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 통한 운동질서 전면 재편”
    2008년 01월 14일 06: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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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종류의 새로운 대안정당의 필요성과 운동질서의 전면적 재편

물론 종북-패권주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새로운 정치적 실천을 위한 첫 출발일 뿐이다.

철저한 성찰적 반성을 통해 진보정당의 새로운 그릇을 만들어야 하고 그것은 구체적 삶의 터전인 생산현장과 생활현장, 그 만남의 접점으로서 지역현상에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튼튼한 뿌리를 내리는 가운데 오늘의 운동 현실을 돌파해내는 실마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지금 한국사회의 운동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지배 속에서 자기 전망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구조적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학생운동은 물론이고 한 때 잘 나가던 노동운동을 비롯한 기층 민중운동과 각종 시민사회운동이 위기에 처한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변화해야 할 때 변하지 못한 데 따르는 혹독한 대가를 치루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현재의 진보운동은 대부분 진보연대라는 ‘전선’에 모여 있다. 필자는 이러한 진보운동을 진보신당 중심으로 전면 재편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진보연대)
 

이러한 현실은 운동질서의 전면적 재편을 강제하고 있다. 한 정치학자의 말처럼 이것은 “대안정당 없이 운동의 힘으로 이끌어 온 1단계 민주화가 이제 종결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자, 동시에 민주노동당 실패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 새로운 대안정당 건설이 시급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 그 긴장과 갈등을 더 강화된 형태로 보여줄 이명박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다른 종류의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민주노동당의 전면 혁신을 통한 제2창당의 길과 새로운 진보신당의 길 두 가지가 존재한다.

제2창당의 길이 반성적 성찰을 통해 앞서 말한 혁신의 과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진보의 재구성에 나선다면 두 개의 길은 한 개의 길로 합쳐질 수 있다.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후자의 길인 새로운 진보신당 건설은 두 가지 현실로부터 출발한다. 변화와 새로움을 갈망하는 대중들의 요구에 반응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그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요구에 반응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종북-패권주의 문제의 해결을 거부하는 정파가 위력적으로 존재하는 한, 비대위가 총선 등을 이유로 이 문제의 근원과 실체를 전면적으로 드러낼 의지가 없는 한 혁신을 통한 제2창당의 길은 임시방편용 봉합과 총선용 수습으로 귀결될 것이다. 결국 이념적, 조직적 기초가 다르고 세계관이 상반된 두 흐름이 적대적 공생관계로 한 울타리 안에 공존하는 것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게 될 것이다.

1997년 여름 국민승리21 대선공약개발단에 첫 발을 들여놓으면서 ‘합법’진보정당 활동과 인연을 맺은 지 어언 10여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힘들긴 했지만 즐겁고 보람된 시간이었다.

뜻을 같이 하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꿈과 희망을 같이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이런 민주노동당에 대해 애정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 나 자신을 속이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심 민주노동당이 전면 혁신을 통해 새롭게 거듭나 이미 흔들려버린 내 마음을 잡아줬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조금이나마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섣부른 예단일지 모르지만, 위기의 일차적 책임 집단에 대해 비대위가 준엄한 판정을 내리고, 또 그것을 임시당대회가 수용할 것이라는 것을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열려져 있는 가능성의 공간

새로운 진보신당에게 가능성의 공간은 열려져 있다. 무엇보다 그것은 심각한 사회적 균열과 다양한 사회적 이해관계를 대표할 수 없는 현재의 정당정치 지형과 폐쇄적인 정치적 기회구조에서 비롯된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보수독점의 정치적 대표체제는 변화 없이 온존되고 있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 보수화로의 정당 수렴 현상은 강화되었다. 제도권 내에서 정부여당과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정당 간에 실제 차이를 찾아보기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민생과 사회경제적 의제를 외면한 채 경제성장 제일주의라는 담론과 가치와 최우선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처럼 사회를 파편화시키고 다수의 사람들을 생존의 공포로 밀어 넣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한나라당과 대통합민주신당은 중첩되는 공간에 위치한다.

지금의 대통합민주신당은 정당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권력기회주의적 집단의 선거용 프로젝트 정당에 불과하다. 한편 조만간 출범하게 될 이명박-한나라당 정부는 우리 사회의 상층 기득권 집단의 이익과 이해관계를 대표한다.

이들이 대표할 수 없는 넓은 공간이 여전히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의 『민주화 이후 20년의 열망과 절망』(후마니타스, 2007)은 87년 이후를 열망과 절망이라는 열쇠말로 접근하면서, 오늘의 한국사회 모습을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 ‘무한경쟁의 냉혹사회’, 일할수록 빚이 늘어나는 현실‘ 등으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정권교체도 이뤘지만 변한 건 없습니다. 결국 6월의 꿈은 짧았죠.”라는 표현으로 민심의 한 단면을 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무능한 진보가 부패한 보수보다 더 싫다”, “휴머니즘이 사라진 진보”로 진보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있기도 하다.

바로 이 열망과 절망의 공간이 새롭게 거듭난 진보정당이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의 존재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즉 한국사회의 지형 자체가 빈부격차와 사회 양극화의 심화, 농업 피폐화, 녹색 위기의 가속화 등 심각한 구조적 위기를 안고 있고, 현 보수정치세력이 이 문제를 풀 의지나 비전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휴머니즘의 기초 위에 새로운 가치와 실력을 갖춘 대안의 진보정당이 성장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은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불행한 것은 소외된 다수의 대중들이 자신이 선호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이들의 의사를 합리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좋은 정치적 조건, 즉 정당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선거는 ‘그네들만의 잔치판’이 아니라 가장 격렬한 계급투쟁의 집약적 공간이다. 그럼에도 좋은 정당 대안을 찾지 못한다면 유권자들이 좋은 역할을 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투표를 하지 않거나 엉뚱한 후보에게 표를 던지거나, 아니면 체제 밖으로 나가서 정치 일반에 대해 극도의 불신과 저항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뿐이다. 핵심은 대안의 구조가 바뀌면 대중적 지지와 선거에서의 투표 성향은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종류의 대안정당, 어떻게 거듭날 것인가?

새로운 대안정당으로서 진보신당의 필요성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하에서 대안정당 없이 가난한 다수의 보통사람들을 보호할 방법이 없다”는 기본적인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건설될 ‘새로운’ 종류의 대안정당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앞서 말한 것처럼 한 때나마 기대를 모았던 민주노동당은 정치체제 전반에 충격을 줄만한 다른 종류의 대안정당을 건설하는 데, 한국정치를 설명하는 독자적 변수로 자리매김하는 데 실패했다.

민심이 떠났다는 것뿐만 아니라, 이념정당이라는 규정이 무색하게도 편협한 정파 논리가 지배하는 가운데 통일된 강령과 규율은 사실 존재하지 않으며, 결과에 대한 책임의 문제도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 진성당원제라는 제도가 있음에도 평당원들과의 소통도 단절되었고 사회에 뿌리를 내리거나 대중적 지지를 확장하는 데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새로운 종류의 대안정당은 이러한 민주노동당 실패의 경험을 기반으로 해서, 위기의 근원에 대한 성찰적 진단과 전망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 위기의 근원은 종북주의에 기초한 패권주의와 민주노총에 대한 과잉 의존 두 가지로 모아진다.

북한 문제와 민주노총이라는 이 두 개의 성역을 깰 때, 잘못된 과거의 경험을 반면교사하되 그것과의 철저한 역사적 단절을 통해 비로소 진보신당은 상처를 치유하고 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편 정당도 조직이기 때문에 조직이 성장하고 커지면 커질수록 필연적으로 대면해야 할 주요 딜레마가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직시할 필요가 있다. 문제 해결의 단초는 숨김을 통해서가 아니라 드러냄을 통해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박상훈(후마니타스 주간, 정치학)은 그것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 대표를 통해 대중의 권익을 실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내는, 대표와 대표되는 자들의 불평등 관계가 불가피하게 증가하게 되는 딜레마(대표의 딜레마)

– 자발적 동원과 협력에 의존하던 데에서 인센티브 구조의 관리 없이는 참여를 확대 또는 지속하기 어려운 딜레마(참여의 딜레마)

– 권력을 통해 이념을 실현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이념추구자 중심의 당 조직을 지속하기 어려운 반면, 지위추구자의 증가와 수혜-후원관계의 성장에 따른 딜레마)

– 체계와 안정성을 위한 제도화가 불가피하게 가져오는 일상화, 형식화, 관료화의 딜레마(제도화의 딜레마)

– 끝으로 목표의 바람직함과 현실 가능성 사이의 불확정적 관계로 인한 심리적 불안의 딜레마(확신의 딜레마) 등.

이러한 딜레마를 풀기 위한 기제로서 중요한 것은 기성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경쟁할 수 있는 대안적 이념의 발전과 리더십의 발전을 통해 정당이 성장하는 것이다. 정당은 인간의 공동행동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 대중의 확신을 조직하는 문제에 대한 책임을 제도화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정치의 중심 영역에서 정당의 형태로 민중적 요소가 다투어지지 않는 한 민주주의와 진보의 가치는 실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진보신당이 지향해야 할 이념과 가치는 노동의 이해와 열정에 기초를 둘 수밖에 없다. 문제는 노동에 기초하되 다양한 새로운 진보의 가치들과 접속하면서 진보(이념과 가치)의 재구성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녹색과 평화와 소수자 인권 등을 적녹연대, 계급연대-사회연대를 통해 새로운 진보의 다양한 가치를 개방적으로, 수평적으로 재구성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진보정치연구소에서 얼마 전 발간한 『사회국가, 한국사회 재설계도』는 새로운 진보의 재구성을 위한 사회적 상상력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상대방을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하는 축제로서 좋은 토론과 논쟁의 기초 자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진보의 재구성을 위한 소통과 실천 과정에서 대안의 좋은 리더십도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다.

새로운 10년을 다시 시작하기 위하여

이러한 대안정당의 정치적 프로젝트는 소외된 대중들과 운동 사이에 가로놓인 거대한 철옹성의 벽을 뚫고 사회적 에너지와 병행할 때만 실현 가능한 것이다. 즉 소외된 하층의 목소리와 배제된 새로운 진보의 가치를 대표하고 조직할 때, 그리하여 대중들과 소통 가능한 새로운 언어 속에서 진보의 가치를 실현할 새로운 대중이 탄생될 때, 새롭게 거듭나면서 건설될 진보신당은 한국정치와 사회의 지배질서를 바꾸어내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당원과 지지자들의 상처받은 자긍심을 치유해내면서, 한편으로는 다양한 운동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가운데, 다른 한편으로는 학계, 법조계, 문화예술계 등 진보적 지식사회와의 결합을 통해 좀 더 앞당길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새로운 10년을 다시 준비하는 데는 버거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기회가 찾아왔을 때 족쇄에서 벗어나 자유를 향한 첫 번째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 기회란 자주 방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첫 걸음은 잘못된 일체의 부조리와 비상식에 대해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니오’라고 말하면서 세상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에서, 민주노총에서, 시민사회운동에서, 대학에서, 지역과 곳곳의 현장에서, 비록 조직되지는 않았더라도 각계각층의 사람들로부터 가슴 깊이 울려나오는 ‘아니오’라는 공통의 자유선언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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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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