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리더십으론 원상 복구 불가능"
        2007년 12월 20일 05: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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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70만표. 참담했다. 2002년 대선 당시 957,148표로 3.9%를 획득하고 2004년 말 당 지지율이 20%까지 육박했던 시절에 비하면 민주노동당 존립의 근간마저도 흔들릴 수 있는 결과다. 정치적 목표였던 ‘수권가능한 정당’, ‘선택가능한 대안 정당’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게다가 지난 7년을 괴롭힌 ‘사표’ 심리가 희박한 가운데, 느닷없이 나타난 정치 신인 문국현 후보에게도 밀리는 ‘수모’를 당했다. 문 후보에 비해 권 후보는 세 번의 대선 경험과 높은  인지도, 조직, 자금, 9명의 국회의원, 고정적인 지지층 등 객관적으로 앞서야 할 조건을 확보하고 있었다.

       
      ▲개표조사 방송 시청한 후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가는 권 후보(사진=뉴시스)
     

    이로써 민주노동당은 그간 활동 전반에 대한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됐으며 대선 결과와 과정을 놓고 심한 몸살을 앓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일부 당 안팎에서는 자주파와 결별해 보다 폭넓은 좌파 진영을 아우르는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어 향후 움직임이 주목된다. 

    대선 결과를 놓고 당 안팎에서는 단순히 득표율에 근거한 평가를 넘어 민주노동당 10년에 대한 심도 있는 평가를 해야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이는 대선에 대한 냉정한 평가없이는 총선도 암울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박용진 선대위 대변인은 "결과론적인 득표도 중요하지만 내용에 있어 대선판을 어떻게 주도하고 민주노동당의 어떤 가치와 메세지를 국민들에게 남겼는지 치열하게 평가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이에 대한 분명한 평가가 없다면 사실상 총선도 대선과 똑같은 선거가 될 뿐"이라고 말했다.

    "천우신조의 기회 있었다"

    시간을 되돌려 대선 전략, 지도부의 리더쉽, 후보, 당원 및 조직 가동 등 양파 껍질을 하나하나 벗기듯 면밀히 들여다보면 이같은 결과를 예고하는 증후들이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선거 전략과 관련해 ‘결과론적으로는’ 유례없는 다자 구도 속에서 어려운 선거를 치뤘지만, 경선 효과 등으로 권 후보의 지지율이 삼자구도 시 최고 17%에 달하는 등 민주노동당에게도 ‘천우 신조’의 ‘기회’가 있었다.

    분열하는 보수 후보, 심판받은 범 여권의 지릴멸렬함 속에서 민주노동당이 새로운 역할과 대안을 제시하며 경선의 열기를 이어갔다면 제1야당까지도 넘볼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당시 김선동 상임선대본부장도 선대위 전체 회의에서 ‘민주노동당 대선 승리 전략’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민주노동당이 양당 구도의 틀을 깨고 3강 구도를 만들어 낼 절호의 기회"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선대위 구성부터 삐그덕거리기 시작한 민주노동당은 한 달이 넘도록 대선 슬로건은커녕 선거 전략조차도 확정하지 못한 채 무방비 상태로 시간을 죽였다. 그 사이 경선 후유증의 골은 점점 깊어졌고, 급기야 권 후보마저도 ‘1인시위(만인보)’를 떠나버렸다. 

    이같은 선대위의 전략 부재는 민주노당의 정책을 대선이 끝날 때까지 단 하나도 ‘정치화’ 시켜내지 못했으며, 권 후보 또한 구태의연한 삼수생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민주노동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 모습.
     

    김기수 전략기획단장은 "선거가 총체적으로 실패했다. 역대 어느 선거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출발했지만 그러한 환경에 비해 우리 스스로가 먼저 준비 되지 못해 기회를 놓쳤다"면서 "대중들이 뭘 원하는지 알아내는데 있어 민주노동당의 실력이 부족했다"고 평했다.

    또 중앙당 당직자는 "대선에 돌입한 후 매일 집행 점검 회의를 하고 토요일에 나와 정상 근무를 한 것이 대선 전략의 전부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면서 "당 지도부는 각 부서의 인력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지조차도 파악하지 못해 당직자들이 각자 종이에 업무를 기록해 제출하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전했다.

    특히, 객관적인 조건이 우세함에도 불구하고 문 후보에게조차 패한 것은 전략적으로도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실장은 "정치 신인 문 후보에게 졌다는 것은 민주노동당이 그간 원내 진출 전부터 오랫동안 쌓아둔 모든 운동과 활동들들 다시 되돌아 봐야 할만큼 위기에 처한 것으로 냉철하게 따져봐야 할 문제"라며 "민주노동당은 국민들에게 통렬한 비판을 받은 것으로써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셋팅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영길-이인제 지지율이 당보다 낮았던 후보들

    전반적인 당의 전략 부재와 함께 후보에 대한 아쉬움 또한 여러 차례 지적됐다. 선거 운동을 하는 현장에서 가장 곤혹스러웠던 문제는 후보의 식상함이었다.

    경선 기간에도 권 후보를 지지했던 한 당원은 "현장에서 운동을 할 때 일반 시민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는데, ‘사람이 그렇게 없냐? 다음에 노회찬이나 심상정이 나오면 그때 찍어주겠다’는 말이다"면서 "저뿐 아니라 권 후보의 지지자들조차도 현장에서 그런 말을 들으면 말문이 막힐 때가 많다"며 난감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외부 전문가들도 안타까워하기는 마찬가지.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노회찬이나 심상정이었다면 당선권에 들지는 않아도 진보개혁세력의 입지를 넓혀주기 위해서라도 미래에 투자하는 심정으로 투표할 명분이 생긴다"며 "그러나 당선권에도 들지 않고 또 사실상 마지막으로 대선에 나오는 권 후보에게 일반 유권자들이 표를 던져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라며 반문했다. 

    게다가 권영길 후보는 본선 기간 내내 민주당 이인제 후보와 함께 후보의 지지율이 정당 지지율에 못 미치는 후보였다. 결국 고민 끝에 선대위는 8% 안팎의 당 지지율을 후보의 지지율로 바꿔내기 위해 투표를 일주일 앞두고 서울에서만 권 후보를 전면 배치한 현수막(세상을 바꾸는 대통령, 권영길) 대신 당의 역할을 앞세우는 현수막으로(엄마, 민주노동당이 필요해!) 전면 교체하기도 했다.

    또 민주노동당의 강점인 정책 경쟁을 유도해 내는데 권 후보가 최선의 인물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이 많았다. 토론 준비팀의 한 관계자는 "후보의 발음, 고착화된 이미지 등을 고려해 권 후보에게 입힐 수 있는 옷은 한정돼 있다"면서 "새로운 정책적 시도나 논쟁 등이 권 후보를 통해서는 좀처럼 쉽게 발현되지 않아 고민"이라고 말한 바 있다.

    특히, 문국현 후보의 출현에 대해 권 후보가 아니었다면 그리 많은 표를 대책없이 뺏기지 않았을 거라는 아쉬움도 많았다. 반면, 현 정치 구도상 두 의원이 나왔다고 해도 질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었을 거라는 시각도 있어 있다. 

    최규엽 후보비서실장은 대선 결과와 관련 후보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최 실장은 "유구무언이다. 패배의 원인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우리 내부 실력에서 찾아야 한다"면서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후보의 문제로 대선을 평가하는 것은 당과 진보진영의 발전을 위해 옳지 않다"고 말했다.

    조직도 계급도 가동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은 막판 선거 전략으로 조직투표와 계급 투표를 내세웠다. 그러나 결과가 보여주듯 조직도 계급도 끝내 가동되지 않았다. 이상현 미디어 홍보위원회 위원장은 대선의 패인에 대해 "우리 당의 지지층 가운데 절반이 못 미치는 사람들만이 권 후보를 지지했다"면서 "민중경선제 불발 등으로 핵심 지지층의 발동이 늦게 걸려 아쉬웠다"고 말했다.

    또 이영희 공동선대본부장도 "민중경선제 불발 등으로 현장 발동이 늦게 걸려 마지막에 수도권은 손도 못됐다"면서 "열심히 하기는 했으나 비정규직 노동자 및 조합원들을 감동시키기에는 당도 우리도 모두 부족했다. 또 이명박 동영상 및 BBK특검 등으로 인해 사표 심리가 막판에 일부 다시 결집한 것 같다"고 말했다.

    <레디앙>은 권영길 선대본의 핵심 인사 가운데 한 명인 김창현 공동선대본부장 겸 조직본부장과 개표 이후 장시간 동안 여러 번 전화 취재를 시도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의 주 무기 중 하나인 자발적인 10만 당원의 열정 또한 전혀 가동되지 않았다. 심상정 선대위원장은 본선 기간 내내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당원들의 열정과 헌신이 제대로 조직되지 못하고 있다며 지도부의 리더십 발동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 기간 내내 경선 후유증을 겪고 있는 당원들을 추동해낼 당내 리더십은 사실상 부재했다. 집행 단위의 결정 사항에 대해서는 매번 해석이 분분했고, 이에 대한 내부 논란이 고질적인 정파 갈등과 맞물리면서 선거 기간 내내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로 인해 지도부 내부에서도 서로 ‘진상 조사’를 요청하며 신경전을 벌이는 일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한 당직자는 "그간 당 지도부가 보여준 행동은 울고 싶은 데 오히려 계속 뺨을 때려주면서 명분을 제공해준 셈"이라며 "선거에서는 우리가 스스로 미쳐 가진 것 이상을 발휘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열정을 추동할만한 계기를 전혀 만나지 못해 결과적으로 52%(권영길 후보 당내 예선 득표율)의 선거조차도 되지 않았다"고 평했다.

    이번 대선 결과를 놓고 당 외부에서도 민주노동당을 바라보는 시선은 냉담했다. 홍형식 소장은 "당의 자연적인 상장률조차도 반영하지 못한 궤멸"이라며, "과연 현 지도부가 이번 결과를 진보진영의 위기라고 판단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조차 회의적"이라고 평했다.

    손호철 교수는 "제일 중요한 건 민주노동당의 공식 목표이다. 300만표 득표 달성 후 제1야당으로 성장, 2012년 집권이라는 공식 목표 달성을 위해 당이 얼마나 충실히 이행했는지 평가해야 한다"면서 "그러한 기준에 따르면 위기의 증후가 발현된 것으로 이번 대선의 과정과 결과를 놓고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홍역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선 평가 – 진보 진영의 빅뱅 가늠

    대선 결과를 놓고 최고위 총사퇴 등 온갖 소문이 떠도는 가운데, 대선에 대한 평가가 생산적인 논쟁을 불러오기 위해서는 이번 경험을 진보 진영 혁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었다. 

    선대위의 한 관계자는 "당을 리모델링을 하느냐 신당을 만드느냐의 기로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 이는 대선 결과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이뤄지느냐에 따라 선택될 것"이라며 "이번 대선에 대한 평가가 당의 환부를 도려내는 수술로 실제 내용이 바뀌는 변화와 혁신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발전적 해체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손 교수는 "사실상 이번 대선 과정에서 보여주듯 정파문제 등 당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들이 이제는 ‘봉합’ 할 단계가 넘어섰다"면서 "북한에 대한 입장 등 당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시작해 우리 시대의 진정한 진보 정신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도 "민주노동당이 이렇게까지 진보진영을 망가뜨리고 국민들에게 정말 큰 실망감을 안겨준 것에 화가 많이 난다"면서 "진보진영의 위기는 현 민주노동당의 리더십으로는 원상복구가 불가능하다고 본다.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공론화해 새살이 돋아 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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