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조하기 전엔 비정규직인지도 몰랐드래요”
        2008년 01월 09일 11: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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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8일 오후 2시. 영동고속도로 문막IC를 빠져나와 원주 쪽으로 3분 정도 달리니 식칼과 커터날을 생산하는 도루코 간판이 보인다. 검은 복장의 용역경비들이 정문 앞을 굳게 지키고 서 있고, 공장 입구에 한 동의 천막이 덩그러니 쳐져 있다.

    천막 안으로 들어서자 50줄의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고, 한쪽 켠에는 20대 앳딘 얼굴의 청년들이 노트북과 카메라로 분주히 일을 하고 있었다.

    “노동조합 하기 전에는 비정규직인지도 몰랐드래요. 지들이 면접 봐 뽑고, 도루코 사원증도 나눠주고, 지들이 다 업무지시하고 출근관리도 했드랬어요. 노조 만들고서야 우리가 비정규직인지 알았다니까요.”

    왕언니 신준옥(53) 조합원의 말에 동료들이 “맞아요. 노조 하기 전에는 정말 비정규직인지도 몰랐어요”라며 한마디씩 거든다.

       
      ▲ 금속노조는 1월 8일 오후 3시 원주에 있는 도루코 문막공장 앞에서 300여명의 노동자들이 모인 가운데 "직장폐쇄 및 부당해고 철회 도루코비정규지회 파업투쟁 승리 금속노조 결의대회”를 열었다.
     

    도루코(대표이사 홍주식)는 한국 토종의 면도칼 회사다. 국내에는 용인과 시흥, 문막에 공장이 있고, 해외에는 미국, 중국, 멕시코 등에 법인이 있다. 최근 세계적인 면도기 회사인 질레트와 쉬크에 맞서 세계 최초로 6중날을 장착한 페이스6(PACE)을 내놓아 선전하고 있다.

    한국노총 부위원장이 소사장이 되다

    문막공장(공장장 김인섭)은 식칼과 커터날을 만든다. 신혼부부들에게 인기가 높은 아이리스와 수선화 등 고급 식칼을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공장에서 정규직은 관리직뿐이고 ‘칼가는 노동자’들은 모두 비정규직이다.

    7년 전인 2000년 도루코는 생산 공정을 4개로 나눠 팔았다. 부강, 원흥, 혜성, 선교라는 4개의 업체에 10여명씩 나눠 모두 비정규직으로 만들었다. 회사는 ‘소사장제’라고 불렀다. 도루코는 한국노총 소속이었던 노조와 이를 합의했고, 유갑열 당시 노조부위원장은 부강의 소사장이 됐다.

    7시 50분에 일을 시작해 밤 8시까지 꼬박 12시간을 일하고, 때로는 밤샘노동을 해서 이들이 받는 돈은 한 달에 12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더 무서운 것은 임금체계를 도급체계로 만들어 칼 하나 연마하면 20원씩의 단가로 임금을 준다는 것이었다. 법에 보장된 연월차도 각종 수당도 이들에게는 없었다.

    최준석 법규부장은 노동조합 일을 맡고 나서 생산량이 줄었다는 이유로 11월 월급으로 세금 떼고 34만원밖에 받지 못했다. 그는 “이렇게 월급을 도급제로 만들어 똑같이 일하는데 월급이 모두 다르고 그래서 한 달에 300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도 있다”고 말했다.

    300시간 일하고 120만원 받다

    회사는 노동자들을 고립 분열시키기 위해 개인별로 각종 수당을 모두 다르게 지급했고, 서로 이를 비교하지 못하도록 했다. “회사는 서로의 임금을 묻지 못하게 했어요. 몇 년 동안 같은 라인에서 일했는데도 서로 얼마를 받는지도 몰랐고 얘기 한 번 해보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니까요.” 이정숙 부지회장은 분통을 터뜨렸다.

    결국 이들은 지난 10월 14일 금속노조에 가입했고 회사에 교섭을 요청했다. 그러나 도루코 원청은 교섭에 나오지 않았고, 하청업체 사장들은 교섭에 참가했지만 불성실 교섭으로 일관했다. 기계를 빼가고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용역경비까지 불러들였다. ‘노조탄압 교과서’ 그대로였다.

    지회는 11월 27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30일 파업 출정식을 시작으로 부분파업을 이어갔다. 회사는 지회 간부 9명에 대해 징계해고를 했고, 급기야 12월 28일 조합원 33명에 대해 직장폐쇄를 때렸다. 이날부터 조합원들은 공장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2008년 투쟁의 포문을 도루코에서 열다

       
      ▲사진=금속노조
     

    금속노조 수도권지역 간부들이 속속 도루코 앞으로 도착했다. 금속노조가 2008년 투쟁의 포문을 도루코 앞에서 열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도루코 공장 건너편에서 “직장폐쇄 및 부당해고 철회 도루코비정규지회 파업투쟁 승리 금속노조 결의대회”가 300여명의 노동자들이 모인 가운데 시작됐다.

    금속노조 권순만 부위원장은 “도루코 자본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고, 성실하게 교섭에 임하지 않는다면 15만 금속노조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노총 김종수 강원본부장도 “노동조합을 인정해달라는 것이고 차별을 해소해달라는  도루코 동지들의 소박한 요구를 즉시 수용하라”고 말했다.

    공장 안에서 12일간 농성을 벌이고 이날 밖으로 나온 도루코문막비정규직지회 최락윤 지회장은 “아직도 우리는 마트에서 도루코 칼을 보면 가슴이 떨릴 만큼 도루코를 사랑하는데 회사는 그런 우리에게 탄압밖에 하지 않았다”며 “지금까지 대화를 하려고 많이 참았는데 금속노조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투쟁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철조망을 걷어내다

    도루코 자본을 상징하는 대형 식칼에 대한 화형식과 함께 최락윤 지회장이 투쟁의 결의를 다지며 삭발식을 진행하자 함께 연단에 섰던 조합원들은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모르고 칼만 갈았던” 노동자들이 이제 도루코 자본을 상대로 ‘비정규직 차별을 철폐하라’며 새해 첫 투쟁의 포문을 연 것이었다.

    도루코 공장은 경찰이 지켜주고 있었다. 3백여명의 경찰이 공장 입구는 물론 공장 안까지 들어가 노동자들의 공장 진입을 원천봉쇄했다. 노동자들은 공장을 한 바퀴 돌았고, 공장 담벼락에 둘러쳐진 철조망에 밧줄을 연결해 걷어냈다.

       
     
     

    금속노조 양동규 경기지부장은 “15만 금속노조는 도루코 자본에게 우리의 의지를 아주 소박하게 보여줬다”며 “그럼에도 탐욕스런 자본이 우리의 요구를 거부한다면 금속노조의 자존심을 걸고 강력한 투쟁을 보여주겠다”고 경고했다.

    도루코 자본은 맘만 먹으로 문막공장을 없앨 수도 있고, 다른 곳으로 이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땀을 착취해 식칼과 면도기를 만들었다는 ‘악덕자본’의 악명을 얻어 15만 조합원들의 저항을 받는다면 훨씬 더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엄마가 비정규직 투쟁을 하는 이유

    금속노조 김종백 미조직비정규사업부장은 “33명의 전사들이 똘똘 뭉쳐 싸운다면 회사는 교섭에 나올 수밖에 없고, 금속노조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가 비정규직 철폐를 들고 원주 시내에서 선전전을 하니까 우리 아들들이 엄마 나이 먹어서 뭐하는 거냐며 말려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니들은 운이 좋아서 정규직 됐는지 모르지만 언제 비정규직이 될지 모른다. 또 이 나라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고, 너희 자식들도 비정규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엄마가 싸우는 거라고요. 내가 정년이 다 됐지만 열심히 싸워서 꼭 이길 거예요.”

    신준옥 조합원의 환한 얼굴 너머로 비정규직 투쟁의 희망이 보였다. 암울한 이명박 시대, 재벌의 시대에 맞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항과 투쟁이 새로운 희망의 싹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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