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관순, 심상정 그리고 좌파소녀들
        2008년 01월 01일 09: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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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왜 사랑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최근 황우석이 논문을 실었다고 난리를 쳤던 ‘네이처’지에 간간히 이 모든 것이,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랑은 유전자의 장난이라는 논문이 종종 나온다 (이 잡지에 나의 졸저 일부를 요약해서 내면 어떻겠냐고 하는 외국인들이 있었는데, 나는 전혀 과학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해줬다)

    나는 경제학자로 숫자와 그래프의 세계에서 살고 있고, 특히 최근 몇 년 동안은 수리생태학과 수리생물학 공부를 하느라고, 수학책을 붙잡고 정말 고통을 받는 중이다. 왜 중고등학교 때 나의 수학 선생님들은 한번도 ‘증명’에 대해서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은 것인가! 솔직히 너무 억울했다.

    억울해요, 수학선생님

    내가 한국인 중에 사랑하는 사람이 몇 명이 있다. ‘유관순 누나’를 사랑하게 된 것은, 4년 전의 일이다. 유관순, 이승복, 이 두 명은 유신 시절 나의 학교 선생님들이 사랑하라고 강요했던 사람들이다. 나는 선생님이 사랑하라고 한 사람은 절대로 사랑하지 않은, 되바리진 학생이라서 내가 결국 유관순을 사랑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었다.

       
      ▲ 일제시대 좌파 소녀 유관순의 사진들.
     

    유관순과 나와의 관계는, 우리 어머님이 이화여고를 나오셨다는 정도이다. 그래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밥상 머리에서 "유관순 열사는…"으로 시작되는 말을 꽤 많이 들었다.

    정말이지 이 여인을 내가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고등학교 때 수학경시 대회에서 경기여고에서 시험을 봤는데, "세상에는 이화여고 말고도 좋은 학교가 있답니다"라고 말할 수 있던 것이 행복했을 정도로, 나의 10대는 이화여고 출신 아줌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머님과 어머님 친구분들, 즉 내 주위의 모든 아주머니들은 이화여고 출신 아니면 교대 출신이었다.

    공교롭게도 어머님은 교대 1회 출신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키운 것은 이화여고와 교대였다고 할 정도다. 

    "이화여고에서는" 혹은 "교대에서는"이라는 말머리로 시작하는 아주머니들, 고등학교 때부터 "학교 가기 싫다"며 내가 ‘땡땡이’를 칠 때, ‘광화문 떡볶이’를 무기로 "그래도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한다"고 나를 설득하려 오셨던 아주머니들이 그런 분들이었다. 이런 젠장! 그게 너무 싫어서, 결국 박사까지 초고속으로 졸업하고 말았다!

    그런 사람 중에 유관순을 추천해준 사람은 정녕 한 명도 없었다. 노무현 정권 때에 개인적으로 너무 괴로워서 지금 사람들이 ‘신들의 직장’이라고 하는 공기업 부장에서 처장으로 승진할 기회를 던지고 퇴직했다.

    여행 중에 만난 유관순 누나

    그 순간, 외국에서 내 몸값이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1억원 + 미국 국적’에서 시작된 그런 제안들이, 몇 년 지나니까 1억 5천만원까지 올라갔다 (한 달에 겨우 연간 800만원을 가져다 주던 그 시절, 내가 아내에게 얼마나 미안하고 송구스러운지!)

    그 때 우리나라라도 제대로 이해해보자고 여행을 떠났을 때, 유관순을 만났다. 그녀는 고등학생 때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녀가 "대한독립 만세"라고 외치기 전, 그녀가 만났을 사람들을 생각해보면서 충청도와 경상도를 지났다. 그리고 그녀를 그렇게 키워낸 이화여고의 선생님들을 생각해봤다.

    내 결론은, 우리는 "다음번 유관순"을 죽이고 있다는 것이다. ‘알파걸’, ‘독신녀’, 아니면 ‘성형미인’ 등 우리 사회가 여인들을 부르는 이름은 천박을 넘어서 끔찍하기 짝이 없다. 이 이름들이 전부, 노무현 정권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유관순은, 일제 때 나온 좌파 소녀이다. 유관순 이후에 우리가 기억하는 10대 소녀는 스케이트 소녀 딱 한 명이다. 무서운 것은, 일제 교육은 좌파 소녀를 키워냈는데, 해방 후, 우리는 단 한 명의 좌파 소녀도 키워내지 못했다. "황우석은 싫다"는 좌파 소녀가 없었다. 이건 무슨 말인가? 일제 시대의 일본인보다도, 우리의 소녀 교육은 더 끔찍하다는 말이다.

    일제 때 나온 좌파 소녀

    인류사에 제대로 된 혁명은 딱 한 번 있었는데, 근대 사회를 만들어낸 프랑스 혁명이 그것이다. 러시아 혁명은 무너졌지만, 프랑스 혁명은 긴 시간을 거쳐, 여전히 현대성의 근간으로 버티고 있다.

    그 혁명을 만든 것은 "남자 새끼들"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바게트(막대기 모양의 기다란 프랑스 빵-편집자)를 달라"며 베르시아유 궁전으로 달려갔던 프랑스 여인들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를 키워낸 것은, 러시아 동지들이 아니라, 폴란드와 스위스의 학자들이었다.

    나는 주사파를 싫어한다. 그리고 노무현 주위에 있던 소위 ‘탄돌이’들을 싫어한다. 그들이 통일 근본주의자라서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정치적 신념이 달라서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는, 그들이 너무 끔찍한 마초들이고, 현실에서는 지독할 정도의 남성 근본주의자들이며, 동시에 남근 숭상주의자들이라서 싫어한다.

    역설적이지만, 낭만적 통일주의, 그리고 낭만적 민족주의가 사회운동을 지배하던 지난 30년, 우리는 단 한 명의 유관순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당연할 것이다. 박정희나, 주사파나, 전부 지독한 민족주의자들이며, 동시에 지독한 마초주의자들이었다. 문학이 ‘민족문학’이던 시절, 유관순이 등장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 아닌가?

    주사파와 탄돌이 그리고 마초들

    한국에는 유관순 이후로 수많은 좌파 소녀들이 태어나고 죽어갔다. 그녀들에게, 2007년 대한민국은, 정말로 끔찍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경부운하 한다는 대통령에서, "자, 이제 국민은 돌았습니다"라고 말하는 택도 없는 사이비 좌파까지, 좌파 소녀들에게 이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은 너무 끔찍하고 무서운 공간일 뿐이다. 그럼, 민주노동당은 심상정의, 좌파 소녀들의 꿈이고, 사랑일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2007년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이 좌파 소녀들에게 과연 어떤 공간이었을까? 저자로서 미안한 생각이지만,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으로 "나라도 살아야겠다"고 발버둥치는 20대들 역시도 10대, 그리고 좌파 소녀들에게는 다들 끔찍한 가해자들이다.

    예를 들면, 지방 거주, 여성, 10대, 이런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 2007년 대한민국을 볼 때, 어떤 생각들을 했었겠는가? 그들이 유재석, 강호동쇼를 넋 놓고 들여다볼 때,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2008년, 이 무섭도록 무서운 마초 사회, 일제 시대보다도 더 여성들에게 가혹한 사회, 이 사회에서 매년 등장하는 좌파 소녀들에게 해줄 말이 단 한 마디라도 있겠는가?

    이 ‘미친 넘’들의 한국 사회, 이 가혹한 한국 사회에서, "본능이 그렇게 말해준다"라고 좌파 본성을 타고 태어난 10대 여인들에게 해줄 말이 단 한 마디라도 있겠는가? 절반의 확률로 사람은 우파로 태어나고, 또 다른 절반의 확률로 좌파로 태어난다는 가설을 채택하면, 지금 한국의 10대 좌파 소녀들에게 이 세상은 너무 끔찍할 뿐이다.

    수학 공부 하세요

    내가 한국의 좌파 소녀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신년사는 한 마디이다.

    "수학 공부 하세요."

    수학 공부, 이게 이 끔찍한 마초 사회, 소년 숭배사회, 가부장사회, 그리고 척박한 ‘한국 자본주의’에서 10대 소녀가 자신을 지키고, 먹고 살 수 있고, 결국은 정의로울 수 있는 길이다.

    난설헌의 조선은, 여성에게 시를 금지했다. 10대의 한국은, 수학을 금지시키고 있다. 가난한 좌파 소녀들이 수학을 공부하기 시작할 때, 다음 단계의 진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끔찍한 노무현주의자들, 염치와는 근본적으로 결별한 통일 근본주의자들, 이런 것들은 좌파 소녀들의 꿈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고 말만 번지르르한 이명박을 만들어낸 경제주의자들이나 SBS가 만들어낸 골프 소녀나 스케이트 소녀도 좌파 소녀들에게는 꿈으로 권해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 명이든, 열 명이든, 2008년에는 수학공부를 하겠다고 결심한 대한민국의 좌파 소녀, 그들에게 나의 2008년 신년사를 바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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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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