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L과 동거 못하면 노동계급과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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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2월 11일 04: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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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기표(존칭 생략)의 「자주-평등 동거노선 폐지돼야」란 글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든다. 필자는 우선 홍기표의 글에서 네오콘의 냄새가 물씬 난다는 점을 밝히며, ‘NL과의 동거’를 반대하지 않고, 민주노동당이 여러 이념과 대립을 용해시키는 뜨거운 ‘용광로’가 되기를 바란다는 점을 함께 밝힌다.

    필자는 이번 홍기표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였다. 민주화 이후 열린우리당과 그 지지자들의 공간이 살아남지 못하도록 민주노동당이 이 공간을 흡수해야하는데, 이것에 실패하는 이유가 이른바 민주노동당의 ‘자주-평등의 동거주의 전략’ 때문이고, 따라서 민주노동당 내 좌우 이념노선(민족주의 대 사회주의)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고, 민족주의를 몰아내든가, 아니면 분당도 고려해보자.

    필자는 이번 홍기표의 글이, 지난번 사민주의 이념 논쟁을 제안한 최병천의 글의 논조와 약간의 차별성은 있지만, 민주노동당의 위기를 ‘순수한 이념의 부재(사회주의든, 사민주의든, 민족주의든)’로부터 진단하고, 불순물을 제거하는 ‘순수한 이념적 정체성 찾기’를 그 해법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유사성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필자가 최병천을 우려하였듯이, 홍기표도 마찬가지로 우려한다. 그 이유는 첫째, 이들의 방법론이 자기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이념적 이데아론’으로부터 출발함으로써, 민주노동당 위기의 인과 관계와 책임 소재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서, 위기의 원인을 자기 탓보다는 이념에서 찾고, 그 이념의 소유자들을 정적으로 탓한다는 점이다.

    홍기표 주장은 ‘순수한 이념적 정체성 찾기’

    홍기표의 말대로, 민주노동당이 무능력하고 위기에 빠진 이유가 ‘자주-평등의 동거주의 전략’ 때문인지 의문이 든다. 그 같은 전략을 당 지도부가 공식적으로 채택해왔는지도 궁금하고, 민주노동당은 그 출발부터 다양한 세력들이 함께 만들었고, 공존해왔다는 점에서 보면 동거주의 전략(?)은 인과 관계의 독립변수라기보다는 일종의 상수라고 보는 게 적절하다.

    때문에 당 위기의 원인을 불순물(?)인 ‘민족주의이념’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으로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고 그것이 어렵다면 그 속단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둘째, ‘이념’으로부터 출발하는 접근법은 결국 ‘정치’와 ‘소통’을 포기하게 된다. 이념적 접근은 미국의 네오콘과 회교근본주의 노선이 보여준 것처럼, 자신들의 신념 체계에 반하는 세력과 사람들을 ‘절대 악’으로 적대시하는 일방주의와 폭력적 패권주의 및 진리의 독재정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이념적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념적 순수성과 신념 체계만을 ‘절대 진리’로 숭상한 나머지, 자신들의 세계와 다른 다양한 인간들, 다양한 생각들을 ‘악’으로 생각하고, 다양한 생각들을 드러내게 하거나, 조정하거나, 소통하거나, 합의하거나 하는 것들을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불필요한 것으로 부정하려 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메시아를 영접한 사람들이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주장하는 것과 유사하다. 다양한 생각과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는 곳에서는 ‘정치’는 실종되고, ‘폭력’만 난무할 뿐이다. 결국에는 이념적 정파성이 강한 소수의 사람들 내에서도 이념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새로운 지배엘리트가 등장하여 소수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순수 이념’은 독재로 귀결

    다시 말해서, ‘정치’와 ‘공학’이 다른 점은, 정치에서 다루는 인간은 유적 존재로서의 인류나 단수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복수로서의 인간들이라는 사실이다.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드러내고 소통하는 것이 정치의 핵심요소이므로, 그것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소통을 통해서 열리고 드러나는 공적 세계의 창조는 불가능할 것이다.

    만약 정치와 소통이 아니라 사람들을 상대로 이데아에 기초한 공학적 접근(이념계몽과 조직화)을 사용한다면, 다양한 생각과 다양한 사람들은 폭력적으로 해체당할 것이고, 결국 이념적 순수성과 이념적 동질성이 강한 소수의 사람들만이 기계처럼 살아가는 전체주의 사회를 만들어 낼 것이다. 이러한 사회는 소련과 북한으로 족하다.

    셋째, 그렇다면 대안은 어떻게? 이념이 아니라(이념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와 소통의 리더십을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필요가 있다. 이념적 근본주의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리더십의 특징은 ‘전체주의 리더십’으로 그 핵심은 ‘감춰진 엘리트주의’, ‘이념과 계몽에 따른 동원’이다.

    이러한 리더십의 배경에는 인간을 복수로서의 인간들로 보지 않고, 유적 존재로서의 인류나 단수로서의 인간을 상정하고 있으며, 이들에게 진리와 선을 전파하여 이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

    이런 전체주의적 리더십으로는 민주화 이후와 지구화에 따른 변화된 우리 사회의 복잡성과 각 인간들의 개인주의 성향과 다양성 및 파편성을 꼼꼼하고 세심하게 다루고, 설득하고 함께 소통하고, 연대하기엔 부적합하다.

    필자는 이념으로부터 출발하는 ‘전체주의적 리더십’이 아니라 생활세계로부터 출발하는 ‘소통의 리더십’을, 공학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공학적으로 단순화하여 강조하고자 한다.

    ‘소통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전체주의적 리더십’에서는 자신이 생산한 이념과 가치(정책 포함)가 가장 우월한 상품임을 강조하면서 이것을 어떻게 단순명쾌하고 쉽게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판매(selling)’가 중요시 된다.

    하지만, 소통적 리더십은 단순 판매를 넘어서 마케팅을 추구한다. 여기서 마케팅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기성품을 판매하기보다는 대중들의 다양한 선호와 욕구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그것에 응답하는 ‘맞춤형 상품’의 개발과 소통의 언어에 관심을 갖는다.

    소통적 리더십은 대중의 선호와 욕구에 기초한 ‘맞춤형 정책’이며, 이것이 일상적으로 가능하기 위한 ‘신뢰 구축’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탈권위적이며 개방적이다.

    요약해보면, 홍기표의 주장대로라면, 즉 운동권적인 마인드가 강한 민주노동당 내에서 NL과도 동거할 수 없다면, 노동자계급과도 동거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왜냐하면 노동자계급의 다수가 이념적 정파적 성향과 정당 일체감이 약한 유동성이 큰 부동층이라는 점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을 NL의 민족주의를 대신하여 PD의 사회주의로 가득 채운다고 하더라도, 전체주의 리더십이 존재하는 한 민주노동당의 위기는 해소될 것 같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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