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60년대로 온 걸 환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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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2월 07일 04: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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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전통적인 뮤지컬 영화가 나왔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헤어스프레이’다. 여기서 전통적이라 함은 턱없이 낙관적이고 즐거운 세계관과 밝고 쾌활한 주인공이 나오는 비현실적인 뮤지컬을 말한다. 이런 뮤지컬 영화는 1980년대가 시작된 이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영화 포스터.
     

    ‘헤어스프레이’는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이때는 자본주의의 황금기라 일컬어지는 시기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 서서히 불황이 시작되고 1980년대부턴 미국에게 악몽의 시기가 찾아온다.

    이 영화에서 진짜 주인공은 1960년대의 낙천적인 활력이다. 영원히 행복할 것만 같았던 시대. 이때는 또 아메리칸 드림이 미국의 내부에 관용성을 높이는 열정으로 분출된 시기다. 그 대표적인 부문이 흑인민권운동이었다.

    초창기 아메리칸 드림이 서부의 벽을 뚫는 것이었다면, 이 시기는 미국이 내부적으로 화학적 통합을 이루기 위해 각종 타자들의 목소리가 분출되던 때였다. 이 영화는 그런 분위기까지도 담아낸다.

    원래는 1988년도에 만들어진 ‘헤어스프레이’라는 코미디 영화가 원작이다. 이것은 2002년도에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만들어졌고 그해 토니상의 최우수 뮤지컬상, 최우수 연출상 등 8개 부문을 휩쓸었다. 그것이 다시 2007년도에 영화로 만들어졌고, 이번에 뮤지컬 공연과 영화가 모두 수입됐다.

    ‘슈퍼 헤비급 몸매’의 여주인공 트레이시가 지역 방송국의 댄싱퀸에 도전한다는 이야기가 줄거리의 뼈대다. 그 댄스대회가 바로 미스 헤어스프레이를 뽑는 행사였다. 그래서 제목이 ‘헤어스프레이’이고, 영화 속에선 헤어스프레이의 가스가 난무하며 트레이시의 머리는 스프레이로 한껏 부풀려 세팅되어 있다.

    엄마 역은? 정준하! 존 트라볼타!

    우리나라에서 다시 만들어진 뮤지컬에선 여주인공 트레이시의 엄마 역으로, 놀라지 마시라, 정준하가 캐스팅됐다. 원래 ‘헤어스프레이’에선 뚱뚱한 여주인공의 엄마 역을 뚱뚱하게 분장한 남자가 한다. 정준하는 뚱뚱한 분장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영화 ‘헤어스프레이’에선 분장이 필요했다. 그 분장을 하고 트레이시 엄마로 나선 배우는 존 트라볼타다.

    존 트라볼타의 이름을 듣는 순간 가슴이 ‘두근두근’한 분 안 계신가? 난 그랬다. 존 트라볼타가 뮤지컬에 나온다니, 그 존 트라볼타가 말이다. 바로 뮤지컬 영화의 전설인 존 트라볼타다. 내가 본 최고의 뮤지컬 영화 중 하나로 꼽는 것이 존 트라볼타가 나온 ‘그리스’다.

    그의 춤과 노래가 다시 나온다. ‘마이키 이야기‘, ‘펄프 픽션’에서 10년에 한 번씩 잠깐잠깐 춤을 보여 준 존 트라볼타 댄스의 21세기 버전이 등장하는 것이다.

    존 트라볼타의 남편(?), 즉 트레이시의 아버지로 등장하는 배우는 크리스토퍼 월켄이다. ‘디어헌터’에서 강렬하게 등장했던 배우다. 그 후 수많은 영화에 나왔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멋있어진 사람이다.

    이 영화에 크리스토퍼 월켄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 떠오른 건 ‘팻 보이 슬림’의 뮤직비디오였다. 거기에서 크리스토퍼 월켄은 멋진 춤을 선보이는데 이 영화에서도 아니나 다를까 존 트라볼타와 2인무를 춘다.

    트레이시의 성공을 방해하는 악역은 미셸 파이퍼다. 퀸 라티파도 나온다. 나름 호화 캐스팅이다. 이 영화에서 미셸 파이퍼와 크리스토퍼 월켄을 보고 든 느낌은 이거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 쓸쓸한 일이다. 하지만 영화는 쓸쓸하지 않다. 이 영화는 외친다.

    “YOU CAN’T STOP THE BEAT!”

    온몸으로 비트를 표현해내는 트레이시 역의 여주인공 니키 브론스키는 신인 배우라고 한다. 목소리가 좋다. 노래 소리가 귀에 착착 감긴다. 그녀는 뚱뚱하다. 그것도 아주.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처럼 약간 통통한 정도로 뚱뚱하다고 우기는 게 아니라 본격적으로 뚱뚱하다.

    악역 미셸 파이퍼는 예쁜 외모를 숭상하는 방송 관계자다. 그녀는 인종주의자이기도 하다. 트레이시는 60년대에 태동하는 디트로이트 사운드(흑인음악)에 경도되어 있다. 미셸 파이퍼는 그에 대해 ‘White way’를 지키려고 한다. 방송사에서 그나마 한 달에 한 번 있었던 흑인 쇼 프로그램까지 폐지한다. 흑인과 뚱뚱녀라는 타자를 배제하려는 것이다.

    Right way, 흑인과 춤추자

    트레이시와 친구는 흑인들과 의기투합한다. 그리고 ‘Right way’를 지키려 일어선다. 당시 흑인과 백인은 한 무대에서 춤을 춰선 안 된다는 금기가 방송사에 있었는데 트레이시는 그것도 무시한다.

    미셸 파이퍼는 거기에 저항하지만 요즘 드라마 ‘이산’에 나오는 노론의 저항처럼 악랄하지 못하고 어설프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낙관적인 60년대의 뮤지컬이니까. 정의는 승리하고 노래는 즐겁고 춤은 신난다.

    영화 도입부에 나오는 노래부터 귀를 사로잡는다. 도입부 노래로 훌륭했던 것은 ‘미녀와 야수’에서 벨의 노래가 떠오른다. 거기서 벨이 부른 것도 아침의 노래였다. ‘헤어스프레이’도 볼티모어에 아침인사 노래를 하며 시작한다. 이 도입부만 봐도 뮤지컬 팬이라면 행복할 것이다.

    개방적인 60년대가 왔다며 중간에 트레이시와 트레이시 엄마가 함께 부르는 노래는 이 영화의 백미다. 존 트라볼타가 오랜만에 솜씨를 선보인다. 단순히 음정을 맞추는 수준이 아닌 맛깔 나는 존 트라볼타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너무나 전형적인 뮤지컬 장면은 이런 영화를 갈구해왔던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엄마 60년대로 온 걸 환영해요! 오~오~오~오~오~오~오~”

    세상이 언제나 60년대 같다면야 얼마나 좋겠는가. 미국의 60년대는 우리로 치면 80년대 후반부쯤 될 것이다. 그 에너지, 그 낙관은 이제 껍데기만 남았다. 미국은 20세기 말에 호경기를 일정 정도 회복했지만, 우리에게 닥친 건 냉소뿐이다.

    희망은 사라졌다. ‘비트’도 사라졌다. 60년대에 전면에 등장한 흑인음악은 우리에게 지금 상업적으로 포장된 R&D 열풍으로만 남았다. 장차 비정규직이 될 아이들은 흑인음악으로 포장된 아이돌에 열광하며 현실을 잊는다.

    하지만 어디 사람이 24시간 내내 걱정만 하며 살 수 있다던가. 낙관과 환희의 60년대는 현실에 없지만, 이 영화가 스크린에 그것을 뿌려준다. 헐리웃이 잘 하는 일이 원래 이런 거니까. 현실을 잠시만 잊는다면 이 영화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왜냐? ‘모든 일이 잘 풀리는’ 60년대가 총천연색 뮤지컬로 펼쳐지거든.

    “60년대로 온 걸 환영해요! 오~오~오~오~오~오~오~”

    * 주의 : 뮤지컬 팬이 아니라면 영화 중반 이후 약간 지루할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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