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 2학년부터 '점수의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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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1월 19일 04: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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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준)에서는 학벌 구조의 폐해와 입시경쟁체제를 근본적으로 타파하고자 범국민적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오는 11월 24일에 전국 20여 개 지역에서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공동행동’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 행사를 앞두고 <레디앙>이 4회의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연속 기고’를 마련하였다. 연재 순서는 아래와 같다.

    ①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운동의 의의와 전망 : 정진상 (경상대 교수)
    ② 입시폐지 대학평준화로 공교육을 살리자 : 장혜옥 (전교조 전 위원장)
    ③ 프랑스의 대학평준화와 한국의 교육 (가제)
    ④ 독일의 대학평준화와 한국의 교육 (가제)

    학교가 죽어가고 있다. 그 옛날, 학교는 사랑의 공간, 추억과 희망의 공간, 너와 내가 ‘우리’가 되어 만나는 소통의 광장이었다. 가르침은 미래의 꿈이었고 배움은 무한한 성장을 이끌어가는 에너지였다.

    학교는 죽었다

    지금, 학교는 그 모든 아름다움을 잊고 철저한 약육강식의 늪이 되어가고 있다. 불과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 아이들은 성적의 노예가 되기 시작한다. 0점에서 100점까지 숫자로 표현되는 변별력 앞에 한없이 무기력해지고, 한 학교 한 교실에서 100점을 늘 받을 수 있는 1%도 안 되는 아이들 외에 모든 아이들은 반복되는 패배와 열등감을 내면화하면서, 이미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 아이의 지식 기반이 확연하게 분리되는 걸 경험한다.

    사실 대학수학능력고사까지 갈 일도 없다. 10살 무렵에 인생은 결정돼 버리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영어 학습에만 1억의 사교육비를 쏟아 붓는다는 강남 아이들은 아예 계급 계층이 달라지면서 학벌사회의 정점에 선다.

    그보다 못해도 초등학교부터 대학 입학까지 1억 정도 사교육비를 쓴다는, 학부모 잘 만난 어떤 아이들은 우리 사회 엘리트로 자부심 찬 성장을 할 것이다. 돈 많은 부모 덕에 공부 잘하게 된 아이들을 통틀어 봐야 그 또래 아이들의 20%쯤 될 것이니 20대 80의 사회는 이미 초등학교 시절 구분되기 시작한다.

    왜 사교육비가 발목을 잡고 있을까?

    왜 사교육비가 교육의 발목을 잡게 되었을까? 공교육이 부실해서일까? 교사들이 무능해서일까? 사교육이 월등해서일까? 아니다. 모든 교육을 점수와 등수로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교육은 인간의 성장을 돕는 일인데, 그 성장을 수치로 단순화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점수에 따라 인격을 매기고, 순위에 따라 인사와 언행이 달라지는 습관이 사회적 관습이 되었기 때문이다.

    점수와 등수에 따라 아이의 인격과 미래가 바뀌는 현실 속에서, 부모들은 점수와 등수를 올리기 위해서라면 내 아이만을 위한 맞춤형 선행 학습을 할 수 있는 만큼 해야만 한다. 절실하고 또 절실한 욕구이다.

       
      ▲ 사진=뉴시스
     

    남보다 먼저 배우면 유리할 것이 뻔한데 왜 주저하겠는가. 한 등수, 1점이라도 더 올리려면 남보다 더 공부하되 남모르게 나만의 필살기로 공부해야 하므로 사교육 형태는 더욱 다양하게 진화하고 진화의 핵심은 더 많은 돈이다.

    점수와 등수 경쟁으로 단순화시킨 교육, 그것은 각종 정부 주관 고시에서부터 수능을 거쳐 학교에서 일상화 된 성취도 평가, 학력 평가 등 온통 객관식 시험으로만 빚어내는 교육 시장화 정책이 지지하는 교육이다.

    사교육비는 이미 30조를 넘고 있고 사교육 시장에 유입된 인력은 40만을 넘고 있다. 학습지 재벌, 학원 재벌이 생기고, 영어 기업, 사설평가 기관들이 재벌로 진입하고 있다. 공교육 학교에도 보충수업, 특기 적성 교육, 수준별 수업, e러닝, 방과후 학교 등 온갖 명목으로 사교육이 범람하고 이 모든 중핵은 ‘교육’이 아니라 ‘돈’이다.

    교육을 이익 창출의 서비스 시장으로 단정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이 본말을 뒤바꿔버렸는데, 국가는 물론 아이의 직접적인 수호자여야 할 학부모도, 인간화 교육 사회화 교육의 스승 노릇을 해야 할 교사들도, 아니 이젠 당사자인 아이들조차 그 물결에 몸을 담갔다.

    아이들은 시험을 위해 공부하고, 등수를 올리기 위해 비인간적인 모든 고통을 감수한다.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은커녕, 공부하는 학생 시절을 고난의 길로 인식한다. 친구는 적이고, 다른 학교는 우월의 비교 대상일 뿐이다.

    졸업할 날만 손꼽는 사이 엘리트와 열패자는 철저히 구별되어 사회로 나가지만, 기다리는 건 이구백(이십대 구십 퍼센트가 백수), 88만원 비정규직의 실상이다.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 죽어버린 학교를 살리기 위해

    교육이 죽어버린, 학교를 살려야 한다. 교육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최고 최적의 사회적 산물이다. 물론 공교육 체제의 학교에서만 교육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더 나은 교육 조건을 찾아 각종 대안학교를 꿈꾸고 실천하는 사례도 풍부히 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의 대다수 아이들은 공교육의 시스템 안에 있으므로 교육의 공공성을 올바르게 창출해내는 과제는 소중한 덕목이다. 무엇을 해야 할까?

    객관식 시험은 사라져야 한다. 4~5개 중 하나인 정답을 찾거나 찍으면서 질문자의 의도에 맞춰가는 공부는 노예적 근성을 길들여가는 과정이다. 태어나 20여 년 동안 ‘정답찾기’에 골몰하는 공부는 자신의 공부가 아니라 남의 공부다.

    자신이 곧 정답이 되는 공부를 해야 한다. ‘나’이니까, ‘내 마음’이니까, ‘내 의견’이니까 인생의 정답이 되는, 바로 ‘내’가 공부의 주체가 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따라서 교육과정 혁명이 필요하다.

       
      ▲ 입시폐지-대학평준화 행동의 날 포스터.
     

    객관식 시험이 사라지면 점수에 따른 수직 등수 매기기는 어려워진다. 일정한 수준에 도달했느냐만 남는다. 한 교실에 있는 아이들 모두 다 제 개성과 취향, 능력에 따라 온전해질 수 있다.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는 악순환을, 서로 비판하면서 상승 발전하는 선순환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 등수 경쟁이 아니라 진정한 배움의 경쟁을 만들어 갈 수 있다. 따라서 고등학교 완전 평준화와 입시 폐지 혁명이 필요하다.

    등수의 정점은 대학 서열화이다. 서울대를 꼭대기로 대학과 학과가 6천여 개 수직 서열을 이뤄 점수에 따라 골라 가는 방식은 유치함과 부끄러움의 극치이다.

    사립대학이 80%에 이르는 우리나라 대학 구조가 만만치 않지만 교육의 공익성과 공공성은 국민의 것이므로, 국민들은 대학이 진정한 학문 경쟁력을 키워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일단은 국공립대학부터라도 평준화 체제로 해야 한다. 현재 서울대에 연간 1천3백억 원을 지원해 주고 지방 국립대에는 겨우 300억 원 정도 지원하는 정부의 정책을 바꿔 앞으로 교육여건이 열악한 지방대부터 과감한 지원을 한다면 모든 대학은 서울대 수준 이상으로 올라설 것이다.

    또 부패, 비리, 부실 사립대들을 국공립대 평준화 체제로 적극적으로 편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대학 평준화 혁명은 학벌 사회를 무너지게 하고, 학력과 학벌에 따라 차별해 온 직업의 고용과 임금, 승진 등에 큰 사회적 균열을 일으킬 것이다.

    헌법 31조는 모든 국민이 누릴 교육의 권리를 분명히 하고 있다. 20대 80의 사회에서 20% 기득권자들은 교육의 수월성과 경쟁력, 자율성과 시장주의를 분명히 하자며 고교평준화조차 해체하자고 목청을 높인다. 결코 아니다.

    대다수를 차지하는 우리들, 80%의 권리를 분명히 하자. 입시폐지와 대학평준화를 이뤄 교육의 정당한 몫을 모두가 함께 나누자. 그것이 진정한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지름길이고 그렇게 실천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수두룩하다.

    등수는 인격이 아니다. 서열 중심주의는 인간을 노예화하는 파렴치한 교육관이다. 점수와 등수로 환원되는 교육을 교육이라 믿는 허망을 깨뜨리자! 가시적 성공보다는 본원적 인간을 소중히 여기는, 우리들이 원하는 교육을 우리들 스스로 만들자!

    우리 아이들을 입시 지옥에서 벗어나게 하고, 우리 학부모들을 사교육비 절망 속에서 자유로워지도록 힘을 모으자! 11월 24일(토)은 입시폐지-대학평준화를 세상에 널리 공포하는 우리들의 날이다. 함께 모여 우리들의 함성을 하늘 높이 날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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