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조건은 NL적 PD와 당의 정체성”
    2008년 01월 10일 04: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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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민족주의 및 통일에 대한 입장과 진보정당의 상을 제시하자

북한에 대한 입장은 곧 분단체제 극복방안에 대한 입장과 이어진다. 사실 북에 대한 입장으로 토론하는 것보다는 구체적 정책 방안을 제시하고 토론하는 것이 생산적인데, ‘평등파’로 분류되는 세력 일반에게 이 분단체제 극복방안이 없었거나 명확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이다. ‘통일방안’이라고 해서 자주파에게 ‘외주 하청’을 주며 ‘가드’를 열어 줬던 것이다.

   
▲ “장군님은 멀고, 재벌은 가깝다”
 

위장전입과 대리투표, 회계상의 문제 등의 문제는, 물론 당을 전선기구로 여길 때 좀더 쉽게 저지를 패악질이지만, 과정상의 문제였고, 어느 정파에서건 조심해야 할 문제이다. 자주파는 일부가 패악질 ‘할 수 있어서’ 당에 들어 온 것은 아니다. ‘가드가 뚫려서’ 들어온 것이다. 따라서 패악질에 대한 증오는 뚫린 가드를 막는 데로 돌리는 것이 좋다.

그런데 새로이 만든 신당 강령에 ‘종북주의자는 들어 올 수 없습니다’라고 해 봤자, 사상검증이라도 할 것인가? 자주파가 또 다시 침투(?)해 들어온다 해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을 추종하지 않는다는 선언 이상의 북한에 대한 입장, 그리고 대안으로서의 한반도 국가체제에 대한 독자적 입장과 정책이, 현재의 강령 차원보다 구체적으로 명시되어야 한다.

『사회국가, 한국사회 재설계도』(진보정치연구소 발간)의 6장에서 말한 ‘사회국가의 대외 전략’ 이상을, 더욱 강한 목소리로 강조하여야 한다. 만약 북한 체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며, 소위 ‘분단모순’은 단기간 내에 실현되는 통일로는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밝히고 대안을 제시하는 소위 ‘NL적 PD’가 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PD적 NL’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기대하지도 않는다.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하자는 민족주의는 동성애자나 이주노동자를 혐오하지 않는 다원주의와는 양립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신당이 창당 될 때에 또다시 자주파가 트로이의 목마를 타고 들어올까봐 걱정하는 차원이 아니다. 현재의 민주노동당 간판을 유지하면서 ‘혁신’하는 경우에도 평등파들이 스스로에게 강력히 제기하여야 하는 문제이다.

정작 중요한 차이는 토론되지 않았다

엄연히 자주파와 평등파의 입장 차이는 바로 여기, 북한 및 북한과의 분단으로 인한 적대의 해소 방안에서 연원하는 것인데, 정작 차이에 대한 건설적 토론은 없이 그저, 심지어 위장전입에 대리투표까지 있었다고 하는 표 싸움으로 지도부를 장악(당)하고 사업을 좌지우지(당)하고 있으니, 다수에게나 소수에게나 정파가 독이 되는 것이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을 탓하거나 ‘반종북’을 외칠 것이 아니라, 자체적 분단극복 방안을 내어야 한다.

또한 당의 위상을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소위 ‘공동전선’문제도 마찬가지다. 공동전선이라면 무슨 공동전선이냐가 중요해진다. 당을 반미공동전선으로 볼 경우에는 당연히 주사파와도 같이 할 수 있는 것이고 반핵 공동전선이면 주사파와는 같이 못하는 것이다.

혹은 ‘당’은 ‘전선기구’와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느 경우에도 함께 못할 노릇이다. 이에 대해서는 소위 ‘평등파’ 안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모든 전선은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하는 공동전선’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진보정당이라는 조직체의 위상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상이 제출되고 합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정당이며 변혁을 추구한다”고 하는 차원으로 추상적으로 선언하는 강령 차원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합법주의와 의회주의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 지금처럼 ‘불법’ 혹은 ‘법외’적으로 지구당 재정을 운영할 것인가? 분회의 역할은? 정책생산이나 의원단 통제는 어떤 방식으로? 한국진보연대 같은 ‘상급단체’에 가입할 것인가?

공직후보 선출에 참여경선제 같은 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할 것인지, 상근자 노조, 정파등록제 등등에 대해서, 입장이 있어야 한다. 바로 당의 정체성을 세우는 과정이다. 그리고 노선이나 정체성 차원이 아닌 구차한 문제겠지만 위장전입과 대리투표, 불투명회계 문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제시되어야 한다.

사상에 대한 ’검열’이 아니라, 제도와 정책를 통한 ‘사상투쟁’을!

종북주의자인지 패권주의자인지, 종파주의자인지 기회주의자인지 머릿속을 들여다 볼 수도 없고, 자아비판을 강요할 수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함께 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면, 차이를 생산적으로 드러내게 해주는 제도와 정책을 제시하여야 한다.

실천으로 검증 가능한 운영방식을 제시해야 한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이 스스로나 대중적 입맛에 맞지 않는다 판단하여 가로막을 것이 아니라, ‘사회국가’든 뭐든 국가비젼에 해당하는 대안을 제시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파의 차이가 어차피 유권자들이 제대로 읽어주지도 않을 포스터 귀퉁이의 코리아연방공화국이라는 글귀 하나를 두고서 다투는 것으로 전락한 것이다.

코리아연방공화국과 후보에 대한 대선평가 유감

특히나 공약도 아닌 슬로건으로 올라가는 것에 대해 답답했다. ‘사회국가’나 ‘신자유주의 반대’가 슬로건으로 제시되고 포스터에 올라가는 것도 웃기는 일인 것은 마찬가지다. ‘남북대결 없는 나라’나 ‘군대 안 끌려가는 나라’라는 식으로 ‘체제나 시대를 묘사하는 것’이라면 또 몰라도, ‘연방공화국’이라는 개념어를 그대로 제시하는 것이 당내 선거도 아닌 2007년 대선의 슬로건으로 적절했을까?

이건 패권주의 종파주의 다 떠나서, 기왕 출마한 선거의 유권자에 대한 선전선동의 기본을 갖춰야 하는 문제다. 무슨 운동권 학습문건의 제목 뽑는 것도 아니고.

설령 분단으로 인한 남북 대결이 남한 유권자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가장 큰 요소라고 치고, 구호도 잘 다듬는다 쳐보자. 문제는 정작 유권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나 통일 문제에 무관심하기까지 할 때, 과연 남북 대결의 해소를 크게 내세우는 선거 전략이나 포스터 편집이어야 하는지 역시 의문이다. 마찬가지로 운동권 교양문건의 표지 만드는 것도 아니고.

모피우스는 말한다. 매트릭스는 어디에나 있다고. 영화에서의 매트릭스는 우리의 감각기관마저 대체하고 먹여살리는 우리를 둘러싼 시스템이다. 김남주 시인이 ‘삼팔선은 어디에나 있다’라고 했을 때, 우리를 둘러싼 매트릭스는 반공과 반북컴플렉스, 승공통일을 위한 총력전을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던 개발독재국가의 신경망이었다. 그땐 그랬다. 그런데 지금도 그런가?

장군님은 멀고 재벌은 가깝다 혹은 장군님도 재벌과 한편

지금 남한의 민중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그들을 옥죄는 매트릭스가 “북한의 남침 위협과 남북 간의 체제경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감히 단언컨대, 아니다. 유권자들이 옳든 틀렸든, 그들이 내면화한 가치는 ‘노동유연성 증대’이며, 개체 차원에서는 ‘웰빙’에 집착하되 전체 차원에서는 ‘웰페어포비아’에 빠져있게 만드는 ‘분배공포증’이다.

그리하여 민중들은 집안의 대표선수를 밀어주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에 속은 채, 사실은 ‘스톡홀름 컴플렉스’에 빠진 재벌의 인질들이다. 그리고 최소한 이 재벌들에겐, 삼팔선이 없다. 휴전선도 무의미하다. 개성동영은 그 상징이고, 연방공화국은 한미FTA에 포함될 역외가공지역에서 이미 수립되었다.

인질이 인질범과 같은 논리와 이해관계를 내면화하는 이 스톡홀름 컴플렉스와, ‘88만원세대’에서 말하는 ‘개미지옥’이 차라리 21세기 초엽의 대한민국의 매트릭스에 가깝다.

하여 힘을 합쳐야 할 인질, 혹은 개미들끼리 “나는 뼈빠지게 일하는데 너는 철밥통이냐”고 화살을 동료에게 돌리고, 파업을 하면 파업할 처지나 된다고 시기를 하며, 자기 자식 독립하기엔 더 어려워지는 데도 대출받아 샀다는 이유로 당장 자기 집값이 오르면 기뻐하거나, 무상의료를 하면 의대 가려는 막내 사촌동생이 돈을 못 벌까 걱정한다.

붉은 돼지가 늑대를 앞세우고 쳐들어 올까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거지가 몰려온다고 통일을 싫어하고, 외모나 학벌 지상주의 철폐 보다는 성형수술이나 사교육에 올인한다.

심지어 이북 혁명기지의 장군님 지도력에 기대를 했던 남한의 민중이라 해도, 이미 북한에 투자를 하고 장군님과 당당하게 기념 촬영하는 남한 자본가들이 보인다. 유권자들에게 장군님은 멀고 재벌은 가깝거나, 장군님도 결국 재벌과 한편이요, 심하게 말하면 개미지옥이다.

계몽을 하려거든 매트릭스를 폭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유권자들을 둘러싼 매트릭스는, 재벌의 인질이 가지는 스톡홀름 컴플렉스라 생각하지만, 어차피 계몽은 잘 먹히지도 않는 시대이고, 민주노동당이 계몽을 할 실력이나 처지가 되었던가.

개인적 판단으로 이번 대선은 ‘코리아연방공화국’ 때문에 망하지도 흥하지도 않았다. 포스터인쇄를 둘러싼 해프닝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잉태된 것이고, 이를 잉태한 것은 민주노동당의 무기력과 엉성함, 중구난방 정파 다툼과 운영의 난맥상에 대한 땜질 처방 등이었다. 이에 이미 등을 돌린 유권자들은, 대선 슬로건이나 포스터 문구에 ‘코연공’이 올라왔든 안 올랐든 무관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후보 역시 마찬가지다. 심상정이나 노회찬이 후보였다면 ‘이미지에 홀린’ 국민의 지지로 5%는 넘게 득표했을 것이다. 나는 그랬으리라 믿는다. 당락에 결정적이지 않다면, 정치판에서 2~3% 정도의 지지율은 바람과 구도로도 쉽게 오르락내리락 하기 때문이다. 물론 실력 이상으로 받은 표는 나중에 꼭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1%든 5%든 더 지지를 받는다는 건 당장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누가 후보가 되었든, 저번 선대위 시스템이었다면 포스터 해프닝 비슷한 게 없었을까? 다행히 대선 결과도 고무적이고 총선 의석수가 열 석보다 좀 늘었다 하더라도, 어느 파의 책임이 더 크든 후보 선출 후 선대위 구성에 한 달이 걸리는 꼬락서니의 당을 끌고 2009년을 무사히 맞을 수 있을까?

무엇이 종파주의인가?

같이 놀기에는 차이가 너무 크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너와 나는 같으니 따로 놀면 종파주의”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소용없는 윽박지름이다. 다수파든 소수파든, 서로가 같이 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서로 기준에 합의 못하면 안 하면 된다. 그리고 나중에 다른 소리 안하려면 그 기준은 구체적일수록 좋다.

다수파와 소수파는, 지금은 주로 길거리 집회 장소나 선거운동 할 때만 그러하지만, 이후에도 사안에 따라 필요할 때 만나서 행동을 같이 할 수 있으면 된다. 그리고 당과 시민단체가 물론 같지는 않지만, 환경단체와 여성단체가 서로 종파라고 하지 않듯, 단순히 당을 함께 못한다고 해서 누가 누구보고 종파라 할 것도 없다.
종파주의가 무엇인가? 같은 틀 안에 있을 때에 전체의 성장보다 자기파의 성장을 우선시하는 것이, 다수냐 소수냐를 떠나서 분명 종파주의다. 그런 종파주의라면 심증이 가는 사례가 있다.

권영길의 과거 노선이 자주파와 어울렸던 것도 아니고, 실제로 자주파에서도 ‘권영길은 우리 후보가 아니다’라고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왜? 자주파가 ‘실력 이상의 득표’를 할까봐 두려워 권영길을 지지한 것은 아닐 터이다.

만약 자파의 유망주가 아직 떠오르지 않은 상황에서, 2012년에는 71살이 되어 대권 4수를 하기엔 부담스러워 할 권영길을 지지한 것인가? 그런 식으로 심상정이나 노회찬이 주도하는 당의 성장을 막으려 한 것이고, 그런 방식으로 차기를 도모한 것인가?

그게 사실이라면, 그게 바로 종파주의다. 우리의 메시지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서 심상정이나 노회찬보다 권영길을 지지한 것이라면 할 말은 없다.

경선 직후에 많은 당원들이 인간적으로 상심해 있을 때 열린 중앙위원회에서, 1인 6표제와 같은 비례대표나 최고위원 선거에서의 승자독식의 부작용이 있는 제도가 통과되었다. 만약 이것이 6:4의 차이를 9:1 쯤으로 벌려 놓으려는 심산의 어느 정파가 조직적 지침을 내려서 그렇게 된 것이라면, 그리고 예상되는 반발은 ‘자리에 연연하고 패배를 인정 않는 심보’라 묵살하려 했다면, 그게 종파주의요 패권주의다.

혁신의 조건은 ‘NL적 PD와 당의 정체성’, 신당의 조건은 ‘분위기 파악’

자석이 자석인 채로는 둘로 나뉘어도 양측 모두에게 N극, S극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단순히 N극이 싫다는 이유로는 지금 당장 떨어져 나가 봐야 자신의 끝에서 여전히 형성되는 N극을 발견하게 된다.

통일 문제 등에 대한 주사파의 긍정적 문제의식을 흡수한다면, 비로소 자석의 성질은 소멸할 것이고, 그 때엔 N극 싫다고 굳이 자석을 쪼갤 필요도 없다. 혁신을 하든, 신당을 만들든 당의 성격은 ‘NL적 PD’로 만들기 위한 ‘평등파 일반’의 연구와 실천이 있어야 한다. 이는 장기 과제가 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신당을 만들든, 혁신을 하든, 당의 정체성을 밝혀야 한다. 자문자답식 선언으로는 안 된다. 당직 공직후보 선출 방식이나 지역조직의 편재 및 운영 방식 등에 있어서 당의 정체성이 구현되는 조직형태와 운영원리를 제시하여, 공존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는 비례대표후보를 정해야 하는 총선과, 당 지도부 선거를 앞둔 비대위에서 다루어야 할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장석준 동지와 최현 동지의 글을 보니, 이외에도 기준이 더 있을 것 같다.

정리를 해 보니, 혁신의 두 조건은 스스로에게 제시할 수 있겠으나, 분당을 해야 할 경우 그 시점은 모르겠다. 최선을 다한 혁신의 노력이 실패할 경우 분당 혹은 신당을 창당한다 하지만, 동력이나 갈라설 명분 등 내부 조건만 해결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날씨를 착각하고 너무 일찍 혹은 늦게 꽃망울을 틔운다면, 나무는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신당이라면, 시점은 지금인가? 동거를 끝낼 상황인가, 남한의 상황은?

남한의 상황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혁신을 하거나, 혁신당을 하거나 하지 않으면, 타의에 의해 뼈아프게 혁신을 당하게 될 터이다. 국회의원이 하나도 없는 건 두렵지 않다. 민주노총이 깨지는 건 두렵다. 아니, 설령 민주노총이 깨진다 해도 두렵지 않다. 깨어져야 할 상황이라면. 문제는 시대가 요구하는 것을 오판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한국 사회는 지금 결단의 요구하는가? 결단의 시점은 4개월 안으로 급히 해야 할까, 4년 정도의 중기적인 관점일까, 아니면 포스트 김정일 체제 등 더 장기적인 터울일까?

지난 몇 주간의 무수한 혁신이나 분당의 논의에서는, 같이 못할 상대의 단점은 확인하였으되, 진보정당의 관점에서 현재의 한국사회의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글은 찾기가 힘들었다.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연구소의 ‘17대 대선 그 이후’ 토론회 정도가 시대에 대한 총체적 조망의 시도였을까?

냉전체제 군사파쇼의 개발독재 시대엔 노조도 만들기 힘들었다. 민주노동당이 근거를 두고 있는 87년 체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을 거쳐서 소위 ‘신보수주의’ 정권에 도달했다.

2008년 한국의 상황에 과연 새로운 정치세력화의 상이 필요한 것일까? 현재 ‘우리 내부의 차이’는 헤어져야 만큼 큰가, 아니면 작은가? 나는 더 생각해 봐야겠다. 최소 며칠은 여유가 있어 보인다. 동지들의 고견을 기다린다. <끝>

최김경호 / 민주노동당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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