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중대'가 된 민주노동당
        2007년 12월 27일 05: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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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원내 진출 이후 불거진 문제들

    원내 진출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민주노동당을 옥죄기 시작한 문제들도 있다. 이들 문제가 위에 지적한 민주노동당의 근본 문제들과 서로 얽히면서 당은 최악의 침체와 곤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③ 원내 정당이 되고 나서 목표 상실 상태가 됐다

    민주노동당 초기의 에너지는 ‘원내 진출’이라는 간명하고 절절한 당면 목표에서 나왔다. 원외 정당을 4년 넘게 유지하고 결국에는 원외에서 원내로 진입하는 데 성공하게 만든 저력의 밑바탕에는 무엇이 있었던가? 거기에는 88년 총선부터 계속된 원내 진출 실패에 대한 설욕 의지가 깔려 있었다.

    그러나 막상 원내에 진출하고 나자 이제는 그 정도의 뚜렷한 당면 목표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목표가 없는 조직은 활력을 잃고 결국 부패하고 만다. 그런데 원내 진출 이후의 민주노동당이 딱 이 신세였다. 물론 이러한 진공 상태에 대응하려고 ‘집권’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상태나 실력을 보면 너무나 허황한 이야기였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결국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꿔 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토론이 그만큼 부족했던 탓이었다. 이념, 노선 문제를 우회하고 봉합해온 결과였던 것이다.

    18대 총선을 앞둔 지금, 이 목표 상실 상태는 가장 타락하고 희극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어떻게든 비례대표 후보 자리를 차지해서 원내에 진출하고 보자는 흐름이 당을 지배하고 있다. 반면 지역구 출마는 다들 기피한다. 지금 민주노동당은 운동권이 국회의 얼마 안 되는 비례대표 의석을 차지하려고 다투는 투전판과도 같은 신세다. 그러니 자민련의 좌파판이라는, ‘좌민련’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것도 억울한 일만은 아니다.

    ④ 17대 국회에서 민중의 기대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

    원내 진출 이후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에 대한 민중의 기대와 시대의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다. 17대 국회에서 대중이 진보정당에게 바란 것은 한나라당, 열린우리당과는 전혀 다른 내용과 형식의 정치를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양극화로 고통받는 대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일이었고, 그들에게 새로운 정치 의식 획득과 조직화의 기회를 여는 일이었다.

    사실 민주노동당의 모든 역량을 여기에 집중한다 해도 될까 말까 한 엄청난 과제였다. 그래서 끊임없이 ‘선택’과 ‘집중’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과연 무엇을 ‘선택’하고 어디에 ‘집중’했던가? 17대 국회에 들어가자마자 노무현 정부의 ‘4대 개혁’을 도와주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했다.

       
    ▲ 국회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은 노무현 정권의 4대 개혁에 ‘2중대’로서 ‘올인’했다. (사진=뉴시스)
     

    그래서 민주노동당은 대중에게 ‘열린우리당 2중대’, 이른바 ‘범여권’의 일부로 낙인찍혔다. 아니, 당 지도부 안에는 ‘열린우리당 2중대’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세력까지 있었다. 그리고 이 낙인은 17대 국회 내내, 그리고 대선을 치른 지금까지도 지워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통합신당의 추락과 함께 민주노동당의 지지율도 동반 추락했다.

    민주노총에만 기대는 조합주의 정치에 갇혀서 제대로 시도하지 못한 일도 많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게 비정규직, 저소득층에게 다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거나 방기한 것이다. 비정규직 악법을 막는 투쟁에서도 항상 민주노총과의 협의에만 무게를 두었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직접 대화하려는 노력은 적었다.

    17대 국회 진출 직후부터 ‘빈곤과의 전쟁’에 당력을 모으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몇몇 개인의 발상으로만 그쳤다. 그래서 급기야는 “민주노동당은 가난한 사람들의 당이 아니라 중간층(노동계급의 극히 일부나 지식인)의 당이 아니냐”는 비판까지 받기에 이르렀다.

    지금 대중의 정치적 냉소주의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실망뿐만 아니라 17대 국회에 대한 환멸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그 환멸의 대상 안에는 민주노동당도 포함돼 있다.

    ⑤ 국회의원을 확보하고 나서도 진보적 대중정치의 전형을 창출하지 못했다

    원내 진출의 의의는 이제까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진보적 대중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일구는 데 있었다. 물론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몇몇 대중 정치인이 성장했고, 제도 정치의 ABC도 마스터했다.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삼성 재벌과 정면 대결했고, 노동자, 농민의 문제로 국회 단상을 점거하는 낯선 광경도 만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냉정한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 ― 민주노동당은 원내 진출 이후에 대중정치의 새로운 전형이라 할 만한 것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 대신 당의 관심과 역량이 일방적으로 국회의원들에게 쏠렸다.

    당직공직분리제 등의 제도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피할 수 없었다. 국회의원들에게 마치 만능 해결사와도 같은 역할을 기대했고, 당의 정치 계획은 국회 의사 일정에 종속되었다. 민주노총 같은 대중조직 역시 국회의원을 제도 정치에 파견한 ‘협상 대표’ 쯤으로 바라보았다.

    고전적으로 표현하면 이것은 의회주의 편향의 문제였다. 그런데 이에 대한 당내의 비판에도 어떤 한계가 있었다. 의회주의에 가두 투쟁을 대립시키는 식의 도식주의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의회주의 편향에 대한 비판이 항상 상투적인 대안의 제시로 귀결되곤 했다. 의원들이 가두 투쟁에 참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거나 국회 안에서 상임위나 단상 점거 농성을 벌일 때 좀 더 격렬하게 해야 했다는 식의 주장이 그 전형적 사례다.

    하지만 이 문제는 좀 더 분석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야 희화화된 논의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17대 원내 활동에서 짚어야 할 핵심적인 오류와 한계는 다음의 두 가지 지점이다.

    첫째, 원내 활동의 힘을 노동운동의 새로운 조직화와 연결하지 못한 점. 민주노동당은 원내 활동과 대중투쟁의 결합을 이야기하면서 그 ‘대중투쟁’을 항상 기존 노동조합 중심으로만 바라봤다. 하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와의 새로운 접촉이자 그들의 조직화였다.

    어차피 17대 국회 임기는 정규직, 대기업 중심의 민주노조운동의 한 세대가 침체의 최저점에까지 도달한 시기였다. 그렇다면 과거 민주노조운동의 아련한 추억에 얽매이기보다는 새로운 노동자 투쟁의 주인공이 될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들에 보다 주목했어야 했다. 국회의원들이 그 조직화의 살아 있는 계기들이 되어야 했다. 허나 그 시도조차 제대로 못했다.

    둘째, 원내 활동의 힘을 지역의 새로운 운동과 연결하지 못한 점. 일단 국회에 진출하고 나자 지방 정치는 당의 주된 관심에서 밀려났다. 그 결과, 민주노동당은 비록 여의도의 국회에서는 한 동안 제3당이었을지 모르지만, 지역에서는 결코 한 번도 그 정도 위상을 확보하지 못했다.

    지역 당조직들이 중심이 된 학교 급식 조례 제정 운동이 일부 원내 활동과 결합한 사례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니셔티브는 당의 지역조직에서 나왔지 원내에서 나오지는 않았다. 국회의원 활동을 지방의원이나 당 지역조직 활동과 결합시켜 새로운 전국 정치의 모델을 만들려는 시도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17대 국회가 거의 대중의 관심에서 사라진 임기 후반기에 들어서서야 지역의 영세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카드 수수료 인하 운동이 그 맹아를 보여주었을 뿐이다.

    ⑥ 진보적 지방 정치에 대한 비전이나 계획이 없음을 드러냈다

    위의 문제는 민주노동당에 진보적 지방 정치의 전망과 고민이 부족했다는 점과 직결된다. 창당 후 7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은 지방 정치에 대한 양 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양 편향은 그 어느 것도 지방 정치의 독자적 의의에 대해 무감각하거나 극히 왜곡된 시각만을 갖는다.

    한 가지 편향은 지방 정치를 단순히 중앙 의회로 진출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이 경우에 지방 정치는 지역구에서 총선 표를 확보하는 문제로 환원된다. 또 하나의 편향은 당의 지역 활동을 기존의 전국적 운동의 연장으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당 지역조직들이 여전히 기존 운동권 단체 활동을 반복하는 것(가두 서명 작업이나 집회 동원 등)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2006년 지방선거 결과로 심각하게 드러났다. 특히 민주노동당의 아성이라던 울산에서 그랬다. 민주노동당은 울산 북구와 동구에서 8년간이나 여당으로 있었으면서도 너무나 쉽게 그 자리를 내주었다. 민주노동당의 이름을 내걸고 집권한 것만 4년이 넘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지방 정치의 모델을 보란 듯이 만들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내부 정파 투쟁 때문에 그런 문제점들을 미연에 발견해서 시정하려는 노력조차 게을리 했다.

    여기에 깔려 있는 근본 문제는 지방 정치를 중앙 정치의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이다. 그래서 진보적 지방 정치의 비전도, 그 방침도 없는 것이다. 여기에는 당 지역조직의 책임만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더 큰 책임은 중앙당에 있다. 중앙당은 울산을 지역구 국회의원을 당선시킬 선거 상의 거점으로만 여겼다.

    그래서 차기 선거에 해가 될 사고만 일어나지 않으면 좋다는 식으로 울산의 지방자치에 접근하거나 아니면 아예 방치해버렸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의 정치관이 한국 정치 전반의 구태(지방이 중앙에 휩쓸려 들어가는 이른바 ‘소용돌이의 정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⑦ 당의 조직 혁신이 지체되었다

    민주노동당 조직 전반을 크게 손봐야 한다는 요구는 이미 2003년부터 있었다. 2003년의 당 발전특위 보고서, 2005년 당직 선거 과정에서 나온 여러 정책들, 2006년 외부 전문가들에게 의뢰한 당 조직 컨설팅 보고서 등이 다 그런 요구들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원내 진출 이후 당 조직의 기본 골격에 손을 대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사실 진보정당운동은 자기 조직에 대해 창조적 파괴를 거듭해야 한다. 진보정당이 대중의 신뢰를 얻는 것은 그 이념과 정책을 통해서만이 아니다. 혁신적인 조직 체계와 그 운영을 보여주는 것도 대중의 호응을 얻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실제 민주노동당의 역사가 이 사실을 웅변한다. 민주노동당은 한국 정치에서 최초로 진성당원제도, 당직자와 공직 후보의 민주적 선출, 당비를 통한 당 운영 등 혁신적 조직 실험을 벌여 대중의 신망을 얻었었다.

    그런데 정작 원내에 진출하여 더 많은 대중의 관심을 모으게 된 이후에는 이런 혁신적 실험을 더 이상 보여주지 못했다. 조직 체계에 손을 대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당 내의 정파적 이해였다. 조직 체계가 당 내 권력 투쟁의 유불리와 직결되기 때문에 패권적 정파가 조직 혁신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 민주노동당은 조직 체계의 측면에서도 더 이상 ‘진보’정당임을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없는 처지가 돼버렸다.

    ⑧ 당원들이 극히 수동화되었다

    진보정당의 활력은 당원으로부터 나온다. 원내 진출 이전까지는 민주노동당도 그랬다. 하지만, 앞에서 이미 지적한 대로 ‘원내 진출’이라는 당면 목표를 상실(?)하자, 당원들의 활력도 크게 떨어졌다.

    더구나 민주노동당이 지나치게 민주노총이나 국회의원들에게 의존하는 활동에 머물고 이념적 퇴행의 모습까지 보이자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당원들은 당 밖의 지지 대중과 마찬가지로 언론을 통해서만 당을 접할 뿐 당의 일상 활동에 참여할 구체적인 계기들을 제공받지 못했다. 그저 당직자나 공직 후보를 뽑을 때 선거권을 행사하거나, 당비나 특별 당비 내라면 호주머니를 털 따름이다.

    이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아래서 나타나는 유권자의 협소한 권리나 의무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다른 세상을 만들겠다는 진보정당의 당내 민주주의가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그리 다르지 않은 수준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민주노동당에 그나마 존재하는 직접, 참여 민주주의가 오직 투표 민주주의뿐이라는 점이다.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에는 직접, 참여 민주주의를 협소하게 투표 민주주의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깊이 뿌리 내렸다. 대중의 참여를 항상 공직자에 대한 직접 투표권 행사로 왜소화시켜온 것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 민주노동당도 예외는 아니다.

    이것은 민주노동당 안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가? 투표 과정에서 어떤 수단을 사용해서든 형식적 다수의 지위를 차지하기만 하면 그 임기 동안에는 피선출자 마음대로 활동해도 좋다는 분위기가 당을 지배하고 있다. 심지어는 조직적인 부정 선거 양상까지 나타나기도 한다.

    이쯤 되면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우열을 논하기 힘들다. 투표 민주주의 외에 다른 직접, 참여 민주주의의 경로가 활성화되지 못하면, 이렇게 민주주의의 정반대 양상, 즉 형식적 다수결을 악용한 사실상의 소수 독재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소수의 독재는 다시 당원들 사이에 실망과 좌절, 자포자기의 심정을 부추긴다. 그렇게 되면 당원들 중 일부가 개별 탈당을 통해 자신들의 불만을 ‘최종적으로’ 표출하는 상황이 나타난다. 이들이 당을 떠나면 당원들 사이에서는 수동적 분위기가 가일층 고조된다.

    그리고 그럴수록 소수의 독재는 더욱더 확고하게 보장된다.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안에서는 2006년 말 북한 핵 사태와 이른바 일심회 사건 때부터 이러한 악순환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런데도 민주노동당은 당원 교육을 강화하고 당원 참여의 기회를 열려는 노력은 없이 재정 확보 차원에서 당원 수를 무차별로 늘리는 데에만 골몰해 있다. 당원 확대는 이제 재정 사업의 일부가 되어 있다. 이것은 고뇌에 고뇌를 거듭하다 당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된 고참 당원들에 대고 휘두르는 마지막 주먹질이나 마찬가지다.

    ⑨ 지도력 성장이 지체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창당 당시부터 지도력 결핍으로 고통받았다. 보수정당이든 진보정당이든 정당이라면 마땅히 대중으로부터 정치적 지도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창당 당시 민주노동당에는 대중조직 활동이나 소규모 정파 활동을 통해 성장한 간부층이 존재했을 뿐, 대중적인 정치 지도자들은 없었다.

    원내 진출 이후 상황은 조금 바뀌었다. 이제 민주노동당은 대중적 정치 지도력의 빈 곳을 채울 몇몇 대중 정치인들을 갖게 됐다. 비록 지금 당장은 만족스러운 지도력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앞으로 그렇게 성장하리라 기대를 걸어봄직한 후보군들을 확보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그러한 잠재력을 실질적인 정치 지도력으로 대중들에게 인정받을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그 기회는 바로 올해의 대선 후보 당내 경선이었다. 올해의 대선 후보 경선은 당의 대중 정치인들이 명실상부한 차세대 지도력으로 부상하는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자연스러운’ 성장의 기회는 ‘부자연스러운’ 개입에 의해 무산되고 말았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대선에서 대중이 진보정당에게 기대했던 답(그것은 정책이나 슬로건 이전에 그것을 상징하는 지도력으로 표현된다)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 이것은 어쩌면 대중의 기대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마지막’ 배반이었을지 모른다.

    ⑩ 양대 진영의 투쟁과 구조적 담합 속에 당이 자기 교정 능력을 상실했다

    2004년 이후 민주노동당 안에서는 종북파를 중심으로 한 진영(세칭 ‘자주파’)과 그 반대파들의 진영(세칭 ‘평등파’) 사이에 대결이 계속됐다. 양대 진영 사이의 투쟁에는 두 가지 측면이 함께 존재한다.

    첫 번째 측면은 이 투쟁에 민주노동당의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이 시대의 요구에 맞춰 기민하게 움직일 기회를 놓쳐버리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내 투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종북파의 무능과 전횡을 비판하지 않고서는 지금 민주노동당의 위기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은 결국 당내 투쟁을 더욱 격화시킨다. 당 밖의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활동이 그저 당내 파벌 싸움으로만 보이기 쉽다. 이것은 또 다른 악순환이다.

    두 번째 측면은 좀 역설적이다. 그것은 투쟁의 이면에 양대 진영 사이의 구조적 담합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양대 진영은 민주노동당의 유지를 위해 서로에 대한 문제제기나 비판을 적당한 수준에서 봉합해왔다. 혹은 스스로 비판과 공격의 한계선을 그어놓고 그것을 넘어서길 꺼렸다. 그래서 뜻 있는 당원들은 종북파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정면 비판을 꺼리는 평등파에 대해서도 불만을 갖는다.

    그 대표적 사례가 작년 말의 북한 핵 사태다. 평등파는 중앙위원회에서 퇴장하는 등 격렬한 항의를 했지만, 이것이 집요하게 계속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항의의 목소리가 조선 사회민주당의 방북 초청에 묻혀서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이런 투쟁과 담합의 모순된 공존 때문에 민주노동당은 자기 교정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당 혁신의 모든 노력은 종북파의 완강한 방해 속에서 결국은 항상 당내 투쟁 양상으로 귀결되고 만다. 당 혁신 투쟁이 곧 정파 투쟁으로 인식되고 마는 이 악순환을 넘어설 전망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평등파 역시 그 한계가 컸다.

    따라서 이른바 평등파 역시 철저히 자기 비판해야 한다. 평등파도 민주노동당이 잘못된 길로 빠져드는 데 한 몫 했다. 이미 지적한 것처럼 종북파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 필요한 시점에 민주노동당이라는 틀을 유지해야 한다는 보수적 본능 때문에 비판을 자제하거나 겉핥기식 비판에 안주해왔다.

    또한 원내 활동이 보인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소홀히 했다. 중앙 정치에 대한 편중과 진보적 지방 정치의 비전 결핍이라는 문제에서 평등파도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종북파의 재정적 무능이나 회계 부정에는 비록 댈 게 아니지만 평등파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법인 카드의 개인적 유용과 같은 사건들이 발생했다.

    따라서 당의 환골탈태는 종북파에 대한 비판으로만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평등파 역시 스스로를 쇄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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