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민주의, 진보진영 구심점 될 수 있다
    2007년 11월 30일 07: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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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시기이지만 사회주의-사민주의 논쟁이 <레디앙>에서 벌어지고 있어서 한 번 끼어들고자 글을 보낸다. 사민주의 국가 중에서 대표적인 나라인 스웨덴 사민주의에 대한 역사를 살펴보고 사민주의가 한국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규명함은 물론 진보진영이 이러한 사민주의를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을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1. 사회주의 이상 없이는 사민주의는 불가능하다

스웨덴은 임노동자기금 프로그램을 시도하면서 사회주의 운영체제로 나아가려고 했던 사민주의 국가이다. 그런 측면에서 스웨덴 사민주의는 자본주의의 생산관계를 혁파하고 사민주의가 실현할 수 있는 최고의 수준까지 근접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웨덴 사민주의의 역사를 보면 사실상 점진적인 개혁주의 노선을 취하면서 계급타협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노력은 분명 부침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스웨덴 사민당은 1920년 소수내각으로 최초로 집권을 했고 1929년 대공황을 맞이하면서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전면적인 사회화를 추진해야 된다는 내부 주장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러자 스웨덴의 대표적인 사민주의자 칼레비(Karleby)가 소유권이라는 것은 신성불가침의 권리가 아니며 사회적으로 부여된 여러 가지의 권리의 총합이기 때문에 이러한 권리의 총합에 대해서 일정 정도 제한을 가하면서 사적소유권을 극복한다면 점점 사회화로 나갈 수 있음을 주장하여 스웨덴 사민당은 전면적인 사회화를 유보하게 되었다.

즉 즉각적인 생산수단의 사유화뿐만 아니라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조금씩 규제해 나가는 것 또한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길임을 주장한 것이다.

   
  ▲ 스웨덴 노총(LO) 건물 모습.
 

그래서 이러한 노선을 취하면서 스웨덴 사민당은 사민주의 국가를 대표하는 보편적인 복지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스웨덴 사민당은 노동자들이 대기업들의 초과이윤을 통해서 자동적으로 대기업들의 주식을 소유하게 되는 임노동자기금에 대해서 적극적인 주장을 하지 못하게 되는데, 결국 김종철 ‘전진’ 집행위원장이 지적한 것처럼 스웨덴 사민주의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불가역적인 사회운영체제를 구축하지 못했던 것이다.

현재로서는 유럽의 전통 사민주의자들이 기대했던 것과 달리 현존하는 사민주의가 사회주의의 경로로서는 실패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물론 이런 언급을 하는 이유는 사민주의는 사회주의의 경로가 아니다, 라고 단정 짓기 위함이 아니다.

유럽 사민주의가 지금까지는 사회주의의 경로로서는 실패하고 있지만, 애초부터 사민주의는 사회주의의 경로이며 사회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선택되었다.

그러므로 유럽의 사민주의가 사회주의로의 경로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더욱더 좌로 움직이어야 하고 우리들의 사민주의 또한 사회주의와 유리되어서는 안되며 사민주의가 사회주의의 경로로서 더디더라도 이탈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스웨덴의 사민주의를 언급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김종철 전진 집행위원장의 사회주의 이상 없이 사민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2. 사민주의의 현상황 : 그래도 사민주의는 전진하려고 한다

사민주의를 평가하는 이론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권력자원이론이고 나머지는 구조적 종속이론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에는 유럽의 많은 국가에서 사민당들이 집권을 하고 많은 개혁을 이루어내면서 권력자원이론이 정당화되는 듯했지만, 70년 대 대공황 이후 득세한 신자유주의에 의해 사민주의가 쇠퇴하면서 구조적 종속이론의 거센 도전을 받게 되었다.

에스핑 엔더슨(Esping-Andersen)과 코르피(korpi) 등이 주장한 권력자원이론은 사민주의 정책으로 만들어진 완전고용과 무상의료, 교육 같은 복지체제가 소득재분배와 노동의 탈상품화를 이끌어서 노동계급들이 복지국가체제를 수호할 뿐만 아니라 점진적으로 자본주의를 개혁하는 방향으로 추동하는 권력자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상이다.

반대로 구조적 종속이론은 국가는 구조적으로 자본에 의존하기 때문에 사민주의 정당 또한 자본의 투자를 유발할 경제적 정치적 조건을 유지해야 하는 필요로 인해 자본으로부터 정책 및 전략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상이다.

다시 말하면 사민주의체제는 개량적 국면에서는 자본의 타협과 양보로 일정 정도 성과를 얻을 수 있지만 경제 불황과 같은 위기적 국면에서는 자본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자본과 노동의 타협이 깨어지고 자본이 노동을 공격하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사민주의는 급속도로 와해되었기 때문에 구조적 종속이론의 입지가 강화될 수 있었다.

그리고 영국은 기든스의 사회투자국가론을 받아들여 경제적 효율성을 우위에 두는 체제로 전환하면서 전통적 사민주의 체제와 이별을 고했으며, 스웨덴을 비롯한 노르딕 국가 또한 사회투자국가적 요소를 복지 부문에 받아들여 기존의 체제에서 후퇴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신자유주의의 공격에 사민주의 국가들이 많은 양보를 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사민주의체제는 개별 나라들이 처한 정치적, 경제적 조건에 따라서 신자유주의의 공격에 똑같이 무너지지는 않았으며, 최근에는 구조적 종속이론이나 신자유주의자들이 예견한대로 사민주의체제가 단편적이고 특수한 상황으로 소멸되지 않고 오히려 잘 견뎌오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특히 노르딕 모델 같은 경우에는 평등과 효율 면에서 모두 영미식 모델을 앞서면서 성장을 위해서 분배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사민주의가 권력자원 이론가들의 희망대로 자본주의체제를 근본적으로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구조적 종속이론과 신자유주의가 예견한대로 체제가 해체되지도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사민주의를 통해서 권력자원을 구축해놓으면 쉽사리 무너지지 않으며, 오히려 전진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사민주의가 지금까지 자본주의에 대한 비가역적인 제도를 완벽하게 구축하지는 못했지만 사회주의적인 요소들을 많이 구축하면서 비가역성의 가능성을 여전히 담보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사민주의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김종철 전진 집행위원장이 제시했듯이 사민주의가 자본주의에 대해서 완전히 비가역적이지는 못했지만 사민주의는 언제든지 다시 전진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3. 한국에서 사민주의의 의미 : 보수독점체제를 무너뜨리고 진보진영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

<한겨레>의 몇 년 전 여론조사에 따르면 진보지식인들은 대체적으로 스웨덴식 사회민주주의를 꿈꾸고 있으며, 절반 정도의 국민들 또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으로 영미식 모델보다는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모델이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지형은 보수독점체제가 더욱더 공고화하면서 일방적으로 영미식 모델로 수렴해 나가고 있다. 그러므로 진보진영은 다수의 국민들이 지지하고 있는 사민주의를 통하여 영미식 모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면 한국의 보수독점 체제를 진보 / 보수체제로 재편하고 다수의 국민들을 진보진영으로 결집시킬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국민들의 반 수 이상이 사민주의에 대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면 사민주의는 한국적 권력자원을 구축할 수 있는 중요한 이론적 토대가 될 수 있고 진보진영은 이러한 부분을 파고들어야 하는 것이다.

진보진영이 앞으로 지속가능하면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정치세력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정치적 지형을 혁파할 수밖에 없는데 사민주의가 현재의 보수독점체제를 혁파하고 진보/보수의 정치체제를 안정적으로 궤도에 올릴 수 있는 노선이라는 측면에서 사민주의는 매우 의미가 큰 것이다.

4. 사민주의는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진보 / 보수체제로의 재편은 사민주의만 주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사민주의를 토대로 하는 구체적인 국가비전과 이러한 국가비전에 걸맞는 정책들을 국민들에게 선보이고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런 측면에서 당내 사민주의자들이 사민주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당 내외를 아우르는 활동을 시도하고 있는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이러한 활동이 당원들과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 이들을 추동할 수 있는 구체적인 비전 없이 당위론적으로만 흐르는 것 같아 아쉽다.

예를 들면 이미 중도개혁세력들은 사회투자국가를 들먹이면서 자신들의 국가비전을 명확히 하고 있는데 사민주의자들은 이러한 사회투자국가에 대응할 수 있는 구체적인 상을 그려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했는데 왜 그것이 홍시라고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드라마 대장금의 한 장면처럼 민주노동당은 사민주의 정당인데 어떤 사민주의가 필요하냐고 물으면 대답할 말은 없지만, 여전히 국가사회주의에 대한 반대급부를 내세우면서 사회민주주의를 정당화한다면 그건 한 참 시대에 뒤떨어진 인식일 뿐이다.

이미 소련은 해체되었고 지금은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21세기이다. 더욱이 서구의 전통적 사민주의가 변모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반 국민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각을 가진 당원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사민주의인지 구체적인 제시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 민주노동당은 사민주의 정당이기 때문에 사민주의 정당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당위성만 주장한다면 동어반복의 메아리일 뿐이다. 그러므로 당내 사민주의자들은 중도개혁세력들의 사회투자국가에 대응할 수 있고 당원과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한국적 사민주의에 대한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당장 어렵다면 이미 당내에서 제기되었던 사회연대국가와 같은 국가비전을 지지하면서 사민주의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외화시켜 나가면서 당원들과 대중들에게 명확한 비전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앞으로 사민주의 논쟁이 생산적으로 흐르기 위해서는 한국적 사민주의의 비전과 그 하위 정책방향에 대한 논의부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번 논쟁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당내 사민주의자들이 고민했으면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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