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보수주의 시대가 등장하나?
        2007년 12월 21일 12: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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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정권’ 10년의 불행한 종식

    IMF 경제위기라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등에 업고 DJP라는 정치연합으로 돌파하며, ‘정권교체’를 이루었던 세력이 다시 ‘경제 대통령’을 내걸고 나온 보수세력에게 정권교체를 ‘당했다’. 당해도 싸다라는 ‘이성적 판단’ 뒤엔 일단 바꾸고 보자라는 유권자들의 ‘분노의 투표’ 행태에 등골이 오싹함마저 느껴진다.

    TV토론에서 정동영 후보는 “경제가 죽었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집권세력의 현 상황에 대한 안일한 인식의 단면이자, 왜 옥에 티가 아닌 ‘티에 옥’인 이명박 후보에게 절반 가까운 소중한 표가 던져 졌는지에 대한 분명한 해답이다.

    또한 이번 선거는 경제선거가 아니라, 가장 정치적인 선거였다는 유력한 증거이기도 하다.

    신보수주의 시대의 도래?

    이명박 정권을 신보수주의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명박의 지지층을 전통적인 보수층과 개혁적인 보수층(더 정확히 말하면 보수를 싫어하는 보수층)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일면 타당한 정의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특정 국면이 아닌 하나의 시대적 흐름이라는 측면에서 신자유주의 노선을 중심에 놓고, 19세기 보수주의의 이념, 즉 가족주의와 강한 국가 등의 규범적 요소를 결합시키고자 하는 정치노선을 신보수주의로 본다면 이미 ‘97년 체제’와 함께 등장한 김대중 정부부터 신보수주의 정권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앞에서 말한 ‘민주정권 10년의 종식’은 ‘민주화 세력을 중심으로 한 신보수주의 정권’에서 ‘신개발주의를 중심으로 한 신보수주의 정권’으로의 정권교체인 셈이다.

    보수동맹의 포스트 87년 체제

    이명박 48.67%-이회창 15.07%, 정동영 26.14%-문국현 5.82%, 권영길 3.01%.
    이 보다 대선 이후 정국구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있을까?

    지금부터 총선까지 BBK와 삼성특검이 현재 조성되어 있는 이명박 정세를 어느 정도 흔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특검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 결과만으로 현재의 강고한 이명박에 대한 50%의 기대를 뒤집고, 대선과는 다른 총선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BBK의혹이 그만큼의 파괴력이 있었다면 요동쳤어야 할 국면은 바로 19일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회창으로 상징되는 ‘보수의 보수’가 정치세력으로 전면 등장했다.(사진=뉴시스)

     

    이번 대선의 도드라진 특징 중 하나는 이회창으로 상징되는 ‘보수의 보수’가 유력한 정치세력으로 정치의 전면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충청-영남의 지역적 교두보 역시 보수신당의 종자돈으론 비교적 탄탄해 보인다(대전 28.9%, 충북 23.4%, 충남 33.2%, 대구 18.1%, 부산 19.7%, 경남 21.5%).

    왜냐하면 이회창을 선택한 이들은 이명박에 대한 신뢰성 여부와는 무관하게 이회창을 선택한 이후 보수신당의 ‘진성 지지자’들이기 때문이다.

    총선에서 이들간의 보수적자 경쟁은 우회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총선 이후 한나라당과 이회창 신당의 생환자들에 의한 ‘보수동맹체제’ 역시 가시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한나라당-보수신당과의 연대체제를 ‘포스트 87년 체제’라 규정하는 이유는 이번 대선을 계기로 ‘민주 대 반민주’의 정치적 대결구도가 과연 정치적으로 무의미해질 수 있겠는가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포스트는 ‘탈(脫)’이란 단절의 의미도 있지만, ‘이후(以後)’라고 하는 연속적인 의미도 지닌다.

    이 철지난 대결구도를 자꾸 되뇌는 세력은 다름 아닌 바로 ‘민주화’ 세력이다. 반부패 동맹론, 평화개혁연대론 역시 민주 대 반민주 대결의 연장선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총선은 대선과 대선 사이에 이루어짐으로써,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지녔다. 그러나 이번 총선은 대선과 불과 4개월의 시차를 두고 진행됨으로써 이명박 정권에 대한 평가라는 정치적 성격을 가지기 힘들다. 정권을 내준 민주화세력의 유일한 버팀목은 BBK의혹 혹은 부패세력에 대한 심판 정도가 될 것이다.

    총선의 구도 역시 현재 보수적자 경쟁과 반부패 혹은 ‘의혹’을 매개로 한 대통합신당의 3자 대결이라는 대선구도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대통합신당 역시 내홍을 겪을 가능성이 크지만, 선거 참패의 결과가 오히려 총선까지는 봉합의 매개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클 것 같다.

    한편 문국현의 창조한국당의 경우 독자적으로 총선에 대응하기에는 이들의 응집력이나 뒷심이 그리 견고하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측면에서 문국현호의 지속가능성은 대통합신당의 당내 사정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퇴행적 정치구도를 ‘정상화’해야 할 진보정치세력의 존재감 역시 무력하기는 마찬가지다.

    존폐기로에 놓인 민주노동당

    이번 대선에서 대중들에게 무참할 정도로 외면당한 세력은 바로 민주노동당이다. ‘존폐기로에 놓인 민주노동당’이란 표현은 오히려 호사스럽기까지 하다.

    ‘선거란 구도’라고 얘기하지만, 메시지 부재, 리더십 부재, 비전 부재 등 3무의 민주노동당에게 좋은 구도란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대선 결과가 나온 직후부터 당 쇄신부터 재창당, 혹은 진보신당에 이르기까지 당내외의 비판 목소리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쇄신이든, 재창당이든, 진보신당이든 당내 세력교체와 외연확대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좋았던 시절 보수정당에 대해 ‘신장개업당’이라고 꼬리표를 붙였던 호기로운 일갈을 되돌려 받을 뿐이다.

    민주노동당이 그나마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은 바로 ‘당의 발본적인 탈바꿈’이다. 민중경선제 운운하고, 선거구도를 탓하는 것은 선거참패의 알리바이가 아니라, 그나마 당을 선택해 준 70만 지지자들의 희미한 희망마저 빼앗는 절망의 알리바이가 될 뿐이다.

    이후 보수동맹체제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3자구도에 끼여 진보정당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체제비전의 담론 영역을 포함한 발본적인 당개혁 프로그램과 실천적으로는 지도부 사퇴와 정파수장의 비례대표 불출마, 비례대표의 외연확대를 시작으로 하는 혁신 프로그램을 전면에 내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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