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후들에게 이보다 황홀한 건 없다"
    [TV 디벼보기]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주류에게 똥침을”
        2012년 05월 04일 05: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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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 짜장라면과 어울리는 프로그램

    주말에 느즈막이 일어나 팅팅 부은 눈으로 우아하게 브런치로 짜장라면을 끓이면서, 발꼬락으로 리모컨을 당겨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어린 시절 어떤 잡지의 부록쯤으로 나왔을 법한 ‘믿거나 말거나’류의 전 세계적 기담, 괴담, 혹은 황당 시리즈 등이 어설픈 재연과 함께 등장한다. 히죽거리며 짜장라면을 먹기에 매우 적절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는 연예인 패널들도 나와서 진실 혹은 거짓을 맞추기도 하더니 외주 제작사의 제작비가 줄었는지 요즘은 그것도 없어진 지 꽤 되었다. 대신 황진이(황당한 진실 이야기) 등으로 몇 개의 내부 개편을 통해 나름대로 장수하는 프로그램 되겠다.

    짜장라면에 김치를 얹으면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것은 이야기들이 꽤나 흥미진진하다는 것인데, 사실 실제로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보면 별 것 아닌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럴싸한 편집과 적절한 오스트(OST)는 나처럼 단순한 덕후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이다.

    외계인 이야기나 히말라야 설인 이야기 같은 것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역사 속에 숨겨진 야사나 비사도 종종 등장한다. 사극을 보면서 고증이 덜 되었으니, 의상이 왜 저모양이니, 실제로는 어땠느니 품평을 해도, 이런 프로그램 앞에서, 짜장라면에 밥을 비비면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역사 덕후, 외계인 덕후를 자처하는 내게 이렇게 매력적인 프로그램이!(필자는 화성과 목성 사이의 행성 X의 존재, 지구가 행성 X의 식민지였으며, 피라미드는 외계 문명의 마지막 유물이라는 설을 제법 진지하고 믿고 있다.)

    이름 모르지만, 얼굴 모르면 간첩인 배우들 

    이 프로그램의 진정한 매력은 어설픈 재연이다. 이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사실 공채 등으로 선발된 재연 배우들은 그나마도 참 힘든 삶을 이어갔을지도 모른다. 전 국민이 이 분의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 모르면 간첩이라는 배우 이중성과 박재현 등이 이 프로그램의 단골이다. 외국인 배우도 종종 등장한다.

    영국에서 벌어진 이야기라는데 촬영지는 분명 우리 동네 뒷산이거나, 여의도 공원임이 분명한 화면을 보면서 우리는 ‘퀄리티’를 따지지 않는다. 철저한 고증 따위도 바라지 않는다. 그것이 이 프로그램의 미덕이기 때문이다. 요상시러븐 이야기의 이유나 과학적 증명 같은 것도 바라지 않는다. 왜?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알고 싶다’나 ‘추적 60분’에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사실 기타 다른 예능이나 시사정보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자리하고 있다. 뭔가 어설프고 황당한 이야기인데 주말 낮 시간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으며, 제법 높은 시청률을 가지고 있으며, 충성스러운 팬들도 가지고 있다. 유치찬란한데 재미있다. 그리고 근엄하기 짝이 없는 방송 시간표 중에 메롱이라도 날리는 것처럼 떡하니 자리하고 있으니 매우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이 프로그램의 미학은 바로 ‘키치’와 ‘B급’이다. 덕후들에게 이보다 더 황홀한 단어는 없다. B급이라기보다 하위문화라고 하자. 어딘가 어설프고 어딘가 유치해보이지만 그럴싸한 포장재로 씌워 주말 지상파에 당당히 자리한 이 하위문화스러운 프로그램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하위문화나 키치 패션은 과거 소외된 집단의 독특한 행태였다. 기존의 질서나 규범에 매이지 않은 자유롭고, 저항적인 문화는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했다. 결국 주류문화도 그들의 문화를 흡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훗날 키치 패션이나 하위문화가 주류에 적극적으로 침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것이 소자본(혹은 무자본)의 비주류였고, 그래서 더 노골적이고, 솔직했고, 규제에서 자유로웠고, 저항적이었기 때문이다.

    문화적 검열이나 체제내의 규율에서 자유로웠다. 특정한 집단은 그들 내부의 어떤 공감을 낳았고, 그것이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의 의미와 함께 감성적 동질감을 가졌다. 하위문화와 주류문화는 그 경계를 나누지 않는다. 하지만 하위는 주류의 특질에 끊임없이 똥침을 놓는다. 주류는 긴장할 수밖에 없다.

    B급 정당, 진보정당의 힘

    운동권(하위문화)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17대 국회에 처음으로 기존의 정치 질서(주류 문화)에 등장했다. 국회에 국회의원 전용 엘리베이터가 사라졌다. 그리고 노동자의 상징 푸른 점퍼를 입은, 한복을 차려입은 국회의원, 청바지를 입은 보좌관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들의 상징인 권위의 타파와 함께 정책을 말하기 시작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총선 시기 보수정당은 중앙당에서 공약을 내지 않았다. 중앙당은 공천을 해주는 기관이었고, 공약은 개별 후보들이 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보수정당도 중앙당 공약집을 낸다.

    사람들은 무상의료 무상교육이라는 가치에 대해 ‘정당’에 표를 주었다. 그리고 몇 년 사이에 그 공약은 실현되고 있다. B급 골방 운동권은 주류 정치 제도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고, 주류는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물론 사람도 수혈했다!)

    A급과 B급은 서로 정반합을 일으키는 관계다. 끊임없이 체제에 도전하고, 비주류를 말하고, 그들이 집단으로 존재하는 한 A급은 그들의 자유롭고 창발적인 에너지를 탐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당당한 하위문화다. 골방에 모여 있는 덕후가 아니다. 당당히 주말 지상파를 차지할 수도 있으며, 누구보다 충성스러운 매니아들을 거느릴 수도 있다. 우리의 입을 막기 위해 주류는 온갖 지랄을 했지만 결국 우리를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강한 주류 질서에 균열을 내자

    주류가 두려워하는, 그래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하위문화가 되는 건 어떤가. 우리 사회가 더 윤기 잘잘 흐르는 사회가 되려면 B급이라 호명되는 것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겨 봐야 하지 않나. 키치함과 B급은 삶의 활엽수가 아니던가.

    오늘도 미국 시골 바닷가에 밀려온 괴생명체 이야기와 UFO 이야기, 고대의 신비한 유물과 인터넷 괴담을 뒤적이며, 만화책을 들추며 우리 존재의 ‘가치’를 생각한다. 미국의 팝의 역사에서 한때 ‘화이트 트래쉬(백인 쓰레기)’라 욕하던 음악도 유행하지 않던가.

    하위가 가치 있는 하위로 존재하며 끊임없이 주류를 위협할 때 세상은 조금 더 달라질지 모른다. 우리는 그들을 두렵게 하는 존재다. 주말 짜장라면와 삼삼한 열무김치의 조합만큼이나 멋진 상상이다. 그들의 똥침을 노려라. 강고한 주류의 질서에 균열을 내는 우리는 신기한 TV 서프라이즈 같은 멋진 B급이다.

    필자소개
    [체르노빌 후쿠시마 한국]의 저자, 은근 공돌 덕후 기질의 AB형 사회부적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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