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파의 분열이 나를 안심시킨다
        2007년 12월 31일 10:0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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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가 끝난 지 보름이 다되었지만 지난 대선후보 당내 경선에서 권영길을 지지했던 일부 좌파들에 대한 비난의 수준이 심각함을 느낀다.

    어느 선배 당원은 “주대환, 박용진 같은 사람이 권영길을 지지하는 바람에 내가 젊음과 애정을 다 바친 이 당이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었다”면서 술자리에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이재영 <레디앙> 기획위원은 "당과 정치에 대해 잘 알면서도 권영길을 출마시킨 김창현, 주대환, 최규엽, 박용진 같은 이들의 어거지, 오판, 무능에 대한 문책은 가혹해야 한다."는 글도 썼다. 다 언급하기 어렵지만 이밖에 훨씬 많은 사례들이 있다.

    그러나 어떤 정치적 판단의 결과적 오류에 대해 논리적 비판의 수준을 넘어 일종의 정치 심리적 비난으로 까지 나아가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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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지난 경선에서 모 후보 지지를 요청하러온 어느 선배에게 그 지지 요청을 수용하며 몇 가지 건의를 한 적이 있었다. 그 건의는

    (1) 불경스런 얘기지만 경선에서 패배하는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
    (2) 그 상황에 대비하려면 미리 분당 카드를 현실화 해놓아야 한다.
    (3) 경선 패배 후 지역구 출마시 분당을 통해 새로운 당으로 나가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

    결과가 예정된 당내 경선

    내가 이런 건의를 했던 이유는 이미 당내경선 결과는 어느 정도 예정된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주체파는 대통령 선거라는 거대한 정치공간에 참여하지 않으면 정파로써의 존재의의를 가질 수 없었다.

    즉 대선 공간이란 주체파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공간이었고, 향후 당내 비례대표 경선에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주체파 3각편대는 단일대오를 유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내가 볼 때 주체파의 단일 후보는 필연적이었다.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당내 경선 당시 모습.
     

    그리고 2006년 당 대표 후보 경선에서 보듯이 주체파 3각편대가 단일대오만 유지하면 결과는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결선 투표 결과가 비율로 따지면 52 대 48로 나와서 ‘잘하면 이길 수 있었다’는 오판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표수로 따지면 2,000표 차이나 된다.(결선투표제에서는 1표만 이겨도 이긴다.)

    즉 지난 대선후보 당내경선은 그보다 1년 전에 있었던 당 대표 선거에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조승수가 조직력에서 밀리는 바람에 문성현에게 졌던 그 결과를 그대로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보면 ‘후보’ 이전에 당내 역학관계 자체에 문제의 근본 원인이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권영길이 주체파의 후보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가 아는 다른 사람이 주체파의 후보가 되었을 것이란 얘기다.

    따라서 좀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권영길 후보전술에 대한 실패도 인정해야 하지만 이와 더불어 2007년 당내 경선에서 주체파를 이길 수 있다고 믿었던 동거주의의 오판도 인식해야 한다. 일시적으로 당권을 장악해 주체파를 제압할 수 있다고 믿었던 ‘재창당에 대한 미련’도 나는 오판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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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 때가 되면 인간 중심론에 매몰되는 경향이 강하게 발생한다. 후보가 곧 자신의 정치적 열망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그 ‘후보’라 불리는 인간 아이콘에 한없이 집중하고 열광한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속한 다른 아이콘에 대한 적대감도 높아진다.

    우리는 과거에 ‘노사모’를 노무현 개인에 대한 광신자 집단이라고 욕한 적이 있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후보’에 대한 집착과 ‘후보’를 매개로한 치열한 대립은 어차피 선거공간에서는 필연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후보 이전에 필연적으로 그 후보를 탄생 시킨 배후의 메커니즘에 대한 구조적인 인식을 가져야 한다. 물론 인간을 중심으로 현상을 이해하고 말하는 것이 훨씬 생각하기도 쉽고 술자리 안주로 삼기도 좋겠지만 현재의 우연을 낳은 필연적인 구조, 즉 현상을 일으킨 이면의 역학관계가 좀 더 주요한 관심이 되어야 한다.

    노회찬에 대한 애정 감소와 권영길의 애정 공세

    나는 사실 모든 선거 책임이 권영길 개인에게만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후보에게 큰 책임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자주와 평등이라는 당내 동거구조에 있다. 분노를 쏟아놓기에는 권영길 이라는 ‘인간’ 개념이 편리하지만 그것이 평가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누가 후보가 되는지에 별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주체파의 단일 후보가 당내경선을 통과할 것이 분명해 보였고, ‘동거주의’ 자체를 청산 하지 못하면 당에 희망을 만들 수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선 결과를 통해 형성된 거대한 상실 에너지가 오히려 분당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기도 했다.

    당은 이미 대선후보 경선에 들어가기 훨씬 전부터 이상한 내부구조를 갖고 있었다. 자주와 평등이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가치관이 동거하는 바람에 결국 모든 후보들이 내부경선을 통과하기 위해 계속 이 눈치 저 눈치 볼 수밖에 없는 원천적인 구조가 형성되어있던 것이다.

    후보가 ‘인격화된 정치노선’이라면 이러한 동거구조의 지배를 받는 후보는 결국 잡탕노선의 총체였던 것이다.

    나는 경선 전부터, 노회찬 후보가 국보법철폐 투쟁에 적극적이었다는 점, 북한 핵 사건 때 지도부와 함께 북한에 올라가 만경대를 방문하고, 일심회 사건 때도 강력한 대국정원 투쟁을 주문했다는 점 등의 지점에서 애정의 감소를 느끼고 있었다.

       
      ▲ 조선중앙TV로 공개된 민주노동당 방북단의 만경대 방문.
     

    반면 권영길은 의회에서 일심회 사건 때 원내에서 사과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이 때문에 주체파들로부터 미움을 샀고 이런 전례가 있었기 때문에 ‘조직적인 인연’에도 불구하고 주체파의 전폭적인 지지를 확신하지 못해 결국 거꾸로 경선 과정에서 주체파들에 대한 과도한 애정 공세를 보내게 된다.

    이 과도한 싸인이 바로 혁명열사릉 참배라든가 조선로동당과의 공동당사라든가 하는 언사들이었다. 이 연장선 위에서 ‘코리아연방공화국’이 등장한 것이다.

    대선 후보가 되어야 그 다음해 총선에 출마해서 재선에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떤 후보도 이런 동거구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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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비밀, 평등, 보통 투표의 원칙 하에서 과정이야 어떻든 결국 모두는 똑같이 1표씩의 책임을 진다. 만약 김창현 최규엽 주대환 박용진에게 똑같이 책임을 묻는다면 권영길을 찍은 19,000명의 당원들에게 모두 수평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권영길을 찍은 19,000명 중에 주대환 박용진은 단지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이고 공개적으로 소신을 밝힌 사람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유독 박용진, 주대환에 대해 슬픔과 분노를 느끼는 이유는 일종의 정치심리적 현상이으로 보인다.

    여러 사람들이 하나씩 돌을 얹어 만든 커다란 돌탑이 있다. 그 돌탑의 99%를 쌓아올린 자들이 그 탑의 주요 책임자다. 그러나 사람들이 볼 때는 마지막에 돌 하나 얹어놓은 그 사람이 마치 그 돌탑의 주인인 냥 보이는 심리가 있는 것이다.

    또 이것은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워 보이는 심리이기도 하다. 정작 근본적 원인을 제공한 측보다는 막판에 거기 동조한 듯이 보이는 몇 사람이 더 미워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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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누군가를 지지하는 이유는 대단히 여러 가지다. 개인적인 관계일 수도 있고 정세의 오판일 수도 있고 자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특히 사람인 이상 인간적인 요소에 많은 규정을 받는다. 인간적인 관계 속에서 자신의 판단 자체도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의 고유한 선택은 원칙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주대환은 의회 진출 이전의 어느 술자리에서, 자신이 운전수가 되어 “권영길 대표님을 뒷자리에 태우고 창원에서 서울까지 달려와 국회에 입성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주대환은 2000년 총선 당시 권영길 대표를 울산 북구에서 출마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울산 북구 측의 반대로 이 전략은 좌절되었다.

    주대환과 권영길

    그러자 주대환은 그 대안으로 제2의 노동자 밀집 지역이자 자신이 10년 동안 터를 닦아온 ‘창원을’ 지역구로 권영길을 급히 데려온다.

    2000년 당시 의회 진출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지역구이던 ‘창원을’을 비워주고 자신은 한나라당의 아성인 마산으로 옮겨 간 것이다. 이 때 권영길 선거자금을 구하기 위해 주대환은 자기가 살던 집을 팔아 작은 집으로 옮기고 수천만 원의 카드빚을 지기도 했다.

       
      ▲주대환
     

    주대환의 이러한 행보는 의회 진출에 대한 열정이면서 동시에 권영길에 대한 자신의 평가이기도 했다.

    권영길은 사실 권영길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역사적인 인물이다. 권영길은 민주노총 지도자로서 최초로 노동자 대중정당 건설에 동의해준 인물이다.

    그가 이런 결정을 해주었기에 민주노동당 즉 ‘노동자 대중조직’과 ‘노동 정치세력’이 결합된 최초의 실질적인 진보정당이 태동할 수 있었다. 그 이전의 전노협 지도자들은 ‘시기상조론’을 내세워 노동자 대중정당을 줄곧 거부해왔다.

    박용진은 배고프고 가난하던 국민승리 21시절부터 권영길을 수행해온 비서 출신이다. 언젠가 권영길 의원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한겨울의 단식 철야 농성을 할 때 박용진은 나 말고 텐트 속에서 권영길과 함께 잤던 유일한 인물이었다.

    내가 의원실에서 돈 받는 신분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박용진은 실제로 권영길에게 유일한 한겨울의 단식농성 동반자였다. 따지고 보면 이것들이 모두 오랜 시간 쌓아온 권영길의 당내 득표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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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예전, 주사파였던 시절에 느끼던 좌파의 매력이 있었다. 그것은 모두가 한 방향으로 우루루 몰려갈 때 꼭 옆에서 딴소리하는 사람들이 하나씩 있더라는 것이었다. 옆에서 꼭 딴소리하는, 한두 사람들 때문에 좌파는 끊임없이 통일된 대오를 갖추지 못했다.

    좌파는 분열 때문에 망한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그러나 큰 틀에서 소수 의견에 대한 똘레랑스가 유지된다면 내가 보기에 이렇게 매력적인 조직문화도 없어 보였다.

    내가 주사파였던 시절에

    하도 많은 사람들이 주대환 박용진을 비난하고 그 바람에 말없이 권영길을 찍은 다른 좌파들도 같이 주눅이 드는 상황이지만 나는 오히려 이 소수의견이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사파는 일심단결의 대오로 권영길을 지지했지만 좌파는 각자 흩어져 권, 노, 심을 모두 지지했다는 사실에서 나는 차라리 안도감을 느낀다. 비록 소수지만 권영길을 지지했던 좌파의 존재는 ‘옆에서 꼭 딴소리하는 몇몇의 존재!’, ‘소수의견에 대한 관용!’ 같은 옛날, 좌파의 조직문화가 아직 살아있다는 반증이다.

    그래서 나는 “주대환 박용진 같은 사람이 권영길을 지지하는 바람에 내가 젊음과 애정을 다 바친 이 당이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었다”면서 술자리에서 눈물을 줄줄 흘렸던 한 선배에게 눈물을 거두어주시기 부탁드린다. 이제 ‘동의하지 않지만 그럴 수도 있었다’는 수준으로 되돌아가주시길 부탁드린다.

    우리는 오늘 중요한 시기에 처해 있다. 우리는 이제 또 다시 각종 소수의견이 난무하는 ‘시끄러운 당 준비 위원회’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소수의견에 대한 똘레랑스로 새해를 맞으며 지난 상처들을 우리 스스로 보듬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드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나는 일심단결의 대오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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