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신당 창당이 원칙적이고 현실적"
        2007년 12월 28일 11: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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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치 못한 대선 참패를 겪은 민주노동당이 지금 ‘예상대로’ 크나큰 내부 진통을 겪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국민들에게 낙제 점수를 받았으며, 지지자들로부터도 외면을 받았다. 외면과 지지 철회, 이를 통해 유권자들이 민주노동당을 향해 던진 메시지는 무엇일까.

    민주노동당 평당원 홍세화는 현재의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역사적 결별의 필요성도 얘기한다. 그는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데 따르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 민주노동당의 참기 어려운 내부 모순도 분명한 ‘현실’이라고 말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좁디좁은 편집국의 구석 자리에 책상을 놓고 앉아 있었던 홍세화 기획위원은 이제 한겨레 건물 8층에 작지만 독립된 방을 하나 가졌다. 그의 글쓰기 산실에서 대선 이후 당의 진로 등에 대해 그의 말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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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들에 의해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한 평가와 분석이 있었다. 어떻게 보고 있나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다 아는 것처럼 이번 대선 결과는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보다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강했다.

    노 정권은 서민과 노동자들의 변화와 개혁에 대한 요구를 받아 안고 출범했지만 이내 배반했다. 참여정부가 아니라 배반의 정부다. 배반에 대한 심판이었다.

    그 내용을 보면 우선 참여정부가 패러다임의 개혁을 내걸었지만 경제주의, 성장주의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사회와 경제부문의 균형, 복지와 사회구성원 간의 연대, 사회안전망을 중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했지만 현 정권은 신자유주의에 포획된 채 성장 위주 정책으로 몰고 갔다.

    이런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은 시도도 못해보고 박정희 시대부터 내려오고 있는 경제주의 논리가 유지되고 관철됐다. 이른바 87년 체제가 정치적 민주주의에 국한됐다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노무현 정권에서 이명박 정권으로 권력이 이동한 것이 민중의 처지에서 보면 어떤 차이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대통령이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자리, 즉 좋은 일자리 3만 개의 주인이 바뀌는 것 말고 뭔 차이가 있을까.

    다음으로 투표한 세 명 가운데 두 명이 이명박이나 이회창 후보를 찍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는 노 정권과 이명박 정권의 유사성과는 다른 면에서 우리 사회의 전망을 어둡게 만들어주는 요인이다. 전체적으로 우리 사회가 퇴영적이라는 걸 의미한다. 이와 관련돼서 진보정당이 마땅히 치고 나가야 할 부분을 놓쳤다는 점은 스스로 반성하고 성찰해야 된다.

    -투표를 하지 않은 40% 가까운 사람들의 의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너무 인색하다는 시각도 있다.

    =대세가 이미 기운 것처럼 보이고, 개혁으로 포장된 세력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없고, 결국 표를 줄 데가 없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지표다. 그리고 이는 민주노동당이 제 역할을 못했다는 사실도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문국현 후보의 경우 포장된 개혁세력에 실망한 표를 받았는데, 6% 득표에 그쳤다.

    뭔가 흡인력과 친화력을 줄 수 있었음에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진보정당의 책임이 막중하다. 흔히 말하는 대로 사표 부담이 없었음에도 허망하고 참담한 결과를 가져온 데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민주노동당의 참패 원인은 어디 있다고 보나.

    =1차적으로 후보에게 있다. 식상하고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기 어렵다는 한계를 스스로 짊어진 채 후보가 됐다.

    그 다음에는 내부 혼선이다.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 ‘엄마. 민주노동당이 필요해’, ‘코리아연방공화국’ 같은 것들은 도대체 뭘 하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일반 서민들에게 다가가지 못할 내용들이다.

    그 동안 당내 정치에 매몰되어 대중 정치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대중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인 부동산과 교육 문제에서 진보정당으로서 차별성을 보이는 데 완전 실패했다. 대중적인 친화력과 흡인력이 작동되지 못한 것이다. 좋은 기회였는데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이다.

       
      ▲홍세화 기획위원은 민주노동당 당권파인 자주파를 광신자 집단에 비유하기도 했다.
     

    -홍 위원께서는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왜 그런가.

    =민주노동당의 당권파인 자주파 또는 주체파는 한국적 분단현실의 산물이긴 하나, 그들이 당권을 잡고 있는 한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다. 그들은 책임 주체도, 토론 주체도, 진보의 주체도 아니다.

    책임은 지지 않고, 토론은 이뤄지지 않고, 공부와 학습도 하지 않는 종북 주체일 뿐이다. 자신들끼리 폐쇄회로를 이루고 있으며 수적으로 우세한 당내 헤게모니 장악에만 관심이 있다. 당은 통일전선 전술의 시각에서 보고 있으며 진보는 포장이지 내실이 아니다.

    자주파 또는 주체파가 장악한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다. 토론과 학습이 없는 진보정당의 예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해서도 자주파 중 누구도 자기비판이든 술회든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사람이 없다. <참여정부 평가포럼>의 안희정 씨는 ‘폐족’ 발언이라도 하고 있지 않나?

    -향후 진로를 놓고 민주노동당은 격론의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이번 논의는 서로 갈라서서 딴 살림을 차리는 것까지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당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민주노동당 내부에서는 새 정당 창당과 내부 혁신이라는 큰 가닥의 논의가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나.

    =정치는 현실이고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4월9일 총선까지 시기적으로 너무 안 좋다. 현실적인 어려움과 고민이 많은 것을 사실이다. 그럼에도 어려울 때일수록 원칙에 충실하고, 원칙에서 출발해야 한다.

    당권을 잡고 있는 주체파의 환골탈태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토론이 가능해야 기대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문화는 광신자 집단이나 사교(邪敎) 집단의 그것에 가깝다.

    광신자들은 사람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가르고 믿지 않는 자는 대화의 대상으로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사교집단은 교주에 대한 그 어떤 비판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그리고 열성적이라는 점에서 그들은 광신자 집단이나 사교 집단과 비슷하다. 우리는 물론 그들의 열성적인 점은 배워야 한다.

    그들은 이미 말한 것처럼 통일전선론에 입각한 진보정당으로 포장한 채 내부 헤게모니 장악에만 관심이 있다. 그 결과가 이번 대선으로 나타났다. 정치적으로 파탄 났고, 재정적으로도 파탄 났다. 당 재정 적자 규모가 30억 원이라고 하지만 그 정도에 머물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총선이 100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도 현실이지만 이런 점들도 현실이다. 이들을 허덕이면서 안고 가는 것은 마이너스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차라리 제로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정당 창당이 더 낫다.

       
      ▲이광호 <레디앙> 편집국장
     

    -당원은 물론 대중들에게 분당으로 비쳐질 창당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대중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들, 예컨대 노회찬, 단병호, 심상정 의원은 나름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람들이다. 정치인들이 진솔한 자기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한데 민주노동당에서 상대적으로 널리 알려진 정치인들이 관성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용기가 부족한 것에 대해 지적하고 싶다.

    이 당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했을 때 심상정 의원이 비대위원장을 맡는 경우 봉합하는 수준으로 가면 안 된다. 특히 종북적인 것을 털고 가야 된다는 게 전제 조건이 돼야 한다. 어느 선에서 털어낼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이런 것이 전제됐을 때 새로운 정당 창당이 아닌 민주노동당의 재창당 수준의 쇄신 문제를 고민해볼 수 있다. 지금까지 있어 왔던 일심회 사건, 독도와 북핵 관련 발언, 회계 문제 등에 대한 확실한 선을 그을 수 있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이것이 분당으로 가지 않을 수 있는 최후의 마지노선이 될 수 있다.

    -대중들을 설득하거나 그들에게 설명하려면 더 많은 것이 필요할 거 같은데.

    =대중들이 볼 때 자기들끼리 싸우고 갈라서는 것으로 보일 거다. 하지만 우리가 당 안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에 너무 많은 울타리를 치면서 시야를 좁히고 있을 수도 있다.

    분당과 새로운 당 창당 문제에 대해 너무 위축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민주노동당에 대해 염증을 느끼거나 식상해서 떠나고 벗어난 사람들이 많다. 당원 번호와 실제 당원 수의 차이가 이를 말해주는 대표적 지표 가운데 하나다. 이들이 왜 빠져나갔는지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지금껏 당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해 온 장이었다.

    새로운 정당 창당 과정에서 사회당, 초록당과 노동운동의 좌파 조직 등과 함께 진정한 진보정당을 한다면 대중들도 납득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의 상황에서 보기 때문에 좁은 영역만 보일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예컨대 당에서 멀어져간 지식인 그룹들도 다시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체성이 탄탄한 진보정당의 모습을 보여주면 마이너스가 아니라 제로에서 출발할 수가 있다.

    -민주노동당을 기준점으로 가정하고 좌우의 스펙트럼까지 포괄하는 신당 창당 주체를 상정했을 때 무엇이 공통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문제의식, 비정규직 노동자 해법, 한미FTA에 비판적인 세력이면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황당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당내 야당이라는 ‘평등파’가 북한을 모델로 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당내에서 ‘쪽수’에 밀려서인지 토론도 제대로 제기하지 못하면서 북유럽을 모델로 하는 세력을 우습게 보는 것에 대해 나는 상당히 비판적이다.

    진보정당의 외피를 쓰고 헤게모니를 관철시킨 당내 주체파에 대해서는 제대로 발언하지 못하면서 소수 사민주의 세력을 가볍게, 경멸하는 듯한 태도는 정말로 황당하다.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

    바깥에 있어서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민주노총 국민파가 중앙파와의 헤게모니 투쟁 때문에 자주파와 손잡는 일을 납득할 수 없는데, 마찬가지로 당내 평등파의 행태도 이해하기 어렵다. 적대적 공존이라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그 알량한 권력 분점을 위해서라는 얘긴가.(홍세화 기획위원은 이 부분을 언급하면서 ‘황당하다’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한국인들의 의식 지형을 보면 북유럽 모델도, 심하게 표현하면 ‘극좌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세금폭탄론이 통하는 사회에서 북유럽 모델을 가소롭게 보니 가소로운 것이다. 북유럽 나라들이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그 같은 사회를 만들어냈는지 잘 알지 못하면서 우습게 알고 있다. 민주주의 성숙의 역사에는 월반(越班)이 없으며 간혹 월반을 했다 해도 결국은 되돌아온다.

       
      ▲홍위원은 노회찬, 심상정 같은 대중정치인이 신당의 비례 후보에 전면 배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위원은 새로운 당을 만드는 쪽으로 입장이 기울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만약에 이런 흐름이 가시화된다면,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일정한 역할을 맡아야 하는 상황도 올 수 있을 텐데.

    =나야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할 것이다.

    정서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지금까지처럼 경계지점에서 척탄병 노릇을 할 것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정치를 하지 않는다 해도 정치는 하는 것이다.

    현실 정치적으로 역량이 있는 사람들은 거기에 맞게 배치가 되고, 나 같은 경우는 그 장소에는 직접 뛰어들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면 그걸 짊어지고 가는 게 맞다. 당면한 필요성에 의해 움직이기보다 긴 안목으로 보고 싶다.

    -신당을 지금 만들어서 총선을 돌파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이는데.

    =심상정과 노회찬 의원 같은 사람을 신당의 비례후보로 전면적으로 배치해야 된다. 그들이 내가 말한 현실 정치적 역량이 있는 사람들이다. 또 정태인 씨처럼 검증된 사람을 전진 배치하면서 돌파해야 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새로운 진보정당이 정체성이 드러나게 될 텐데 합리적 진보세력은 폭넓은 소구력을 가지고 있다.

    약간 다른 문제일 수도 있겠는데, 나는 당과 당원 사이의 친화력을 표현하는 방식이 당비 1만 원 내는 것만으로 대표돼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 다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며 시작해야 될 때라고 본다.

    또한 당원들은 당비만 내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사안에 대한 학습과 토론이 이뤄지는 기본 과정이 있어야 되며, 당 간부가 되기 위해서는 거기에 합당한 단계를 거치도록 당이 운영돼야 한다.

    -권영길 후보의 거취에 대해서 여러 가지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정계를 떠나라고 얘기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백의종군 수준이 아니라 성찰적인 자기 술회가 필요하다고 본다.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것이 필요하다. 권영길 의원과 같은 대중 정치인의 손실은 당의 손실이다. 이 같은 일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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