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쪽수 아니라 포지션'의 미학
    2008년 01월 02일 09: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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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춘 새로운 사회연구소 연구원장께서 진중권 교수와 민주노동당의 분당론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진중권 교수가 민주노동당 내 친북세력을 숙주에 기생한 ‘기생충’으로 묘사하자 손석춘 원장이 이에 반발해 ‘싸우지 말고 대동단결’ 하라고 주문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자 진중권이 ‘민주노동당에 대해 뭘 좀 알고 얘기하라’고 재차 충고를 했고, 다시 손 원장이 ‘한줌도 안 되는데 그나마 깨면 어떻게 하냐?’는 재반론을 편 것이다. 조금 노골적으로 말하면 민주노동당 지지율이 5%도 안 되는데 그럼 2.5%씩 나눠먹을 거냐? 라고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의 기본 원리

나는 이 대목에서 손석춘 원장이 기본적인 정치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쪽수의 미학’이 아니라 ‘포지션의 미학’이다. 다시 말해 ‘눈에 보이는 조직’ 보다는 ‘대중의 머릿속에 그려져 있는 정치지형상의 입지’가 훨씬 중요하다.

우리는 민주노동당 창당 이래, 지금 이 순간까지 끊임없이 하나의 질문에 시달려왔다. 그 질문은 "왜, 노동당이 노동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가"였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노동자의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당은 ‘한나라당’이다. 민주노총 어느 지역본부에서 실시한 자체 여론조사에서 이명박이 14%로 1등을 했다는 통계도 있다. 예전에 내가 공장에서 보니 같이 일하는 노동자들이 제일 많이 보는 신문은 ‘조선일보’이기도 했다.

   
  ▲이명박 당선자가 후보시절 한국노총을 찾아서 정책연대 협약을 체결했다. 전태일 열사 사진 앞을 지나는 이 후보.(사진=뉴시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노동자가 꼭 경제적인 세계관만으로 사물을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즉 노동자는 나의 임금=노동조합=민주노총=노동당이라는 등식을 고정된 세계관으로 늘 갖고 다니지 않는다.

노동자라는 ‘정체성’은 자본과의 관계 속에서만 형성되는 것이지, 가족관계라든가, 정치적 관계라든가, 여타의 사회관계라든가, 일반 인간관계라든가 그런 기타 관계 속에서는 노동자라도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갖게 된다.

결국 노동자들이 노동정치적 정체성을 확보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다른 장애물들을 치워주고 노동정체성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줘야 비로소 계급의 탄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친북 민족주의와 노동자

여기서 대표적인 장애물이 ‘친북 민족주의’다. 노동자들은 대부분 북쪽에 있는 김정일 정권의 존재에 위협을 느낀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북한 핵무기에 대해 반대하지 못했다. 오히려 ‘민족 자위권’이라는 입장이 거의 통과될 뻔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한데 노동자가 노동당을 지지할 리가 만무한 것이다.

오늘의 분당 파동은 매우 역사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집권 불가능한 진보정당인 이유는 한나라당에 포섭된 노동 계급을 탈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시정하지 못하면 ‘진보정치’ 자체의 미래가 아예 없다.

다시 말해 2008년 시점에서 역사적인 ‘분리’를 일으켜 민주노총당, 친북당, 데모당의 굴레를 과감히 벗어나지 못한다면, 한국진보정당 운동은 ‘계급의 탈환’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보는 노동자들을 영원히 끌어들일 수 없는 과거의 포지션을 고집하는 이상 어차피 민주노동당은 천년만년 진보자민련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바로 이 새로운 포지션을 얻기 위해 지난 8년간 애지중지 키워온 ‘조직’을 모두 포기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대선 평가’를 하는데 웬 종북문제를 들고 나오냐? 라고 물으면 정말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가 되는 것이다.)

나는 손석춘 원장의 반론을 보며 지난 대선 때 끝까지 정동영 후보로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던 머리 하얀 이른바 재야의 어르신들을 떠올렸다.

그 분들이 보시기엔 정동영+이인제+문국현+권영길 그렇게 해서 다 합치면 한나라당에 맞선 일심단결의 대오가 형성되고 지지율도 그들을 다 합친것처럼 나올 것이라고 믿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런 어설픈 산술적 세계관이 결국 진보진영 전체의 ‘파이’를 크게 줄여놓았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지지율은 나눈다고 둘로 쪼개지지 않는다. 합친다고 두 배가 되지도 않는다. 낡은 포지션을 과감히 털어버려야 대중의 의지 깊숙이 잠재되어 있는 새로이 잠재된 가능성을 열어보고 이를 시험할 수 있다. 정치를 단순히 쪽수의 미학으로 보는 손석춘 연구원장의 ‘산술적인 세계관’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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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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