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문제와 계급문제가 만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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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1월 28일 12: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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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까지도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이면서 동시에 피부색 및 계층 간 양극화가 가장 심각한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유색 인종과 가난한 자에 대한 오랜 사회 문화적 차별 구조와 깊숙이 연관되어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불안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물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 또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저 유명한 1964년의 민권법(Civil Rights Act of 1964)이라 할 수 있다.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 처음 발의되었던 이 법안은 의회 내 반대파들의 교묘한 방해로 인해 빛을 보지 못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통과되어 암살된 케네디의 뒤를 이은 존슨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되었다.

    민권운동과 환경운동

    미국 민권 정책에 있어 가장 기념비적인 위치에 있는 이 법은 인종, 피부색, 종교, 성별, 그리고 태어난 나라의 차이에 따른 고용, 입학, 식당이나 영화관 같은 공공장소 출입 등에 대한 차별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현재의 시각에서 보면 매우 초보적 수준의 평등권을 규정하고 있지만, 1964년 민권법은 이후 지속적으로 차별에 대한 범위 규정을 확대해 나가고 이러한 차별을 제거해 나가는 노력을 통해 미국 내 모든 반차별 운동과 정책의 이론적 법적 근간으로 자리 잡았다.

    1980년대 이래 미국에서 본격 전개된 환경 불평등에 관한 논의와 이를 바로잡기 위한 환경정의 운동 역시 1964년 민권법에 기반한 풀뿌리 민권운동이 환경운동과 결합하면서 탄생하였다고 평가된다. 

    1982년 유색인종 비율이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워런카운티에 건설하려던 독성폐기물 매립지에 대한 주민들의 격렬한 저항운동은 환경 분야에 구조화된 불평등 문제에 대해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유해폐기물 처분장 흑인 거주 마을에 주로 건립

    1983년에는 의회의 조사 감독 업무를 지원하는 정부책임사무국(GAO)과 기독교교회연합 등은 조사 활동을 통해 환경위해시설의 입지와 유색인종 거주지 간에 높은 상관성이 있음을 객관적 수치로 입증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동남부 지역에 위치한 유해폐기물 처분장의 4분의 3이 흑인들이 다수 거주하는 마을에 입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환경정의를 촉구하는 미국의 환경운동단체 회원들.
     

    이러한 환경적 부정의 구조가 드러나면서 풀뿌리운동 조직들의 환경정의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이에 대응하여 정부는 1992년 환경청에 환경정의국을 신설하고 1994년에는 클린턴 대통령이 연방정부의 모든 부처로 하여금 환경정의 정책 추진하도록 명시한 대통령 명령인 Executive Order 12898을 발령함으로써 환경정의는 본격적인 정부 정책 과제로 설정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환경정의 실현을 위한 민간과 정부 차원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 구조와 연계된 환경 불평등 문제가 쉽사리 개선되지는 못하고 있다. 특히 반환경적 정부로 평가 받는 부시 정부에서 환경정의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정책 실천은 현저히 약화되었다.

    2005년 AP 통신이 환경청의 자료를 분석해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건강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공기가 오염된 지역에 사는 흑인 비율이 백인에 비해 79% 이상 높고 히스패닉과 흑인 아이들의 납중독 수치는 백인 아이들에 비해 두 배가 높다.

    공기오염 지역 거주 흑인, 백인보다 79% 높아

    다행스러운 일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환경정의 정책을 강화하기 위한 법 제정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는 2008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는 바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은 2005년에 공동으로 ‘주민건강법’을 발의한 바 있다.

    또한 현재 미국 상원 상임위원회 중 환경 및 공공기반시설 분야를 다루는 환경및공공사무위원회 산하의 환경보건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은 환경정의 정책을 강화하기 위한 두 개의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나는 환경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지역에 추가적으로 연방 재정이 지원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정의부흥법’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청으로 하여금 미국 내 가장 가난한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발전소, 트럭차고지, 정유소, 쓰레기 집하장 등 산업시설의 환경 영향을 줄이기 위한 모니터 활동을 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다.

    환경 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미국의 경우 문제의 실체가 파악되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및 정치권의 법 제도적 노력이 전개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전국적인 풀뿌리 조직들의 활발한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얼마 전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실이 발표한 포항공단 주변 주민들의 암발생률 현황은 환경 불평등 문제에 관한 우리의 현주소를 생각하게 한다. 2002년 기준 전국평균의 1.5배에 달하는 공단 인근 주민들의 암발생률은 전형적인 유해산업 관련 환경부정의 사례로 추정된다.

    환경 불평등과 포항 사례

    우리 사회의 환경 불평등 현상은 이미 많은 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시멘트 공장이 밀집해 있는 강원도 영월군 서면 지역 주민의 후두암 발생률이 전국 평균의 3배에 달한다는 조사는 포항철강공단의 경우처럼 위해 산업시설 인근 주민의 환경부정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최근 한국타이어나 과거 LG전자부품에서 발생했던 유기용제 중독 사건과 같이 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 역시 산업 재해임과 동시에 환경보건과 계층적 불평등 구조가 연관된 환경부정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점증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직업 현장 및 주거 지역에 구조화 되어 있는 환경 문제들은 그동안 우리에게 생소했던 환경인종주의 문제가 결코 남의 나라 일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현실에서는 이런 문제가 사회 경제적 불평등 구조와 환경 문제가 연관된 환경부정의 구조로 인식되기 보다는 한 지역 혹은 한 작업장의 환경 피해 혹은 산업 재해 사례로 다뤄지게 된다.

    이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사회경제적 약자 계층의 주거 및 고용 구조와 환경 문제 간의 연관성에 대한 실증적 조사연구, 이 문제를 법과 제도로서 대응하고자 하는 정부 및 정치권의 노력, 그리고 이러한 노력을 촉구하고 동시에 현장에서 피해 주민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풀뿌리 운동 모두가 매우 초보적 단계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번 포항철강공단 문제를 제기한 단병호 의원이 환경 문제로 인한 건강 피해에 대한 보상의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을 담은 ‘환경보건법(안)’을 발의했다고 한다. 한국사회의 환경 불평등 구조에 대한 본격적 문제제기와 환경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법제도적 대안을 모색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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