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노당은 죽었다. 종북파는 있다”
        2008년 01월 14일 06: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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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은 죽었다. 2007년 12월 19일. 이 날은 민주노동당이 유권자들로부터, 아니 노동자와 서민들로부터 배반에 대한 징벌과 심판을 받은 날로 기록될 것이다. 사표 심리도 작동하지 않은 호조건이었음에도 17대 대선은 민주노동당의 존재감이 사라진 선거였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징벌과 심판

    비전도 전략도 메시지도 그 어느 것 하나 없었다. 감동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진보정치연구소 여론조사에 따르면 당 지지자의 76%가 투표했고, 이 가운데 23.5%만이 권영길 후보를 찍었다고 한다. 3.01%에 712,121표는 그 당연한 결과였다.

       
      ▲침통한 표정으로 개표 방송을 지켜보고 있는 당 지도부들.(사진=진보정치)
     

    불과 몇 년 전인 2004년 4월 15일. 17대 총선을 통해 민주노동당은 그토록 소망하던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며 당당하게 원내로 진출했다. 가난한 다수의 보통사람들은 자신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희망을 설계해낼 새로운 대안 정당이 출현할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희망을 가졌다.

    그에 따라 민주노동당에 대한 인지도와 호감도가 가파른 상승곡선을 탔으며, 한 때 당의 지지율은 20%를 넘는 가운데 미래의 유력 정당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진보학계에서도 “단순히 진보정당이 아니라 한국전쟁으로 분단이 고착화된 이후 최초의 정당다운 정당의 출현”, “근대적인 사회적 균열에 기초한 정당이자 역사적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는 정책정당, 진성 당원 중심의 당내 민주화를 진행해 온 민주적 대중정당”이라 평가했다.

    “자본주의적 산업화에 따른 사회적 모순에 뿌리를 둔, 전후 세대를 중심으로 한 제2세대 진보정당이자 기층 대중조직의 조직적 역량에 기초한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기대-실망-좌절과 거부 싸이클’의 반복적 악순환이라는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특성을 해소시켜낼, 그리하여 기성 정치에 대한 대중적 분노를 ‘기대-희망-신뢰와 참여 싸이클’의 선순환 구조로 바꿔낼 중요한 정치적 전기의 마련” 등 민주노동당에 대한 찬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그 날의 감격을 잊지 못한 채 당 활동가라는 자긍심으로 비록 힘들지만 즐겁게 살아온 많은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이 민주노동당이 스스로 진보정당임을 포기한 것에 대해 언제부턴가 좌절하고 분노하면서 이제는 하나둘씩 당을 떠나 일상으로 돌아가거나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모색을 하고 있다.

    대중들의 지지 철회와 활동가들의 이탈, 이것은 후보 개인을 넘어서 당에 대한 해산 요구이자 총체적 파산 선고에 다름 아니다. 민주노동당이 안팎으로 극한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우여곡절 끝에 얼마 전 심상정 비대위 구성이 중앙위원회를 통과하였다. 한쪽에서는 회의의 눈빛이, 다른 한쪽에서는 경계의 눈빛이 혁신을 통한 제2창당을 내건 비대위에 가해지고 있다.

    비대위는 어떤 혁신안을 당대회에 제출할 것인가? 난파당한 민주노동당은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그것은 일단 위기의 근본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그에 기초한 정확한 처방이 제시되고 실현될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위기를 가져왔는가? 위기의 근원은 무엇보다도 민주노동당이, 아니 당의 지도부와 당권파로서의 지배 정파가 반응(responsiveness)과 책임(accountability)이라는 현대 민주정치의 기본 원칙을 저버린 데 있다.

    17대 대선 결과는 그것의 집약적 표현이었다. ‘긴 과정의 마지막 의식(ceremony)’인 득표 결과는 기본적으로 긴 과정의 잘잘못에 대한 ‘인민의 평결’이라는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온 당의 역사

    2004년 총선 이후 지금까지 민주노동당의 역사는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온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역사적 궤적은 민주노동당이 유권자와 지지자들의 요구와 문제 제기에 응답하거나 반응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 과정과 한 짝을 이루면서 진행되었다.

    사실 민주노동당 지지자들과 잠재적 지지층은 2005년 울산북구 보궐선거와 2006년 지방선거 등 선거와 실망과 항의의 여론을 통해 계속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적색 경고등이 커졌음에도 그에 대한 당 지도부의 반응은 묵묵부답이었다. 책임을 회피한 것이다.

    특히 참패로 끝난 2006년 지방선거의 경우 평가도 책임 주체도 없었다. 당권파인 자주파는 모르쇠로 일관했고, 소수파인 평등파는 당이 깨질까봐 결과적으로 이에 공모했다. 지지율은 하향곡선을 그렸고 대중은 계속 멀어져만 갔다.

    당은 당대로 무기력에 빠졌고 당 내부 시스템은 붕괴되었으며 위기는 계속 쌓여만 갔다. 지지자의 눈에 비친 민주노동당은 편협한 정파 이익을 추구하는 권력기회주의적 정치집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당의 산파이자 최대 주주인 민주노총이 운동적 건강성과 노동계급 대표성을 포기 또는 상실한 채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이익집단화 경향을 보여온 것 역시 부정적 효과를 만들어냈다.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에서도 인민의 신호에 대한 무시는 마찬가지로 진행되었다. 세대교체를 통한 변화와 새로움을 기대한 지지자들이나 유권자들의 뜻과는 달리, 결과는 민심과는 동떨어진 후보의 선출이었다.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서 당내 지배 정파가 자신의 특정한 이해관계 관철을 위해 경선 결과를 왜곡시킨 것이었다. 그것은 결정적인 것으로, 지지자의 실망에 따른 항의 이탈은 확정적인 것이 되었다. 이처럼 경고에 대한 지속적인 당의 무시와 거부에 대해 지지자들은 17대 대선에서 표로써 복수를 감행한 것이다.

    누군가 갈파한 것처럼, “민주노동당은 경선을 끝으로 대선을 미리 끝내 버렸다. 대선의 결과는 그 의미를 확인해주는 절차에 불과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당내 지배분파와 후보뿐이었다.”

    대선 참패 이후에도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은 채 파행의 연속이었다. 선거 후 당권파인 자주파, 특히 그 핵을 차지하고 있는 종북파의 태도는 마치 멈춰버린 고장난 시계를 연상시킨다.

    하루 24시간 동안 딱 두 번 맞는 걸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그 시계는 지금의 사태가 얼마나 엄중한지를 이해할 실력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다자 대결구도 등 객관적으로 불리한 조건 때문에 대선 결과는 어쩔 수 없었다거나, 모두가 책임이라거나, 힘을 합쳐도 3%이기 때문에 합심 단결해야 한다거나, 또는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책임을 전가하면서 있지도 않는 종북이 아니라 분열을 꾀하는 종파가 문제의 근원이라거나, 분당하고 싶으면 조용히 나가라거나 하는 등등이 그것이다.

    이런 목소리가 나오면 나올수록 책임 실종의 상황은 반복되고 상황은 더 악화될 뿐이었다. 

    민족지상-통일지상-반미자주화로 무장한 종북파는 분명 있다

    왜 이들에게는 진심어린 반성과 성찰이 없는 것일까? 왜 스스로의 실체를 부인하는 것일까? 명확하게 있는 것을 없다고 부정하면 유령과의 싸움만 전개될 뿐 소통은 불가능하다. 자기 성찰 역시 당연히 있을 수 없게 된다.

    물론 자주파 전체가 종북주의 노선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민족지상주의-통일지상주의-반미자주화로 무장한 종북파가 자주파를 장악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비종북 자주파의 자유 선언이 없었다는 것, 민주노동당을 숙주로 해서 종북파가 자신들의 숙원사업을 하나씩 전개해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데 있다.

    이들의 기본 노선과 숙원사업은 2001년에 마련된 59쪽 분량의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 이른바 9월테제라는 문건에 잘 드러나 있다.

    그 핵심 골자는 “자주·민주·통일이라는 우리의 거룩한 대강령” 아래 “조국통일의 대사변기를 맞이하여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과 연방통일조국 건설을 기필코 이루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10년의 전망을 바로 세워내고, 그를 위해 승리의 조직적 담보인 강고한 민족민주전선과 (자주민주통일을 강령으로 정치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민족민주정당 건설을 위한 3년 계획의 수립”이다.

    그리고 “이남의 변혁운동의 전략적 중심 방향”으로 반미자주화 투쟁을 설정하고 있으며, 이 투쟁은 “이남 민중만의 과제가 아니라 전민족적 과제이며 반미자주화를 실현하는 힘 역시 전체 민족자주역량으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자주·민주·통일을 대강령으로 하고 있는, 그리고 1930년대식 통일전선전술의 사고를 담고 있는 9월테제의 내용은 ‘민주 평등 해방의 새 세상을 향하여’ 새로운 길을 찾는 민주노동당의 강령과 기본정신을 자신의 길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언한 것에 다름 아니다.

    결국 자주파가 온갖 불법 편법을 저지르면서 지역과 중앙을 장악하면서 당권파가 된 것, 당권파가 된 후 승자독식의 원칙 아래 저질러온 숱한 패권주의적 행태들, 다수의 횡포를 통해 이루어진 독선과 독단의 사례들, 재정문제를 둘러싼 여러 의혹들, 북핵문제에 대한 상식 이하의 태도나 이른바 ‘일심회 사건’, 코리아연방공화국 파동 등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9월테제의 내용을 억지로 현실화시키려는 데서 필연적으로 빚어진 것이다.

    이처럼 9월테제의 내용 및 그것의 폭력적․비상식적 관철 과정과 함께, 북한의 김정일 체제가 전체주의 체제이며 그 내부에 심각한 인권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반미와 민족의 이름으로 이를 일관되게 부인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의 핵심 질곡이 무엇보다도 종북-패권주의에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딴 소리를 하면서 진실을 감추려고 한다.

    연북은 있어도 종북은 없다는 어설픈 항변이나, 당의 질곡을 정확히 지적하면서 그동안 누적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을 해당분자, 분열주의자로 몰면서 출당조치를 요구하는 것이 그것이다. 지금 민주노동당의 활동 평가와 향후 진로를 둘러싼 안팎의 논란은 한마디로 상식과 비상식의 싸움 바로 그것이다.

    종북-패권주의 문제 해결 없이 당의 미래는 없다

    만약 종북-패권주의 문제를 거론한 조승수, 김형탁, 한석호, 김종철이 해당분자라면, 홍세화와 이덕우도 해당분자일 것이며, 나 역시도 해당분자라는 낙인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조선노동당이 아닌, 한국사회 진보정당이 새롭게 거듭나기를 바라는 의지와 활동에 찍힌 영광스런 낙인이자 자랑스런 상처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종북-패권주의 문제를 가볍게 보고, 정당 내부에 정파적 갈등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들린다. 또 민주노동당에 그동안 들인 공인 아까워 이 문제에 대해 일정한 타협책을 제시하면서 미봉적인 화해를 조성하려는 분위기도 있다.

    또 양비론의 시각에서 이른바 평등파의 문제를 이와 대등한 위치에 두고 낡은 정파구도 일반의 청산이 신뢰 회복에 더 중요하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 진정성 여부와는 달리 민주노동당을 일종의 ‘식물 정당, 사오정 정당’으로 만드는 길이자 결국은 완전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지름길일 따름이다.

    물론 성찰과 혁신을 통한 새롭게 거듭나기는 평등파에게도 요구된다. 그동안 의도와는 상관없이 적대적 공존의 구도 속에서 문제를 봉합하면서 공생해온 것이 사실이며, 따라서 ‘전진’ 그룹을 비롯한 평등파가 책임져야 할 몫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임에도 경중이 있고 선후가 있어야 한다. 차원이 다른, 드러난 실체와 드러나지 않은 정체불명의 권력에 대한 구분도 필요하다. 당내 책임을 지지 않는 비가시적인 권력의 존재는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종북-자주파에 의해 저질러져온 숱한 해당 행위에 대해 정확한 진상규명과 해결 없이는 누적된 상처와 좌절과 분노는 가라앉지 않을 것이며, 또 이반된 민심 역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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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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