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정권과 노무현 야당의 적대적 합작
        2008년 01월 13일 09: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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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가는 사람 등 뒤에 구정물을 뒤집어 씌우거나 소금을 확 뿌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 힘없고 빽 없고 새 정부 눈치만 봐야 하는 국장들을 데려다 호통치고 반성문 쓰게 해서는 안 된다 … 인사 자제 얘기 또 나오면 내 맘대로 할 것이다.”

    요즘 노무현 대통령이 이명박 당선자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내뱉은 말이란다. TV 중계만 봐서는 실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소상히 알 수 없지만, 노 대통령 심기를 건드릴 만한 인수위의 행패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그처럼 행동하는 것은 처음이 아니어서, 노무현 당선자 시절이 지금보다 더 점잖거나 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 기록을 뒤져 보니, 공무원들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고 인수위원이 뛰쳐나갔던 일도 있고, 말 안 듣는 공무원더러 “나가 있어”라고 ‘루이 윌리엄 세바스찬 주니어 3세’처럼 굴었던 적도 있다.

       
      ▲사진=뉴시스
     

    어쨌거나 이명박 인수위가 지나치다거나 노무현 때는 더 했다거나 하는 공방은 별 재미 없다. 여권은 “얼마나 억울했으면 … 불쌍하다”는 식으로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고, 한나라당 류는 “그 입이 어디 가나 … 마지막 발악이군”이라는 식으로 폄하하고 있는데, 이 역시 한가한 소리다.

    노무현 대통령이 노리는 것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통해 노리는 것이 무엇인가이다. 환갑을 갓 넘긴 젊은 정치인인 노무현이 청와대를 나온다 해서 양 김씨처럼 뒷방 정치를 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것이다.

    인수위에 대한 노무현의 일련의 발언, 이명박과의 각 세우기는 노무현네가 야당 정치를 시작했다는 신호다. 설사 노무현의 심중에 그런 계산이 없었다 할지라도, 지금의 상황은 김대중 당선 이래 집권당의 권력을 누렸던 민주당, 열린우리당 계열의 야당 복귀 시대를 여는 초석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놈이 그 놈이지”라는 시쳇말이나 진보학자들이 분석 평가하는 바와 같이 이명박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므로, 결국 남는 것은 ‘말의 정치’다. 자유주의 야당의 정치란 곧 노무현의 인수위 비난 같은 ‘말의 정치’가 잦아지고, 축적되고, 격화되는 것 뿐이다.

    물론 자유주의자들의 야당 생활은 이런 저런 조건에 따라 변화와 부침을 겪게 될 것이다. 우선 야당의 범위와 정체를 어떻게 할 것인지 하는 문제가 있다.

    현재의 통합민주신당 세력은 다음 총선 등 이어지는 선거 상황에 대응키 위하여 큰 야당을 유지하려 들 것이다. 그런데 큰 야당은 불가피하게 중도온건주의를 표방할 테고, 그런 노선은 이명박 정권과 차별성이 부족하다는 딜레마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탈당한 이해찬의 속내가 무엇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이해찬과 같은 강경 노무현파는 작고 강한 야당, 선명야당의 기치를 내걸 가능성이 크다. 신민당도, 평민당도 그런 노선을 통해 성공하지 않았던가.

    자유주의자들 야당 생활 5년보다 길 것

    더군다나, 그들의 야당 생활이 5년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면, 세게 나가 손해 볼 건 없다. 한국 정치야 워낙 역동적인지라 지금 5년 후를 내다보기는 섣부르지만,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를 입력해보면 한나라당의 집권과 자유주의자들의 야당 생활이 5년보다는 훨씬 길 것이라는 결론에 쉽게 도달할 수 있다.

    10년이나 15년의 재야 생활은 감성과 행동양식을 과격하게 만들고, 그런 과격함에 어울리는 관념을 찾게 만든다. 노무현네는 ‘좌파 신자유주의(Neo Liberal Left. 울리히 벡)’라는 거시 노선까지 천명한 바 있다.

    자유주의자들은, 시간의 축적에 따라 지역주의를 뺀 옛 평민당의 이미지에 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차용하여 자신들을 표방하는 데로 경도되어 갈 것이다.

    이런 추세가 자유주의 외부의 반이명박 세력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는 ‘종로5가당’이라는 공용어가 있었다. 종로5가에 자리 잡고 있던 민통련, 전민련 등의 재야단체들이 실상은 김대중당의 종로5가 지구당이라는 비아냥이었는데, 근거 없는 비난은 아니었던 것이 당시 재야단체들의 실상이 그러했다.

    종로5가당의 회의는 즉각 자유주의당에 보고되었고, 김대중이나 김영삼의 ‘벙커’에 문안 인사 갔던 ‘재야 원로’들이 돌아올 때는 ‘지침’과 돈봉투가 같이 따라왔다. 문익환 목사 같은 이들은 단체 내부의 표결 같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김씨들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하곤 했다.

    지금의 민중단체나 시민단체들이 당시의 재야단체들보다 더 독립적이거나 강할까? 그렇지 않다. 지금의 사회단체들은 당시의 재야단체보다 훨씬 많은 인적 통로를 가지고 있고, 이미 10년의 ‘참여’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이런 위험에서 그나마 벗어나 있는 것이 진보정당이다. 하지만, 요즘의 민주노동당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미 ‘2중대’ 전과를 가지고 있는 민주노동당은 지난 대선에서도 BBK에 목매는 정동영에 덩달아 춤추지 않았던가. 민주노동당의 꽤 많은 간부들은 자당이 자유주의자들을 위한 자원봉사단체라는 후덕함을 보여주고 있다.

    요즘에는 조금 낯선 풍경이지만, 군사독재 시절과 김대중 정부 초기까지는 자유주의당들의 현역 국회의원이 사회단체 회의에 참석하거나 참관했었다. 특히, ‘민족’이나 ‘민주’라는 이름을 내건 이른바 ‘연합전선’ 단체들은 진보정당은 배제하더라도 자유주의 야당과의 의리는 배반한 적이 없다. 그들이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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