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지들, 이제 주체사상과 헤어지자
        2008년 01월 04일 03: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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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나의 아내와 함께 수년간 몸담고 있는 민주노동당에 요즘 난리가 났다. 홍수나 지진 따위의 난리라면 피난이라도 갈 수 있으련만,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피난처는 보이지 않는다.

    직장 다니느라 당 활동이라곤 가끔 당원들과 어울려 축구 한 게임하는 거 말고는 없는 나야 그렇다지만 24개월 된 첫째 아들은 물론이고 임신 3개월째인 둘째 아기까지 신경쓰면서도 지역위원회 대의원을 맡아서 당 활동에 열심인 아내가 얼마나 답답하고 허탈할지 너무 걱정된다.

    분당, 종북, 패권, 비례대표, 기득권 등등 논쟁이야 할 수 있다지만 논쟁의 중심에 서있는 분들은 수많은 평당원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렸으면 한다.

    이제 본론으로 간다. 나는 NL이었다. 그리 대단한 활동을 했던 것은 아니지만 학생운동과 청년운동을 거쳐온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분명 NL이었다. 그리고 늘 내가 걸어온 NL의 길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다. 동시에 나는 변화하는 시대와 그 변화를 수용하는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해왔으나 답을 얻지 못한 채 일상에 쫓겨 덮어놓았었다.

    최근 나는 고민해왔던 바로 그 문제들을 다시 꺼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난리가 났기 때문이다. 고민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그런 난리가 바로 당 내부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글은 NL이었던 내가 NL 동지들과 나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임과 동시에 고민해온 문제들에 대한 내 나름의 결론이다. 나는 친북노선(종북노선은 틀린 말이고 악의적이다.)이 모든 것을 망쳤다는 비난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국민들의 요구를 똑바로 읽지 못해 빠져든 심각한 위기의 요인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현재 진행 중인 위기의 핵심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정리해보기로 하고, 이 글에서는 나와 비슷한 NL 동지들이 고민하고 있을 것 같은 민감하지만 중대한 문제들을 끄집어내어 나의 생각를 밝히고자 한다. 논리적으로 많이 부족한 글이겠지만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평양에 있는 주체탑.
     

    1. 주체사상과는 이제 그만 헤어지자

    제목을 쓰고 나니 너무 선정적이다. 지금은 뉴라이트 진영의 핵심 브레인이 된 예전에 너무나 존경했던 선배님이 하셨던 말씀처럼 너무 선정적이어서 조금 미안한 생각마저 든다. 또 너무나 민감한 주제라서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첫머리에 올리기로 했다.

    솔직히 나는 잘 모른다. 지금의 NL진영을 이끌고 있는 동지들이 아직도 주체사상을 세계관으로 자기 운동의 지표로 삼고 있는지 아닌지, 그리고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다만 그것이 오랜 시간 동안 나의 것이었기에 여기저기에서 그 느낌을 조금씩 전달받고 있고, 어느 정도는 계속되고 있겠다고 추측할 뿐이다.

    내가 알기로 주체사상은 철학에서 출발하여 사회학, 역사학 및 사회 변혁노선과 사회와 정부의 운영까지를 아우르는 세계관의 총론이며, 분명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상이론 체계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북한만의 것이다. 북한이라는 상당히 특수한 상황에 처해있는 사회를 떠받치는 정신적 지주일 뿐인 것이다.

    따라서 21세기 고도로 자본주의화된 한국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으며 적용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하물며 북한마저도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많은 부분 수정을 가하고 있지 않은가?

    지난날 교조주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남의 것을 맞지도 않는 나에게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하는 것이 교조이며 이는 운동에서 암적인 존재라는 말을. 이제는 그 교조에 대한 비판을 나와 우리 스스로에게 들이대야 한다.

    또한 우리는 항상 혹시나 우리가 교조에 빠지지 않았는지 스스로 점검해왔어야 한다. 바로 지금 우리는 교조에 빠져 있지 않은지 냉정하게 점검하고 조금이라도 우려가 된다면 과감히 정리하고 벗어버려야 한다.

    주체사상에 대해서도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취할 것을 소중히 취하는, 점검과 폐기의 과정을 통해 오직 현실에서 국민과 당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만 활용해야 한다. 쓸모가 없다면 과감히 버려야 할 것이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지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스스로 교조주의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2. 한국사회 미래 참고 모델이 북한은 아니지 않나?

    나는 <프레시안>이라는 인터넷신문을 즐겨 본다. 그 신문에는 남미 각국의 정치 사회적 상황을 현지에서 직접 리포팅해주는 코너가 있다. 남미라고 하면 단연 관심은 베네쥬엘라 차베스 대통령과 좌파정당의 집권이다.

    이를 보면서 나는 늘 우리사회의 미래는 어떤 나라를 모델로 삼아야 할지 고민해본다. 남미의 여러나라에서 참 배울 것이 많다는 생각과 함께, 석유와 같은 강력한 무기가 없는 우리나라가 과연 그와 같이 집권과 변혁을 이뤄갈 수 있을까 고민해보곤 한다.

    솔직히 예전에 나는 북한을 우리사회의 미래 참고 모델로 삼고 고민했었다. 상당히 많은 NL 동지들이 그러했을 것이고 혹여 어떤 이들은 지금도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나는 북한을 군사파쇼 왕조 사회로 규정하고 싶지 않고 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밝혀져 있는 객관적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모든 것이 미국의 봉쇄 때문이라고 하면서 봉쇄만 없다면 북한은 훨씬 부강하고 인민들이 행복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억지부리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식량부족 사태로 인한 어려움, 기간산업의 붕괴로 인한 전반적인 산업생산의 침체, 장기간의 군사적 대치로 인한 군사부문의 비대화 등 수많은 현실적 상황들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고 이는 더 이상 북한이 우리사회 미래 레퍼런스 모델이 될 수 없고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혹시나 통일과 민족에 대한 입장 때문에 이에 대한 입장이 모호하다면 분명히 바로잡아야 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3. 자본의 논리가 관철되는 통일은 너무나 슬픈 일이다

    주지하다시피 NL진영은 통일의 영역을 가장 앞장서서 개척해왔다. 나는 이것이 지금껏 매우 자랑스러웠다. 분단과 함께 벼려진 억압의 칼날 아래서 우리가 해낸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라고 믿었고 지금도 나는 믿고 있다.

    그런데 지금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통일 지상주의 내지는 근본주의라고 비판하고 있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나는 그들의 주장이 이해가 부족한 데서 오는 일종의 오해라고 생각하면서도 일면 이해가 간다.

    실제로 나의 활동을 돌이켜보면 통일운동에만 열심이었고 노동조합 연대투쟁 같은 일은 나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꼈던 적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의 비판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 반성하고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통일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다수의 NL 동지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비록 국가보안법이 온존하고 있지만 이미 북한과의 관계문제는 집권한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이 적절히 관리하는 수준의 문제가 되었다.

    다시 말해 통일 문제는 오직 우리들만이 점유하고 싸우면서 국민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전선이 더 이상 아니게 된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민족화해와 평화통일 지향이라는 올바른 방향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해야 할 하나의 사업분야일 뿐인 상황이 현실인 것이다.

    통일문제에 대해 조금 더 원칙적인 문제로 들어가보자. 과연 지금 통일이 우리사회 노동자 서민의 삶을 개선해 줄 수 있는가? 한국사회는 식민지 사회라고 하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전통적인 자민통 운동이론으로 잘 엮어내면 분명 머리속에서는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보자. 현실 통일운동의 핵심은 정부가 주도하는 정상회담, 장관급회담, 경제협력 사업, 문화/인도적 교류사업 등이다. 어디에도 우리가 주도해서 우리의 의도대로 추진해갈 수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이미 통일문제는 이미 우리가 맞서 싸울 수 있는 전선이 상실되어 중도우파 그들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도 정권의 일상사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여기에는 노동자 서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어떠한 전선도 성립될 수 없다.

    이제는 이 상황을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 이명박씨가 집권했다고 해서 쉽게 통일문제를 뒤로 되돌리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공고해졌고 되돌리려고 하는 순간 중도우파(신당)에게 반격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리라는 것을 우파(한나라당)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통일문제는 좌우를 넘어서서 보편적인 가치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많은 과제들 중에 하나가 된 통일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나는 올바른 통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감시하고 견제하고 선도해야 한다고 본다. 올바른 통일이란 한국사회의 살인적인 자본의 질서가 북한사회에 침투하여 관철되는 방향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의 지향대로 노동자 서민의 삶이 향상되고 약자를 보호하는 안전판이 마련되는 방향으로의 통일이 될 것이다.

    물론 북한의 상황으로 볼 때 통일 과정에서 남쪽 자본의 참여는 불가피하지만 적정 범위 내로 제어하고 감시해서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잘못된 통일의 결과는 참담하고 우울할 수도 있음을, 중심 없는 통일운동은 파괴적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음을 고민해봐야 한다. 동독의 상황을 재현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4. 당조직을 당원의 품으로 되돌려 줘야 한다

    기억하겠지만 예전에 이런 말이 있었다. 학생회를 학우들의 품으로 돌려주자! 나는 정확히는 모르는 시절의 얘기다. 군사정권의 폭압 속에서 학생회를 만들고 지켜오다가 최소한 학교 안에서만은 군사정권의 폭력이 사라진 이후 학생회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선배들이 내놓은 결론이었다.

    이때 선배들은 학생회의 운영을 학생회 일꾼과 학생들의 힘으로 해내는 것이 맞다는 생각으로 학내에 존재하던 활동가 조직을 해체하고 모든 성원들이 학생회 범위 안에서 경쟁하고 활동하였다. 이전에는 활동가 조직에서 학생회 사업의 많은 부분을 결정했고 학생회 조직을 통해 이를 집행했었다.

    나는 지금 이와 유사한 결단을 NL 동지들이 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조직을 해체해야 한다고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조직을 해체하고 말고는 알아서 할 일이지만 혹여나 다수결의 외피를 쓰고 정파적 이해관계를 당조직을 통해 관철시키는 행태를 보여왔다면 철저하게 반성해야 한다.

    나는 정파조직 안에서 활동해본 사람이 아니기에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제기되는 비판의 주된 내용의 하나가 패권적 당 운영인 상황에서는 그것이 단지 우려일지라도 분명하게 점검하고 정리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운영의 문제가 아니라 내부에서 치열한 사상투쟁을 통해 극복해야 할 매우 중대한 문제이다. 이는 지금 NL 동지들이 당권을 쥐고 있고 다수이기에 누구보다 앞서서 스스로 성찰하고 실천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정파들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정파조직의 틀 내에서 논의하고 결정할 문제들과 당조직에서 해야 할 문제들을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 정파조직은 당운동 노선이나 정책에 대한 정파조직 차원의 전략적인 검토, 조직성원들에 대한 교육 등의 지극히 내부적인 것들을 논의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정파조직이 비례대표 선거, 당직 공직선거에 투표지침 따위를 결정해서 스멀스멀 내려보내거나 최고위원회나 중앙위원회에서 위원들이 현실의 조건과 상황에 맞게 판단하고 결정되어야 할 사항들을 미리 논의하고 결정해서 지침을 작성하는 등의 기초 당조직의 역할과 권한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그런 일을 계속하려거든 조직을 해체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특히, 지역위원회 일꾼들은 이에 대한 중심을 명확하게 세워야 한다. 지역위는 지역위마다 매우 다양한 지역적 상황이 존재한다. 그러한 상황에 맞게 지역위 당 운동을 풀어나가는 방향과 방법 또한 매우 다양하다.

    지역위 일꾼들이 자기 지역위의 상황과 조건에 맞게 현실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고 정파조직에 매몰되어 정파의 이해관계나 정파 중앙의 결정사항을 지역위 의사결정 단위에서 결정/집행하려고 한다면 민주노동당에게 미래는 없다. 위원장/분회장을 중심으로 한 기초 당조직의 일꾼들이 일반 당원들과 함께 지역의 상황에 맞게 지역위를 운영하겠다는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5. 당원을 주인으로 세워 지역을 개척하자.

    지역을 개척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당 활동을 그리 열심히 하진 못했지만 이것이 얼마나 어렵고 오래 걸리는 일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을 하면 당이 살고 미래가 있고 이것을 안하거나 못하면 당은 죽을 것이고 당의 미래는 없다.

    서울이건 지방이건 당원들은 동네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일반 국민들은 동네 안에서 민주노동당을 보고 느낄 때에만 지지한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생활과 직접 관련된 일들을 당에서 고민하고 추진하고 성과를 낼 경우에만 당에 지지를 보내준다. 그래서 동네에서 뿌리내리는 것만이 당을 발전시키는 유일한 방안이고 비록 어렵겠지만 그 길이 지름길이다.

    주민들의 생활에 가장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은 서울 및 대도시의 경우에는 구청과 의회이고 지방의 경우에는 군청과 의회이다. 예산의 실질적인 집행단위인 것이다. 이곳에 주민들의 생활적인 요구사항을 매개로 관여하고 일을 도모하지 않으면 결코 당 지지율은 올라가지 않는다.

    우리는 수많은 사업을 공중전 행태로 진행한다. 하지만 동네에선 통하지 않는다. 동네에서는 그에 맞는 실질적인 내용을 갖고 지상전을 펼쳐야만 주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NL 동지들은 여기에 힘을 쏟아야 한다. 나는 NL 진영이 다른 이들 보다 지역사업과 대중사업의 경험을 축적한 일꾼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NL 진영이 가진 대단히 소중한 자산이 바로 이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자산을 민주노동당에게 요구되고 있는 지역에 뿌리내리는 일에 쏟아 부여야 한다고 본다. NL 정파조직은 동지들의 경험을 모아 체계화하여 당 중앙에 제안하고 이를 지역위원회로 전파하여 지역 당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과 같은 일들을 해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NL 정파조직의 존재 의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긴 글이었다. 형편없는 글재주로 쓴 조각난 단편적인 글이지만 나의 진심이 전달되기를 바란다. 어차피 시작된 난리를 각 정파조직들과 당원들이 상대방이 아닌 자기를 되돌아보고 변화하는 과정으로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글이 NL 성향의 당원이 NL 내부에 던지는 서툴지만 진심어린 문제제기로 읽혀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분당되면 그날로 탈당하고 다시는 정당에 가입하지 않겠다!”

    지금의 당 상황을 보면서 나의 아내가 던진 한마디다. 지금 나의 아내와 같은 당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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