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대 승자는 자주파, 패자는 신당파
        2008년 01월 14일 11:1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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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월 12일 민주노동당은 다시 한 번 “봉합”되었다. 그 무수한 논란과 주장에도 불구하고, 봉합은 신속하게 처리되었다.

    이 번 봉합의 최대의 승자는 역설적으로 자주파이다. 비대위 설치안은 자주파에 심대한 타격인 것처럼 소란스러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자주파는 여전히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으며,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한 것에 불과하다.

    자주파는 장원섭 중앙위원이 제기한 것처럼 전략공천안 내용의 모호함에 대해서 물고 늘어질 것이다.(실제로 확대간부회의 합의안은 대단히 모호하게 작성되었다. 이를 둘러싼 투쟁은 이제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 및 전략공천안에 대해서 당 대회와 당원총투표 때 강력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이를 무력화시킬 수 있으며, 이를 무기로 적절하게 심상정 비대위와 타협할 것이다. 심상정 비대위 또한 자주파 내 다수 분파들이 자신을 지지해준 것에 대해서 일정하게 인정해 주지 않으면 비대위의 안정적 운영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적절한 타협을 추구할 것이다.

       
    ▲ 비대위원장으로 인준된 직후 중앙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는 심상정 위원장 (사진=진보정치)
     

    전략공천 문제도 그렇다. 과연 민주노동당과 유관한 인사 중에 자주파와 평등파의 논쟁과 무관한 인사가 있을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파와 무관한 인사는 민주노동당에 절대로 오지 않을 만한 사람들 뿐이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비대위의 전략공천권은 정치적으로 매우 ‘제한적’인 것이다.

    또한 일부 평등파에서 제기한 종북주의 문제 같은 것은 심상정 비대위로써도 절대 다룰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바로미터로 제시되고 있는 일심회 관련자에 대한 출당 조치조차도 격렬한 반대에 부딪힐 것이고 비대위가 이를 당기위에 제소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며, 설사 형식적인 제소가 있다고 하더라도 당기위는 최대한 그 판단을 늦출 것임이 명백하다.

    자주파는 외견 상 분열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8년의 역사에서 자주파는 결코 분열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자주파 내부의 유연한 대립으로 안정적으로 다수파를 유지해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번 중앙위에서도 자주파는 외견 상 분열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여전히 위력을 보여주었다. 자주파 내 강경그룹은 심상정 비대위의 태도 여하에 따라 언제든지 자주파내 여론을 주도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2.

    이번 중앙위의 최대의 패배자는 평등파 내 신당추진 세력이다. 이들은 하부의 불만을 조직하는데 실패했으며, 심상정 의원과의 관계와 당내 여론 때문에 과감한 행동을 조직하지 못했다. 소수파의 강점은 주장의 성명성과 행동의 과감성인데 이들은 이 것 중 어느 것도 쟁취하지 못했다.

    신당파는 평등파의 두 리더인 노회찬, 심상정과의 개인적 인연 때문에 부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후 외롭고 고난에 찬 행군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문제는 민주노동당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당원과 지지자의 불만이 언제까지 창조적인 에너지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등파 조직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당원들이 탈당을 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신당파의 머뭇거림은 자신들의 무덤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3.

    그 다음 패배자는 소위 평등파 내 혁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주파와 연합하여 심상정 비대위의 구성에 전폭적인 찬성을 보냈으며, 이번 총선까지는 관망하자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들은 1월 12일의 봉합에 가장 적극적이었으며, 신당파의 무능과 무책임을 질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비대위에서 총선까지의 기간에 비대위 내에서 무엇을 혁신할 것인지 또는 자주파에 맞서 어떠한 전략을 구성할 것인지에 대해서 아무런 합의조차 존재하고 있지 않다.

    혁신은 그 내용이 있어야 한다. 신당파의 종북주의, 패권주의 청산 주장이 비록 거칠기는 하지만 그간의 민주노동당의 문제점 중 하나를 압축하고 있는 측면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혁신파는 무엇을 혁신할 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주장도 없으며 봉합에 급급하고 있다.

    하여튼 민주노동당이 유지되는 한 이들의 지위는 일정 기간은 보존될 것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가장 큰 패배자는 아닐 것이다. 문제는 총선 후에는 절대로 이들은 혁신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예견되고 있는 총선 패배의 결과는 심상정비대위의 책임으로 될 것이고, 자주파는 다시금 조직력을 바탕으로 당권에 복귀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립적 의원 2~3명 – 그것도 민주노동당의 조직적 경험도 약한 – 이 당선된다고 하여 당권에 복귀한 자주파를 견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상황은 2004년 총선 직후보다 더욱 악화될 것이다.

    4.
    심상정 비대위는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을 보낼 것이다. 정치적 판단과 실무적 능력을 두루 갖춘 심상정이라고 하더라도 해결할 수 없는 엄청난 문제를 민주노동당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배에 비유하자면 침몰 직전의 난파선인데, 그래도 중간 규모는 돼서 침몰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다.

    부채가 얼마인지도 정확치 않고, 최소 30억에서 최대 70억원에 달한다는 말이 설왕설래하고 있고, 단순한 회계처리의 미숙이 아니라 거의 횡령, 배임수준의 재정운용이 전국적으로 자행되어 왔으며 임금과 퇴직금은 만성적으로 체불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많은 중앙당 인력이 그만두었으며, 현재 그 자리는 대부분 자주파 출신의 사람들로 채워져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가 시정하여야 할 정책적 오류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코리아연방공화국까지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선 공약자료집에 들어간 ‘주한미군 철수 후 북핵폐기’라는 오사마 빈 라덴 수준의 공약에 대해서는 과연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뿐만 아니라 단순한 당원 정보가 아닌 정당 간부들의 정치성향을 분류하여 당 외부에 보내면서도 버젓이 급여를 받고 있는 전직(?) 간부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위에서 열거한 것은 사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심상정 비대위를 좌초시킬 수 있는 복병은 너무나 많아서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대선 경선에서는 노동조합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비대위 운영에 있어서도 동일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통한 조직가이자 정치가이기는 하나 민주노동당이라는 조직에는 익숙치 않은 심상정 의원이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이것이 아마 1월 12일의 봉합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좌우할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1992년 민중당에 재흡수된 한국노동당 창당 세력의 일화는 비극이지만 2008년 1월 12일 중앙위의 봉합은 역사는 희극으로 기록될 것이다. 양치기 소년에게 매번 속는 평등파의 사멸이 희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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