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노당 미래는 '좌민련'이다"
        2007년 12월 27일 08: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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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 직후 민주노동당 안팎에서는 현재의 민주노동당 구조를 깨고 새로운 진보정당을 창당하자는 주장이 연이어 터져나오고 있다. 여러 언론과 학계에서는 자주파의 낙후성으로 인해 민주노동당이 질곡에 빠져 있다는 진단 아래 자주파와 평등파가 분당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에 비해 민주노동당 내부에서의 논의는 아무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선 몇 달 전부터 개별 당원들의 탈당과 분당 요구가 시작되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조직적 논의는 적은 편이며, 몇몇 인사들에 의해 조심스럽게 타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동당 또는 한국 진보정당 운동의 미래를 좌우하게 될 분당-창당 논의의 결론이 어떤 방향으로 귀결될지라도 공개적으로 점검되고 공방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레디앙>은 이런 취지에서 지금까지 나온 분당-창당론 중 가장 체계적인 글인, 진보정치연구소 장석준 연구기획실장의 ‘제2창당운동을 시작하자’를 다섯 차례로 나누어 게재한다. <편집자 주>

    ① 창당 시기부터 곪아온 문제들
    ② 원내 진출 이후 불거진 문제들
    ③ 미래의 전망과 관련된 문제들
    ④ 새로운 방향, 제2창당운동에 나서자 1
    ⑤ 새로운 방향, 제2창당운동에 나서자 2

    1. 민주노동당의 과거, 현재, 미래를 재평가해야 한다

    원내 활동 4년에도 불구하고 2002년 대선보다 득표 절대치나 득표율 모두 뒤졌다. 원내 제3당이라면서, 창당한 지 3개월 된 정당의 후보에게 한참 밀렸다. 그 후보가 얻은 지지의 상당 부분은 민주노동당 지지층이었다. 이것보다 더 참담한 결과가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가? 대선 후보 경선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고, 코리아연방공화국 논란으로 나타난 정책 기조의 혼란에 대해서도 자기 비판해야 한다.

    하지만 단지 대선 대응 과정만 평가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대선 결과는 민주노동당이 최초로 제도 정치권의 일부로 활동한 17대 국회 4년의 결과와 직결된다. 그리고 17대 국회 활동은 다시 민주노동당의 창당 이후 7년의 활동 방향과 직결된다. 따라서 우리는 민주노동당의 지난 10여 년 역사 전반을 재평가해야만 한다.

    넉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대한 대응도 이러한 재평가에 바탕을 두어야만 한다. 총선까지 시간이 부족하다는 게 이 작업을 미룰 이유는 되지 못한다. 오히려 총선이라는 대중의 심판을 앞두고 있기에 그 어느 때보다 더 집약적으로 민주노동당의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자기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환골탈태하여 대중에게 다가가야 한다. 이러한 재구성 과정 없이는 ‘진보적인’ 정치 세력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책임성을 갖춘’ 정치 세력으로도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1-1. 창당 시기부터 곪아온 문제들

    우선 민주노동당의 창당 시기부터 당 안에 잠재해 있다가 이후 서서히 당의 발전을 발목 잡은 문제들이 있다. 어쩌면 이것들이야말로 당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① 민주노총 의존 체질: 노동계급과의 관계를 민주노총에 대한 의존으로 대신해왔다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이다. 그리고 진보정당이 가장 먼저 뿌리 내려야 할 지반은 노동계급이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이 그 이름에서부터 ‘노동’을 표방하고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기관임을 자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 민주노동당은 노동계급과의 관계를 민주노총 의존으로 대신했다. 사진은 금년 1월 열렸던 양 조직 관계에 대한 토론회 (사진=진보정치)
     

    한데 민주노동당은 창당 당시부터 노동계급과의 관계를 민주노총과의 ‘조직형식적’ 관계로 대신했다. 독자적으로 노동자 당원을 모집하려 노력하기보다는 민주노총 정치위원회에 그 역할을 떠맡겼다. 선거 자금 마련도 민주노총에 크게 의존했다. 또한 민주노동당의 노동 정치는 당의 독자적 목표 설정이나 기획에 따른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의 정책을 단순히 대변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사실 민주노동당의 기본 골격은 진보정당의 표준형, 즉 독일 사회민주당 유형에 해당한다. 당 강령에 동의하는 노동자(와 근로 대중)가 개인적으로 입당하는 체계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은 자신의 이념과 정책, 독자적인 노동 정치 활동의 결과로 노동자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 맞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러한 독자적 활동과 인정의 체계를 기피했다. 대신 민주노총에 대한 의존으로 이를 대신해왔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의 현실은 영국 노동당 유형, 즉 노동조합의 집단적 지지에 크게 의존하는 진보정당 형태에 가까워졌다. 그러면서도 영국 노동당형 진보정당들에서 나타나는 노동조합 조합원의 집단 입당 제도는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과거 일본 사회당과 가까워지고 만다. 과거 일본 사회당은 노동계급과의 관계를 총평, 그것도 총평의 상층 간부들에 대한 의존으로 대신했다. 그래서 일단 총평이 흔들리자 수십 년간 제2당의 지위를 점하던 당 자체가 무참히 붕괴하고 말았다.

    일본 사회당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민주노동당의 민주노총 의존 체질도 당의 발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이미 창당 당시부터 진보정당답지 않게 이념과 노선에 대한 고민이 적었다. 당 안에서 정파 투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기 때문에 외부에서는 오히려 과도하게 이념에 집착하는 당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 정반대다. 당원들 사이에서 이념과 노선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없는 게 진짜 문제다. 그래서 과거의 낡은 이념을 고집하는 정파가 당을 지배하거나 그것이 분란의 원인이 되는 일이 벌어지고 그게 바깥에는 ‘이념 집착’으로 보이는 것이다.

    또한, 이미 위에서도 지적했지만, 민주노동당의 노동 정치는 드높은 전망과 넓은 시야 그리고 활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당의 노동 정치 활동을 단지 제도 정치 공간에서 민주노총을 대변하는 것으로만 바라본다. 굳이 말한다면, ‘(노동)조합주의 정치’라 할까?

    그래서 그 결과가 무엇인가? 민주노총이 노동계급 전체의 대변자임을 더 이상 인정받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자 민주노동당 역시 그 직접적 영향을 받았다. 가장 뼈아픈 것은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조직 노동운동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자 민주노동당과 이들 사이의 거리도 멀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의 정당임을 인정받고는 있으나 여기에서 ‘노동자’란 전체 노동자의 1/10도 안 되는 조직 노동자들만을 의미한다. 그들은 대부분 정규직, 대기업, 남성 노동자들이다. 그래서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더욱 늘어만 가는 노동계급의 또 다른 부분들은 민주노동당을 자신들의 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민주노동당은 독자적인 노동 정치 모델을 만들려는 노력을 게을리 했다. 흔히 17대 국회에서 비정규직 악법과 노사관계 로드맵 입법을 막는 데 실패한 책임만을 묻는데,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당은 이런 문제들, 가령 비정규직 문제를 놓고 현장 노동자들을 직접 교육하고 조직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원내에 진출하고 나서도 역시 노동계급과의 관계를 민주노총에 대한 의존으로 ‘때우려’ 한 것이다.

    더군다나 이 문제는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 이후 더욱 왜곡되고 심지어는 희화화되기까지 했다. 민주노동당은 세액공제제도에 따른 정치후원금 모집 사업마저도 민주노총에 기댔다. 민주노동당의 재정이 위기에 닥칠 때마다 당은 민주노총을 재정 사업의 대상으로 바라봤다. 이쯤 되면 재정 지원과 표 동원을 중심으로 서로 관계를 맺는 미국 민주당과 미국 노총(AFL-CIO) 사이의 관계와 도대체 무엇이 다르다고 하겠는가?

    ② 이념적 퇴행: 스탈린주의, 스탈린주의의 한반도판, 종북주의, 민족지상주의가 당을 지배하기 시작하다

    창당 당시부터 민주노동당 안에는 이른바 자주민주통일(자민통) 경향이 존재했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에 기반해서 창당했다는 사정과 관련이 있다. 민주노총 안에는 자민통 경향의 활동가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따라서 바로 그 민주노총의 정치적 대변자로서 출발한 민주노동당 안에도 자민통 경향이 존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민주노동당은 자민통 경향이 그 동안 북한 체제에 대해 보여온 편향된 시각을 교정하기 위해 당 강령에 북 체제에 대한 비판적 언급(국가사회주의의 오류 비판, 북한이 특히 경직된 국가 사회주의 체제라는 점에 대한 지적 등)을 담았다.

    하지만 자민통 경향이 점차 조직적으로 대거 입당하면서 이러한 창당 당시의 약속이 그 의미를 잃기 시작했다. 특히 2004년 이후부터는 자민통 경향이 각종 당내 선거 때마다 특유의 조직력으로 다수를 점했다. 그래서 당 강령 내용을 거북해 하는 세력이 지도부 내 다수파가 되는 모순된 일이 벌어졌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자민통 경향이 일단 지도부 내 다수파가 되자 이들 사이에 잠재해 있던 낡고 그릇된 이념 성향이 노골적으로 표출되었다. 원내 진출로 민주노동당이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 시점에 당은 오히려 창당 당시에 비해 지극히 퇴행적인 이념과 노선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퇴행의 첫 번째 사례는 스탈린주의다. 스탈린주의는 20세기에 전 세계 진보 세력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던 낡은 이념 전통이다. 스탈린주의 경향은 사회주의를 일당 독재와 명령 경제와 같은 것으로 보고(민주노동당 강령은 이를 ‘국가 사회주의의 오류’라 부른다), 당운동 안에서도 그러한 관료 독재 행태를 그대로 실천한다.

    스탈린주의자들은 또 단계론적 변혁론을 고수한다. 그래서 먼 미래의 단계에서는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지금 단계에서는 자본가나 우파의 일부와 손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곤 한다. 87년 이후 한국 운동권을 지배해온 ‘비판적 지지’의 고질병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자민통 경향은 스탈린주의의 낡은 유산을 그대로 이어받아 이를 당 전체에 강요했다. 그래서 노무현의 연립정부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서슴지 않고 나왔다.

    당 정책위 의장이 한편으로는 그게 마치 급진성의 보증 수표라도 되는 양 국유화를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중간층의 이반을 낳을 수 있다며 ‘입시 폐지’에 반대하는 웃지 못 할 상황도 연출됐다. 또한 주요 당 기관의 다수를 차지했다는 것만으로 패권적이고 관료적인 당 운영을 일삼는 일이 어느덧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버렸다.

    민주노동당과 민중운동 전체를 불임의 논쟁에 빠뜨린 한국진보연대 문제도 그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진보연대를 만들고 그 안에 무리하게 당을 집어넣으려 한 데는 공동전선에 대한 독특한 시각이 자리한다. 모든 대중조직들을 한 울타리에 몰아넣고 그 안에 관료 체계를 만들기만 하면 민중의 단결이 이뤄진다는 발상. 한국진보연대를 추진한 당내 세력은 이러한 낡은 발상에 사회운동들을 모두 뜯어 맞추려 했다.

    이 때문에, 구체적인 쟁점들을 둘러싼 진보정당과 다양한 사회운동들 사이의 실질적 연대는 오히려 관심에서 멀어졌다. 한국진보연대의 틀에 자신을 뜯어 맞출 수 없는 사회운동들은 당과의 관계에서 항상 2차적 혹은 주변적인 위치에 놓이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 고약한 것은 한국의 스탈린주의가 다른 나라의 일반적 타락 수준을 뛰어넘는다는 점이다. 스탈린주의의 보편적 형태 그 이상이다. 우리에게 문제는, 스탈린주의를 봉건적 잔재와 결합시킨 그 가장 퇴행적인 형태, 즉 북한판 스탈린주의(이른바 유일사상)다. 그래서 북한을 북한의 현실 그대로 ‘군사’ ‘왕조’ 집단이라고 칭하는 것이 당 안에서 징계 운운의 대상이 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북한 체제와 그 선전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종북주의 경향은 작년 말에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그 동안은 자민통 경향 안에 종북주의의 유령이 숨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만 있었을 뿐이다. 그게 민주노동당을 귀신 들게 만들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었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 안이한 태도였다. 2006년 말 북한 핵 사태와 이른바 일심회 사건은 이제까지 민주노동당이 겪은 최대, 최악의 타격이었다. 당 정책위 의장이란 사람이 자위권 차원의 핵무장은 필요하다는 망언을 했고, 비슷한 시기에 당의 고위 간부가 북한 정보 당국에게 당의 정보들을 넘긴 게 발각됐다.

       
    ▲ 시대착오적 종북주의가 민주노동당을 지배한다. 사진은 북핵 실험 직후 방북한 민주노동당 대표단과 조선사회민주당의 만찬 (사진=진보정치)
     

    그런데 당의 어떠한 공식 기관을 통해서도 이런 상황을 시정하려는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오히려 지도부 내 다수파는 이러한 작태들을 옹호하기까지 함으로써 당을 지배하는 거대한 종북주의 블록의 실체를 드러냈다. 이제 더 이상 자민통 그룹의 어떤 편향이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 앞에 버티고 선 것은 종북파였다!

    북한판 스탈린주의와 그 남한판인 종북주의의 저변에는 또 민족지상주의라는 위험한 흐름이 도사리고 있다. 본래 스탈린주의 안에는 국가주의의 요소가 있고, 이것은 쉽게 민족주의와 결합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판 스탈린주의에서는 이게 더욱 치명적으로 나타난다. 이른바 우리민족제일주의가 그 최신판이다.

    우리민족제일주의가 담고 있는 배외주의는 파시즘을 연상시키기까지 한다. 독도 사태 때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에서 독도에 공수부대를 파견하자는, 보수정당도 생각 못할 발상이 튀어나오거나, 당내 일각에서 이주노동자나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이 돌출하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민주노동당이 원내 정당이 되고 나서 대중이 줄곧 목격한 게 이러한 모습들이었다. 진보의 희망을 싹틔우는 것은 고사하고 상상도 못할 퇴행적 작태의 연속이었다. 그러니 홍세화 선생이나 최장집 교수 같은 민주노동당에 우호적인 인사들이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라고 평가해도 할 말이 없다.

    진보정당은 오로지 미래의 대안을 선도한다는 자부심으로 평가받고 거기에서 힘을 얻는다. 어떠한 억압에 직면하든, 어떠한 역경에 부딪히든 이것 하나로 버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민주노동당이 잃어버린 게 바로 이 자부심이다. 살아서 버틸 최후의 힘, 그것을 박탈당한 신세다.

    낡고 그릇된 이념들이 당을 지배하기 때문에 반대로 21세기의 새로운 진보의 흐름은 민주노동당에 함께 하는 데 높은 문턱을 절감한다. ‘입시 폐지’ 논란에서 드러나듯이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전망을 구체적인 쟁점들과 연결시키려는 노력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리고 생태주의, 여성주의, 평화주의는 그 발걸음을 민주노동당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민주노동당 안의 협소한 노동조합주의 정치도 한 몫을 한다. 하지만 가장 완강한 벽은 종북파가 보여주는 국가주의, 가부장주의, 민족지상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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