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혜진이와 예슬이를 돌려보내주세요"
        2008년 01월 14일 08:2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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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진이와 예슬이를 돌려보내주세요

    혜진이와 예슬이를 돌려보내주세요
    방학숙제가 밀렸다고 걱정일 거예요

    혜진이와 예슬이를 돌려보내주세요
    학용품들이 인형들이 심심해 해요

    혜진이와 예슬이를 돌려보내주세요
    고봉밥 한 그릇이 남아 있어요. 짜장면 몇 가락이 아직 남아 있어요.

    혜진이와 예슬이를 돌려보내주세요
    엄마는 식당찬모일, 아빠는 새벽기계일 다니면서도 잊지 못하던 아이들이에요

    혜진이와 예슬이를 돌려보내주세요
    이젠 우리가 아이들의 철봉이, 미끄럼틀이, 시이소오가, 그네가, 동물원이 되줄게요

    혜진이와 예슬이를 돌려보내주세요
    꾸김살없이 잘 키울께요

    혜진이와 예슬이를 돌려보내주세요
    이젠 절대 혼자두지 않을게요. 이젠 정말 상처주지 않을게요. 이젠 정말 야단치지도 무시하지 않을게요

    혜진이와 예슬이를 돌려보내주세요
    그 해맑은 웃음을, 변덕을, 토라짐을, 칭얼거림을 돌려보내주세요 

                                                         

       
     
     

    혜진이는 제 아들 관호와 같은 나이입니다. 예슬이는 두 살 어립니다. 혜진이와 예슬이는 제 아들 관호와 친구입니다.

    제 아들 관호는 아빠를 발로 찹니다. 목을 잡고 매달립니다. 공중그네를 태워달라고 무좀 걸린 아빠 발에 배를 올립니다. 토라져 아빠와 말도 안하려고 합니다. 약속은 아빠가 더 안 지키면서 하면서 훌쩍훌쩍 웁니다. 왜 아빠는 가고 싶은데 다 가면서 나는 못가게 하냐고 또 웁니다.

    꼭 제 엄마만 따라가겠다고 두려운 눈으로 나를 봅니다. 마르고 찬 내 손을 꼭잡아 제 엄마의 손에 꼭 쥐어 줍니다. 엄마를 자꾸 내 쪽으로 밉니다. 엄마한테 사과해, 빨리! 합니다. 어두운 게 무서워 꼭 제가 잠들 때까지는 불을 켜놓아 달라고 합니다.

    무턱대고 장난감을 사 달라고 하다가도, 만화 <빈대가족의 가난탈출기>를 보고 난 후에는 “아빠, 더 깎아”, “아빠, 물 그만 잠가. 돈 샌다. 돈 새”하면서 소박한 가계를 걱정합니다.

    아이는 아빠가 같이 놀아주기를 바랍니다. 제가 좋아하는 컴퓨터 게임을 아빠가 한 번만 같이 봐주었으면,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자꾸 날아가 버리려는 새의 발목을 잡은 듯 잡은 내 손을 놓지 않습니다.

    저가 요즘 제일 좋아하는 노래라고 <슈퍼주니어>의 ‘미러클’이나, <원더걸스>의 ‘텔미’ 뮤직비디오를 틀어두고 한 번만, 한 번만 같이 들어달라고 그 작은 1자를 입에 붙이며 잡은 내 손을 놓지 못합니다. 그때마다 나는 1분도 못돼 돌아서고 맙니다.

    오라에라도 묶인 듯 잡힌 손을 뿌리치고 맙니다. 때로는 화를 내어 아이의 마음을 되려 상하게도 합니다. 다시는 아빠 손잡지 말라고, 말로 하지 잡지 말라고 핀잔을 줍니다.

    그러나 압니다. 아이는 제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제가 찾은 모든 귀한 것을 아빠에게 나눠주고 싶은 거겠죠. 아빠도 저처럼 즐거워지기를 바라면서요. 그 모든 때 마음으로는 나는 그 아이를 꼭 껴안아주고 싶습니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빌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나는 너무 많은 인생의 굴곡과 상처와 더깨를 지나오며 굳어버린 나무입니다. 입을 열어 말을 해주지 못하고, 멀리서 지켜만 보며, 아이가 올라타도 놀아주지 못합니다. 붙잡는 데로 따라 가주지도 못합니다. 그게 늘 미안합니다. 내 아이에게가 아니라, 하나의 새 생명에게 미안합니다. 나와 30년 차이밖에 안 나는 새로운 역사의 손짓에게 미안합니다.

    생각해 보면 내 아버지에게 미안합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아버지에게 단 한 번도 동화책을 읽어주지 못했습니다. 단 한 번도 만화책을 읽어주지 못했습니다. 단 한 번도 아버지에게 카세트 라디오의 노래를 들려줘보지 못했습니다. 단 한 번도 아버지의 손을 따뜻하게 쥐어보지 못했습니다.

    단 한 번도 아버지의 손을 잡아 끌어보지 못했습니다. 단 한 번도 아버지의 손을 부르튼 어머니의 손에게로 끌어보지 못했습니다. 단 한 번도 아버지와 단 둘이 여행을 못해 보았고, 단 한 번도 아버지의 등에 올라타 보지 못했습니다. 단 한 번도 아버지에게 발길질을 못해 봤습니다.

    단 한 번도 아버지 목을 잡고 헤드락을 못해 봤습니다. 단 한 번도 아빠 사랑해, 라고 말해주지 못했습니다. 단 한 번도 아빠 미안해, 라고 말해주지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내 엄마에게도 미안합니다. 엄마에게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엄마는 늘 바빴습니다. 엄마는 늘 부뚜막에 앉아 계셨습니다. 우리가 잠들고도 천장의 쥐들처럼 한참을 달그락거리셨습니다. 뛰어다니면서 밥상을 차렸습니다. 뛰어다니면서 일을 했습니다. 아버지를 찾아 나가 한참만에야 돌아오곤 하셨습니다.

    가끔 머리채가 질질 끌리며, 펑펑 나자빠지며 저 멀리 겨울밤길을 호곡하며 오는 소리가 들리곤 했습니다. 동화책은 늘 요 밑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엄마의 곡소리는 자주 들었지만 내 노래는 들려 줄 틈이 없었습니다.

    집이 작아 집 안에서는 엄마와 놀아줄 곳이 없었습니다. 방이 작아 방 안에서는 엄마를 즐겁게 해 줄 수 없었습니다. 집 밖에서 노는 일이 많았습니다. 저녁 밥때가 되면 어둠그늘 저 멀리서 “경동아, 경동아”, “상동아, 상동아” 부르던 소리가 아련합니다. 바쁜 엄마를 안아 주었던 기억은, 그래서 내가 아직 걸을 수도 길 수도 없었을 한두 살 무렵뿐이었습니다.

    이불에 쉬를 했다고, 몽당연필에 끼는 볼펜대를 잃어버리고 왔다고, 공책에 빈 칸이 왜 이렇게 많냐고, 성적이 이게 뭐냐고, 왜 아버지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빼내갔냐고, 왜 넌 그리도 엄마 말을 듣지 않냐고, 종아리를 맞을 때, “엄마, 엄마, 다신 안 그럴게”하며 엄마의 다리를 붙잡던 기억 뿐.

    달거리로 머리에 이를 잡아줄 때, 손톱을 깎아줄 때, 귓밥을 파줄 때, 손등의 때를 불려 밀어줄 때, 그런 때에야 슬며시 엄마의 무릎을, 어깨를 짚어볼 수 있었습니다. 엄마에게도 그렇게 나는 사랑을 다 못 주었습니다. 기쁨을 다 못 주었습니다.

    단 한 번도 그 늙은 식모를 ‘어머니’라고 높여 불러드리지 못했습니다. 단 한 번도 아버지의 주먹과 손아귀에서 어머니를 구해드리지 못했습니다. 엄마의 손을, 가슴을 만져드리지 못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미안합니다. 나는 나에게도 사랑을 나눠주지 못했습니다. 나는 나를 위악스러운 아이로 만들었습니다. 수줍은 아이로 만들었습니다. 어득어득하고 고집 센 아이로 만들었습니다. 모난 돌, 좁고 습한 방, 그늘진 골목, 삐뚤어진 길로 만들었습니다. 요구하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 말하지 못하는 사람, 눈을 보며 말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가능성을 믿지 못하는 사람, 기다릴 줄 모르는 사람,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작은 행복도 두려운*, 작은 성취도 피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작은 독종으로, 싸움꾼으로 만들었습니다. ‘빠따’를 맞으면서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이 악무는 사람, 제 살갗 위에 자해의 선도 긋는 비정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잡범 방 구부리고 앉아 식구통 문을 열고 닫는 사람으로, 유흥업소의 셔터를 열고 닫는 이로, 뒷골목을 서성이는 사람으로, 배운 건 도둑질뿐인 사람으로, 할 줄 아는 것은 노가다뿐인 사람으로, 할 줄 아는 것은 몸 팔아 먹고 사는 일뿐인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가슴 속의 詩도, 가슴 속의 노래도, 가슴 속의 농담도, 가슴 속의 춤도, 가슴 속의 그림도, 다 묻어두어야 했습니다. 마음 속의 사랑도, 마음 속의 그리움도 모두 묻어두어야 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어머니에 대한 사랑도 모두 묻어두어야 했습니다.

    얘길 하다보니 길어졌습니다. 내가 왜 이런 부끄러운 이야기들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내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긴 시간이 흘러, 어느 쓸쓸한 날. 지난해 12월 29날. 이제 겨우 열 살, 여덟 살밖에 안 된 혜진이와 예슬이가 며칠 전 크리스마스날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내 아비처럼, 내 어미처럼, 식당일 나간 엄마, 기계일 나간 아빠를 혜진이는 늘 혼자 씩씩하게 기다렸다고 합니다.

    비 오는 날이면 혼자 빨래도 걷어놓고, 방걸레질도 해놓던 착한 아이라고 합니다. 일에 지친 아빠를 위해 제 손으로 달걀말이를 하고, 아빠 양말을 벗겨주며 애교 떨던 착한 아이였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날. 혜진이는 혼자 동네 화장품 가게에서 들러 엄마 크리스마스 선물로 립스틱을 사서 예쁘게 포장해 갔다고 합니다. 동네놀이터에서 혼자 온 예슬이를 만나 놀았다고 합니다. 오후 다섯시 무렵까지 저희들 끼리 손잡고 놀던 아이들이 저녁밥 무렵이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사둔 크리스마스 케잌 한 조각을 지금도 남겨두고 있다고 합니다.)

    괜시리 마음이 서럽고, 아프고, 쓰라렸습니다. 길 잃은 아이처럼 허청허청 강원도 산길을 걷는데, 관호가 전화를 했습니다. “아빠, 아빠, 언제 와?” 이미 부재가 일상이 되어 버린 아빠.

    하지만 그래도 아직 관호는 아빠를 사랑해 주고 싶은가 봅니다. 자신을 버리지 않고 싶은가 봅니다. 우리 모두는 따뜻해질 수 있다는 그 어린 꿈을 버리지 않고 싶은가 봅니다.

    혜진이와 예슬이를 찾아 주십시오. 돌려보내주십시오. 이 세상의 모든 관호와 혜진이와 예슬이들이 <슈퍼주니어>가 되고 <원더걸스>가 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들이 다시는 이 늙은 아비들처럼 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들이 이 착한 어미들처럼 울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들이 그들끼리 어울려 캄캄한 한밤중까지 놀아도 위험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어 주십시오.

    충분히 아이들을 돌봐줄 수 없는 너와 나, 우리 세대가 그들 세대들에게 너무 많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 주십시오. 내가 예전의 나를 다시 짓밟고, 내가 예전의 나를 다시 증오로 떨게 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우리 아비들의 힘겨운 삶을 우리가 다시 살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제발, 제발, 혜진이와 예슬이를 돌려보내주세요. 혜진이와 예슬이가 돌아오면 예전의 나도 나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당신도 잃어버렸던 당신을 찾을 수 있을 거고요. 부모 잃고 헤매던 모든 아이들이, 어른들이 환하게 웃으며, 처음 그 집, 아름답던 옛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

    제발, 제발 혜진이와 예슬이를 찾아 주세요. 돌려보내주세요. 그 아이들에게 평온을, 평화를, 미래를, 꿈을, 사랑을, 희망을, 크리스마스의 케잌을, 엄마에게 선물할 빨간 립스틱을 돌려주세요.

    * 문동만 시인의 첫시집 제목 “나는 작은 행복도 두렵다”에서 빌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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