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아빠가 내 앞길을 막고 있나?”
        2007년 12월 18일 11: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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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은 행복한 지옥? 언젠가 내가 들은 말이다. 이 말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어떻게 지옥이 행복할 수 있지?’ 하고 떠오르는 의문점을 내 나름대로 해석자 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한민국에서의 총기 소지는 법으로 금지된다. 둘째, 대한민국은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로서 개인의 이윤을 마음껏 추구할 수 있다. 셋째, 빈부격차의 완화를 위해 약간의 복지정책을 추진한다. 그러나 복지병과 같은 복지사회의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아주 약간만 실시한다. 넷째, 대한민국은 자원 부족 국가로서 교육인적자원부를 통해 사회를 위한 인적 자원을 확보한다.

       
      이선경 / 삼산고 2학년
     

    약간의 오버(?)도 가미되어 있으나 위의 항목은 내가 생각한, 대한민국이 행복한 지옥일 수 있는 이유들이다. 위의 항목들을 살펴보면 굉장히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사회라 생각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속내는 이러하다. ‘강자가 다 해먹고 사는 세상’

    ‘강자’의 개념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현 20대에게는 40, 50대의 중년층이, 일반 인문계고 학생에게는 특목고생과 사립대학들이,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생에게는 업주들이 강자다.

    인문계 고등학생, 비정규직은 약자

    즉, 현 한국사회는 20대, 일반 인문계 고등학생, 비정규직에 대한 배려가 없다. 그러나 ‘강자’의 입장에서 볼 때 대한민국은 약간의 다툼만이 존재하는 행복한 세상일 뿐이다.

    각종 매체에서 이런 기사를 접했다. ‘이제 곧 대한민국의 90%가 비정규직이 되며, 상위 5%의 20대만이 안정된 직장을 가질 수 있다.’

    학교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을 통해 많이 들었던 말이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당시 난 바로 내 중간고사 석차를 전교생으로 나누어서 곱하기 백을 했었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었다.

    그 후로는 ‘비정규직’이란 단어만 들어도 ‘내 얘기가 아닌데’ 하며 듣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자꾸 그 네 글자에 신경이 쓰였다. 사실 나도 학교에서의 내 자리를 가늠해 볼 때부터, 아니 ‘비정규직’이란 단어를 들을 때부터 두려웠던 거였다.

    『88만 원 세대』가 내 바리케이드를 쌓는 데에 첫 삽이 되어 주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가져 본다.

    이 책은 ‘첫 섹스의 경제학’으로 문을 연다. 학교에서 재량 활동 시간에 KBS에서 방영하는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했던 적이 있다. ‘인간극장’은 매주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든 것이다.

    우리가 본 방송의 주인공은 10대의 두 학생이었다. 어쩌면 이 두 사람은 학생이 아닐지도 모른다. 학교를 자퇴한 상태였으니깐. 이 두 사람은 당시 열일곱, 열아홉이었는데 둘 사이에는 아이가 있었다.

    그러니깐 이 두 사람은 서로 사랑을 했고 본능에 충실한 후 아이를 갖게 되고 낳은 것이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아이의 엄마인 여학생에게 학교를 자퇴할 것을 거의 강요하다시피 했고, 남학생은 자신의 가족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만 했다.

    두 부부가 함께 아이를 씻기는 모습, 둘이서 함께 부업으로 인형에 눈을 다는 평온한 모습이 화면에 비쳤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현실적인 문제 역시 존재했다. 둘 모두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해 검정고시를 칠 생각이었으나 남학생의 주유소 아르바이트 벌이만으로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저래도 학교 안 다니는 쟤들이 부럽냐?”

    두 사람은 서로 먼저 하라며 양보하다가 결국, 남학생이 학원을 등록하고 집에 돌아와서 그 날 배운 것을 여학생에게 가르쳐 주기로 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우리 재량 선생님이 한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저래도 학교 안 다니는 쟤들이 부럽냐? 그러니깐 여학생은 항상 몸조심해야 하는 거야. 공부 안하면 저러고 살아야 해!” 그러면서 혀를 끌끌 차셨다. 과연 우리가 이 상황에서, 학교를 그만두고 한창 공부할 시기에 알바하면서 애 키우기를 선택한 두 학생의 어리석은(?)은 판단에 혀를 차며 야유를 보내야 할까?

    아니면 본능에 충실한 대가로 자퇴를 강요하며 아르바이트로 시장으로 내몬 우리 사회구조를 바라보며 혀를 차야 할까?

    지금 내 동생은 고1이다. 얼마 전 내 동생이 집에서 쫓겨날 뻔한 적이 있었다. 이것이 집에는 친구네 집에 놀러간다고 해놓고는 친구들과 함께 돼지갈비 집에서 알바를 하다가 걸린 것이다.

    정말 그날 나는 내 동생이 엄마한테 맞아서 죽을 줄 알았다. 나는 그날 저녁 동생을 내 방으로 따로 불러서 자세한 것을 물어봤다. 사실 신기했다. 우리 또래는 돈을 벌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고기 집에서 돈을 벌어왔다는 내 동생이 왠지 용감해 보이기까지 했다.

    내 동생은 5시부터 8시까지 일하고 10,700원을 받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서부터 화가 났다. 만약 그 주인이 학생이 아닌 아줌마를 채용했었다면 적어도 2배는 지불했어야 했을 거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내 동생이었다.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이자, 언니는 세상 물정을 모른다면서 자기가 일한 고기집 사장이 착해서 많이 쳐준 거라고 오히려 나를 나무랬다.

    이렇게 몇몇 업주들은 청소년을 값싼 노동력으로 착취하고 심지어는 10대를 상대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기성세대의 지갑을 세상 물정에 어두운 10대를 통해 열려 하는 것이다.

    “우리 아빠가 내 앞길을 막고 있나?”

    위 책의 저자는 20대의 자리를 죄이는 것들 중의 하나로 기성세대를 이야기했다. 결국 이 소리는 우리 아빠가 내 앞길을 막고 있다는 소리다. 그런데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동감할 수 없었다.

       
       "쫓겨난 아빠들도 불쌍하다"
     

    최근의 뉴스에 따르면 대기업의 정년 퇴임 시기가 빨라지면서 40에서 50대 초반에 직장을 잃게 된 사람들이 자녀 교육 등과 같은 가계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을 잃게 된 사람들에 따르면, 요즘 젊은 사람들이 치고 들어 와서 한 직장에 오래 있기 어렵다고 한다. 결국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을 위협하는 것은 요즘의 젊은 것들인 셈이다.

    나는 현 기성세대와 소위 젊은 것들인 20대 사이의 괴리감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서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기성세대들의 민주화를 위한 피와 땀이 없었다면 지금의 20대는 지금과 같은 권리를 누리지 못했으며, 혼란한 사회(군사정권)에서 성장하게 되었을 것이다.

    또 기성세대는 현 20대들이 일이 없어 연금을 낼 수 없게 되면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윗 세대만을 먹여 살리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 두 집단은 서로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의 도움을 받고 있으며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20대 일자리 없으면 기성세대 연금도 없다

    요즘 초등학생들 영어 발음이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특수목적고들은 해를 거듭 할수록 인기가 높아지고 그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너무 과열된 듯싶어 각 시도별로 특수목적고 수를 제한하자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내가 20대가 되었을 때 나는 현 20대와 내 밑에 세대와 어쩌면 그때까지도 기득권을 쥐고 있을지 모르는 현 기성세대까지 세 개의 집단과 마주해야 한다. 세대 내 경쟁에서 벗어나 세대 간의 경쟁을 치르게 되고 결국 무한 경쟁 시대를 맞이하는 것이다.

    현 한국사회는 10대와 20대에게 닥친 위기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능력 없는 개인들의 개인사로 취급하며 노력에 의해 극복될 수 있는 문제라고 단순화시켜 버린다. 그 위기의 직격탄이 될 본인인 나조차 이 책을 읽기 전에 심각성에 대해서 깨닫지 못했었다. 무섭다. 진짜 내가 88만원세대가 될까 두렵다.

    저자는 88만원 세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토플책을 집어던지고 짱돌을 들고 자신을 지켜줄 바리케이드를 치라 했지만 나에게는 현실성이 없는 뜬구름처럼 느껴진다. 오히려 이런 말을 들을수록 책을 더 세게 쥐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불안해진다.

    그렇다. 책을 더 세게 쥐어라. 토익 점수 올리기 위한 영어 책이 아닌 이 사회 구조를 꼬집을 수 있는 앎을 주는 책을 쥐어라. 결국 옳지 못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그 문제를 ‘앎’에서 생기는 것이다.

    이선경 / 삼산고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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