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넌 찍을 사람이라도 있잖아"
        2007년 12월 11일 02: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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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노회찬 후보를 지지했고, 지금도 노회찬 후보가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가 되지 않은 것에 대해 자다가 벌떡 일어날 만큼 안타까워 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물론 권영길 후보를 당연히 찍긴 하겠지만 당원으로서의 의무인 선거운동에도 소극적이고 주위 사람들에게 대선 얘기도 하기 싫고 그랬다.

    어머니가 "이번에도 권영길이냐?"고 물을 때 “응” 한마디만 하는 딱 그 정도의 마음이다. 며칠 전 친구 한 놈을 만났다. 친한 친구는 아니었다. 그래도 생각날 때는 소주 한 잔 하던 친구였다.

    5년 전에 권영길 후보를 찍으라고 했더니 “난 노무현이야” 하고 단 1초도 생각 안 하고 얘기한 친구였다. 그 친구는 노무현의 ‘시대정신’이 권영길의 진보보다 더 소중하다고 말했다. 세상 살다보니 자신이 운동하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잔뜩 기대에 차고 신이 나서 노무현을 얘기하던 친구였다.

    물론 나한테는 감히(?) 노무현을 찍으라고 직접적으로 선동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 친구를 대선을 열흘 남짓 앞두고 만났다.

       
      ▲2002년 대선 때 노사모들이 유세에 참여한 모습. 
     

    “야. 대선이 참 그렇다. 뭐 이리 조용하냐? 넌 누구 찍을 거냐?”
    “투표 안 할 것 같은데”

    “정동영은?”
    “정동영은 시대정신이 없잖아. 대통령감은 아니지. 그저 딱 통일부 장관감이지 대통령은 아니야”

    “그럼 문국현은?”
    “그러니까 문국현은 심정적으로는 찍고 싶은데 정작 손이 안 가, 손이. 노무현은 이거 되겠다 싶었는데 문국현은 그런 게 없어”

    “그럼 권영길이네”
    “흐흐흐. 그런데 말이야. 2002년에 권영길하고 노무현하고 조금 헷갈렸거든. 만약 2002년에 권영길 하고 정동영 나왔으면 당연히 권영길이고 2007년에도 권영길 찍었을 것 같은데. 한 번 노무현 찍고 열린우리당 찍고 그러니까 권영길은 완전히 어울리기 힘들게 되더라고”

    “그런 게 어딨냐? 어차피 문국현이든 정동영이든 이명박 될 건데 그러면 당연히 권영길 찍어야지”
    “그게 안 된다니까 그러네. 정동영은 싫고 문국현은 안 되고 권영길은 미안해서 못 찍겠는 거야. 미안해서”

    “야! 미안한데 왜 못 찍어. 미안하니까 더 찍어야지”
    “그게 미안한데, 이미 나하고 민노당, 그러니까 진보하고는 벽이 쳐진 것 같아서, 진보가 노무현 욕하는 거 보고 욱하기도 하고 좀 복잡해. 그래도 내가 만든 대통령이잖아”  

    “노무현은 욕먹어도 싸고. 그런데 이번 선거는 나도 통 재미가 없어. 노회찬 아저씨가 한 번 신나게 흔들어줬으면 했는데. 그것도 안 되고.”
    “야! 넌 그래도 찍을 사람이라도 있잖아.”

    그랬다. 이 친구가 갖고 있는 무력감은 내가 가졌던 대선에 대한 소홀함에 비교할 것이 안 됐다. 나야 선거운동이 하기 싫다는 것 뿐이지만, 노빠로 불리던 이 친구는 아예 선거 자체에 대한 심한 무력증에 빠진 것이다. 한때 대통령을 만들었다는 자부심만큼, 아니 더 크고 심하게 대선판에 대해 무기력해졌다고 했다.

    “그럼. 진보가 너희들 쪽에 어떻게 하면 되겠냐? 대충 노빠들 심정이 너랑 비슷하면 민노당이 좀 어떻게 하면 끌어올 수 있는 거 아냐?”
    “그게 되면 진작에 됐겠지. 우리가 보기에는 그래. 니들도 똑같아. 인정해야 돼. 선거운동이든 뭐든 재미로야 노무현 할 때가 최고야. 민노당에선 그런 느낌 못 주잖아. 뭐 정동영이나 문국현도 그렇고”

    이 친구와 얘기하다보니 더 아쉽다. 노회찬이 후보가 돼서 대선판을 한 번 휘돌리지 못한 게 아쉽고 심상정의 날카로움이 빛을 못 본 것 같아 아깝다. ‘미워도 다시 한 번’ 이라는 영화 제목이 생각났다. 그래도 난 찍을 사람이 있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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