이익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 ‘전쟁은 없다’는 다짐은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 모두의 목소리이다. 부시 행정부라고 해서 다를 수 없다.

    핵도 안 된다

    미국이 전쟁을 불사하지 않는 상황에서 서울의 대중들 사이에서는 반미감정보다 핵을 만드는 북한의 지도부에 대한 반감이 더 크다. 94년 북핵 위기 시 북한의 벼랑끝 전술 외교에 대해 한국에서는 낭만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민족의 핵’을 이야기하며 대미 억지력을 논하거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의 소설처럼 북한의 핵이 일본과의 군사력 균형을 역전시키는 상상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이 핵실험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이 북한의 수도권 공격 능력 때문이었듯이, 일단 개발된 핵은 역시 수도권을 겨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이 95년 이후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것은 역시 핵개발 등 지나친 군사 위주 정책 때문이었다. 여전히 북한이 그러한 노선을 지속한다면 대북지원은 불가능해진다.

    이는 중국에서도 어느 정도 마찬가지이다. 단기적으로 동아시아에서 일본과 경쟁하고 장기적으로 세계적 차원에서 미국과 경쟁하는 중국의 입장에서 북한이 전략적으로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북한을 무조건 용인해 줄 수는 없다.

    오히려 북한이 동북아에 긴장을 고조시켜 미-일 동맹을 강화시키고 일본을 재무장시키는 달갑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불이익이 더 문제일 수도 있다.

    북의 핵실험은(그리고 그 이면의 북한의 경제난은) 한반도 안보 딜레마의 최악의 결과이다. 평화는 힘에 의해서만 보장된다고 한다. 한국전쟁의 개전은 미군 주둔과 힘에 의한 억지력을 기본 안보정책으로 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은 끊임없이 미군 철수를 상정하며 한국군 자체로 북한군을 대비할 수 있는 수준의 국방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 반면 북한은 단독으로 북한군을 상대하려는 한국군 + 세계 최강 미군과 대치한다.

    북한은 자국의 선제 공격 태세를 강화함으로써 억지력을 가지고자 한다. 그것은 북한의 잦은 긴장 고조행위로 이어진다. 이에 대해 미군은 다시 무력시위로 대응한다.

    북의 핵개발은 이런 상황 속에서 나왔지만 이런 상황을 종식시키진 않는다. 핵은 언뜻 재래식 무기경쟁에서 해방시켜 영원한 억지력을 보장해 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냉전 시기 미국과 겨루었던 소련의 역사는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원자폭탄 이후에는 수소폭탄을 그리고 나서는 대륙간 탄도탄을, 적이 먼저 공격해도 다시 공격해 적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기 위해 잠수함 전력을, 그리고 탄두 수 경쟁을(왠지 모르겠지만 지구를 20번 파괴할 능력을 가져선 40번 파괴할 상대방을 당해낼 수 없다고 믿었다), 그리고 결국 미사일방어체계까지, 결국 핵을 가져도 경쟁은 끊이지 않았다.

    북한이 핵을 가진다면 역시 한국이나 일본도 핵을 가지거나 아니면 지금보다 훨씬 더 미국에 의존해 북한에 대응할 수밖에 없게 된다. 북한이 냉전시기 미-소간 핵경쟁에서처럼 미국에 대해 확증파괴능력을 가짐으로써 안전을 보장받을 수준의 무장을 할 가능성은 없다.

    북의 핵개발은 결국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 자국 경제를 파괴하면서 긴장을 수출하고 있을 뿐이다. 이 상황을 타개하는 것은 결국 포괄적인 평화적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 때 가장 큰 변화를 해야 하는 주체는 북한이다. 핵개발은 가용한 자원의 대부분이 집중되는 프로젝트이다. 핵개발을 포기하고 평화로 나아간다는 것은 그만큼의 대내적 자원 재배분과 국가전략의 변화를 수반하는 것이다.

    주한미군 그리고 평화

    북한이 이러한 변화를 추구할 의사가 있다면 그 상황에서 안보 딜레마를 벗어나는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문제이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주한미군이다.

    북한은 오래도록 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해 왔다. 한국 국내에서도 자주성 회복 차원에서 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있어 왔다. 주한미군이 한국전쟁의 결과 법적으로 북한의 침략에 대항하여 주둔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화체제 수립이 주한미군의 지위에 미칠 수 있는 영향도 문제이다.

    그러나 평화라는 관점에서 주한미군의 철수가 무슨 의미가 있을지는 실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주한미군의 주둔은 서울의 안전에 버팀목이긴 하지만, 주한미군의 철수가 평양의 안전을 보다 더 보장하지는 않는다.

    서해 NLL을 둘러싼 갈등에서 보듯이 중무장한 양측의 군대 사이에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또한 주한미군의 철수는 유럽과는 달리 아직 민족주의적 감정이 팽배해 있는 중국, 일본 간의 관계에서 새로운 군비경쟁을 촉발할 수도 있다.

    역사에 대한 가정은 부질없는 짓이지만 만약 중국군이 북한에서 철수하지 않았다면 70년대 한반도의 긴장고조나 90년대의 위기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90년대 초, 한국이 세계화 노선을 채택하였듯이 북한이 중국식 개방 노선을 채택하고 중국과 동맹체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안보 문제를 해결하였다면, 90년대 북핵 위기나 기아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국가로서의 북한 붕괴도 가능성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49년 6월 미군이 철수할 수밖에 없었듯이 중국군은 철수하였다. 한국전쟁 시기 작전권을 중국에 양도했던 김일성은 군사적 자주성을 회복했다. 북한에서 한국전쟁이 이데올로기화되고 중국의 결정적 역할이 은폐되는 상황에서 다시 군사적 주권을 제약하며 안보를 보장받는 선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대가는 엄청난 것이었다.

    지금도 중국군 1천 명이 주둔한다면 북핵 위기도 쉽게 해결될 것이고 북한의 안전보장도 별 문제 없이 보장될 것이다. 물론 UN 평화유지군의 DMZ 주둔 등 정치적 조치들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결국 평화의 보장은 ‘물리적으로 실재하지 않으나 정치적으로 존재하는’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주변국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경제적 유지가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해결되듯 북한의 군사적 안전도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해결되는 것이다. 단지 신화에 가렸던 진실을 표면화하는 것이 평화체제 구축의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평화협상에서 그렇듯이 신화를 해체하는 작업은 위험한 것이다.

    섣부른 감상보다는 냉철한 현실인식으로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민족적 이상을 꿈꾸기엔 그동안의 희생은 너무도 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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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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