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안 원유 유출, 단일선체 허용한 정부가 자초
        2007년 12월 17일 01: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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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7일 태안 앞바다에서 유조선 헤베이 스피리트호가 삼성중공업 소속의 선박과 충돌해  대략 1만 톤 가량의 원유가 유출되었다. 그 결과는 재앙이다. 영문도 모른채 밀려드는 검은 기름덩어리 앞에서 넋을 잃고, 바다와 갯벌이 오염되고 양식장이 썩어가는 것을 맥없이 지켜봐야 하는 주민들.

    시꺼먼 기름을 걷어내기 위해서 줄을 지어 달려가는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마주치는 것은 검은색과 무지개 색으로 낯선 바닷가였다. 눈보다 빠른 코가 해안가 언덕을 넘기도 전부터 역한 석유 냄새를 맡으며, 재앙과 절망의 크기를 알려줬다.

       
     ▲ 기름을 뒤집어쓴 뿔논병아리 (사진=환경운동연합)
     

    유조선 사고를 비롯하여, 기름 유출에 의한 해양오염 사고는 드문 일이 아니다. 지구 전체에서 매년 30억 톤의 원유가 땅 밑으로부터 뽑아 올려지고 먼거리를 운송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고들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전세계적으로 매년 1,000여 건의 크고 작은 기름 유출사고가 발생하고 있으며, 100만 톤 정도의 원유가 유조선 사고나 선박 운송 과정에서 바다로 유출된다고 알려져 있다. 1978년에 프랑스 브리타니 해안에서 침몰된 22만 톤급 아모코카디즈호 사건은 역사상 가장 큰 유조선 해양오염 사고로 기록되어 있으며, 1989년 알래스카주 바다에서 발생한 엑슨 발데즈호 사건도 널리 알려져 있다.

    유조선 사고가 아니더라도, 1979년 멕시코 국립석유공사 페멕스가 소유한 멕시코만의 유전 파이프가 파손되어 44만 톤의 원유가 바다로 유출되는 사고도 있었다.

    가장 최악의 해양오염사고는 1차 걸프전 당시에 벌어졌는데, 이라크가 쿠웨이트에서 철수하면서 정유 부두를 폭파하여 100만 톤의 원유가 유출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천재지변이나 실수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전쟁 전략의 일환으로 고의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전세계적으로는 태안 백 배 규모 유출

    한국을 보더라도 유조선 사고 등으로 인한 해양오염사고는 빈번했다. 한 해 크고 작은 사고가 300건 쯤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큼직한 사고만 살펴보더라도, 1987년 서해안에서 범양상선 유조선 사고가 있었고, 1993년에는 여천 가막만에서 유조선이 충돌하여 천여 톤의 기름이 유출되었다.

    그리고 태안 앞바다의 사고가 있기까지 가장 큰 사고로 기록되고 있는 것은 1995년에 여수 앞바다에서 좌초된 씨프린스호 사건으로 5천여 톤의 기름이 유출되기도 했다.

    한국은 1차 에너지의 65%를 석유로 충당하고 있는데(2006년도 금액 대비), 잘 알다시피,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당연히 수입되어 들어오는 석유는 유조선을 이용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해양오염 사고의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한국은 2006년 1년 동안 8억 8천 9백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했는데, 이번에 사고가 난 14만 6,000톤급 유조선 ‘허베이 스프리트’호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한 해 773대의 유조선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셈이다. 즉 허베이 스트리트급 유조선이 매일 2대씩 한반도 해상으로 지나고 있는 것이다.

    1995년 씨프린스호 사고 이후 대형 유조선 사고가 난 것이 12년만이라지만, 그동안 사고가 나지 않아서 오히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한반도 연근해를 매일 2대씩 운행하는 유조선의 절반이 사고에 취약한 단일선체의 유조선이다. 해양수산부의 통계에 의하면, 12월 현재 국내 유조선의 이중선체 현황은 41%에 불과한 반면, 절반 이상인 59%가 단일선체 유조선을 사용 중이라고 한다.

    1989년 3월 미국의 알래스카주 프린스윌리엄 해협에서 좌초된 유조선 엑슨 발데즈호 사건 이후, 단일선체 유조선을 사용금지하는 국제적인 흐름이 형성되었다. 이 사건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피해규모가 대규모로 확대된 것은 25밀리 두께의 철판 하나로만 구성된 선체에 기름을 담은 단일선체의 선박구조 때문에 기름유출량이 커진 것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95년부터 단일선체 유조선 사용을 금지하였고, 유럽은 2003년도부터 이를 금지하고 있다. 또한 2010년부터는 국제협약(MARPO : International Convention for the Prevention of Marine Pollution from Ship)에 따라서 모든 단일선체 유조선 사용이 금지될 예정이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국제협약의 발효 시기까지 단일선체 유조선 사용 금지를 유예함으로써, 이번과 같은 대재앙을 자초했다. 또한 국내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정유회사들도 비용이 적게 드는 단일선체 유조선을 선호하면서 이 사고를 배태했다. 올해 1월 현재, S-오일은 이중선체 유조선을 전혀 이용하고 있지 않으며, 이번에 사고가 난 현대오일뱅크는 이중선체 유조선 이용율이 17%에 불과했다.

       
     ▲ 사고가 난 허베이 스프리트. 매일 이런 크기 유조선 두 대가 영해로 들어온다. (사진=해양경찰청)
     

    한편 이와 같은 상황은 위험이 지리적으로 어떻게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엑스 발데즈호 사건 이후에 소위 선진국들은 이중선체 유조선 사용을 의무화하면서 유조선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갔지만, 개발도상국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덕분에 선진국에서 쫓겨난 단일선체 유조선이 개발도상국에서 집중적으로 사용되면서, 유조선 사고에 따른 위험 가능성이 비(非)선진국 지역에 지리적으로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한국처럼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 반면 위험규제가 낮은 곳에 다른 지역보다 훨씬 큰 위험이 집중된다.

    성과 없이 끝난 발리 총회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사회체제에서 유조선 사고와 같은 해양오염 사고는 ‘더불어 살아가야 할 위험’인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것도 끝내야 할 시점이 점차 다가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인류가 퍼내서 쓸 수 있는 석유의 양의 최대점이 다가오고 있다는(일부에서는 벌써 그 최대점을 지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석유정점’의 문제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이 공급측면에서의 문제라면, 소비측면에서 보면 석유 등의 화석연료의 소비에 따른 온실가스 증가로 야기되는 기후변화의 심각성 때문이기도 하다.

    태안 해양오염사고가 발생한 시기,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시작되면서 전세계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 회의는 2012년으로 끝나는 교토의정서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 체계를 갱신하고, 올해 다시 확인된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부합하는 보다 강화된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합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대책없는 ‘몽니’와 일본과 캐나다의 기회주의적 동조로 회의 초부터 난항을 거듭했고, 애초의 명시적인 목표를 제시한 문구는 사라지고 외교적 수사가 가득한 ‘발리 로드맵’이 총회 폐막 후에야 겨우 타결된 것이 그나마 성과로 평가된다.

    발리 총회를 평가하면서 한 환경단체가 논평한 것처럼, 시시각각 가시화되고 있는 기후변화의 위기 속에서 세계는 ‘달팽이보다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이대로라면 석유체제의 우리 사회는 유조선 해양오염사고에 비할 수 없을 만큼의 대재앙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그 대재앙이 시작되었다고 할 것이다. ‘석유정점에을 직면하여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서 이라크며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침략과 전쟁은 태안의 재앙을 뛰어넘는다. 또 기후변화가 야기하는 생태계의 혼란과 생물다양성의 축소 역시도 태안의 그것과 비교될 수 없다.

    한 학자는 ‘자본주의의 종말’을 이야기하면서 생태계의 한계, 특히 석유공급의 한계를 이야기하고 있다(엘마 알트파터). 지금으로써는 별로 믿기지 않지만, 이 끔직한 자본주의에 종말이 올 것이라는 예측은 반갑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기계가 지구를 있는 힘껏 빨아 쓰고 뱉어버린 끝에 오는 종말이라는 것이, ‘지구의 종말’이 아닐지 걱정을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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