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국현의 6억은 이명박의 600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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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1월 30일 02: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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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국현 후보가 6억 원 가까운 주식과 현금을 두 딸에게 증여한 일이 이번 대선에 작은 소란을 불러 일으켰다. 국민들이 느낀 감정은 ‘너도 별 수 없구나’라는 배신감이었는데, 문국현 선본에서는 엉뚱하게 대응했다. 문국현 선본에서 내놓은 변명은 증여세 포탈 의혹이라는 사실 자체보다 더 불쾌하다.

    변명이 더 불쾌하다

    “매년 3~4억 원을 세금으로, 다시 3~4억 원을 각종 기부금으로 내놓았던 문국현 후보가 세금을 아끼기 위해 편법을 썼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장유식 대변인, 11. 27).” 세금 더 많이 내는데, 그깟 걸 아끼려 했겠느냐는 논리다. 같은 논리라면 천문학적 세금과 기부금을 내면서도 1조 원의 상속세를 더 내겠다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탈세 의혹도 눈 녹듯이 사라져야 한다.

    부인이 한 일이라는 논리는 치사하다. 인사청문회에 끌려나온 고위 관리나 정치인들에게서 너무도 자주 들었던 말 아닌가? 어찌 그리도 하나 같이 한국 남자들은 부인 탓을 하는가? 남성은 공적 선을, 여성은 사적 악을 분담하는 봉건적 가족상은 또 다른 부끄러움이어야 한다.

       
      ▲"당신도 별 수 없군"이라는 국민들의 반응과 달리 그들의 변명은 불쾌했다(사진=뉴시스)
     

    장유식 대변인은 “별 생각 없이”이 한 일이라 변명했다. 잘 몰라서 그랬다는 말인데, 그동안 문제가 된 공직자들의 비리도 예외 없이 잘 모르거나, 별 생각 없이 한 일이지 않던가? 펀드매니저를 통해 포트폴리오까지 만드는 자산가 집안에서 증여세 신고 의무를 모르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문국현 후보는 점입가경이게도 “아무튼 중요한 건 제가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에 있어 문제가 없다. … 혹시나 오해를 하게 만든 것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일단, 나쁜 의도는 전혀 없었다(28일, <손석희의 시선집중>)”라고 말했다. 이것 역시 ‘도의적 불찰 인정 + 법률적 책임 부정 + 의도의 순수함 강조’라는 정치인용 모범답안이다.

    무명의 문국현이 ‘대선후보 문국현’일 수 있는 것은 선두후보 이명박보다 백 배쯤은 더 도덕적이리라는 기대 때문이고, 당연하게도 문국현의 6억 원은 BBK 소액 투자자들의 손실액 600억 원에 해당된다.

    부자들의 변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국현은 아직 문국현이므로 인정하고 사과했다면 사람들은 “역시”라고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그런데 문국현 후보와 선본은 “그러면 세금 낼게”로 끝나는 위의 변명들을 늘어놓았다. 우리 나라 부자들이 나쁜 짓 들통났을 때 내놓는 변명 백과사전을 그대로 답습하므로, 나는 문국현을 ‘똑같은 부자’로 볼 수밖에 없다.

    문국현 후보보다 장유식 대변인이 더 실망스럽다. 그는 문국현 후보가 두 딸에게 6억 원을 준 것이 증여가 아닌 차명이라며 “가족 간 명의 차용은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장유식 변호사가 협동사무처장으로 일했던 참여연대는 어떻게 말할까?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는 정부가 차명거래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 과세 투명성을 제고하고, 금융차명거래를 통해 확산되고 있는 변칙상속 증여행위에 대한 과세와 유명무실한 금융소득종합과세를 정상화할 것을 촉구한다.” – 「금융 차명거래 차단 없이 조세형평 빈부격차 완화 요원하다」, 참여연대, 2003. 5. 15

    지난 10년 민주노동당 일을 하며, 이른바 민주개혁 진영의 386 정치인들이 변해가는 걸 지켜봤다. 이제는 퇴물이 된 정치 늙다리들이 평생 이룬 변신과 부패, 그리고 퇴락을 단 한순간에 해내는 386들에게 경탄했다. 지금은 장유식 변호사에게 더 놀란다.

    전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장유식은 “문국현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네. 지금 부족한 것은 채워나가면 되네(「친구들, 우리에겐 아직 ‘문국현’이 있다네」, <오마이뉴스>, 10. 17)”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그는 문국현을 비판적 대의로 채우지 않고, 여느 정당의 여느 대변인들처럼 주군(主君)을 보위하는 것으로 자신의 첫 정치를 시작했다.

    참여연대 협동처장 출신 대변인의 주군 모시기

    “친구들, 우리에게는 아직 ‘문국현’이라는 희망이 있으니 말일세. … 그가 가진 컨텐츠, 비젼, 한국사회를 재창조할 솔루션,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도덕성, 국제적 마인드, 일관된 삶의 태도 …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것은 이순신의 남아있던 12척의 배와 경향각지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조직적 힘이었네. 지금, 우리는 의병이 되어야 하네. 지금 누가 우리들의 심장을 뛰게 하고, 우리 팔과 다리를 움직이게 할 수 있겠나. 친구들, 우리에겐 아직 ‘문국현’이 있다네.” – 장유식, 윗 글

    정치인을 구세주처럼 포장하는 것은 자칫 민중을 믿지 않는 것이기 쉽다. 절박한 궐기의 호소는 곧잘, 동참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분노와 자의적 피아 구분, 고립적 선민의식으로 귀착되기 마련이다. 무릇 이렇게 변해가는 것이다. 칼날을 잃었다면, 뒤돌아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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