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엔 권영길을 찍겠다”
        2007년 12월 17일 01: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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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내 소개를 해야겠다. 난 그 이름도 유명한 ‘광노빠’였다. 그전엔 ‘김빠’였다. 김대중 지지자란 뜻이다. 좀 더 순화된 용어를 사용해 말하자면 ‘비판적 지지자’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민주화 세력을 크게 두 갈래로 나누면 ‘비판적 지지’ 그룹과 ‘독자세력화’ 그룹으로 나눌 수 있는데 난 전형적인 비판적 지지자였다. 하나밖에 없는 내 표가 ‘사표’로 전락하는 건 끔찍이도 싫은 일이다. 일단 당선가능성을 보고 표를 몰아주자는 것이 언제나 나의 선택이었다.

    이번 대선에선 두 가지가 사라졌다. 첫째, 옛 지배그룹에 반대하는 당선 가능성 있는 주자가 사라졌다. 둘째, 옛 지배그룹에 왜 반대해야 하는지도 사라졌다.

    둘째 부분은 아주 간단하다. 아래의 통계를 보시라. 

       
     
     

    입이 백 개라도 할 말 없는 상황

    이것이 나 같은 사람들이 한 비판적 지지의 결산표다. 구악보다 신악이 더 하다더니, 이건 해도 너무 했다. 1990년대 이후 구 지배집단에 대한 반대세력이 한국사회 정치적 헤게모니를 잡아가는 과정과 양극화 심화 추이가 정확히 일치한다.

    아무리 부패 안 했다고 주장하면 뭐 하나, 백성의 살림살이를 곤궁하게 했는데.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첫째로 거론한 당선가능성 부분은 여기서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지경에서 뒤집힌다면 그건 기적이다. 기적은 인간의 합리적인 행위 영역을 벗어나는 사태이므로 이런 글에서 논할 바가 못 된다.

    그렇다면 고민이 시작된다. 어떻게 하면 내 한 표를 가장 효율적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쓸 것인가.

    서두에 밝혔듯이 나에겐 비판적 지지라는 유전자가 박혀 있다. 정치 뿐만 아니라 매사에 비판적 지지의 정신으로 임한다. 그래서 선택이 쉽다. 100% 지지할 대상을 찾아 불면의 밤을 지새우지 않아도 되니까.

    첫째, 한나라당은 찍지 않을 것이다. 둘째, 그렇다면 당선가능성을 보고 찍을 사람은 없다. 셋째, 이 경우 당선과 상관없이 백성을 곤궁에서 구하는 경제 활성화와 양극화 해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방향으로 한 표 던지면 그만이다.

    결론은 버킹검, 아니 권영길이다. 민주노동당을 100% 지지할 필요는 없다. 비판적 지지자의 사전에 100%란 것은 없으니까. 나 자신도 100% 못 믿는데 어떻게 남을 100% 믿는단 말인가.

    전통적인 비판적 지지 그룹은 기존 보수 정치권에서 하나를 골라 비판적 지지를 할 때는 그렇게 대범할 수가 없더니, 유독 민주노동당이 대상이 되면 갑자기 확대경을 꺼내 주도면밀하게 살피기 시작한다. 이해할 수 없다. 왜 잣대가 달라지나?

    보수 정치권엔 대범, 민주노동당엔 깐깐

    권영길을 찍으면 사표가 될까봐? 어차피 누굴 찍더라도 다 사표가 될 상황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한미FTA를 반대하는 세력의 지분이라도 늘려놔야 한다. 한미FTA 반대자의 입장에서 보면 권영길을 찍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셈이다. 한미FTA 반대율보다 민주노동당 지지율이 떨어지는 사태를 이해할 수 없다.

    민주노동당이 제도 정치권 내에서 가장 이질적인 집단이다. 지금 국민은 기존 정치권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외부로부터의 충격을 좋아하는데, 진보정당의 약진이야말로 대한민국 제도 정치권에 가해질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될 것이다. 우리 정치권 구조조정 필요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민주노동당이 수권 능력이 없다거나, 국가경쟁력을 말아먹을 걱정일랑은 접어둬도 좋다. 왜냐하면 수권 능력 이전에, 수권 가능성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나라를 말아먹고 싶어도 대권을 잡아야 말아먹을 것 아닌가. 그러므로 민주노동당에게 던지는 표는 가장 유효하며 동시에 가장 안전한 표다. 실패할 가능성이 0%다.

    비판적 지지 그룹은 구 민주당 지지자들이다. 민주노동당이 구 민주당보다 더 썩었는가? 귀족노조가 구 민주당 조직보다 더 부패했는가? 내가 과문해서인지 몰라도 안 그런 것 같다. 그러므로 유독 권영길만 ‘비판적 지지’의 대상에서 제외할 이유가 없다.

    2007년에 나타난 민심은 90년대 이래의 정치적 흐름에 대한 파산 선고라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이 노무현, 이명박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는 사태의 본질이 아니다. 본질은 지금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묻지마’지지 행태가 나타날 정도로 사람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신, 구 한국사회 지배그룹의 국가경영 결과다.

    이대로는 안 된다. 충격이 필요하다. 권영길에게 던지는 표가 보수 일색인 제도정치권에 충격을 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한 표 행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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