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 위에서 만난 무서운 지지자들
        2007년 12월 13일 07: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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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비극적인 것은 여전히 지지자가 건네는 따뜻한 음료에 감동을 받아야 한다는 것. 5년이 지났다면 그것 외에 또 다른 뭔가가 받쳐주며 상승효과를 이뤄내야 하는데 말이지.

    시린 겨울, 대통령 선거운동을 하는 우린 추워 보인다. 때로는 수고한다는 뜻으로 지지자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참을 망설이다가 연애편지 건네듯, 정성 담긴 음료수를 주고는 쏜살같이 사라진다. 그래도 안쓰럽기는 매한가지.

    유권자보다 더 빠르게 차가와진 당원들

    그래, 2002년도 똑같았다. 하나도 변한 게 없다. 처음에는 2002년보다 못했다. 음료수 하나 주고 가는 사람도 없고,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이며 웃는 사람도 없고 겨울바람처럼 냉담했다. 하지만, 선거운동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넘어서면서 반응을 보인다. 이제야 2002년 수준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선거 운동 중인 마포 지역 민주노동당 당원들.
     

    이런 거 외에 우리를 감동시키는 건 없을까. 따뜻한 음료는 언제라도 고맙고 소중한데, 이걸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그 무엇은 또 무엇일까. 지지율인가. 그것도 아닌 거 같다. 언론노출 빈도. 그것도 아니다.

    일체감. 그게 문제다. 당원들이 선거를 주시하고 함께 참여하는, 일체감. 문제는 그거다.

    정파간의 반목과 갈등. 무능한 정파의 치열한 아집. 승자독식의 사회를 없애겠다는 진보정당에서 승자독식이 우려되는 비례대표 선출방식이 중앙위원회에서 압도적으로 통과되기도 했다.

    결국 당원들은 유권자보다 더 빠르게 차가워졌다. 가장 진보적인 유권자들인 절반에 가까운 당원들에게 외면당하는 기막힌 현실. 특별당비는 10분의 1도 모으지 못했다. 마포구위원회 역시 유세차를 마련하기 위해 다른 지역위원회처럼 돈을 꾸러 다녔다.

    돈을 꾸러 다니다

    당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골치 아픈 문제들로, 우린 일체감을 상실한 채 선거에 돌입했다. 냉소적인 지지자는 한두 번 경험한 게 아니다. 그건 얼마든지 극복한다. 이제까지 당이 걸어온 길이 그랬으니까. 내가 걸어온 길도 그랬으니까.

    냉소가 심할수록, 우리의 일체감은 더욱 강렬해졌다. 그 강렬함이 거리의 냉소를 견디는 힘이었다. 선거기간 동안 우리가 반성해야 할 점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일체감을 극대화시키지 못하고 선거에 들어가게 된 것.

    두 번 다시 반복하면 안 되는 실책. 현장에서 느끼는 일체감이 결여된 것에 따른 공허. 이걸 숨기면 안 된다. 이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면 그건 차라리 죄악에 가깝다.

    따뜻한 음료에만 취해 있다면 찬물을 선사하고 싶지만, 거꾸로 따뜻한 음료의 의미를 폄하해서도 안 된다. 오직 그것밖에 없는 건 비극이지만, 어쨌든 그 하나하나에 깃든 정성은 눈물처럼 슬픔의 결정체일 수도 있다. 그 결정체의 의미는 과소평가될 수 없다.

    홍대 전철역에서 무가지 나눠주는 아줌마

    홍익대 전철역에서 무가지를 나눠주는 50대 아주머니. 내가 연설을 할 때마다 에스키모처럼 모자를 푹 눌러쓰고, 유심히 듣는다. 연설이 끝나면 박수도 보낸다. 며칠 전, 연설이 끝난 내게 살며시 다가와 아들, 딸들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한다고 말했던 그녀다.(아래 사진)

       
      ▲사진 왼쪽이 필자.
     

    새벽에 일어나 2시간 동안 무가지를 나눠주고 받는 돈은 시간당 5천원이란다. 밤에도 석간 무가지를 2시간 동안 나눠주고 1만원을 받는다. 하루 4시간, 2만원.

    한달이면 40만원. 생활을 꾸려나가기에 턱없이 부족해서 낮에는 파출부로 일한다. 그래야 먹고 산다.

    “그러니까 저도 비정규직이네요. 5년 동안 일했어요. 계약서 같은 건 없고, 그냥 회사에서 주는 대로 받아요. 최저임금이 있는 줄 처음 알았네요.”

    저런 사람들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고 있는 건 무서운 일이다. 그런 사람들의 지지는 채찍이며 회초리다. 매서운 회초리를 맞듯 아프다. 마냥 기분 좋지만 않다는 얘기다. 잘해야지, 민주노동당.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권영길 후보 찍을 거예요. 애들도 권영길 찍으라고 했고….”

    "이젠 무조건 민주노동당이지만…"

    얼마 전 홈에버 신도림점의 개장을 저지하기 위해 이랜드 비정규 노동자들이 모여 집회를 열었다. 우리도 함께 했다. 우린 여름을 함께 보낸 사이지만, 선거운동 공간에서는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 아주머니들이 목청 높이 외치는 ‘기호 3번 권영길’이 그렇게 뭉클할 수 없었다. 친한 조합원이 술자리에서 말했었다.

    “이전에는 정치에 관심도 없었죠. 투표를 해도 그냥 한나라당을 찍었을까, 어쨌든 별로 따져 본다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이젠 무조건 민주노동당이지만.”

    그날 신도림역에서 겨울비를 맞으며 빵한조각, 그야말로 빵한조각으로 끼니를 때우며 투쟁하는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의 절규에 가까운 구호.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 권영길.”

    이제는 세상이 바뀌지 않으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리라. 누가 그걸 알려줬지. 우리가 아니었나. 여기에 내가 ‘세상을 바꾸는’ 이란 메인 슬로건이 사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얘기할 수는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그건 또 다른 우리끼리 얘기니까.

    민주노동당은 인생이 꼬인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싶어하지 않았던가. 인생 더럽게 꼬인 사람들이 ‘인생 더럽게 꼬인’ 이유가 스스로가 게을러서, 나태해서, 사주팔자 때문이 아니라, 이 망할 사회의 문제라는 걸 함께 인식하고 싶어하지 않았던가.

    민주노동당 내부도 분명 꼬여 있다. 하지만, 당장 어쩌겠는가. 한사람의 인생에도 굴곡은 있는데 하물며 세상을 바꾸겠다는 정당이 마음먹은 대로 순탄하게만 굴러가겠는가.

    생존권을 걸고 지지하는 노점상들

    마포와 서대문 지역에서 노점을 하는 이웃들. 노점 입구에 ‘세상을 바꾸는 진보 포장마차’라는 작은 현수막이 게시되어 있다. 참 노골적이다. 다른 정당의 입장에서 보자면 눈엣가시다. 한나라당 구청장의 입장에서 보자면, 어디 두고 보자란 마음을 먹을 만도 하다.

       
      ▲한나라당 출신 구청장에게는 눈엣가시처럼 보일 ‘진보 포장마차’
     

    구청단속이 더욱더 심해질 게 뻔한데도 그들은 생존권을 걸고 민주노동당을 지지한다고 커밍아웃을 했다. 나 같은 열성당원도 집 문패에 ‘민주노동당’을 걸라면 주저할 텐데….

    당의 지지율이나 높아서 확실하게 방어를 해주면 또 모를까, 이건 생존권을 건 모험이고, 세상을 향한 서러운 외침이다. 수년의 세월이 흘러, 도시 노점상들의 확고한 지지를 얻게 된 것이다.

    생애 첫 투표. 열아홉살 새내기 유권자에게 이 구호를 붙이는 게 아니었다. 생애 첫 투표. 바로, 이랜드 아주머니들, 새벽과 밤엔 무가지를 낮에는 파출부로 일하는 삶에 지친 아주머니, 거리를 지키는 노점상이 생애 처음으로 진보정당에 투표를 하는 ‘장엄한 찰나’에 이 문구가 쓰여야 한다.

    비난적 지지

    민주노동당에 대한 ‘비난적 지지’가 확산되고 있단다. 당에 따뜻한 기대를 품었다 돌아선 지지자가, 당내에 불거졌던 문제에 실망한 유권자가, 다른 정당의 후보에게 차마 투표는 하지 못하겠고, 마음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민주노동당에게 투표를 한다더라. 그래서 비난적 지지라. 참 웃지 못 할 얘기다.

    이 얘기를 듣고 황지우 시 한 구절이 문뜩 떠올랐다.
    “슬프다, 내가 사랑한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만약 당내에 더 이상 일체감을 상실시키는 행위들이 비례대표 선거 등에서 나타날 때, 우린 아마 폐허를 경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대선이고, 우리는 인생이 꼬인 생애 첫 투표자들과 마주하고 있다. 사랑의 맹세야 지키든 말든, 각자의 몫이지만, 세상에 대한 치명적 진실을 그들에게 수없이 외쳤던 걸 어떻게 되돌릴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고, 서러운 사람들과 사연들로 가득하고, 그걸 함께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미 말했던 걸. 그 말을 어떻게 주워 담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게 바로 내가 대선에서 시치미를 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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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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