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 왜 헤어졌니? 사회당과는 뭐가 다르니?”
        2008년 01월 10일 04: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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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당, 혹은 신당 문제로 시끄럽다. 특정 조직에 속하지 않았으되 자주파에게 비판적인 나는 이 와중에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까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글을 시작하게 되었다. 고치고 다듬는 와중에 나의 생각도 정리되길 빈다.

    왜 헤어졌니? 너흰 뭐가 다르니?

    잠깐 당에서 일해 봤다고, 지역위나 중앙당 사무실 등 자산 부채의 인수인계 및 책임 소재 문제가 먼저 떠오른다. 혼자서 생각하니 답답하다. 같이 논의할 사람들의 면면을 떠올려보니, 그 중 총선 후보들의 지역사회 내에서의 입장 문제가 뒤이어 떠오른다.

    구질구질한 이런 문제 들은 실무 차원이니 돌파하면 되는 문제라고 치자. 어찌 되었든 유권자들은 혹은 민중들은, 냉소적으로 혹은 준엄하게 물을 것이다. 너희 왜 헤어졌니? 그 뒤, 좀 아는 분들은 물을 것이다. 사회당과는 뭐가 또 다르니? 분당론은 이에 대한 답이나 해결책을 준비해야 한다.

    방금 자신이 일어선 자리를 향한 네거티브 공세는 답이 아니다. 당사자는 자기가 종북이 아니라고 우기는데 “나는 종북이가 싫어요”라고 해봤자 유령과 싸우는 반종북 어린이가 될 뿐이고, 사회당과 같이 가든 따로 가든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힘이 미약한 것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국민중심당이나 참주인연합하고도 합쳐야 할 노릇. 무릇 내용이 같으면 단결하고 같은 당을 만들 일이고, 다르면 따로 지내되 사안별로 연대할 일이다. 그런데, 어디까지 같으면 내용이 같다고 볼 것인가? 편가르기의 기준은?

    편가르는 요령과 기준

    정치학에는 과문하지만 무릇 모든 편가르기의 배경에는 다음 두 요령이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우리 편이 얼마나 더 많아지는가 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통일전선전술’인 셈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 편 내에서 나의 입지가 얼마나 공고해지는가 하는 것. 구동존이(求同存異)하여 울타리를 넓게 쳤더니 안방도 모자라서 집을 통째로 내주고 마당에서 자야 하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싫은 법이다. 심지어 그게 위장전입 때문이라면 더더욱.

    위의 두 요령은 부린다고 해서 그 자체를 탓할 게 못 된다. 하지만 요령은 살아남기 위해 기본적으로 발휘하는 것이고, 정치모리배나 거간꾼이라 해도 겉으로는 그럴듯한 ‘이상과 가치’를 포장해서 내 놓는 법이다.

    진보정당운동에서는 더더욱 이상과 가치, 즉 명분이 중요하다. 진보의 명분이 녹아있는 울타리를 쌓는 것이 성공적인 편가르기일 것이다.

    하여 민주노동당은 ‘비판적 지지’세력이 ‘평화개혁세력’으로 뭉치자던 압력에 맞서서 ‘반신자유주의’와 ‘진보정치세력화’라는 울타리를 쳤다. 최근 정동영이 ‘반부패연석회의’를 들이밀었을 때 ‘반삼성연석회의’로 맞받아친 바도 있다. 그렇게 지켜온 민주노동당 내에도 필연적으로 편가르기는 있었는데, 그것이 당의 틀거리 밖으로 나오려 하고 있다.

       
    ▲ BBK냐 삼성이냐? 어느 쪽을 주로 공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지난 대선 시기 민주노동당의 전략에 대한 중요한 논쟁이었다. 민주노동당은 양쪽을 우왕좌왕했다. (사진=진보정치)
     

    새로운 울타리를 쳐야 한다면 거기에 녹아있는 명분은 무엇인가? 무엇이 썩었기에 무엇을 혁신해야 하는가? 노선이나 행태가 문제인가? 종북주의, 패권주의를 청산해야 한다고 이를 명시하는 것이 가능하며, 명시하면 청산될 문제인가?

    당은 썩었고, 정풍운동을 벌여야 할 일이다

    보자 하니 민주노동당의 최고위원까지 지내셨던 어느 중앙위원은 당이 어디가 썩었느냐고 반문하신다. 내게 당이 썩었다는 것은 불투명회계문제나 대리투표, 위장 입당이나 전입, 안마시술소 등지에서의 공금유용 등을 말하는 것이고, 이를 두둔 조장하는 것이다.

    위의 문제들이 비대위에서 다룰 만큼 심각한 문제인 것은 맞다. 그러나 ‘주로’ 다수파가 저질렀기에 다수파가 한심한 것은 사실이나, 다수파‘이기 때문에’, 다수파‘만’ 저지른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런 문제들이 정파가 추구하는 노선이나 운영방식에서 도출된 문제가 아니라면, ‘반패권주의’보다는 ‘조직 정화’의 기치 아래 정파를 막론하고 정풍운동을 벌여야 할 일이다.

    위에 열거한 행위들을 사상적으로 용인하는 정파는 없을 테니 말이다. 하여 정풍운동과 노선토론은 병행될 수 있고 또 당장 시작되어야 하되, 정풍운동은 한 지붕 아래에서 하는 것이고, 노선은 그야 말로 갈 길이 다르면 갈라서야 하는 문제이다.

    분당이 아닌 혁신을 위한, 비대위 체제로 한 지붕 아래에 있다 하더라도 정풍운동은 반드시 해야 한다. 만약 패악질을 사상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에서 정당화하는 ‘사교집단’이 존재한다면, 한 지붕 아래의 정풍운동만으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 ‘치료 후 봉합’이 아니라 ‘절단’ 수술을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절단하기 전에 고민 안 깊을 리 없다. 하지만 이래도 죽을 것 같고 저래도 죽을 것 같다면, 가망이 없는 부분은 도려내고 남은 부위를 살려야 할 것이다. 제발 가망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민주노동당을 장악한 것이 ‘사교집단’이라면, ‘분당’이나 ‘신당’의 차원에서 끝날 일이 아니다. 민주노총과 전농으로 대표되는 노동 농민운동 및 시민운동 등 운동 지형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부디, 사교집단은 존재하지 않기를, 있다면 미망에서 벗어나기를 빌 뿐이다.

    있든 없든, 종북주의로는 안 된다

    친하게 지내는 건, 심지어 그 상대가 미국이라고 해도, 나쁠 건 없다. 전쟁할 건 아니지 않은가. 힘 합쳐서 할 일이 많다면 ‘친북’이 아니라 ‘연북’도 해야지. 여기까지는 분명 나와 <조선일보>는 입장이 다르다. 하지만 문제가 추종하는 것에 이른다면, 나와 <조선일보>의 결론만은 같다. ‘종북은 안 된다’.

    이는 북한이 군사왕조집단이든, 사회주의인민공화국이든 마찬가지다. 통치세력이 인민을 굶기면서도 해외에 명품 쇼핑을 다니는 ‘포식 국가’가 아니라, 민중과 혼연일체가 되어 이남 민중의 해방에도 든든한 역할을 해줄 ‘혁명기지’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분단된지 환갑이 넘었다. 서로 다른 길을 한참을 갔다.

    한 쪽은 쿠데타 두 번,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를 두 번이나 치루는 와중에 세계13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경제를 계획’하던 ‘개발독재’ 국가가 어느새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신자유주의’ 국가가 되었고 88만원 세대의 아우성은 ‘빛나는 학생운동의 전통’은 물론 진보정당의 당원 충원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른 쪽? ‘경제계획’으로 70년대까지 잘 나가다가, 90년대 이후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는 건 알겠는데, 북한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는 ‘정보기관이 술수를 부린 악선전’일지 모르니 액면 그대로 판단하기가 힘들다. 태양민족 운운하며 국제결혼을 죄악시하는 것을 보니 우려는 된다만.

    직접 가서 북한을 보고 싶으나, 그러진 못하고 있다. 다만 북한에 제약공장 짓는 사업과 관련된 어느 단체를 후원하신 덕분에 얼마 전 평양 등을 둘러보고 오신 분의 말씀으로 짐작해 볼 순 있다.

    <중앙일보>를 애독하시며, 북한이 어서 현실을 깨닫고 개방을 하면,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 체제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 믿으시던 분이다. “남한에 빨갱이가 정권을 잡았으니, 북괴의 남침 위협이 무서워 이민을 가야할지 모르겠다”며 근 10년 전부터 불안해하시는, <조선일보> 애독하시는 친지 분에게 북에 다녀 온 직후 말씀하셨다. “그 동네 그럴 능력 안 된다.”

    그 동네, 남침이든 혁명완수든 할 처지가 아니고

    ‘지대 추구’를 논밭이 아니라 펀딩과 부동산 수익을 통해 하는 사회, 조선사업과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1위인 나라의 사회변혁, 혹은 체제 이행을 ‘지도’할 수 있는 북한이라면 ‘추종’하겠다.

    허나 이촌향도가 판자촌을 만들고, 그 판자촌이 아파트촌이 되고, 그 아파트가 재개발 열풍에 가격이 하루 이틀 사이 몇 억이 들썩이는 현상은 분명 ‘식민지반자본주의’ 사회라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사교육비에 비정규직 증가가 등등이 ‘기어이 우리 대에 연방조국으로 통일’한다고 저절로 없어질 현상도 아니다.

    ‘종북세력’이 요새도 과거의 ‘식민지반자본주의’론을 앵무새처럼 읊어댄다고 비판하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전 세계를 비핵화해야 하는 진보정당이 핵실험에 반대의사를 표명 못한다는 것은 웃긴 일이다.

    하물며 침묵을 넘어서 ‘자위용 북한 핵’이 ‘한반도를 전쟁 참화에서 지켜주었다’는 식의 논리를 진보정당의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

    평양의 신년사를 분석하는 것을 안산의 이주노동자의 주거실태나, 정부 인수위가 구상하는 금융정책을 분석하는 것보다 우선시하는 것 역시 대한민국의 진보정당이 할 일은 아니다.

    ‘반종북’을 내세우는 것 역시 문제다

    실제로 종북세력은 있으면서 없다. 북한과 연대하는 차원을 넘어서 북의 당을 지도기관으로 여기고 수령님을 혁명의 뇌수로 받드는 이들이 일부 있다. 그런데 이들은 스스로 ‘나는 주체사상을 자기신념으로 받아들였을 뿐’이지, 스스로가 ‘북’한을 추‘종’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종북세력은 없다.

    이들에게 종북주의를 청산하라는 것은 “없는 것을 지어내서 있다고 한 뒤 또 없애라”는 말이다. 혹은 그런 지나친 자기 최면이 아니라면, 국가보안법과 공안정국에 대한 피해의식이다. 이들이 국가보안법에 많이 당한 것은 사실이다.

    이는 냉전체제 이후에 북한만 버티고 있어서이지, 이들이 자본주의체제에 가장 위협이 되는 최전선에 있어서라고 보기엔 힘들다. 주사파와 국보법에 적대적 의존관계의 혐의를 두는 것은 지나친 상상이겠지만, 부디 하루 빨리 철폐되어 이들의 피해의식이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도산하길 바랄 뿐이다.

    본인이 죽어도 아니라고 믿을 경우 ‘종북’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한 뒤 ‘자아비판’을 강요하는 것은 철폐되어야 할 국가보안법과 마찬가지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또는 본인이 죽어도 숨기려는 경우에는 – 그것이 피해의식 혹은 보위의식 때문이든, 자기 최면 때문이든 – 하나마나한 이야기가 된다.

    마치 종파주의와 패권주의가 남을 지칭할 때만 쓰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종북주의든 종파주의든 패권주의든 나쁜 것을 누가 모르나? 자기가 거기에 해당된다고 생각하지 않을 뿐이지. 남이 하면 사대주의고, 자기가 하면 주체적으로 받아들인 것 아닌가.

    따라서 가야할 길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한 지붕 아래에서 종파라고 윽박지름을 받기 싫다면, 그래서 갈라서길 원한다면 다름을 증명하면 된다. 혹은 계속 같이 지내고 싶다면, 상대편이 고쳤으면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좋다. 따라서 ‘종북주의 청산’을 주장하기보다는 북한에 대한 입장을 제출하는 것이 낫다.

    이 대목에서 북한(정권)에 대한 선명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주파와 자주 함께 손발을 맞추는 ‘다함께’의 논리를 잠시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이북의 통치세력과 이남의 ‘자주파’, 즉 (A)이북의 민족주의자들과 (B)이남의 민족주의자들을 분리해서 바라보며, 전자(A)의 주사파는 같이 못할 상대이지만 후자(B)의 주사파는 남한의 ‘공동전선’에서 다함께(C)가 같이 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자신들과 자주파의 협력을 정당화 해왔다.

    여기엔 수학의 기본원리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B가 A와 같이 하고, C가 B와 같이 한다면, 결국 C는 A와 같이하는 것이다. (A=B이고 B=C이면, C=A이다.)

    물론 다함께는 C≠A라고 주장할 것이다. 공동전선에서 사안에 따라 투쟁을 같이 할 뿐이지, 자신들은 ‘민주주의민족통일 런던연합’이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실천적으로 매우 ‘자주 함께’ 한다고 해서 무조건 등식에 우겨 넣은 위의 삼단 논법은 부당하겠다.

    다함께는 민주노동당을 공동전선기구로 생각하기 때문에 주사파나 개량주의자들과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구당을 옮겨다니며 인수합병의 숫자놀이를 하는 것도 공동전선이라서 상관없는 경우다.

    따라서 ‘종북주의나 패권주의 청산’을 요구하느니보다는 남한 진보정당 운동의 위상에 대한 입장을 제출하는 것이 낫다. <2편에 계속>

    최김경호 / 민주노동당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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