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구적’ 진보정당 향한 지지자들의 분노
        2007년 12월 20일 04: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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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영길의 ‘사람경제론’은 문국현의 ‘사람경제론’에 왜 참패했는가?

    이번 대선에 대한 평가는 다양한 측면에서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지점은 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사실상 무명의 정치 신인이라고 할 수 있는 문국현 후보에게도 패배했는가 하는 점이다.

    문국현 후보는 ‘사람중심 진짜경제’를 핵심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사람경제론’이라는 말의 원조는 권영길 후보였다. 국민들은 왜 권영길의 사람경제론에는 호감을 느끼지 못하면서 문국현의 사람경제론에는 호감을 느꼈을까?

    그 핵심 이유는 문국현 후보의 주장의 바탕에는 유한킴벌리라는 ‘모델’이 있고, 권영길 후보의 주장의 바탕에는 모델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권영길 후보의 배후에는 ‘실패한 모델’만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정치세력의 배후에 존재하는 역사(모델)을 보고 선택한다. 혹자는 이명박에 대한 ‘묻지마 지지’라고 주장하곤 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청계천과 버스체계 개편이라는 이명박식 모델(역사)에 대한 긍정적 가치판단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었다.

    2. 권영길 후보의 ‘모델’은 민주노동당 그 자체

    문국현 후보에게 유한킴벌리라는 모델이 있었다면, 권영길 후보에게도 모델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민주노동당 그 자체였다.

    우리는 지난 2004년 총선 이전까지만 해도 당원들의 당비로 운영되는 투명한 정당이며, 당원들이 직접 선출하고 소환하는 정당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명실상부하게 ‘당원이 주인’인 정당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민생중심의 정책정당이라고 생각해왔다. 적어도 2004년 전까지는.

    마치 문국현 후보의 유한킴벌리 사례가 비정규직을 채용하지 않고 정리해고를 하지 않고 4조 3교대 학습시간을 늘렸던 것처럼 민주노동당도 ‘대안적’ 모델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4년 이후 원내진입을 통해 당이 ‘권력의 단맛’을 먹으며 실질적 검증과정을 거친 이후 그 모든 것이 거짓말임이 확연하게 입증되었다. 

    3. ‘수구적’ 진보정당의 실체 – 친북당, 간첩옹호당, 투명회계반대당, 임금체불당

    2004년 원내진입 이후 적나라하게 검증된 민주노동당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한마디로 말하면 ‘수구적’ 정당 그 자체였다. 다만 외양과 레토릭만 진보정당이라는 것을 주장했을 뿐이다.

    ‘수구적’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의 실체는 여러 가지 사례로 확증된다. 민주노동당은 대한민국 제도권 정당의 역사에서 갖가지 기록을 갱신했다. 몇 가지만 나열해도 얼굴이 부끄러워질 정도이다.

    민주노동당은 대한민국 최초로 독도에 군대파견을 주장한 정당이 되었다. 민주노동당은 대한민국 최초로 북한 핵실험을 사실상 옹호한 정당이었다. 그리고 이용대 정책위의장은 ‘북한의 자위권’을 운운하며 중앙위 회의장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역사적’ 행위도 서슴치 않았다.

    어디 그뿐인가? 오세훈 정당법 통과 이후에 지구당 폐지가 결정되자 당은 ‘음성적’ 지구당 운영으로 전환하여 지구당-시도당-중앙당에 이르기까지 모든 당 부서가 ‘이중장부’를 사용하고 있으며, 당내 최대 정파인 주체파와 제1야당인 사회주의파 전진은 투명회계를 반대하며, 국민들의 세금을 불법적으로 유용하는 ‘불법적 대중정당 노선’을 지금 현재까지 고수하고 있는 지경이다.

    상근자에 대한 임금체불과 퇴직금 연체를 당연시 여기는 정당이며, 심지어 당 대회에서 상근자 노조의 단체협약이 가까스로 통과될 정도로 ‘反노조’ 정서를 가진 정당이었다.

    그리고 12월 13일 대법원에 의해서 최기영 전 사무부총장의 ‘간첩행위’가 최종 판결났음에도 불구하고 당 지도부는 그를 옹호하는 것을 넘어 지금 현재도 당 재정의 일부를 ‘생활비’로 지급하고 있는, 대한민국 유일의 ‘간첩옹호당’이 되었다.

    더군다나 간첩행위의 내용이 같은 ‘동지’(?)인 당직자 300여명의 성향 분류 문서를 북한 당국에 넘긴 것임에도 당 지도부는 여전히 그를 ‘국가보안법 투사’로 묘사하고 있는 정말이지 대한민국 유일의 ‘이상한’ 정당으로 전락했다.

    그리하여, 국민의 눈치를 보는 정치가 아니라 당내 힘있는 정파의 눈치를 보는 정치를 지속했다. 그리고 그 이유의 핵심에는 비례대표 국회의원 한 자리를 먹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는 ‘저급한’ 방식의 권력추구형 정당으로 전락한 것이 명확해졌다. 

    4. ‘수구적’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자들의 분노와 심판

    당이 이 지경이 되어도 당의 지도급 국회의원들조차 이러한 문제에 대해 책임 있는 발언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정당이 바로 민주노동당이다. 민주노동당의 근본 위기는 ‘정체성’ 그 자체의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정체성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는 얼핏 들으면 듣기 좋은 것 같은 추상적인 말만 3년째 하고 있는 정당이 바로 민주노동당이다.

    나는 지난 5년간 당에 상근하면서도 당의 지도급 국회의원이 북핵 옹호, 간첩옹호, 투명회계 반대, 임금체불, 반노조 정서 등의 수많은 행태에 대해 공개적으로 책임 있게 비판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불행하게도 바로 그러한 이들을 많은 당원들이 ‘대안적 지도자’로 여기고 있는 정당이 바로 민주노동당이다.

    당원들이, 그리고 지지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모두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2002년 대선에서 3만명을 갓 넘는 당원은 이제 10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당원 증가는 당의 ‘수구적 행태’를 직접 체험해야 하는 인원의 증가로 귀결되었을 뿐이다.

    ‘수구적’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의 이러한 행태는 당에 대한 ‘분노’를 느끼고 있던 당원들의 입을 통해, 열성적 지지자들의 입을 통해,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에게 흘러갔고, 민주노동당에 애정을 가지고 있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흘러갔다.

    그리하여 진중권 같은 사람이 탈당했고, 홍세화 선생님 같은 소중한 분들이 당에 대해 ‘절망감’을 느끼는 정당으로 전락했다. 오죽했으면 최장집 교수의 입에서 ‘주체파 때문에 민노당 미래없다’라는 표현을 썼을까.

    그동안 민주노동당의 ‘수구적’ 진실은 4년 동안 입에서 입을 통해, 소문으로, 분노로, 열정으로 그렇게 민주노동당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달되었던 것이다. 

    5. ‘모델’의 힘이 세상을 변혁할 것이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나라를 운영하는 최고 경영자를 선출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란 ‘조직’을 민주적으로, 진보적으로, 합리적으로 운영할 능력이 없는 정치인과 정당이라면 국민 대중에게 권력을 달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조직을 운영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가치와 철학, 능력을 전제로 한다. 오늘날 민주노동당이 북핵 실험을 옹호하고, 간첩을 옹호하고, 투명회계 반대를 옹호하고, 임금체불을 당연시하는 것은 그 조직을 운영하는 이들이 그러한 가치와 철학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권영길 후보가 문국현 후보에게 패배한 것은 단지 ‘권영길’ 후보 개인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이라는 조직 모델이 ‘유한킴벌리’라는 조직모델보다 대안이 될 수 없음을 확증하는 것이다.

    80년대 변혁운동이 소련식 모델(PD)과 북한식 모델(NL)에 대한 간명한 옹호와 설명으로 성장했던 것처럼, 그리고 오늘날 신자유주의 담론이 현존하는 ‘미국식 모델’을 전제로 그 위세를 확장하고 있는 것처럼, 민주노동당은 이제 두 가지 근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민주노동당이 지향하는 사회체제의 모델이 어떤 것에 가까운 것인지? 북한식 모델인지, 소련식 모델인지, 북유럽식 모델인지, 남미식 모델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를 분명하고 정직하게 밝혀야 한다.

    둘째, 민주노동당이 지향하는 가치와 철학은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 민주노동당 안에서 부분적으로 실현되고 입증되어야만 한다. 

    6. 분당을 하든, 전면적 재창당을 하든

    80년대 운동권들은 새로운 사회가 ‘언젠가’ 한꺼번에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혁명이라 부르든, 새로운 사회라고 부르든, 그것은 이미 ‘우리 자신’이 실현하고 있는 가치와 철학의 크기만큼만 실현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이 ‘봄’이 되지 않는다면 영원히 봄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대선 참패를 전후하여 당에 불고 있는 분당론이 되었건, 전면적 재창당론이 되었건, 결국 승부수는 다시 ‘모델’의 선명함과 그것의 경험적 실현을 통해서 결정 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명의 정치신인 문국현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진짜 교훈이며, 권영길 후보가 문국현 후보에게 왜 패배했는지를 일깨워주는 ‘철학적 교훈’이다. 그리하여, 분당을 하든, 전면적 재창당을 하든, 유일무이한 해법은 다시 ‘당의 변혁’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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