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혁명’ 반대하면 ‘의회주의’ 뿐
    2007년 12월 01일 09:2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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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모습.
 

우선 김종철의 답변에 감사드린다. 하지만 이 논쟁은 특정 김종철 ‘개인’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 특히 ‘전진’ 회원들의 답변과 참여를 기대한다. 

그리고 이번 논쟁은 사민넷의 공식 의견이 아닌 최병천의 ‘개인의견’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밝힌다. 

전반적 아쉬움, 그리고 소위 ‘전문가 토론’에 대해

지난 번 글의 제목은 ‘실체 없는 ‘유령 사회주의’를 넘어’였다. 한마디로 사민주의와 ‘체제’ 수준에서 변별되는 사회주의의 내용적 실체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이게 핵심 논지였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사회주의 이상 없이 사민주의 불가능”이었다. 답변으로는 부족한 감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리고 사족으로 김종철이 전문가 토론의 참여를 이야기했다.

카우츠키, 베른슈타인, 그람시, 비그포르스 등의 사람들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론가들이자 동시에 ‘국회의원’이기도 했다. 레닌과 모택동 역시도 이론가이자 정치지도자였다.

그렇게 볼 때, 활동가가 논쟁을 주도하고 학자들이 결합하는 것이 모양새가 맞을 듯 싶다.

다시, ‘전진’의 대선강령을 되돌아보며 – 민중대표자회의를 중심으로

나는 전진 김종철에게 △PT독재 △폭력혁명론 △중앙집중계획경제 △시장 및 상품 △국유화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이에 대해 혹자는 전진을 ‘스탈린주의’로 음해하고 있다고 반응하는 경우도 있었다. 김종철의 답글을 살펴보기에 앞서 이 지점부터 짚고 넘어가야겠다.

전진이 5월에 채택한 대선강령을 보면, 맨 마지막 부분에 「모든 권력을 민중대표자 회의에게」(이하 ‘회의’)라고 시작하는 단락이 있다. 이 부분은 내가 보기에 소비에트식 중앙집중계획경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자세한 내용은 전진 사이트에 들어가서 원문 참조하시길.)

강령의 주요 내용은 △‘회의’는 의회를 대체 △사법부와 행정부도 ‘회의’에서 선출 및 소환(3권분립 해체) △‘회의’는 (가칭)경제기획위원회(이하 ‘위원회’)를 설립 △ ‘위원회’는 생산의 무정부성을 극복하는 ‘초기업적’ 계획과 조절의 관철 및 정치/경제적으로 통일된 권력 행사 등으로 돼있다. 

위 내용에 따르면 국회가 사라지고, 삼권분립도 해체되고,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위원회’로 복속된다. 이 내용을 보고 ‘소비에트식 중앙집중계획경제’를 연상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역사에 대해 무지한 사람일 것이다.

만일 전진이 다당제와 보수정당의 집권도 용인하는 것을 전제로 전진의 대선강령이 우리의 현실에서 ‘실현’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야말로 ‘독재사회’가 도래할 것이 분명하다. 현재 당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코리아연방공화국’은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황당한’ 내용이다.

당내 제1야당인 전진이 ‘그냥 한번’ 이러한 대선강령을 채택 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위 대선 강령을 본 사람이라면 전진의 입장이 ‘소련식 공산주의 체제’와 뭐가 다른지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논쟁의 ‘역사성’에 무관심한 김종철의 답변 – 다시, 폭력혁명론과 PT독재론에 관해

김종철은 폭력혁명론과 PT독재론에 대한 나의 질문이 엄밀하지 않고 사려 깊지 못한 질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요즘같은 세상에 누가 폭력혁명과 PT 독재론을 주장하겠느냐고 반문하며 다당제를 인정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김종철의 반문은 논쟁의 ‘역사성’에 대해 전혀 무관심한 발언들이다. 100년전 베른슈타인 논쟁의 핵심은 ‘정권 장악 방식’ 혹은 ‘경로’가 뭐냐는 점이었다. 이에 대해 베른슈타인은 ‘의회’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이를 두고 ‘의회주의 논쟁’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개량주의’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의회’를 통한 평화적 이행을 주장하는데 왜 개량주의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을까? 그것은 바로 당대 정통 맑시즘의 기본 입장이 ‘폭력혁명론’을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80년대 NL이건 PD이건 이러한 입장을 고수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PT 독재론 역시도 노동자가 권력을 장악한 이후 (김종철이 언급한) 자본의 ‘사보타쥬’ 혹은 정권교체를 막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위 두 가지 문제는 사민주의 체제와 공산주의 체제를 갈랐던 역사적으로 ‘핵심 변별점’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우리나라 PD 계열 운동조직 중에서 폭력혁명론과 PT 독재론을 ‘공개적’으로 폐기한 집단은 한국사회주의노동자당(인민노련) 이외에는 들어본 바가 없다.

당시 주대환의 ‘신노선’이라는 것이 바로 이 내용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당시 PD 계열 조직들로부터 ‘개량주의’라는 비난을 들었다.(그 사람들이 요즘 폭력혁명론과 PT 독재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국민들은 아직도 사회주의라고 하면 소련 아니면 북한을 생각한다. 만일 전진이 폭력혁명론과 PT독재론을 반대한다면 이를 ‘공개적’으로 밝힐 필요가 있다. 정파는 그 자체로 대안정당이라는 점에서, 국민적 의혹에 대해 입장을 밝힐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김종철이 답변한 ‘소유의 다양성’은 100년 전 베른슈타인의 핵심 주장

19세기 후반, 그리고 20세기 중반까지도, 그리고 80년대 남한의 사회주의 운동권들에게 사회화란 곧 국유화였다.

   
  ▲독일 사회주의 이론가 베른슈타인.
 

김종철은 ‘소유의 다양성’을 인정한다고 답변했다. 그런데 이는 100년 전 베른슈타인이 ‘개량주의’라는 비난을 들으면서 했던 주장의 핵심이기도 하다. 또한 스웨덴 사민당내에서도 칼레비, 비그포르스 등이 당내 국유화론자들에 맞서 ‘소유의 다양성’을 강조하며 사상투쟁을 했던 영역이다.

즉, 오늘날 사민주의 국가들의 소유의 다양성은 그냥 ‘사회주의적 이상’을 마음속 깊이 품고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당내 사민주의자들이 사회주의자들과의 ‘사상투쟁’을 통해서 얻은 역사적 전리품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국유화를 남발한 곳은 오히려 영국노동당이었다. 그리고 이는 비효율을 초래하여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반격을 쉽게 초래하게 되었다.)

정리하면, 김종철이 소유의 다양성을 주장하는 것은 내용적으로 사실상 100년전 베른슈타인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며, 스웨덴 사민당내에서 ‘사회주의’ 세력과 사상투쟁을 했던 ‘사민주의’ 세력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사민주의에서 ‘좋은 것’은 사회주의 때문? 소련/북한에서 ‘나쁜 것’은 우리와 무관하다 ? 

오늘날 사민주의가 보육, 교육, 주택, 의료, 실업복지, 노후복지 등에서 (김종철의 표현에 따르면)‘사회주의적’ 요소를 간직할 수 있었던 것조차 당대 정통 사회주의자들과 ‘사민주의자’들이 사상투쟁을 벌이며 승리했기 때문이다. 국유화 남발 반대(=소유의 다양성), 중앙집중계획경제 반대(=현대적 거시경제관리), 시장의 긍정성 인정 등이 그러하다.

이를 통해 지속적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사회복지 확충을 위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런데 김종철의 답변은 사민주의 중에서 ‘좋은 것’은 사회주의자들의 공로이고, 소련식/북한식 모델에서 나쁜 것은 사회주의와 무관하다는 입장인데 상당히 편의주의적 접근이라 생각한다.

또한 김종철의 답변은 위에서 언급한 전진의 대선강령과도 ‘모순’되는 지점이 아닌가 한다. 만일 김종철 개인의 답변을 모두 인정한다면, ‘체제’ 수준에서 도대체 사민주의와 내용적으로 뭐가 다른 것인지 모르겠다. ‘유령 사회주의’ 혹은 ‘같기도 사회주의’라는 의구심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폭력혁명론을 거부하면 집권경로는 ‘의회주의’ 이외에는 없다

폭력혁명론과 PT 독재론을 반대하면 집권경로는 뭐가 있을까? ‘의회를 통한 평화적 이행’ 이외에는 없게 된다. 즉 ‘의회주의 노선’ 이외에는 없다. 이 부분은 지금, 현재 ‘실천적’으로 몹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주체파의 경우 여전히 ‘북한식 공산주의’ 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들은 의회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여전히 그들의 집권경로는 ‘전민항쟁’이다. 그들에게 100만 민중대회는 전민항쟁의 예행연습이며, 전민항쟁을 위한 예비군 훈련이다.

그리고 진보연대류의 ‘통일전선체’ 운동에 그렇게 목을 매는 것이며, 오늘 현재 민주노동당을 사실상 ‘통일전선체’로 전락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다.

전진의 폭력혁명론과 의회주의 사이의 ‘왔다리 갔다리’ – 소위 ‘운동정당론’의 폐해

앞서 강조했듯 폭력혁명론과 PT 독재론을 반대한다면 집권경로는 의회를 통한 평화적 이행(=의회주의) 이외에는 없다.

그런데 (전진을 포함하여) 일부에서는 의회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제도정치와 대중운동의 변증법’을 거론한다. 소위 ‘운동정당론’이다. 그러나 이것은 범주의 심각한 혼동이다.

왜냐하면 심지어 한나라당도 국보법을 반대할 때 수만명이 시위를 하는 ‘대중운동’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대중운동의 활용은 정치적 ABC의 영역이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 ‘집권경로’가 뭐냐는 근본적인 범주의 질문이다.

즉, 집권경로는 ‘의회주의’ 이외에는 없는 것이며, 대중운동은 의회주의라는 ‘전략적’ 상위개념 하에서 ‘전술적’으로 정세에 맞게 활용될 뿐이다. 한마디로 ‘레벨’이 다른 개념이다.

만일 전진이 대중운동을 통한 집권 경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 전진은 80년대 남한에서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비전을 공유했던 NL의 아류, 즉 ‘탈색된’ 전민항쟁론자일 뿐이다.

전진의 反의회주의와 운동정당론의 ‘실천적 폐해’ – 겸직금지와 투명회계 문제

최장집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정당정치의 부재에서 찾으며, 한국 민주화의 특징으로 ‘운동에 의한 민주화’로 요약한다. 나는 최장집의 이러한 견해에 적극 동의한다. 최장집의 이러한 주장을 민주노동당의 현실에 접목한다면, ‘운동에 의한 민주화’를 대체하는 ‘의회주의’ 노선의 강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볼때 전진파의 反의회주의 노선과 운동정당론은 실천적으로 큰 폐해를 끼쳤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겸직금지 문제’와 ‘투명회계 문제’이다.

먼저 겸직금지 문제를 살펴보자.

겸직금지 발상은 당은 ‘대중운동의 구심’이고, 의회는 ‘분견대’라는 발상에 기초해있다. 그래서 의원단은 ‘의회주의’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통제’의 대상으로 설정되었다.

민주노동당은 마이너정당, 정파연합당, 통일전선체적 정당 등의 제약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대중정치인의 ‘정치력’이 그나마 이를 ‘돌파’ 혹은 ‘보완’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겸직금지는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 족쇄를 채운 꼴이었다.

이러한 겸직금지는 결과적으로 의원들을 ‘개인주의적’ 성향으로 도피하도록 조장하는 역할을 했으며, 대중 권력을 장악한 의원들이 당으로부터 ‘책임’을 도피할 수 있는 것을 구조적으로 도와준 꼴이었다.

다음으로 투명회계 문제를 살펴보자.

2004년 총선 직전 오세훈법에 의해 지구당 폐지가 결정되었다. 원래 ‘지구당 폐지-투명회계-국고보조금’은 ‘한 세트’이다. 지구당을 유지하려면, 국고보조금을 반납하든가, 국고보조금을 받고자 한다면 지구당을 폐지하든가 해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의 ‘논리적 일관성’이 확보되는 것이다.(지구당 폐지가 타당한 것인가는 지금 논의에서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현재 주체파와 전진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파는 ‘지구당 유지-불투명회계-국고보조금’을 한 세트로 선택하고 있는 ‘이율배반적’ 행태를 자행하고 있다.

우리는 3가지 가치를 ‘모두’ 선택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가치를 선택하면 나머지는 버려야 한다. 나와 같은 사민주의자들은 투명회계의 가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당(公黨)’이며 당원들의 당비로 운영되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이념적으로 편향된’ 야당 교체 없이 당내 여당교체 없다

전진의 소위 ‘운동정당론’은 현재 결과적으로 주체파의 ‘통일전선체론’과 절묘하게 동거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反의회주의’이다.

이는 투명회계 문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주체파와 사회주의파의 ‘담합’으로 진행되고 있는 ‘지구당유지-불투명회계-국고보조금’은 당내 만성적 재정적자의 근원이다. 또한 계속되는 회계부정 사건의 근원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국민의 세금을 불법적으로 유용하고 있는 명백한 ‘범죄행위’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당의 운명을 선관위와 검찰, 그리고 언론에 ‘위탁한’ 꼴이다.

이념적으로 편향된 야당을 교체하지 않는다면, 당내 정권교체는 가능하지 않다. 바로 이 지점이 ‘사민주의자’들의 독자적 세력화가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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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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