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장애인 커플 이야기
    [진보정치 현장] 모든 동사무소에 수화보조기구 설치된 사연
        2012년 05월 04일 04:5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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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에 의정일기를 쓰기로 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한 성과를 진보정치를 고민하는 전국의 활동가들과 나누면 좋겠다는 당연한 생각으로 수락했는데, 고민을 하면서 방향을 좀 달리하기로 했습니다.

    제 글은 진보신당 구의원으로서 관악구에서 제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로 꾸며보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사연과 삶의 고단함을 가진 그 분들을 만나면서 제가 뭘 하려고 했고 무엇을 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 진보정치를 고민하는 다른 분들께도 작은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필자 주>

    폭행 현행범으로 연행된 커플 알고 보니

    장대비가 내리던 작년 7월 어느 날 밤, 한 커플이 술을 한 잔 하고 편의점에 들렀다. 음료수를 사들고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분이 거기 앉으면 안 된다며, 그 옆으로 옮겨달라고 청했다. 이들은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여겼고 따졌다.

    화가 난 편의점 노동자는 뭐라 뭐라 소리치는 여성의 목이 늘어난 면 티 위로 멱살을 잡았고 옆에 있던 남자친구의 눈에서는 불이 났다. 들고 있던 우산으로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의 팔을 밀쳤으나 우산이 미끄러지면서 그 사람의 목을 살짝 긁고 말았다.

    그는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경찰은 폭행 현행범으로 이 커플을 연행했다. 조사를 하는 내내 이 커플은 악을 썼고, 다니던 교회 집사님이 오셔서 도와주려 했지만 폭행 피해자와 가해자는 합의에 이르지 못해서 그 커플은 검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이들은 청각장애인 커플이었다.

    관악구 청각장애인 협회 소속 수화통역사 한 분이 이 일로 내게 도움을 청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상황은 금세 파악이 되었다. 그 편의점에 들러서 대신 사과를 하고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니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말 한마디만 경찰에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치료비로 40만원을 요구했으나 이 커플은 그만한 돈을 마련할 능력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했다.

    자~ 무슨 일을 해야 했을까? 나는 경찰이 쌍방폭행으로 처리하고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도 왜 어느 일방은 가해자로 다른 타방은 피해자로 처리되었는지 알아내야 했다. 이들을 조사한 경찰은 피신고자를 붙잡고 보니 이들이 청각장애인이어서 다른 의사소통 방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손짓 발짓으로 너희를 도와 줄 ‘정상인’을 데려오라고 했다.

    “우리는 너무 억울하다”

    그들은 수화로 겨우 안부인사 정도만 표현할 수 있는 교회 집사님을 ‘보호자’로 부른 것이었다. 이 집사님은 자초지종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경찰관과 편의점 노동자에게 무조건 사과하고, 선처를 호소했는데 그 결과가 폭행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는 것이었다.

    나는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이라는 것이 있고 이 규칙에 의하면 의사소통이 곤란한 자를 조사하는 경우에는 ‘의사소통 보조인’을 참여시키도록 하고 있고, 이도 어려울 경우를 대비하여 수화통역사와의 3자 통화가 가능할 수 있도록, 모든 경찰관서는 ‘수화통역 보조기구’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조치를 취했거나 보조기구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었다면 그 날 밤 이들을 둘러싼 정황은 쉽게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고, 어느 일방이 이처럼 억울하게 조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이 청각장애인 커플은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이들의 마음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온하지 않았다. 몇 번을 더 억울하다고 수화통역사 선생님에게 호소했다고 한다.

    이들의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나는 우리 진보신당 당원들과 상의하여 우선 서울경찰청에 정보공개를 요구했다. 지난 2년 동안 피의자나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던 사람 중 의사소통 장애인이 몇 명이었고, 이때 자격 있는 의사소통 보조인이 참여한 횟수가 어떻게 되며 경찰관서에 보조기구를 갖추고 있는 곳이 몇 군데인지 알아야 했다.

    청각장애인들 수다를 떨다

    며칠 후 해당 부서에서 전화가 걸려왔는데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들어야 했다. 보조기구는 갖추고 있지 않고, 다른 자료는 기록이 없어서 정보공개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규칙은 현실에서는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정보공개 청구가 막히자 관악구 청각장애인협회와 상의하여 우선 관악구의 모든 동사무소와 구청 등 민원인이 오가는 시설에 이 기계를 갖추게 하는 일에 착수했다. 인터넷을 이용한 화상전화 시스템이기 때문에 비용도 크지 않았다.

    관악구청은 이 사업에 예산을 배정하여 지금은 모든 동사무소와 관악구청과 보건소에 수화통역 보조기구가 설치되어 있고, 청각장애인들은 누군가와 수다를 떨고 싶을 때(청각장애인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한정되어 있어서 일상적으로 외로움을 느낀다) 동사무소에 가서 이 전화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 오래 전화기를 쓰는 바람에 업무에 지장이 있다는 몇몇 공무원들의 역 민원이 없지 않았지만 상황이 개선된 것은 분명했다.

    이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종합의료시설에도 이러한 시설이나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팔이 부러진 한 청각장애인이 병원에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수화통역사를 고용하고 있는 부산의 병원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치료를 받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병원이나 경찰서는 구의원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관악구청이 이들 기관에 장애인 복지 향상을 위해 해당 시스템이나 기구를 갖추도록 협조 공문을 보내도록 주문했고 공문이 발송되었다. 아직은 구청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 이 협조 요청을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는 듣지는 못했다.

    나는 자기 지역에서 진보정치를 위해 헌신하는 활동가들이 이 문제를 좀 더 알아볼 것을 주문하고 싶다. 우리 동네에는 수화통역사가 몇 사람이 일하고 있으며 관공서나 주요 공공시설 중 수화통역 보조기구를 갖추고 있는 곳이 몇 군데나 되는지 말이다. 당이 나서도 좋고 청각장애인협회를 비롯한 장애인단체와 공동으로 진행해도 좋을 일이다.

    마지막으로 경찰청에 꼭 한마디 하고 싶다.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을 지켜라!

    필자소개
    나경채
    정의당 공동대표. 전 관악구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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