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능 거부 총파업을 상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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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2월 02일 05: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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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하는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오른쪽으로 사회자 이광호 <레디앙> 편집국장과 우석훈 박사.(사진=레디앙)
     

    유신세대인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386세대인 우석훈 박사, 그리고 88만원 세대들이 만났다. 예스24, 출판사 ‘철수와 영희’, <레디앙>이 공동 주최하고 월간 <작은책>이 협찬한 ‘유신세대, 386세대, 88만원 세대가 이야기하는 우리 시대 진보의 교양’이 지난 12월 1일 열렸다.

    행사장에는 ‘홍세화, 우석훈 공개 강연’이라는 펼침막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지만, 10대부터 60대에 이르는 70명 남짓의 청객이 이 행사의 주인공이었다. 아침을 거르고 전주, 군산, 양평에서 왔다는 열혈 청객과 선생님과 함께 온 고등학생들이 당연하게도 이 행사의 주인공이었고, 그들은 때로는 열변으로, 때로는 당황스런 질문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홍세화 기획위원은 “민주주의임에도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꺼내 『왜 80이 20에 지배당하는가?』(철수와영희)의 내용을 설명했다.

    “80 대 20이라는 말은 객관적 처지를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의식의 문제이고, 20은 절대로 자신의 처지를 배반하지 않는데 비해, 80은 자신의 처지를 배반하는 의식을 갖고 있다. 가난한 서민들이 ‘몰상식 언론’의 세금폭탄론에 부화뇌동하여 부자들 편을 든다든가, 80만 원 받는 이랜드 노동자들이 대부분 한나라당을 지지했던 것이 그 실례다.

    파리에서 박사 공부를 하고 있는 내 아들은 등록금은 안 내고, 학생의료보험료 등으로 40만 원만 낸다. 그런데 월급 절반을 사교육비에 쓰고 있는 우리 나라 비정규직들은 무상교육에 반대할 것이다.

    마르크스는 ‘한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은 지배계급의 것’이라 말했다. 칸트는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지만, ‘생각하는 바’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고 말했다. 인간은 합리적 동물이기보다는 현실을 합리화하는 동물이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문제는 주입, 세뇌되지 않은 주체적 의식을 형성하는 문제다. 파리의 고등학생들은 왜 거리로 나올 수 있는가? 그곳의 교과서에는 노동운동사가 기록돼 있고, 학교에서 시민권과 노동권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의 민주화와 민중화가 중요하다.”

       
      ▲우석훈 박사(사진=레디앙)
     

    우석훈 박사는 『88만 원 세대』의 주요 내용을, 수리생물학과 진화경제학 등 생소하고도 쉽지 않은 개념들을 들어가며, 수리와 수식을 동원하며 설명했는데, 참석자들은 진지하게 그리고 가끔 머리를 크게 끄덕이면서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개요를 ‘번역’하면 이렇다.

    “한 사람의 자원은 자신만이 만들거나 전유(專有)하는 것이 아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있고, 후대에게 물려주는 것도 있다. 가족에서는 이런 이전이 이루어지지만, 우리 사회 세대 사이에는 이전이 안 이루어지고 있다.

    수리생물학에서는 이기적 개체와 이타적 개체가 80 : 20의 비율일 때, 그 시스템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그 비율은 99 : 1쯤 될 것이다.

    지금 한국의 20대는 세대 간 이전이 없는 것을 부당하다고 이야기하지도 않고, 이기주의 전략만을 쓴다. 이런 전략으로는 결국 다수 패배 결과를 낳을 것이다.

    현대 한국은 Lock-in(잠긴) 상태다. 국민 98%가 황우석 프로그램 방영에 반대했고, 비정규직을 없애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꾸지 않는 Lock-in 상태다. 이제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다.”

    두 강사와 청객의 대화는 “88만원 세대인 언니가 스스로 88만원 세대인 줄을 모른다. 언니에게 뭐라고 말해줘야 하나?”라는 여고생의 당돌하고 당황스런 질문으로부터 시작됐다.

       
      ▲선생님과 함께 참석한 고등학생이 질문을 하고 있는 모습.(사진=레디앙)
     

    강사들이 청객의 질문에 썩 빼어난 답을 내놓았다고 할 수는 없는데, 청객의 질문들이 꼭 답을 원하기보다는 답답함을 토로한 것이어서이기도 하다.

    초중고 세 아이를 둔 한 어머니는 “중학생 딸이 학원에 보내달라고 해서 보내줬더니 11시 30분이나 돼야 집에 들어와 안쓰럽다. 그렇게까지 공부하는 걸 원치 않지만, 혼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출구가 안 보인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홍세화 기획위원은 “그런 현실에 대한 개별적 해법은 없다. 10대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계기를 만들고, 점수의 노예가 된 학생들이 반란을 일으켜야 한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홍세화 기획위원은 행사에 참석한 교사들에게 “한국의 젊은이들은 사적 관계에서는 영악한데, 사회에 대해서는 맹탕이다. 유럽의 젊은이들은 사적 관계에서는 소박하지만, 사회에 대해서는 알아야 할 것은 대개 안다. 우리 학생들이 사회에 대해 좀 더 알게 해야 한다. 선생님들이 선생에 멈추지 말고, 선배도 되고, 동지도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인천의 학 국어 교사는 “책을 보면 현실에 대한 설명은 명쾌하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해주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학생들에게 경제학적 지식 뿐만 아니라 인문적 성찰의 기회를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토로했다.

    우석훈 박사는 “20대를 비례국회의원으로 선출한다든지, 20대 주거권 청원운동을 펼친다든지, 20대끼리의 문화 생협을 만든다든지 여러 방법이 있다. 돌만 던지자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면 꽃도 던져야 한다. 기타 칠 때 처음부터 격앙된 애드립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부드럽게 시작하는 것처럼 사람 모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 박사는 “어쨌거나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무서운 일을 한 번 해야 한다. 고등학생들이 수능 거부 총파업 같은 걸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전교조 1세대이고, 지금은 한나라당에 관계돼 일하고 있다는 한 지방공무원은 조금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짱돌을 들고 있는 사이에 짱돌을 안 들고 개인 이익을 추구했던 사람들이 나중에 사회에서 결정권을 가지게 되더라. 결정권을 가질 사람을 선택해야 할 때, 짱돌을 들었던 사람들은 준비가 안 돼 있어 선택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의식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그에 대한 준비를 갖춰야 한다.”

       
      ▲이날 모임은 진지하고도 열띤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강사들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참가자들.(사진=레디앙)
     

    오후 2시 조금 넘어서 시작된 저자들과의 만남 시간은 예정 시간을 훨씬 넘겨 끝이 났으며, 이들의 토론은 저녁 식사와 으슥한 밤 술자리에서도 끊이지 않았다. 참석자들의 절반이 ‘뒤풀이에 참석’해서 열띤 토론 분위기를 이어갔다.

    사람들이 꼭 답을 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차피 유일한 답은 함께 하는 행동 뿐임을 다들 잘 알고 있기 떄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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