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일에도 추방당하는 이주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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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2월 10일 12: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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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오후 2시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입구. 무전기를 든 사복 경찰들과 함께 검은 옷 차림의 건장한 남자들 10여명이 ‘야릇한’ 눈으로 공원 안에 모여있는 이주노동자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다가가 출입국관리소 직원이냐고 물으니 대답없이 자리를 옮기며 시선을 피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농성중인 10여명의 이주노조 지도부를 포함해 200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은 단속반원들의 미행과 추적을 피해 하나둘씩 공원으로 모여들었다. 세계이주민의 날인 12월 18일을 앞두고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들이 개최한 ‘2007 세계이주민의 날 기념집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5일 이주노동자들이 농성에 돌입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사진=참세상)
     

    ‘세계이주민의 날’은 17년 전인 1990년 12월 18일 유엔총회에서 ‘이주노동자 권리보호를 위한 국제협약’이 채택된 것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한마디로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절’이고 생일날이다.

    이주노동자 권리보호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한국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의 생일날을 축하해줄 리가 만무했다. 지난 8월부터 대대적인 단속추방을 벌이고 있는 법무부는 생일잔칫날 바로 전날인 8일 김포 주변에서 집중단속을 벌여 40여명을 잡아들였고, 이날도 파티장에 경찰과 단속반원을 보낸 것이다.

    이주노조와 가깝지 않은 노동운동

    이주노동자들에게 사형과도 같은 강제출국을 각오하고 이날 200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이 마로니에 공원에 모였다. 이들과 연대하기 위해 한국노동자 300여명도 함께 했다. 노조 간부들보다는 인권, 노동,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주축이었다. 한국 노동운동은 아직 이주노동자들과 가깝지 않은 듯했다.

    민주노총 진영옥 수석부위원장은 ‘단속추방 중단! 출입국관리법 개악 저지! 이주노조 표적탄압 분쇄를 위한 결의대회’ 대회사에서 “야만적인 단속추방을 중단하고, 까지만 위원장과 이주노조 간부들을 즉각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다르 파코르 번더 꺼로”(방글라데시)
    “따르 파카르 본더 가르”(네팔)
    “단속추방 중단하라”는 구호가 각국의 언어로 불려졌다. 이주노동자들의 집회답게 필리핀 컬쳐그룹 이주노동자들이 연단에 올라 세계노동자들의 흥을 돋우웠다.

    “이주노동자가 노동자로 인정받을 때까지”

    한참 집회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 지난 11월 27일 표적단속으로 연행돼 청주외국인보호소에 붙잡혀 있는 이주노조 까지만 위원장의 목소리가 들리자 집회 참가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주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이 정부가 이렇게 탄압하고 우리를 감옥에 보냈습니다. 그런다고, 우리가 숨어서 지낸 게 아니라 스스로 나서서 거리로 나서서 투쟁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노동자로 인정받고 권리를 인정받을 때까지 투쟁합시다.”

    집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한국 정부가 잘못을 인정하고 이주노조 지도부 3인 석방, 단속중단, 출입국관리법 개악 중단 등 우리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투쟁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이주노조 표적탄압 중단과 까지만, 라쥬, 마숨 동지 석방 △이주노동자 단속추방 중단 △이주민 차별 폐지 △출입국관리법 개악 중단과 난민 권리 인정 등을 촉구했다.

    집회를 마친 노동자들은 종로를 거쳐 명동성당까지 행진해 들머리에서 마무리집회를 가졌다.

    잃어버린 생일을 되찾기 위해

    민주노총 서울본부 권순화 조직국장은 “한국정부가 유엔의 이주노동자 권리협약을 비준하고 있지 않는 것은 물론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인정하고 않고 인간사냥식의 야만적인 단속추방을 하고 있다”며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아직 생일조차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20년 전 노동자가 아니라 ‘공돌이’로 불렸던 한국노동자들은 ‘근로자의 날’이 아니라 노동자의 생일인 ‘노동절’을 찾기 위해 해마다 피를 흘리며 싸워왔다. 20년 후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의 생일잔칫날, 단속반원의 수갑을 피해 함께 모여 싸우고 있다. 잃어버린 생일을 되찾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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