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 거부 논리 '정파게임' 새버전
    2008년 01월 09일 06: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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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진보 운동을 20년 넘게 좀먹어온 ‘정파 게임’의 2008년 신판 버전이 새로 나왔다. 얼마 전 가까스로 마련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주된 안건으로 삼았던 민노당 중앙 위원회가 파행을 겪고 이에 따라 비상대책위원회 구성도 무산되고 말았다.

김창현(이하 모든 존칭 생략) 등을 중심으로 한 NL 당권 세력은 비례 대표 후보 선임 권한을 넘길 수 없다고 나섰다. ‘분당’을 원하는 PD 세력 일부는 ‘종북주의 청산’이라는 희한한 조건을 요구하고 나섰다. 양쪽 다 비상대책위원회의 구성을 한사코 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민노당은 ‘이혼 수속’을 밟는 일만 남은 것 같다는 푸념이 사방에서 들린다.

“초헌법적 조치”니 “종북주의자와의 결별”이니 하는 명분으로 치장해도 허사다. 지금 비상대책위원회의 구성을 회피하고 거부하는 그 모든 논리와 주장은 2008년 새로운 버전의 정파 게임일 뿐이다.

1. ‘정파 게임': 책임 회피와 무능력 은폐의 상호 공조

정파의 존재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문제는 ‘정파 게임’이다. 이는 게임에 참여하는 모든 정파들이 서로 다른 정파의 ‘불량한’ 본질을 공격하기만 하면 누구나 스스로의 책임을 회피하고 무능력을 은폐할 수 있게 되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정치 기술자들의 가면 무도회이다.

특히 진보 운동 내에서 이 ‘정파 게임’은 운동의 사분오열과 전체의 지적 실천적 역랑을 갉아먹어온 오랜 연혁을 가지고 있다.

그 고전적인 예로서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경험을 들 수 있다. 스탈린 체제에 반대했던 트로츠키였지만 파시즘의 발흥과 2차 대전의 임박이라는 조건 속에서 일단 스탈린주의자들과 연대하여 반파시즘 전선에 함께 나서는 노선을 제출하였다.

트로츠키주의자들과 정파 게임

트로츠키의 진단으로 2차 대전에서 일단 소련이 승리하고 나면 곧 소련의 혁명적 노동자들이 스탈린 체제에 맞서 봉기할 것이며 그것으로 세계 혁명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견하였기 때문이다. 비극은 45년 이후에 시작되었다. 트로츠키의 예견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세계 혁명은커녕 자본주의 진영은 더욱 공고해졌고 스탈린 체제는 내부 혁명은커녕 오히려 세계 지도의 절반을 잡아먹고 말았다.

이 사태를 어떻게 볼 것인가? ‘마지막 마르크스주의 혁명가’ 였던 트로츠키가 살아있었더라면 아마 이에 대해 솔직하고 성실한 태도를 취했을 것이다. 그는 1940년 암살당하기 전에 만약 이러한 사태가 벌어진다면 자신이 제시했던 모든 사상 이론 실천 방침을 전부 폐기하고 원점에서 다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유언했던 바 있다.

불행히도 트로츠키가 사라진 2차 대전 이후의 트로츠키주의 운동에는 이러한 정직하고 성실한 태도를 가진 인물이 없었다. 그래서 터무니없이 빗나가버린 자신들의 예견에 대한 반성도 이루지 않았다. 잘못된 실천 방침으로 숱한 이들의 희생을 개죽음으로 만들어버린 책임을 지는 이도 없었다.

완전히 변모해버린 1950년대의 냉전 상황에서 운동을 풀어갈 새로운 전략을 마련하는 이도 없었다. 대신 이들은 이렇게 우겼다. 노동자 혁명이 일어나지 않게 된 것은 모두 기회주의자들의 ‘개량주의적 야합’ 때문이며, 자신들은 여전히 세계 혁명을 지도할 전위(vanguard) 집단이고,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온 대로 레닌과 트로츠키의 가르침을 굳건히 움켜쥐는 것만이 올바른 실천 전략이라고.

이 터무니없는 책임 회피와 무능력을 은폐하기 위해 이들이 골몰하기 시작한 것이 ‘정파 게임’이다. 이들의 선전물은 변화된 상황에 대한 새로운 분석과 전략 모색이 아닌 공산주의자들 사회민주주의자들과 같은 ‘개량주의자들’에 대한 폭로와 타격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만간 이 ‘정파 게임’은 집안싸움으로 비화된다. ‘개량주의적’ 지도부에 대한 공격과 반박 속에서 이들은 오랜 집안 싸움을 겪어오면서 사분오열 아니 셀 수조차 없는 무수한 소집단으로 핵분열을 겪으며 지리멸렬의 길을 걸어갔다.

책임 회피와 무능력 은폐 그리고 정파

1980년대 한국에 모습을 드러낸 NL과 PD의 역사도 이러한 계통 발생을 되풀이해왔다. “한줌도 안되는 친미 세력과 매판 자본가들로 인해 자본주의 발전의 정체를 앓고 있는 한국의 인민들”은 왜 ‘전민항쟁’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마찬가지로 “한줌도 안되는 독점 자본가들과 그에 포섭된 부르주아 독재 권력”은 왜 그에 저항한 혁명적 노동 계급에 의해 민중민주주의 혁명을 맞지 않았는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자신들의 깃발을 따르라며 수많은 젊은이들과 노동자들과 시민들을 길거리로 감옥으로 때로 죽음까지 감수하게 만들었던 그때 그들은 어디 있는가. 한 때 운동을 지도한다며 의기양양하던 그 수많은 ‘이론가’들 ‘혁명가’들 ‘지도자’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는가.

적지 않은 수가 여기에 “그냥 그대로” 있다. 이들은 여전히 20년 전과 똑같은 NL과 PD라는 간판과 울타리를 유지하면서 그 수장으로 군림하고 있다. 파산해버린 사상과 이론, 빗나가버린 현상 파악, 완전히 무력화된 운동 노선에 대한 정직하고 솔직한 반성과 고백은 한번도 공개적으로 하지 않은 채.

그래서 이들은 이명박이 청계천을 완공한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사회주의적 상상력’을 또 호소한다. 100년 전에 나온 이야기 그대로이다. 그리고 이명박이 경부 대운하를 공약으로 내건 2008년 대통령 선거에도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또 꺼내든다. 1960년대 북한의 주장 그대로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NL이건 PD이건 파산한 내용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고 현재 상황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도 없고 향후 실천 방향에 대한 구체적 방침도 내오지 못하는 책임 회피와 무능력으로 점철된 정파들이 어떻게 20년이 되도록 진보 운동의 양대 세력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을 수 있었을까.

대략 이 ‘정파 게임’ 덕분이다. 서로가 서로의 무능력과 책임을 캐묻는 목소리와 핏대를 올리고 있는 한 양쪽 모두 혁명적이며 진보적이며 열정적이기까지 하다. 이렇게 양쪽 모두 ‘정파 게임’을 통해 각자의 책임 회피와 무능력을 은폐할 수 있었다.

과거에 대한 평가, 현재 상태에 대한 파악, 미래의 실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운동 집단의 임무이다. 이 혹독한 임무를 그들이 회피할 최고의 계책은 ‘정파 게임’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모든 값진 토론이다.

2. ‘정파 게임’ 속에서 사라져버린 논의들, 비대위에서 맡아야 할 논의들

우리 모두가 지금 간절히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바로 민노당과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먼저 그동안 말만 많고 한 번도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적이 없는 당 혁신 방안이다. 여기에는 숱한 쟁점이 걸려 있다. 먼저 파행과 파행을 계속하면서 심각한 투명성의 문제를 야기했던 당 재정 운영 방침의 문제가 있다.

소위 말하는 ‘셋팅 선거’라는 입에 담기도 싫은 야비한 짓으로 당권을 장악하고 그 숫자를 빌어서 평당원을 소외시키고 소수의 정파 수장들에 의해 당 운영을 좌지우지했던 ‘패권주의’의 문제도 있다. ‘일심회’ 사건 등에서 드러난 바 당내의 북한 정권 추종 세력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도 있다. 대략 2006년부터 중단되어버린 입법 발의안 생산의 책임과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의 문제도 있다.

이 모든 문제들은 이미 당 안팎에서 너무나 많이 회자된 것들이라서 이것들의 책임 추궁과 근본적 발본 대책을 마련하는 혁신 방안이 없이는 떠나간 숱한 당원들과 지지자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다시 찾아오는 일이 전혀 불가능하다.

떠나간 당원들과 지지자들

둘째, 2007년 대선 평가의 문제이다. 창당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유리한 조직적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선 결과는 심각한 실패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 실패가 어느 정도의 실패인지, 또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지는 제 각각 생각이 다른 것 같다.

혹자는 완전 파산이라 하고 또 누구는 그렇게까지 큰 패배는 아니라고 한다. 혹자는 ‘코리아연방공화국’에 나타난 종북주의와 민족주의에 있다고 하고 또 누구는 다른 정파의 비협조적 태도 때문이라고 한다. 혹자는 책임은 권영길 후보를 추대했던 모든 세력이 져야 한다고 하고 있고 또 누구는 당 전체가 책임을 나누어야지 일부 세력에게만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한다.

이 정도의 현상 파악의 간격이라면 마땅히 서로 공개적으로 논쟁하고 따지고 비판하는 장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당원들과 지지자들에게 책임 있게 ‘아뢰는’ 백서(白書)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셋째, 총선에 임할 전략이 제출되어야 한다. 지금 흩어질 대로 흩어진 당 안팎의 역량을 가다듬고 대선과 다른 모습으로 유권자들 앞에 나설 수 있는 새로운 모습을 어떻게 갖출 것인가에 대한 논의이다. 지역에서 출마할 이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에 대해서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당의 얼굴이라고 할 비례대표 명단의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신중하고 효과적인 전략이 제출되어야 한다. 이를 놓고 당원들은 물론 당 주변의 지지자들과 관심 있는 모든 이들의 폭넓은 의견과 바램이 적극적으로 터져나올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 안아야만 한다.

이렇게 민노당과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과 재구성의 열린 토론의 장이 바로 ‘비상대책위원회’가 반드시 있어야 할 이유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또 이전처럼 이런 저런 정파 세력의 야합과 꿍꿍이로 밀실에서 해결되고 나온다면 단연코 민노당의 미래는 없다.

2008년 한국 사회의 그 누구도 누구나 뻔히 알고 있는 문제들을 이리저리 얼버무리고 뭉개고 나오는 이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러한 논의가 최대한 광범위하고 투명하게 진행되도록 열려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 지금까지 당 안팎에서 작동했던 일체의 관성과 단철할 수 있도록 이 세 가지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논의를 주도하고 집행할 확실한 권한을 쥐어야만 한다.

불행히도, 이러한 비상대책위원회는 얼마 전 중앙위원회에서 태어나기도 전에 유산되고 말았다.

3. 중앙 위원회: 정파 게임 2008 버전 출시

이러한 임무를 수행할 비상대책위원회의 출현은 그것이 나타날 경우 책임과 능력이 낱낱이 드러날 종파주의자들에게는 탐탁치 않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 유산은 예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김창현 등의 다수 NL 세력은 비대위가 확장된 권한을 갖는 것을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초헌법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에두르지 말자. 우리 모두 의심하고 있다. NL 내 여러 분파 세력들과 그 우두머리들의 초미의 관심이 지금 비례 대표 명단의 윗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닌가를.

최소한 ‘전진’ 그룹은 비례 대표 불출마 선언을 밝히는 최소한의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김창현을 제외한 NL 집단의 수장들 그 누구도 비례 대표와 관련한 자신의 거취를 분명히 밝힌 바 없다. 이미 비례 대표 명부의 윗자리를 놓고서 NL 내부의 이런 연합 저런 연합 사이에 어떤 묵계가 오고 가는지에 대한 온갖 추문이 돌고 있는 현실이다.

이 상황에서 비대위가 마땅히 가져야 할 총선 준비와 비례 대표 준비의 권한을 놓고 ‘초헌법적’이라고 우기며 반대하고 나선 것은 한마디로 “비례 대표는 꼭 움켜 쥐겠다”는 메시지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다.

논쟁의 겉과 속

PD 일각 세력은 ‘종북주의 청산’을 외치고 나왔다. 진보 진영에 조금이라도 애정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안다. 민노당 내의 친북주의의 폐해와 비윤리적 북한 추종 세력의 행태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를. 그런데 이 너무나 온당해 보이는 문제 제기 뒤에 완전히 은폐되고 있는 문제가 있다.

바로 대선 시기 나아가 지난 몇 년간 PD 세력 스스로가 노정했던 무정견과 무능력의 책임 문제이다. 대선 시기 그들은 무엇을 했는가. 대선을 한달 앞두고 출간된 ‘전진’ 집단의 기관지는 ‘러시아 혁명 90주년과 레닌주의의 음미’ 특집이 거의 전체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대선 시기 그들이 비판하는 대로 권영길 후보 진영이 ‘참패’의 길을 가고 있을 때에 그를 상쇄하고 당을 구출하기 위한 어떤 대안 제시와 실천을 보여주었는가. 나아가 지금 와서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그토록 비난하는 권영길 후보가 당 경선에서 뽑히던 당시 ‘전진’의 입장은 무엇이었는가.

권영길 심상정 노회찬 누구든 무차별이니 각자 알아서 판단하고 선택하라는 것이 아니었는가. 이 모든 무능력과 책임 추궁은 이들이 새롭게 벼려낸 단어 ‘종북주의’ 한마디에 모두 사라지고 있다. 친북주의도 아니라 ‘종북주의’란다. 이론 혁신과 실천에 쓸 힘을 모두 혀 끝에 모아 공격 상대의 심기를 자극하는 재주로 꽃을 피운다.

그러자 이번엔 김창현이 나선다. 우리 당에 “종북주의자는 없다"고 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 차라리 “종북주의가 왜 잘못이냐”고 나올 사상적 기개조차 내던지고 오로지 정파 게임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겠다는 능숙한 게임 운영자의 모습이다.

여기에 난데없이 민주노총의 이석행 위원장이 뛰어들면서 게임은 ‘stage II’로 들어선다. 그는 “친북주의 운운하는 자들은 반통일 냉전 수구 세력”이라고 하는 80년대 선전물 한 구절을 똑같이 되뇌인 뒤, “이들 분파주의자들과 함께 할 수 없다. 친북주의 운운하는 분당 세력은 당을 떠나라”고 역공세를 취하여 게임의 새로운 장을 열어제낀다.

당 안팎의 숱한 이들이 그토록 누누이 제기했던 이 친북주의의 문제는 그러면 모두 ‘아니 땐 굴뚝의 연기’요 ‘미제국주의자들의 선동에 놀아난 어릿광대 짓’이었단 말인가. 대선 패배의 일대 원인으로 지목되는 ‘코리아연방공화국’ 구호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성의 지점이 없단 말인가.

정파 게임의 아수라장에서 사라진 것들

다음은 정해진 수순이다. 애초에 ‘종북주의’를 들고 나왔던 이들은 이제 기다렸다는 듯이 ‘분당’을 외치고 나온다. 가뜩이나 대선 패배 이후 유구무언으로 주눅들어 있다가 ‘종북주의’라는 언사에 심기가 상했던 NL 세력은 이를 보며 반갑게도 할말을 찾았다.

입을 모아 외친다. “분당 운운하는 해당파들은 당장 당을 떠나라”. 탁구공이 둘 사이를 오간다. 순식간에 탁구공은 농구공이 되고 대포알이 되어 당 전체를 부수고 있다. 중앙 위원회의 파행은 예견된 바 있다.

오랜 논의와 당 전체의 토론을 통해 집단적으로 도출되어야 할 친북세력의 문제를 지금 당장 꺼내들고 ‘종북세력의 척결’을 결정하라고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제안된 비상대책위원회 안건을 심의할 중앙위원회의 성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밖에는 볼 수 없다.

이 낯익은 정파 게임의 아수라장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버린 것들이 있다. 바로 앞에서 말한 바 우리가 간절히 듣고 싶은 이야기, 민노당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차근차근 조리있게 순서있게 풀어갈 장으로서 어렵게 마련된 비상대책위원회의 가능성이다.

들어야 할 이야기는 듣지 못하고 이골이 나고 신물이 나고 진저리가 난 당원과 지지자들은 이제 떠날 때가 온 것을 안 기러기들처럼 먼 하늘로 쓸쓸하게 날아서 떠나가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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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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