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계급은 왜 민노당을 외면했나
        2007년 12월 21일 12: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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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선거 바로 전날인 18일 밤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산업보건규칙 개악을 막기 위해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던 노동자들이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6명의 노동자가 모두 민주노동당 당원이었다. 자연스레 권영길 후보가 얼마나 표를 받을 것인가로 화제가 모아졌다.

    “지난 2002년 대선 때 3.9%, 96만표를 얻었는데, 이번에 더 많은 표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한 노동자의 질문에 4명이 손을 번쩍 든다.

    A “당연하죠. 그 때 막판에 지지도가 6% 넘었는데 정몽준이 지지를 철회해서 사표심리가 작동했잖아요. 이번에는 사표심리도 없을 테니 훨씬 많이 받을 거예요.”

    B “지금 농촌이 권영길 분위기래요. 한미FTA 반대 투쟁을 한 정당이 민주노동당 뿐이어서  농민들이 모두들 기호 3번을 찍는다고 해요.”

    농촌의 분위기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었는데, 정말 한미FTA 반대투쟁으로 인해 농민들의 표가 민주노동당에게 모아지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노인들이 많은 곳이라 지역주의가 훨씬 강하게 작용을 할 테고, 권영길 후보 지지는 일부 농민회 간부들 얘기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에 반해 금속노조 배현철 정치국장은 “97만표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핵심적 지지층인 민주노총 노동자들의 표가 집결되지 않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후보에 대한 불만, 한국노총에 대한 사과 문제, 코리아연방공화국 등등 노조 활동가들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불신이 현장에 적지 않게 팽배해있다는 것이었다.

    금속노조는 이런 현장의 불신을 극복하기 위해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전선에서 최소한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민주노동당을 지지해달라”는 내용의 홍보물을 배포하고, 권영길 후보 지지운동을 벌였었다.

       
      ▲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삼성SDI 하이비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유세하고 있는 모습.
     

    권영길 후보는 3.01% 70만표로 정치신인 문국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처참한 득표로 5위를 차지했다. 심지어 노동자의 도시 울산에서도 8.4%를 얻어 이명박-이회창-정동영에 이어 4위에 그쳤다.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에서 권영길 후보는 울산 11.32%, 울산 북구 21.99%, 창원 9.18%의 지지를 얻었다. 민주노총 조합원 밀집지역에서 5년 전에 조합원들에게 받았던 득표율보다 훨씬 떨어지는 참담한 결과다.

    노동자 도시의 상대적으로 높은 득표율

    지역별 투표 결과를 보면 민주노동당의 핵심 기반은 농촌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이며, 민주노총 조합원이라는 사실이 명확하게 확인된다.

    권영길 후보는 현대자동차 조합원들이 살고 있는 울산 북구에서 16.67%를 얻어 이회창(15.44%), 정동영(14.42) 후보를 제치고, 이명박 후보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2위를 차지한 유일한 지역이다.

    권영길 후보가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얻은 지역은 모두 노동자 도시였다. 울산 동구(10.39), 거제(9.81%), 창원(7.94%), 평택(5.85%), 아산(5.69%) 등에서 전국 평균보다 훨씬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그러나 농촌지역의 결과는 참혹했다. 정동영의 고향인 전북지역에서는 1.9%의 지지율을 받았고, 3%를 넘은 시군은 한 곳도 없었다. 전남에서도 2.4% 지지에 그쳐 3.61%를 얻은 이회창보다 못한 결과를 낳았다.

    한미FTA 저지 투쟁을 열심히 벌였지만 농민들은 지역주의를 뛰어넘는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농촌 들녘에서 농민들을 만나러 다녔던 권영길 후보의 ‘만인보’가 실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민주노동당을 찍어야 할 이유

    민주노동당의 핵심 지지층은 당연히 노동자계급이며, 열악한 조건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투쟁으로 각성된 민주노총 조합원이라는 뜻이다. 결국 민주노동당과 권영길 후보가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왜 권영길을 찍어야 하는지를 설득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부자에게 세금을”이라는 선명한 계급적 구호를 내걸어 13%가 넘는 지지를 끌어냈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민주노동당을 찍어야 할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한 구호였다.

    세상을 어떻게 바꾼다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 무슨 말인지조차 알 수 없는 “코리아연방공화국”, 비정규직 확산법안에 합의한 한국노총에 대한 사과까지 2007년 노동자들은 민주노동당을 찍어야 할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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