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0 대 바르바로이(Barbaroi)
        2008년 01월 17일 03: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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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0과 바르바로이

    바르바로이(Barbaroi)는 그리스어다. 원래는 그냥 ‘이방인’ 정도의 중립적인 의미였으나, 페르시아 전쟁 이후 뜻이 바뀌었다. 영화 <300>에서 ‘스파르타’를 외치면서 페르시아와 전쟁을 한 후, 바르바로이는 그리스인 이외 사람들을 경멸하는 말이 되었다. ‘천한 이민족 노예’, ‘야만인’ 정도라고 보면 된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은 300과 바르바로이로 학교를 재편하는 것이다. 학교와 학교 사이에도 300과 바르바로이로 나뉘며, 학교 안에서도 300과 바르바로이로 구분된다. 물론 300개 고교에 대해 이명박 후보 측은 일종의 선도자라고 말해왔다.

       
    ▲ 이튼스쿨에는 영국 귀족가 아이들 뿐 아니라, 한국 재벌가의 자제들도 다니고 있다. 이제 고생스레 먼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 학교들을 먼저 하고, 그 영향으로 다른 학교들도 바꿔나가겠다. 그리고 나머지 1,859개 학교도 그냥 두는 것이 아니라 학교운영비를 추가 배정하여 지원하겠다”라고 밝혀왔다. 하지만 한번 선도자는 혁신의 영원한 선도자로, 일류의 지위를 계속 누릴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서 고교평준화는 사실상 붕괴된다. 고교평준화란 획일화가 아니라 지역내 고교 무시험전형 및 추첨배정이다. 따라서 고교평준화의 반대말은 다양성이 아니라 고교별 입시다.

    그런데 이명박의 300 중에서 100개 자율형 사립고는 현재의 자사고처럼 고교별 입시를 허용하는 방안이다. 150개 기숙형 공립고 또한 지역의 학생들을 우선 입학시킨다고 했으니, 마찬가지로 고교별 입시가 허용된다. 50개 마이스터고는 전문계 고교로, 전문계 고교는 평준화를 적용받지 않았다.

    그러니까 일반계 고교 중 250개 고교에서 입시가 부활한다. 물론 250개 중에는 현재의 특목고나 비평준화 지역의 고교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평준화 지역 내 학교도 다수 포함된다. 간단하게 생각해보면, 전국의 기초 지자체가 234개인데 일류고가 250개이므로, 1개 기초 지자체에 1개 이상의 일류고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 일류고는 평준화를 적용받지 않고 입시를 치루는 학교다. 이렇게 되면, 나머지 학교들이 평준화라고 하더라도 평준화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이 정도 규모라면 현재의 대학입시와 거의 유사하다.

    비평준화 체제인 대학이긴 하나, 대학별 입시를 제대로 치루는 학교는 중상위권 학교에 국한된다. 나머지 학교들은 입시를 보기는 하지만, 원서만 쓰면 그냥 합격이거나 학생을 모셔와야 한다. 그러므로 입시를 치루는 250개 고교의 존재는 곧 고교평준화 해체이다.

    그러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고등학교의 질서는 서열화로 재편된다. 대학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느 학교가 최상위권 중학생을 싹쓸이할 수 있느냐’가 서열을 매기는 하나의 척도가 되며, ‘어느 학교가 일류대에 많이 진학시키느냐’가 또 다른 척도가 된다.

    그렇다면 나머지 학교들은? 비평준화 지역은 학생을 모셔와야 하고, 평준화 지역은 중위권 이하 학생들을 나누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지금도 비평준화 지역에서 발견되는 “교복이 부끄러워요”가 전국적인 현상이 된다. 동시에 250개 일반계 일류고 등 300개 일류고 학생들이 다른 학교 학생들을 ‘바르바로이’로 바라보는 시각이 등장한다. 그리고 300개 일류고가 일류대 진학을 독점한다. 여기에 이명박 후보는 대학에 자율권을 부여한다는 공약만 제시하였기 때문에, 대학서열은 그대로다.

    그 결과 학교는 1부 리그와 2부 리그로 재편된다. 물론 프로스포츠처럼 1부 리그 안에서도 경쟁이 벌어지고, 2부 리그 안에서도 경쟁이 있다.

    하지만 2부 리그에서 잘 하면 1부 리그로 가끔 올라갈 수 있는 프로야구와는 달리 이명박의 교육리그에서는 고교에서 대학에 진학할 딱 한 번만 기회가 주어진다. 일종의 연습생 성공 신화로 포장되겠지만 확률적으로는 매우 드물다.

    대신 고교 재학 중이거나 대학 재학 중일 때에는 지금의 일반고-실업고처럼 1부 리그에서 2부 리그로 강등될 수는 있지만, 거꾸로 승격은 없다. 그래서 이명박이 만드는 1부 리그와 2부 리그는 프로축구보다 잔인할 수 있다.

    300에 들지 못하면…

    스파르타에서는 태어난 아이가 연약하면 죽인다. 이명박의 교육리그에서는 300에 들지 못하면,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게 힘들다. 그래서 중학교 졸업할 때 상위 15%에 들어야 한다. 그래야 일단 일류대 진학의 면허증을 받을 수 있다. 15%에 들지 못하면, 체념, 자기 합리화, ‘분수대로 살자’ 등을 빨리 터득해야 한다.

    그런데 누가 상위 15%에 들어가고, 누가 그렇지 않을까. 답은 뻔하다. “아빠의 경제력와 엄마의 정보력이 일류대 진학을 결정한다”는 교육양극화 추세를 감안하면, 상위 15%에 들어가는 아이들이 누구일지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 결과 중학교와 초등학교 단계의 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이명박의 1부 리그 고교는 아이쇼핑을 하나 살 수 없는 상품이다. 이렇게 백화점 쇼윈도우를 바라만 보는 사람들은 일단 비정규직의 자녀일 가능성이 많다.

    물론 한나라당은 돈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맞춤형 장학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이것도 1부 리그에 진입하는 단계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어릴 때부터 돈으로 영재를 만드는 시대의 해법은 아니다. 그래서 맞춤형 장학지원 시스템 또한 돈 없는 사람들에게는 쇼윈도우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반이명박 전선? 글쎄

    불평등한 교육체제가 예상되기 때문에 모두들 교육 분야에서 반이명박 전선을 예상한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가 어떤 교육정책을 발표하면 교육운동단체가 열화와 같이 일어나 일대 격전이 벌어질 것으로 본다.

    하지만 조만간 야당일 될 대통합민주신당까지 포괄한 반이명박 세력이 제대로 될지는 의문이다. 일단 구도 설정에서 뒤질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정부는 ‘바꾸겠다’라고 하면 소위 반이명박 세력은 ‘안된다’라고 할텐데, 이렇게 되면 자칫 ‘혁신 보수 대 수구 개혁’ 구도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번 대선처럼 변화를 바라는 대중의 열망과 어긋날 지도 모른다.

    물론 반이명박 세력 안에서 각각의 정치세력들이 선명성 경쟁을 벌일 수도 있다. 그래서 어제까지는 “대학평준화, 말이나 돼?”라고 했던 정치세력이 오늘은 갑자기 “뭐하러 국공립대학부터 평준화해? 하려면 한번에 다 해야지”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질 지는 미지수이나,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그 진정성에 대한 논란이 전개되지 않을까 한다. 어쩌면 반이명박 세력은 구성되지 못할 수도 있다. 첫째, 교육운동판에서 여러 정치세력이 동상이몽을 꿈꿀 여지가 높다.

    둘째, 15대 국회의원에서 의원직 상실로 정치권에서 사라졌지만 서울시장으로 화려하게 재기한 점, 한나라당내에서 박근혜에 밀렸지만 끝내 뒤집은 점, 한 번 1위를 차지하자 이를 놓치지 않은 점 등을 볼 때, 이명박은 강하다.

    셋째, “전 일 머리가 있습니다. 결정하기 전에는 충분히 논의하고 듣고 하지만(?), 일단 결정되면 힘있게 일이 되는 방향으로 추진합니다. 서울시 교통체계 개편할 때도 제일 먼저 담당 공무원을 바꾸었습니다.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워야 하니까요. 전 일머리가 있습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이명박 정부의 첫 번째 교육정책은 교사, 교수, 교육부 관료들에 대한 조치일 가능성이 높다.

    교수는 최근 KAIST에서 있었던 일을 적용하거나 국립대 법인화나 대학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교사는 교원평가를 들이밀고, 교육부는 해체나 그에 버금가는 구조개편을 추진할 수 있다.

    물론 그러면서 교사, 교수, 교육부를 한꺼번에 ‘변화와 개혁을 거부하는 수구집단’, ‘시대에 거스르는 무조건 반대집단’으로 규정할 것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당신 아이는 어느 특목고이던가요?’를 도덕성 카드로 꺼낼지도 모른다.

    이렇게 반대세력을 다스린 후, 교육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신자유주의 교육의 선진국인 이 나라에서 남은 분야가 교육노동과 고교평준화라는 점을 고려해볼 때, 교육노동도 유연화하고, 반대세력도 제압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시선

    이명박 정부의 300은 기본적으로 불평등하다. 하지만 해방 이후 지금까지 한국의 교육 또한 불평등했다. 한번도 평등했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교육은 공적인 것이다’나 ‘교육은 권리다’라는 생각이 많지 않다.

    평등한 교육이 무엇인지 감도 오지 않는다. 내 아이의 문제일 때만 교육은 권리다. 다른 나라들은 대학까지 평준화되어 있고, 입시부담이 없고, 학교생활도 우리보다 낫다고 하지만 쉽게 와닿지 않는다. 교육이 불평등했지만,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의 책임으로 인정해왔다. 그렇게 교육받아왔고, 그렇게 살아왔고, 또 그래야지만 그래도 살 수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서도 비슷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불만을 표현할 수는 있겠지만, 이내 감내하고 체념하고 합리화하고 틈새를 찾을지 모른다. 그런 만큼 불만의 표출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명박 교육정책에 대한 대항마를 하나하나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대항마는 불평등한 교육의 최대 피해자가 누구인지, 보다 평등한 교육이 무엇인지 찾는 과정에서 나오지 않을까 한다. 이에 대해 얼핏 생각해보면, 비정규직의 아이들과 대학평준화가 앞으로 가야할 여행의 시작이라고 본다.

    ‘스파르타’의 300은 끝내 페르시아를 이긴다. 그리스인은 자신 이외의 사람들을 바르바로이라고 경멸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기원전 338년 바르바로이라고 무시해왔던 마케도니아에 멸망당한다.

    * 이 글은 이명박 당선 직후인 작년 12월 작성된 것으로 진보정치연구소의 『미래공방』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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