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서 웅성거릴 때가 아니다
    2008년 01월 06일 11:21 오전

Print Friendly

최근 당이 내게 관심을 불러일으킬 때는 당내 폭력사건이나 회계부정 사건 같은 것들이 터졌을 때뿐이었다. 솔직히 민중경선제가 논란이 됐을 때도 권노심이 경선을 벌일 때도 어쩐지 무덤덤했었다.

나뿐 아니라 좌우를 막론한 활동가들, 조합원들, 친구들, 당원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다. 한때 몇 달 월급을 털어넣어 선거자금으로 내놓고 가가호호 홍보물을 나눠주던 열정 같은 것은 그저 젊음이었나보다 싶었다.

이제 오프라인에서 만날 때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꽤 오랜 동안 속에 담아두고 있던 해묵은 것들을 쏟아내면서, 진작에 벌어졌어야 할 논쟁이 대선 패배의 충격 속에서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지금 <레디앙>을 달구는 기사들과 댓글들을 보며 나는 두근두근해 하며 다시 희망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다.

나를 확 잡아 끈 것은 "결연한 태도로 제2창당 운동에 나서자" 라는 장석준의 시리즈 기사다. 바로 딱 내가 민주노동당에 바라왔던 것들이다. 이제 뭔가 해야만 한다. 온라인에서 웅성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 희망을 가로막는 것은 총선만을 생각해 분당의 요구를 억누르고 대충 봉합한 비대위로 민주노동당을 억지로 끌고 가려는 시도들이다. 생각해 보라. 이 논쟁이 끝나고 나면 변화를 요구하는 당원들은 모두 당을 떠날 것이며, 관심 갖고 민주노동당을 지켜보던 사람들이나 한때 당원이었던 사람들은 다시 관심을 접을 것이다.

그리고 당은 창당 원칙 같은 것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 김일성주의자들에게 잡아먹혀 누군가의 말처럼 “사람 안에서 웬 괴물 한 마리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지금 안팎에서 당에 쏟아지고 있는 요구들은 대선 참패나 총선 승리 같은 것에 대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민주노동당의 혁신만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소위 운동권 전반에 뿌리깊이 남아 있는 20년 지하조직의 잔재를 청산하고 새롭게 거듭나라는 요구이다.

   
  ▲민주노동당 중앙위에서 발언을 경청하는 참석자들.
 

논쟁은 전면적으로 

장석준 말대로 대선 결과 책임 공방에서 더 나아가 원내정당 4년에 대한 평가, 민주노동당 10년의 평가가 되어야 하고, 민주노총 의존 체질, 스탈린주의, 의회주의 편향, 중앙정치 편향 등에 대한 총체적이고 뼈저린 반성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새로운 당의 모습에 대한 비전이 나와야만 한다. 장석준 같은 사람들의 글이 더 쏟아져 나와야 하고, 동의하는 지점들에 대한 공감과 토론의 확대가 이뤄져야 한다.

또한 종북주의 청산이라는 구호가 좌파의 반성을 가로막고 모든 책임을 민족주의자 혹은 김일성주의자에게 떠넘기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논쟁을 관망하고 신당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은 김일성주의자의 패권주의에 절망했다기 보다, 좌파의 무능력과 비전없음, 오십보백보인 폐쇄주의, 권위주의 같은 것들로 인해 분당에서조차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논쟁은 공개적으로 

논쟁은 최대한 시끄럽게, 최대한 열린 곳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벌여야 한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운동권 내부에서만 이념 논쟁을 벌이고 밖에서는 쉬쉬하는 행태를 보여 왔다. 그것은 지하 선도조직의 나쁜 버릇이다.

김일성주의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사상을 공개적으로 얘기하지 못하고, 많은 사회주의자들도 대중들 혹은 조직 대상들(!) 앞에서 자신이 사회주의자라고 밝히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 이유를 전적으로 국가보안법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대중을 조직하기 위해 사상을 감추는 짓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민중경선제로 격론을 벌였던 대의원대회에서 못 볼 꼴을 봤다. 민중경선제는 이미 부결됐고, 좌우 정파의 이해관계에 별 영향이 없는 안건들을 처리하고 있을 때였다. 앞 자리에 나이 사오십 정도 되는 대의원 여럿이 앉아 있었다. 표결을 할 때마다, 이들은 스스로 찬반을 결정하지 못하고, 리더인 듯한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사실 평당원들이나 조합원들은 당내 정파구도 따위, 그 유래 따위 모른다. 심지어 몇 년을 노동조합 간부로 활동한 사람들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오래 전부터 이 바닥에 있던 사람들끼리만 얘기한다. 정세 판단을 하고 지침을 내리는 비공식적인 중심부와 주변부가 있다. 내 보기엔 소위 좌파 조직들도 별로 다르지 않다.

이런 잘못된 비공식적인 의사소통 구조를 깨뜨리지 않고는 당이건, 노동조합이건 희망은 없다. 지금 벌어지는 논쟁은 그동안 우리가 소외시켰던 이들과 함께 벌여야 하며 각자 가진 세계관, 특히 정파조직들의 근본적인 세계관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논쟁은 당 밖으로 나가야

이 논쟁은 민주노동당 내부의 반성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생산력을 잃어버린 소위 운동권 전체에 대한 전면적인 반성으로 발전해야 하고 그 결과 혁명적인 분열이 일어나야 한다. 전면적이고 공개적인 논쟁과 함께 좌우가 분열한다면 당의 원칙에 동의하지 않는 무리에게 당을 빼앗기는 일의 재발 방지 효과도 있을 것이다.

당내 김일성주의자들의 몰상식하고 패권주의적인 행태에 대한 비판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또한 우리민족제일주의 같은 것들에 대한 사상투쟁도 필요하다. 김일성주의자들이 계속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다 해도 증거를 대며 대중들 앞에 김일성주의자들을 드러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마땅히 반성하고 책임져야 할 좌파들에 대한 면죄부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또한 나는 김일성주의자들의 세계관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지만, 현장에서 진심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활동하는 많은 김일성주의자들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이 나라의 현실을 바꾸는데 일조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한 정당에 모여 패권주의적으로 아귀다툼을 하는 것은 전혀 영양가 없는 짓일 뿐이다. 이제 좌우가 결별할 때가 되었다. 대동단결이 필요하다면 각자의 당과 조직을 가지고 현장에서 함께 투쟁하면 될 일이다.

레디앙에 커뮤니티를 만들어 달라

원했든 원치 않았든 지금 분당 논쟁의 한복판에 <레디앙>이 있다. 어느 분이 네이버에 까페를 만들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여러 생산적인 기사가 올라오고, 이미 사람들이 모여있는 레디앙에 커뮤니티가 있으면 훨씬 좋을 것 같다.

짧은 댓글은 공감을 표현하고 확대해 나가는 데 부족하다. 게시판처럼 추가로 긴 글을 덧붙일 수 있도록 시스템을 열어 달라. 기사를 두고 논쟁을 벌일 수 있도록 <레디앙>의 시스템을 바꿔달라.

그리고 평당원대회를 열자. 이제 신당 혹은 분당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모일 때가 되었다. 임시당대회 요구가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설령 받아들여진다고 해도 임시당대회에서 비대위 구성 이상의 어떤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총선 비례대표 교통 정리를 위한 비대위는 민주노동당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어줄 천재일우의 기회를 배반하는 행위다.

우리는 당의 관료적 체계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다. 인터넷에서 웅성거리며 누군가 명망가나 정파 조직이 앞장서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또 명망가나 정파조직이 앞장서서 분당의 깃발을 올리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명망가나 정파조직 기대선 안 돼

평당원이라는 것은 아무런 당직을 갖지 않은 당원이라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평당원대회는 국회의원, 명망가, 당내 영향력 있는 사람들 역시 평등한 관계에서 평등하게 논쟁을 벌이는 자리면 될 것이다. 나는 그 모인 사람들 속에서 새로운 리더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당을 위해 우리가 목 놓아 불러야 하는 사람들은 심상정, 노회찬 이런 명망가들이 아니다. 우리가 함께 가야할 가난한 사람들을 불러야 한다. 이랜드, 코스콤 등 지금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자신의 관료화된 정규직 노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꺼리는 건강한 정규직 노동자들을 가장 먼저 불러야 한다.

민주노동당 당원이거나 아니거나 구별하지 말아야 한다. 정파 패권주의에 질려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을 불러야 한다. 그동안 우리가 소외시켰던 사람들을 몽땅 불러야 한다.

우리는 지금 김일성주의자들에게 반성하고 당권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스스로를 반성하고 우리 자신의 세력을 확인하고 서로의 유토피아를 토론하고 공감하고 확장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어줄 공통의 비전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나가야 할 때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