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당 '새로운 진보' 주목해봐야
        2007년 12월 06일 09: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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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년 대선에서 이회창은 대한민국에 외환위기를 불러들인 기득권 세력을 상징했고, 국민들은 그에게 책임을 물어 50년 만의 정권교체를 선택했다. 2002년에 그는 햇볕정책에 대한 전통적 보수들의 거부감을 등에 업고 다시 등장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아직 개혁정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노무현에게 대역전의 드라마를 만들어주었다. 국민들의 그런 기대는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게 과반 의석을 몰아주는 것으로 한 번 더 드러났다.

    보수우익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거품을 물지만, 그들은 ‘소위’ 개혁정권이 지난 10년간 자기들보다 훨씬 유능하게 신자유주의를 팽팽 돌려온 사실에 눈 감고 있다. 국민들은 노무현에게서 대한민국 위기의 극복과 전환을 기대했으나 결국 노무현은 위기를 극단으로 심화시켰다. 비정규직을 늘렸고 부동산 투기를 조장했으며 한미 FTA까지 도입해서 우리 사회를 미국식 정글 자본주의로 이끌고 있다.

    이 10년의 또 한 축에 권영길이 있다. 그 역시 이회창처럼 3번 출마했다. 한 번은 민주노총 후보로, 두 번은 민주노동당 후보로서. 권영길이 이끄는 민주노동당은 10년간 괄목할 성장을 이뤘다. 2002년엔 국고보조금을 받는 정당이 되었으며 2004년엔 10석의 원내 정당이 되었다. 이회창은 위기를 불렀고 노무현은 거기 기름을 부었으며 권영길은 반대해서 싸웠다.

    지난 10년, 그들은 서로를 필요로 했다

    권영길의 민주노동당은 10석이라는 적지 않은 의석으로 이라크 파병 연장도, 비정규직 법안도, 한미 FTA도 그 어느 것도 막아내지 못했다. 의석이 적은 것이 진짜 이유라면, 150석 정도 차지하지 않는 이상은 앞으로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이 된다.

    권영길은 위기에 저항하는 대중을 대변했을 뿐, 위기를 기회로 바꿀 전략과 대안을 제출하여 국민을 이끌지 못했다. 저항하는 대중이 있는 한 언제나 권영길은 필요한 정치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0년은 민주노동당에게는 그렇게 고통만은 아니었다. 언제나 반대할 것이 있었다. 언제나 투쟁할 것이 있었다.

    대중은 반대하고 투쟁할 일이 있을 때 늘 민주노동당을 찾았다. 민주노동당이 존재감을 만끽할 때, 반대와 투쟁의 필요성을 자각조차 할 수 없는 처지의 국민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났고, 결국 민주노동당의 존재기반이 무너져갔다.

    당사자들은 절대 부인하겠지만, 지난 10년의 위기는 이회창과 노무현 그리고 권영길이 서로를 필요로 하게 했다. 이회창이라는 냉전적 보수가 없었다면 신자유주의자 노무현이 어떻게 개혁세력을 대표할 수 있었겠는가? 노무현이 나라를 이렇게 말아먹지 않고서야 어떻게 권영길이 독자적 진보세력으로 자신을 표방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좌파정권 척결’이라는 깃발을 들고 이회창이 어떻게 다시 돌아올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이토록 서로 물고 물리던 공생 아닌 공생의 관계는 결국 그 모두의 몰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노무현의 계승자 정동영은 여당 후보로는 최초로 20% 지지율을 한 번도 넘지 못한 후보가 될 듯하고, 권영길은 2%의 지지 속에 그토록 듣기 싫어하던 ‘군소후보’ 취급을 받고 있다. 오로지 BBK가 이명박의 발목을 잡아주길 바라며 정책 하나 없이 등장한 이회창은 이번 대선에서 지면 저 몽니의 제왕 김종필의 뒤를 따르게 될 것이다.

    반면 이명박은 지난 10년의 위기로부터 한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대중에게 인식되며, 그래서 역으로 신선해 보이는 후보다. 그런 후보와 10년 동안 국민들에게 자기 바닥을 다 드러냈던 정치세력들이 만났다. 어찌 ‘이명박 대 반 이명박’ 전선이 불꽃을 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나간 10년과 더 나쁜 10년을 넘어

    이번 대선이 이렇게 이명박과 반 이명박 전선 속에 치러지는 것은 유권자들에게 매우 고통스런 선택이다. 한 쪽은 지나간 10년이고 한 쪽은 더 나쁜 10년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이것이 ‘새로운 진보’ 금민 후보를 주목해볼 만한 이유다. ‘새로운 진보’는 이명박의 삽질 경제, 노무현의 88만원 세대 경제를 넘어서는 동시에, 계획 경제와 민족 경제라는 낡은 담론도 뛰어 넘자고 한다. 국가가 국민기본소득과 건강보험 100%보장, 임금지급형 직업교육 등 획기적인 복지를 먼저 제공하고 그로부터 고용과 성장을 만들어내는 선순환을 제시한다.

    한편으로는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과 만나면서, 거기 머물지 않고 이를 국민주권과 사회참여 활성화의 전제로 삼는다. 나아가 국민이 복지정책을 관리하고 결정함으로써 복지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된다. 이를 금민은 ‘사회적 공화국’이라고 부르고 있다.

    금민의 ‘새로운 진보’는 민족통일이 절대선일 수 없으며, 특히 북한의 저임금노동과 천연자원 착취를 전제하고 있는 권영길의 ‘코리아연방공화국’이 결코 진보적 국가대안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진보’는 안정된 평화체제 속에 한반도의 쌍방이 군축을 비롯한 충분한 자기 변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진보’는 인류를 공멸로 이끌 수도 있는 환경위기를 절박하게 받아들이고 전 산업체계의 녹색전환을 주장한다. 이는 당연히 기업주와 노동조합 모두의 결단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새로운 진보’는 국민들이 다가올 나쁜 10년을 막기 위해 지나간 10년을 ‘어쩔 수 없이’ 지지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그것이 정동영(실은 노무현)이든, 권영길이든, 이회창이든 말이다. 새로운 10년, 희망의 10년을 새로운 진보를 성장시킴으로써 만들자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될 수 있다. 한 두 번의 반동이 무서운가? 그렇다면 영원한 정체는 좋은가? 김대중과 노무현의 10년 동안 진보는 다시 뛸 다리 힘조차 다 풀려버렸다. 편안하고 오래된 진보를 택할 것인가, 낯설고 긴장되는 진보를 만날 것인가? 선언과 동원으로 버틴 진보운동 10년, 이제 평가할 때다. 무엇을 할 것인가? 지난 10년을 청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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