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승무원이 되고 싶지만 …”
        2007년 12월 13일 06: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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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이라는 숫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긍정적인 숫자일 것이다. 88올림픽 이후로 88이라는 숫자에 부여된 긍정적인 힘. 그런데 나는 이제 88이라는 숫자를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올 것 같다.

    88만 원 하면 지금 나에게는 큰 돈이다. 하지만 내가 20살이 되고 독립해야 될 시기가 오고 혼자 살아가야 할 때가 온다면 과연 나는 한 달에 88만 원이라는 임금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허정연 / 삼산고 2학년
     

    아끼고 아껴서 조직 있게 계획을 짠다면 88만 원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88만 원도 안 되는 생활비로 사는 사람도 물론 있다. 하지만 지금 10대와 20대가 88만 원으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모든 마케팅의 대상이 된 10대와 20대들. 명품 마케팅으로 시작해서 온갖 마케팅의 유혹에 이끌리는 88만 원세대들. 그런 그들이 88만 원으로 산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88만 원으로 어떻게 사나?

    뉴스나 신문을 통해서 우리나라 실업률이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를 놀라게 했던 한 뉴스는 청소부를 뽑는 면접에 몇 백 명이 몰렸다는 뉴스였다. 청소부란 직업은 사람들이 꺼려 한다는 3D 직종이 아닌가? ‘어느새 그 정도로 우리나라가 달라졌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더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런 면접에 내가 가고 싶은 대학을 나온 사람도 면접을 보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우리나라가 이 정도까지 치닫게 되었을까.

    우리는 부모님이나 어른들에게 이런 소리를 종종 듣는다. “지금 하고 싶은 거 좀만 참고 오로지 공부만 해. 대학만 가면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어. 지금 공부 안 하면 후회한다”등등. 이런 종류의 말을 많이 들었다.

    허나 요즘은 대학에 가도 자신이 좋아하는, 자신의 전공을 살리는 강의를 듣는 것보다는 심각한 취업경쟁에서 조금이나마 버텨보고자 취직에 도움이 될 만한 강의를 듣는다고 한다.

    결국 청소년들은 대학을 위해 공부를 하고 대학생은 취직을 위해 공부를 해야 되는 꼴인 것이다. 그럼 결국 내가 하고자 하는, 내가 원하는 것들은 언제 할 수 있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지금 내 자신이 10대이기 때문에 실업률이나 정치적 문제보다는 현재 모든 10대들의 관심사인 입시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내가 지금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되고 싶은 것이 많았다. 검사, 대통령, 외교관, 변호사, 의사 등등 지금은 꿈도 꿈 수 없는 직업들이다. 어릴 때는 내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에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헌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말한 것이 참 창피하다. 지금의 나로서는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나의 꿈은 여승무원이 되는 것이었다. 근데 요즘 여승무원이 되고 싶다는 것도 포기상태이다.

    여승무원이 되고 싶지만…

    대학마다 항공운항과의 경쟁률이 엄청나다. 항공운항과를 나와도 항공사에 취직하지 못하고 놀고 있는 사람도 태반이다. 이런 우리나라의 현실이 한창 미래에 대한 상상과 꿈들로 가득 차야 할 청소년의 꿈들을 암흑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점점 더 직업은 다양화된다는데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다양성이란 꿈도 꿀 수 없다. 교복과 두발에 대한 자신의 권리도 갖고 있지 않은, 획일화된 학교에 살고 있는 이상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현재 우리나라 학교는 청소년이기 때문에, 청소년은 당연히 그러면 안 된다는 말들로 자신들의 말에 복종하고 자신의 의견을 말할 힘이 없는 존재로 학생들을 양성하고 있다.

    나 또한 학교를 다니는 민주주의 대한민국 청소년으로서 학교에 있을 때는 나 자신이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것인지 공산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지 혼동된다. 학생을 위한 학교여야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학교가 학생을 위하기보다는 오히려 학생이 학교 눈치를 봐가며 학교를 위한 학생이 되고 있다.

    학교는 학생들의 건의를 들어 줄 것 같이 유도하면서 결국에는 여러 가지 변명과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가면 딱 잘라 거절한다. 이런 것들이 반복되면서 이제 학생들은 건의사항이 있어도 ‘어차피 안 들어 줄 텐데 내 입 아프게 왜 말해’라는 생각이 박혀 버렸다.

    그런 생각이 박히자 학생들은 더 이상 능동적이기보다는 수동적으로 변해 버렸다. 과거에 우리나라에는 여러 가지 혁명들이 많았다. 대학생들이 시위해서 경찰들과 마찰을 일으키며 다신들의 권리를 되찾은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 학생들이 시위하는 현장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시위를 하려고 해도 자신에게 손해가 될까봐 모두가 겁쟁이가 되는 것이다. 학생들은 어느새 점수의 노예가 되어 수행평가 하나하나에 목숨을 걸고 시험 점수 하나하나에 목숨을 건다. 이러한 현실에서 자신의 점수를 버리고 시위할 학생들이 누가 있을까.

    아무도 시위하지 않는다

    동거권이라 하면, 나는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싶다. 우리나라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당연한 청소년의 권리라고. 다른 나라를 둘러보면 20대 뿐만 아니라 10대 청소년들도 자신들이 좋아하는 이성과 함께 사는 것이 특별히 남들의 관심을 끌기보다는 당연한 것이라고 인정된다.

    크게 반대하는 부모님들도 없으며, 프랑스에서는 아예 학교 안에 유아 시설이 따로 있을 정도이다. 허나 우리나라에서 동거라는 단어는 너무나도 검은 의미가 되어 있다.

    부모님께 동거에 ‘동’자만 꺼내도 쫓겨날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자식 취급조차 안 할 수도 있다. 동거라는 것은 단순히 성적 문제가 아니라, 결혼하기 전에 서로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된다.

    동거라는 것이 오히려 높은 이혼율을 막는 방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동거권이 우리 청소년이 가지고 있는 권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생들은 그것이 당연한 권리인 것도 알지 못하며, 두발에 대한 권리마저 당연한 권리임을 알지 못하고, 학교에서 머리 자르라면 자르고 묶으라면 묶으면서 당연한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

    청소년의 자율성도, 권리도 인정되지 않는 국가에서 청소년이 주체성을 가지고 힘을 발휘하기에는 청소년들의 힘이 너무 약하다.

    10대도, 20대도 불쌍하지만 30, 40대, 모든 세대들이 다 불쌍한 것 같다. 10대와 20대가 마케팅의 대상이 되면서 실제 돈을 내는 사람은 그들의 부모인 30, 40대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심각한 마케팅이 교육 마케팅인 것 같다. 사교육이 들끓고 모든 학생들이 학원이나 과외 등 기본적으로 한 개씩은 할 것이다. 부모들은 사교육 마케팅에 휘말리고 있는 것이다.

    사교육에 반대해도, 남의 자식 다하는 학원이나 과외를 내 자식이 안하면 불안하여 아이들은 부모의 힘에 의해 사교육 시장으로 내던져진다. 그러면서 부모들은 아이를 사교육 시장에 내다놓고 그것으로 아이가 다른 애들보다 뒤처지지는 않겠지 하며 잠시나라 한숨을 돌린다.

       
     ▲ 한 학원이 주최한 입시설명회에 참가한 학부모들
     

    결국 돈은 돈대로 나가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뿐만 아니라 학원이나 과외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자율성조차 잃어버리고 그 결과 과외 중독, 학원 중독이 돼버린다. 학원이나 과외를 다니다가 끓으면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여 학생과 사교육은 더 이상 뗄 수 없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들은 사교육을 더욱 팽창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이제는 사교육 시장을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이와 같은 우리나라 사교육 마케팅의 결과로 나타난 부작용 중 하나는 현재 우리나라 초등학생 10명 중 7명이 정신장애나 정신병이라는 사실이다.

    놀아야 할 시기에 강제로 공부라는 노동을 하고 있으니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자라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나중에는 모든 사람이 정신병자가 될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정상인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일지도 모른다.

    이런 세상에서는 정상이 오히려 비정상

    내가 제일 화가 났던 것 중 하나는 정부가 대안을 알면서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88만 원 세대』 책 속에서 작가는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근데 그 대안들이 작가가 처음으로 제시했던 것이 아니라,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제시해왔던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뿐 그러한 대안들을 해볼 시도조차 안 하고 있다니 이것이 대한민국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계속 이런 상황으로 간다면 대한민국은 가장 희망 없는 나라, 가장 희망 없는 국민들이 사는 나라가 될 것이다.

    언제쯤 우리나라 모든 학생들이, 모든 사람들이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 수 있을지? 언제쯤 세대 간 착취와 세대 간 경쟁이 없어질런지? 이 끊이지 않는 승자독식게임의 끝은 어딜지 알지 못하지만, 마음 속에 희망의 씨앗을 심으며 그런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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