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이 아니라 옳음이 내 원동력"
        2008년 01월 02일 05: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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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돌아올 새해 복은 아직 없는 것 같다.
     

    마치 서낭당에 온 것처럼 나무에 달린 리본이 울긋불긋했다.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앞에 서있는 겨울 나무에는 투쟁 의지를 담은 리본들이 많이도 달려 있었다.

    “비정규직 철폐하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는 구호가 눈에 띄었다.

    그 사이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대형 글귀가 20층이 넘는 건물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내게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비정규직은 빼고!”로 읽힌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비정규직은 빼고"

    처음으로 하는 다른 연맹 소속 사람을 인터뷰하는 터라 조심스럽다. 해서 오랜 친구인 사무금융연맹의 김금숙 여성국장의 도움을 받았다.

    사람들은 분주하게 난로에 불을 지피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기도 한다. 새롭게 투쟁의 전형을 만들어 가고 있는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천막에서 자고, 직접 밥을 해 먹는다. 그 옛날 위장 정리해고에 맞서 7년 가까이 투쟁하던 삼미특수강 동지들이 보여주었던 해맑던 웃음과 여유, 그리고 그 맛있던 밥이 생각났다. 오늘의 인터뷰 대상자는 사무금융연맹 증권산업노조 코스콤비정규직 지부 정인열 부지부장이다.

    이리저리 기사를 찾아보고 만만치 않은(?) 내공을 확인한 뒤여서 더욱 조심스럽다. 본격적인 인터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함께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 12월 14일 첫 만남. 마침 노조에 유리한 법적 판정이 나온 상태다.

    =회사가 가처분 신청을 냈는데 목적이 조합원을 공격하기 위한 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이었어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측 입장으로 나오는데 반해서 이번에는 엉뚱하게 사용자성 인정이 된 거예요. 교섭을 요구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판결이 나온 거죠.

    지난 9월 코스콤이 제기한 소송은 사무금융연맹, 증권노조, 그리고 지부의 위반 시에는 1천만원, 그리고 나머지 피신청인에 대하여는 1백만원을 지급하라는 내용과 거래소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시설물 및 접근을 금지 시켜달라는 내용의 소송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판결문에서 "여러 정황에서 코스콤의 사용자성이 인정되며 지부가 교섭을 요구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볼 수 없기에 지부 교섭위원 5인에 대하여는 교섭을 촉구 또는 교섭을 위한 출입에 대하여는 위법으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법원이 코스콤의 불법파견과 위장도급이 명백하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민주노동당이 노동자 정당다운 선거운동을 했어야

    12월 21일,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다시 만났다. 엊그제 만났을 때 있던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이 없어져 버렸다. 바로 어제 투쟁 100일 집회를 하면서 70명이 넘는 사람들이 집단 삭발을 단행한 뒤였다.

    네이버를 통해 검색해 보니 사람의 체온의 60%는 머리를 통해 빠져나간다고 한다. 겨울이 시작되는데 얼마나 추울까? 고등학교 졸업 이후부터 줄곧 길러 왔다던 머리카락을 잘라낸 심정이 어떤지가 가슴으로 전해 온다.

       
      ▲ 한겨울에 삭발을 하고 있는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 가운데가 정인열 부지부장.
     

    필자가 예전 교선실장이었을 때 연맹 기관지를 만들면서 ‘술한잔 걸치며’라는 꼭지를 만든 적이 있었다. 허심탄회하게 이런저런 속내를 드러내보자는 취지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술집에서 인터뷰를 했다. 맛있는 걸 사주고 싶은데 내 주머니를 걱정해서 한참을 헤맸다. 다시 그 마음이 전해진다.

    마침 선거가 끝난 직후여서 민주노동당이 참패한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는지부터 물었다. 특히 조합원도 안 찍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할까?

    =그만큼 민주노총 조합원 자체도 노동자 의식이 없는 거죠. 형식적인 노동자만 있어요. 노동조합 활동한 지 얼마 안 돼 잘 모르는 데 민주노총 내에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자는 슬로건이나 조직하는 활동이 정동영이나 이명박을 지지하자는 것과 비슷하게 가지 않았나 생각해요.

    노동자라면 노동자다운 컨셉을 잡고 갔어야 하는 데 1번, 2번처럼 너무 정치적으로 간 게 아닌가 해요. 그래서 포스터나 이런 것을 보았을 때도 조금 거부감이 들더라구요. 권영길 후보가 우리 투쟁 현장에 많이 오셨어요. 온 것은 고마운데 마치 우리가 카메라 배경인 것처럼 느껴진 적도 있어요.

    민주노동당이 노동자를 위한 정당이라면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 데 그런 것을 보면서 "아 민주노동당까지 저러는구나!"라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대중성을 지향한다는 입장에서 민주노동당이 정동영이나 이명박처럼 그렇게 한 것 같아요.

    그런데 국민들도 의식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선거 때만 되면 서민을 위하는 척하는 걸 다 안다고 봐요. 그래서 민주노동당은 차라리 1번과 2번과 같은 대중성을 표방하지 말고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얘기하는 방향으로 갔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그녀도 민주노동당 당원이다. 코스콤 비정규직은 투쟁 중 8월 21일 집단으로 당원으로 가입했다. 개인적으로 지난 2000년 고양시에서 치러 본 총선에서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한 친구가 표와 대중성을 위해서 ‘산소 같은 남자’ 류의 선거 운동을 하자고 해서 정리해고 철폐 등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선거기조를 잡았던 나와 크게 충돌한 적이 있었다.

    =제가 당원이 아니었을 때 뉴스에서 민주노동당이 나오거나 어떤 법에 대해 각 당의 입장을 얘기하는 경우를 보았을 때 좋았어요. 올해 초만 해도 멋있었어요. 뭔가 힘이 있고, 가능성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어느 샌가 점점 퇴색이 되더라구요.

    ‘퇴색하는 민주노동당’이라는 말이 남는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이란다. 다른 것은 전혀 안 해 보았을까? 월간 <작은 책>에 본인이 직접 쓴 글에서 그녀는 "나는 살아가고 싶다.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살고’ 싶다"고 맺었다. 다른 인터뷰를 봐도 만만치 않은 나름의 철학이 느껴진다. 그게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우리의 투쟁은 ‘인간선언’이다.

    =수능 이후에 아르바이트 많이 했어요. 우체국, 피시방, 그리고 음악을 되게 좋아해서 락 빠에서 DJ로 알바도 했어요. 이 투쟁 전에는 비정규직이고 파견법이고, 도급이 무엇인지 몰랐어요. 왜냐하면 회사가 도급업체의 정규직원이라고 했으니까요.

    근로기준법도 몰랐으니까 문제가 무엇인지 아예 몰랐어요. 위법이 정상인 상황에서 위법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왔거든요. 여기 조합원 전부가 그래요. 드라마나 그런 걸 보면 항상 돈 있는 사람만 사람 구실할 수 있는 것이고, 돈 있는 사람만 인격을 가진 것처럼 나오잖아요, 돈 없으면 죄인 취급하고……

    그런 거랑 똑같아요. 언론이나 방송 등을 통해 그렇게 지배를 당하니까 비정규직 중에서도 자기가 비정규직인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왜냐하면 쪽팔리거든요. 자기가 비정규직인 것을 인정하는 것이 부끄러운 거죠. 여자들 같은 경우 월급이 적고 그런데도 명품 같은 것을 사는 이유가 ‘나는 잘난 남자친구 만날 수 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봐요.

    싸움이라는 게 여러 가지를 느끼게 만든다. 사회에 대해, 사람에 대해.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저는 뭐든지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중심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일도 생기는 거잖아요. 사회하고 사람하고 다 연결이 되어 있어요. 일맥상통하는 건데 내가 움직이고, 내가 의식이 바뀌면 나로 인해서 사회도 바뀌는 거라고 봐요. 비록 단시간은 아니지만 나로 인해서 사회가 바뀌는 거라고 생각해요.

    소수의 지배자들이 독점을 하고, 그 많은 대중들 다수를 지배하잖아요. 그것을 표시가 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교묘하게 내가 선택권을 제한하게끔 만드는 거죠. 그래서 한가지 밖에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하면서도, 사회적으로는 자의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치부를 하잖아요.

    “네가 선택한 것이 아니냐?”면서 합리화시켜요. 사실은 그게 아닌데……. A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선택지는 하나밖에 안 주면서. 그러면 그것에 대해 불만을 뭔가 느끼는데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죠. 하지만 인간이라면 안에서 분노가 끓는 거죠. 그 분노를 표출하기까지가 되게 어려워요. 용기가 필요하죠.

    그러나 그 용기가 표출된 이후에는 인간으로서 내적 성장이 이루어지는 거라고 봐요. 사무금융연맹의 어느 분이 저희 투쟁을 보고 ‘인간선언’이라고 했어요. 저는 그 말을 너무 공감을 해요.

    코스콤비정규직 지부는 지난 해 5월 29일 결성되었다. 사측이 비정규직법 시행에 앞서 25개 하도급업체와 계약을 해지하고, 새 도급업체 5곳과 계약을 한 직후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도급업체로 고용이 승계된 노동자 90여명이 코스콤으로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면서 투쟁을 시작했다.

    6월 23일 1차 파업, 9월 12일부터 2차 파업에 들어갔다. 이유근 조합원이 고공농성 단식을 19일 동안 했고, 뒤를 이어 바로 정인열 부지부장이 22일 동안 단식을 했다. 2000년 10월 30일 입사하여 7년 동안 묵묵히 일만했다.

    노조 가입 후에 정규직 사원들이 보여 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행위’에 염증이 나서 회사에 사표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인사팀장의 동료에 대한 협박이 사람을 변하게 만들었다.

       
      ▲ 소주 한잔 마시면서.
     

    ‘동료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칼만 안든 강도짓’이라는 판단이 사표를 접고 투쟁에 나서도록 했다.

    결국 조합원 35명 중에 5명이 남게 된 최악의 상황에서 홍일점으로 투쟁을 하고 있다.

    가난은 나의 스승

    조금 건방지게 물어 보았다. 내 입장에서 보면 아직 나이가 어린 축에 속하고, 우리 연맹으로 따지면 막내 뻘이다.

    무시하자는 게 아니고 상대적으로 인간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는 것 같아서 그게 어디서 나오는 건지가 궁금하다고 물었다. 뭔 계기가 있었을까?

    =모르겠어요. 어릴 때 어렵게 살아서 그런가? 원래부터 많았던 게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졌어요. 나이가 먹으면서 이런저런 시각을 가지게 되었어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업을 3번 실패하고, 중동으로 일하러 나가셨어요. 어머니는 화장품 판매원 이런 거 하시면서 집에 안 계셨어요.

    1남 1년데 2살 차이나는 남동생은 제가 키웠어요. 6살 때부터 집에 엄마가 없었던 거예요. 항상 가난하게 살았는데 그게 가난인 줄은 몰랐죠. 근데 강남 일원동으로 이사를 간 거예요. 지금도 그렇지만 강남은 잘 사는 동네지만 못 사는 동네도 있거든요.

    지금도 도곡동 타워팰리스 뒤에 판자촌이 있어요. 못 사는 동네에서 살면서 잘 사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다닌 거예요. 어릴 때부터 극과 극을 체험하면서 살았어요. 가난이라는 게 불편한 데 그것 때문에 아이들한테 왕따도 당했거든요. 그래서인지 가난한 사람을 보면 눈물이 막 나고 그래요. 어릴 때부터 동정심이 되게 많았어요.

    많이 맞고 자라고, 어려서부터 양극을 체험하고 살았단다. 그래도 이해가 안된다. 동정심이야 가질 수 있다고 쳐도 인간에 대한 깊은 믿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희망이 인간에게 있다”고 얘기하는 그것은 어디서 오는가?

    =그 희망은 역사에 대한 믿음이라고 해야 하나, 거기서 와요. 역사는 잘 몰라요. 그래도 찬찬히 보면 물론 역방향으로 간 적도 있지만 그건 잠깐이고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왔다고 보거든요. 그 단적인 예로 광주항쟁을 얘기하잖아요.

    대학교 때는 운동하는 학교가 아니었으니까 하나도 몰랐어요. 음악을 좋아해서 사람들하고 얘기하고, 인터넷 검색도 하고, 자연스럽게 술 마시면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나 봐요. 자랑이 아니라 제가 감각, 감수성이 뛰어나요.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게 있어요. 감이 와요.

    사실 음악이 제게 중요한 역할을 했거든요. 성격도 있지만 음악을 오래 듣고, 고민을 많이 하면서 그것이 결국 사람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사람이 음악이에요. 10년을 들으면서 내린 결론이에요. 어떤 사람이 정치적 의도 같은 것 없이 정말로 순수하게 좋은 음악을 만들려고 하면 결국은 사람에 대한 본질로 귀화하게 되요. 좋은 음악이라는 것은 결국 인간을 바탕에 깔고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어떤 사람이 평화와 자유를 얘기할 때 그것이 백인이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것인지 정말 전체 약한 사람을 향한 것인지가 보여요. 장르를 넘어 음악은 아름다움에 대한 집념을 가지고 있는데, 그 아름다움은 결국 인간으로 향해요.

    모든 예술은 저항에 대한 가장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기존의 질서, 고정관념을 깨뜨리려는 기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직접적인 구호로 외치지는 않지만 그 가능성이 크다고 봐요. 교회를 다녔지만 자금은 기독교를 싫어하는 것이 어떤 정해진 망에 사람을 가둬두려고 하기 때문이에요. 옳은 것에 대해 말하면서도 자신이 피곤해지는 것은 못 견디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건 아니죠.

    고등학교 때 세계사 선생님의 말이 생각난다. 늙으신 선생님은 “객관적인 주관적 사고”와 “역사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셨다. 그 때 배워 이제는 개똥철학이 된 나의 “근거 없는 낙관주의”와 많이 닮았다. 지금이야 불과(?) 100일 밖에 안되는 투쟁이 진행 중이다. 모든 투쟁이 그렇듯 싸움의 막바지에 가면 인간에 대한 실망을 가질 수도 있을 텐데…….

    =벌써 실망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저는 이 싸움 시작하면서 환상에 차서, 희망에 차서 시작하지 않았거든요. 어느 정도 힘들거라고 예상했어요. 옳은 것이 먼저예요. 제가 노동조합을 하게 된 것도 "이것이 옳은 것이다, 옳은 것이기 때문에 회피하면 안된다" 라는 거였거든요.

       
      ▲ 농성 중인 천막 안에서.
     

    그 옳은 것을 해야 제 자신에게도 부끄럽지 않고. 지금 자신은 하지 못하지만 이 투쟁이 오래 가도 끝까지 할 것 같아요.

    양심상 이 싸움이 끝나 현업으로 돌아가도 계속 이 쪽에 관심을 가지고, 뭔가 도움이 되는 방향을 찾아 볼 것 같아요.

    활동가들이여, 똥 폼 잡지 마라

    투쟁을 하면서 본 민주노총이나 연맹 혹은 활동가들의 모습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물었다.

    =제가 사람을 잘 보는지 모르겠지만 한번 보고 저 사람이 우리 편인가 아닌가가 보여요. 민주노총이나 연맹 활동가를 보아도 저 사람이 헛바람이 들었나, 한마디로 하면 허례허식이나 자기 위상을 중요시 하나 아닌가가 눈에 보여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허풍이 심하잖아요. 멋있어 보이려고 하고, 자기 공으로 돌리려고 하는지가 눈에 보여요. 정의에 차서 노동운동 하는 건 맞는 거지만 그것을 멋있게 보이려고 하는 거죠. 자기 야욕을 가지고 하는 사람이 한 30% 되는 거 같고요, 나머지 50%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거 같아요.

    계속 전업으로 이 일을 하다보니까 그냥 일처럼 느끼는 거죠. 마치 사업처럼 하는 거죠. 되게 단순하고 형식적으로 해요. 싸움을 하면서 이겨 본 적이 없으니까 힘든 것도 이해해요. 패배의식도 생기고, 우울증도 생기겠죠.

    민주노총만이 아니라 소위 왼쪽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을 보면 의견이 분분하고, 의견충돌이 많아요. 계속 자기들끼리 싸우잖아요. 민주노총 안에도 진짜 우리 편인 사람하고, 우리 편인 척하는 사람이 있을 거 아니에요.

    우리 편인 척하는 사람들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장은 못 바꾸지만 바꿀 수 있다고 봐요. 제가 사람을 보면서 가장 비중 있게 보는 게 저 사람이 똥 폼 잡는 사람인가 아닌가예요. 순수하게 인간적인 면을 발산하는 사람을 제가 좋아하거든요. 자기 자신을 인간으로 승부하려고 하지 않고 외적인 것으로 하려는 사람을 싫어해요.

    노동조합의 원칙을 지키는 게 중요해요. 수십 년을 했어도 원칙을 못 지키는 사람들이 있어요. 조합원과 똑같이 행동하는 게 원칙이라고 보는데 그러지 않는 게 사소한 것에서 나타나요. 간부라고 조합원들이 집회하고 있는 데 뒤에서 담배나 피우고, 술 마시면 안 되는 데 술 마시는 사람들이 있어요.

    원칙을 안 지키고 자신은 예외라고 생각하는 거죠. 원칙을 잘 지키는 사람은 정말로 많이 뛰어요. 그리고 그 성과가 바로 나와요.

    솔직히 찔린다고 바로 인정했다. 막힘없이 술술 얘기하는 데 거의 스님 같다. 머리를 깎아서 더욱 그렇다. 나는 어디에 속할까? 50%에 속하는 매너리즘에 빠진 활동가? 마침 읽고 있던 ‘무탄트 메시지’라는 책에서 "사업의 목표가 다른 무엇이 아닌 사업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된 게 너무도 이상하게 보인다" 라는 호주 원주민들의 얘기가 와 닿는다.

    잔인한 질문이라는 전제를 깔고 몇 가지를 더 물었다. 한국통신비정규직부터 KTX 투쟁까지 온전한 승리를 가져오기가 너무 힘든 조건이다. 장기투쟁에 장사 없다. 그리고 자본은 항상 차별을 노린다. 신입사원이 20여명 되고, 2년 이상 고참자도 많다. 숙식을 천막에서 해결하는 데 지방거주자는 20여명 정도다. 투쟁이 힘들어지면 내부 갈등도 생기기 마련이다.

    =최근엔 해야 할 게 이것저것 많은 데 집행이 안돼서 우울했어요. 투쟁이라는 게 시기가 있잖아요. 그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할 일이 너무 많은 거예요.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조합원들의 동의를 일일이 얻어야 하는 등 세세한 게 많아서 스트레스가 쌓일 때가 있어요.

    회사가 가시적으로 보는 것은 조합원의 상태잖아요. 시기적으로 쳐들어가야 하는데 조합원의 상태 때문에 못 했을 때 안타까워요. 여자 혼자라서 힘든 건 없어요. 오히려 조합원들이 여자라고 배려를 많이 해 주니까 미안해요.

    처음에는 빠릿빠릿했던 조합원들이 무감각해지는 것 같아서 안쓰러워요. 투쟁 중에 3명이 업무 복귀를 하기도 했어요. 사람마다 생각하는 끝이 다르겠지만 저는 무엇보다 "후회 없이 싸웠냐?" 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계속 싸울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게 남는 거예요.

    민주노조 사수라는 말이 이제 이해돼요. 우리가 싸우니까 정규직들의 구조조정이 뒤로 미루어지고, 비정규직들은 임금인상이 되고, 기간제 비정규직들은 1년 이후 정규직화 얘기가 나오기도 한데요. 우리 투쟁의 덕이죠.

    사측은 "왜 너만 희생양이 되냐?"는 식으로 조합원을 회유하기도 해요. 아무 것도 안하고 덕을 보려는 사람들이 90%가 되기 때문에 우리가 싸우는 거라고 생각해요. 남은 것은 의식밖에 없어요. 우리가 이겨야 다른 모든 비정규직 싸움이 이기는 거예요. 우리가 일어나야 다른 사업장도 일어날 발판이 생기는 거예요.

       
      ▲ 추운 삶을 살고 있는 노동자들이 ‘겨울나무’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적힌 리본이 나무 가지에 ‘겨울 잎’으로 붙어 있다.
     

    쌀이 다 떨어졌어요

    거기까지 했다. 그리고 12월 24일 연맹 위원장, 조직국장과 함께 다시 천막농성장을 방문했다. 크리스마스이브였지만 예수가 이 자리에 올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대신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으로 시작되는 김민기의 ‘금관의 예수’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그동안 사측의 교섭 태도에 변화가 있었을까?

    =교섭을 하라는 판결이 나왔으니까 교섭은 하는 척해요. 그런데 사용자성을 인정하기 싫으니까 하청회사를 끼고 나와요. 지금까지 22차에 걸쳐 교섭할 때 하청업체 없이 했거든요. 임원들이 아닌 팀장 2명이 나오거나 직접당사자가 아닌 도급업체 사장이 교섭에 나와요. 실질적인 교섭은 여전히 안되요.

    쌀이 다 떨어졌어요. 다 없어요. 가정이 있는 사람도 많은 데 생계가 힘들어요. 1월에 후원회를 모집할 거예요. 그때 많이 도와주세요.

    한숨이 나온다. 이랜드도 그렇고, 광주시청 비정규직도 그렇고, 모든 비정규직 투쟁이 그렇다. 조금씩만 힘을 더 보태면 될 것을…….. 그후 두 번의 문자를 정인열 부지부장에게 받았다.

    "21시경 용역깡패 일방적 폭행, 조합원 2명 머리 심하게 부상 입원/ 현재 소강상태 12/27 11:15 pm"
    "코스콤 비정규지부 오늘 08:00 시내 5곳 CCTV 고공농성 중(보신각, 광화문, 독립문, 안국동, 명동성당) 12/31 10:35 am"

    그렇게 투쟁하고 있다. 장기 투쟁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모두가 투쟁 후에 제일 먼저 여행을 하고 싶다고 한다. 좋아한다는 ‘Rage against the machine’의 음악을 들으며, 역사의 긴 시간이 배어 있어 가끔 간다는 순천 송광사를 그녀가 찾을 날은 과연 언제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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