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골적' 이명박 정부가 차라리 나아
        2008년 01월 10일 09: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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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사에서 대학입시와 관련하여 3불정책, 수능등급제, 논술고사 등을 주제로 하는 토론에 나와 달라는 요청이 오면 가급적 피한다. 주제가 이렇게 정해지면 입시경쟁이라는 프레임이 이미 짜여버려 나쁜 것 대해 덜 나쁜 것으로 대항할 수밖에 없어 곤혹스럽다.

       
      ▲입시철폐, 대학평준화를 촉구하며 자전거 대행진을 하는 필자.
     

    무한 입시경쟁이라는 프레임 속에서는 사실 덜 나쁜 것과 나쁜 것이 오십보 백보여서 토론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결국 입시경쟁을 정당화하는 모순에 빠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이와 달리 학벌이나 대학평준화를 주제로 하는 토론 요청이 오면 선약이 있더라도 조정하고 기꺼이 나간다.

    담론 싸움도 그렇지만, 교육운동을 포함한 사회운동에서도 프레임 짜기가 중요하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정치는 바로 프레임 짜기 경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 결과를 놓고도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대체로 프레임 짜기가 결정적이었다는 점은 인정하는 것 같다. 간단히 말하면 범여권의 ‘민주 대 반민주’ 프레임이 ‘노무현 정부 심판’과 ‘경제살리기’로 요약되는 이명박의 경제성장 프레임에 압도당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번 선거에서는 정동영 후보도 민심을 읽었는지 민주 대 반민주 프레임을 전면에 내세우지 못하고 경제 프레임에 갇혀 ‘가족 행복’ 같은 뚱딴지 소리를 한다든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명박 후보의 치명적인 도덕성 문제를 물고 늘어졌을 뿐이다.

    사실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패배는, 노무현 정부가 집권 초기부터 자신의 지지세력을 배반하고 재벌과 결탁하여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여왔기 때문에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선거의 초점은 민주노동당이었고 가장 큰 패배자였다.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다가 사표심리도 작용하지 않았던 선거 구도는, 민주노동당이 당선은 아니더라도 한나라당의 대안세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허망하게 놓치고 만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패배의 근본원인도 프레임 짜기의 실패였다고 할 수 있다. 비단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불거진 ‘코리아연방공화국’ 논란이나 대통령 후보선출 과정에서 나타난 패권주의 문제만이 아니다.

    원내 진출 이후 열린우리당의 제2중대쯤으로 인식되게 한 당권파의 자업자득이었다. 평당원들의 실망과 분노가 민주노동당의 재창당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서론이 길어졌다. 이명박의 교육정책을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 프레임과 비교하여 그것이 전환인가 아니면 계승인가 하는 문제를 짚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앞으로 교육운동과 민주노동당의 프레임 설정 문제이기도 하다.

    대학입시 자율화는 대학 본고사 부활

    이명박 교육정책의 핵심은 대학자율화와 고교다양화다. 이렇게 하면 ‘학교 만족 두 배, 사교육 절반’이 된단다. 과연 그럴까? 그리고 이것은 노무현 정부, 나아가 김대중 정부와 김영삼 정부의 교육정책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3단계 대학입시 자율화’는 노무현 정부 하에서 줄곧 쟁점이 되었던 ‘3불정책’(대학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금지)을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대학 본고사 부활이다.

    사실 대학입시 자율화는 이미 김영삼 정부 때부터 시작되었다. 1997년 입시부터 수능, 내신, 대학별고사, 기타 전형보조자료를 중심으로 대학이 자율적으로 선발하되 다만 국영수 중심의 본고사를 금지했다.

     대학입시 자율화를 하면서 대학본고사를 금지한 것은 1980년 이전 본고사 시절에 심각한 문제였던 본고사 사교육비와 재수생 문제를 잡기 위한 것이었다. 재수생 문제는 복수 지원으로 웬만큼 해결되었지만, 수능 사교육비가 가파르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 때에는 수시전형을 도입하여 대학의 자율권이 한층 커졌다. 이때부터 특목고 문제가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 때에도 기본적으로는 김대중 정부 때 입안된 2002년도 대입제도의 틀 안에서 움직였는데 말년에 내어 놓은 것이 2008년도 대입제도이다. 이 제도로 처음 시행되는 올해 입시의 혼란상은 독자들이 이미 잘 알고 있을 터이다.

    노무현 정부의 눈물나는 노력

    대학입시 자율화가 시작된 이후 공교육이 사교육에 완전히 포위되는 상황이 전개되자 국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와 정부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공교육 강화’라는 기치를 들고 노무현 정부의 눈물나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학교생활기록부라는 이름의 내신성적을 강화하여 공교육이 강화하는 것이 기본 방향이었다. 전교조를 비롯한 교육운동 단체들에서도 이 방향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내신강화는 대학들의 사보타지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노무현 정부 내내 연례행사처럼 입시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졌다. 고교등급제 논란, 논술고사 논란, 내신성적 반영비율 논란 등에서 문제가 불거지면 표면적으로는 노무현 정부와 교육운동 단체들이 대립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조중동과 한나라당은 대입 완전자율화와 본고사 부활의 명분을 쌓아갔다.

    대학본고사 부활이 사교육비 증가를 초래할 것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아는 다수 국민들이 이명박 교육정책에 별로 거부감을 표출하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학벌사회와 대학서열체제를 건드리지 못하는 한 입시문제에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서열 체제를 건드리지 못 한 채 진행된 노무현 정부의 ‘공교육 살리기’ 프레임이, 국민들의 학벌취득 욕구에 편승한 이명박의 프레임에 패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패배라고 할 수도 없다.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 FTA가 그렇듯이 노무현 정부의 대학입시정책도 이명박 정부에게 다리를 놓아준 셈이 되었으니 말이다.

    대학입시의 한국적 특수성

    원래 대학입시는 대학에서 공부할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학벌 신분증을 발급받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한 대학의 입시요강이 일간지의 머리기사로 오르는 나라는 세상에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의 모든 초중등 학교는 대학입시에 매어 있고 대학은 서열체제를 이루어 학벌을 생산하는 것이 주요 기능이다. 인구비례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학교가 있지만 정작 교육은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초중등 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너 죽고 나 살기로 입시전쟁에서 뛰어든다. 입시지옥과 사교육 증가는 피할 수 없다. 학벌과 대학서열체제라는 프레임을 바꾸지 않고서는 어떤 해결책도 없다.

    선의로 봐 준다면 노무현 정부는 현재 대학서열체제를 건드리지 않고도 내신을 강화하면 공교육을 강화할 수 있다고 순진하게 생각한 것 같다. 인수위 때부터 그랬지만, 정동영 후보가 내건 입시폐지 공약도 실상은 미국식 ‘교육 이력철’이었다.

    그러나 수능 시험 한 문제 때문에 소송이 벌어질 정도로, 공정성이 입시의 금과옥조인 한국의 현실에서 내신 성적으로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은 한갓 망상일 뿐이다(사실은 <교육부의 대국민사기극>에서 밝힌 대로 2004년에 입안된 노무현 정부의 2008년도 입시안은 대국민사기극이었다).

    프레임 짜기에 실패한 것은 전교조를 비롯한 대부분의 교육운동 단체들도 마찬가지였다. 전교조는 일관된 대입제도 개혁안을 가지지 못한 채(2004년 공교육 개편안을 내어놓은 적이 있지만 집행부가 바뀌면서 거의 실종되고 말았다), 입시 관련 논란이 벌어지면 3불정책 고수와 내신강화 등 번번이 노무현 정부의 프레임 속에 갇히고 말았다.

    지난 총선에서 서울대 폐지와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를 공약으로 내건 민주노동당은 첫 단추는 잘 낀 셈이다. 그러나 총선이 끝나고 난 다음 이번 대통령 선거에 이르는 동안 열성적인 정책연구원의 연구 작업 이외에는 구체적인 실천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입시문제에 관한 숱한 성명서에서도 입시폐지-대학평준화의 문제의식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심지어 이번 대선에서는 대학평준화를 공약으로 내걸면서도 정책위 의장이라는 사람이 ‘입시폐지’라는 슬로건을 삭제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고교 다양화는 일류고 부활

    고교평준화가 시작된지 30 여년이 지난 지금은 일류고 학벌이 거의 죽어가고 있지만, 잘 나가는 오륙십대 사람들은 아직도 일류고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자율형 사립고 100개, 기숙형 공립고 150개, 마이스터고교 50개 등 300개 다양한 고등학교는 이명박 정부가 이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일류고를 늘여 여기에 입학하기만 하면 학교에서 입시준비를 확실히 시켜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것이 이명박의 복안이란다.

    마이스터 고교 50개를 제외한 250개라는 숫자는 대략 한국 고등학교의 15~20%에 해당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234개 기초자치단체 숫자와 거의 같으며, 이른바 중상위권 대학 입학정원과도 엇비슷하다(현재 이른바 하위권 대학은 정원 미달이 속출할 정도로 무시험 전형에 가까워졌기 때문에 여기서 고려할 필요가 없다).

    이는 각 지역의 일류고 부활이며 30년 동안 기본틀이 유지되어 온 고교평준화 해체이다. 250개 고등학교 사이에도 서열이 생겨날 것이다. 고교 입시가 본격적으로 부활하여 중학생과 초등학생들을 입시지옥으로 몰아넣고 사교육 시장이 창궐할 것은 불문가지다. 게다가 각 지역에서 다시 사망 직전에 있는 고교 학벌이 자라날 것이다.

    일단 일류고에 진학하기만 하면 사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게 하겠다는 이명박의 주장도 혼자만의 생각일 가능성이 크다. 서울대 정원 3,000 여명, 서울법대와 서울의대 정원은 각각 200 여명 밖에 안 되는데 250개 고등학교는 너무 많다.

    그가 사교육 시장이 창궐하는 이유를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사교육비 증가를 공교육 부실에서 찾는 것은 어떤 행성의 셈법인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사교육 절반’을 구호로 내세우는 것을 보면, 어떤 학원 강사가 신문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코메디 수준이다.

    그렇다면 고교다양화는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에서 전환인가. 이건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현재는 특목고와 자사고가 46개로 전체 일반계 고교의 3% 수준인데 이것을 전체 15% 수준으로 늘이겠다는 것이니 계승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3%와 15%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사실 지금까지 ‘고교등급제’등 입시를 둘러싼 논란에서 항상 문제가 되었던 것은 대체로 3%밖에 되지 않는 특목고였다. 특목고가 원래 특수 목적과 무관하게 입시기관으로 전락했다는 자체 평가를 근거로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노무현 정부 내에서도 나온 적도 있다. 3%에 불과하지만 힘 있는 학부모들 때문에 과감하게 폐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논란이 될 수는 있었다.

    그러나 15%(학생수로는 20%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가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여전히 숫자는 소수지만 중상위권 대학 정원과 비슷한 수준이어서 대학입시에 정열이 큰 학부모들이 다수가 될 공산이 크다. 애초에 ‘평준화 보완’이라는 명분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특목고, 자사고가 주류가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전환이지만, 계기로 보면 계승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같은 뿌리, 다른 가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원래 같은 뿌리에서 나온 다른 가지로 보면 딱 맞을 것 같다. 몇 가지 공통점을 둘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육철학 혹은 이론이 같다. 바로 신유주의의 교육정책이다. 이것은 1995년 한나라당의 전신인 김영삼 정부 ‘5.31 교육개혁’이라는 데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로 계승되어 이명박 정부에서 꽃을 피울 참이다.

    신자유주의란 교육을 상품으로 보고 경제 논리로 해석하고 운용하는 것으로 근대국민국가 존립의 중요한 한 축인 교육의 공공성을 해체한다. 노무현 정부에서나 이명박 인수위에서 경제학자들이 교육정책을 진두지휘하는 것은 이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한국 교육 모순의 근본 원인인 학벌사회와 대학서열체제를 외면하고 있다. 대학입시제도는 문제를 일으키는 현상일 뿐, 본질은 대학서열체제이다. 본질을 외면한 어떤 입시제도도 사교육비를 줄일 수 없다. 다만, 노무현 정부는 ‘공교육 정상화’라는 구호를 끝까지 버리지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좀 더 노골적으로 고등학교도 ‘경쟁력’ 담론으로 돌파하려 할 것이다.

    셋째, 배우려고 하는 모델이 유럽이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이다. 그러나 학벌과 대학서열체제로 인해 대학입시의 성격이 미국과는 전혀 다른 한국에서 미국식 입시제도를 도입하려 한 노무현 정부가 우왕좌왕 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일관되게 일본식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프레임 짜기가 중요하다

    이렇게 보면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이 시리즈의 표제어인 ‘李정부, 큰일 났다’까지는 아니다. 큰일이라면 노무현 정부 때부터 커오던 것을 방치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 기간 동안 교육운동 진영이 이명박 정부와 본질적으로 같은 노무현 정부의 프레임에 갇혀 있었지 않았나 하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교육운동 진영은 노무현 정부의 허황된 ‘공교육 살리기’에 막연한 기대를 접고, 진작에 대학입시 문제의 본질인 대학서열 체제 문제를 전면에 제기했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어찌 보면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문제의 본질을 놓고 정면 승부를 하기가 더 쉬워졌는지도 모른다. 노무현 정부의 허황한 수사 없이 이명박 정부는 누구나 그 본질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입시제도를 둘러싼 싸움이 벌어진다면, 고교까지 서열화인가, 대학평준화인가 하는 구도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입시제도 개혁’ 투쟁은 원래 해결책이 아니었을 뿐더러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도 시효가 끝난 게임이기 때문이다.

    작년 9월에 결성되어 전국 16개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한 ‘입시폐지-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준)’를 중심으로 학벌주의에 포박되어 있는 국민 대중들을 얼마나 끌어낼 수가 있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전교조를 비롯한 여러 교육운동 단체들이 하루빨리 교육운동의 현재의 지형을 바로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민주노동당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당 이야기로 끝맺어야겠다. 교육정책에 관해서는 이미 민주노동당은 무상교육, 대학평준화라는 훌륭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정책 프로그램은 있는데 대중적 실천을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선 기간 중에 ‘무상교육, 대학평준화 추진운동본부’를 구성했지만, 당원들조차 아는 사람이 드문 것 같다. 통일운동 하는 노력의 반만이라도, 아니 반의반만이라도 대학평준화운동에 쏟을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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