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약집 어지럽히는 '코리아연방'
        2007년 11월 15일 10: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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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리아연방공화국을 공약집에 넣을 것인가, 넣는다면 어느 정도 무게를 둘 것인가의 문제를 둘러싼 민주노동당 내 정책 라인의 내부 갈등이 한때 폭발 직전까지 갔었다. 민주노동당 정책위 소속 연구원들 다수는 지난 9일 ‘국가비전 코리아연방공화국에 대한 정책연구원의 입장’이라는 글을 통해 정책개발단장인 이용대 정책위 의장에게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이들은 ‘입장’을 통해 “‘코리아연방공화국’이 다수의 반대와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진행되고 있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며, “세부 공약작업을 하는 연구원들은 코리아연방공화국의 ‘구체적 실체’가 무엇인지 어떠한 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받은 바 없었을 뿐더러 의견수렴과정조차 밟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책연구원들은 절차적 문제와 함께 ‘코리아연방공화국’이 그동안 정책위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권영길 후보의 각종 정책과 내용적 연관성이 전무하며 따라서 코리아연방공화국을 국가비전의 중심 공약으로 내세우게 되면 공약들의 유기적 연관 관계에 심각한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선대위는 국가비전으로서 ‘코리아연방공화국’을 공약집에 집어넣기로 했으며, 다만 배치 순서 등 일부 내용의 변경을 결정했다. 이용대 정책개발단장은 정책연구원들이 제기한 절차적 문제에 대해서는 이를 인정하고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진보정치
     

    코리아연방공화국은 권영길 후보가 당내 경선 시기에 강조했던 내용으로 그는 집권하면 5년 안에 코리아연방공화국을 선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권 후보는 최근 코리아연방공화국과 관련해서 현재의 정세와 대선 국면에 적절치 않은 것이며, 당내에 논란이 있는 만큼 신중하게 결정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이를 선대위에 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중앙선대위는 논란 끝에 코리아연방공화국을 주요 공약으로 공약집에 포함하기로 결정해, 후보의 입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래 글은 이 같은 과정을 지켜보면서, 오건호 민주노동당 정책전문위원이 당 정책연구원들에게 보낸 것으로 <레디앙>은 필자의 동의를 얻어 그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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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선거에서 여러 가지 정책공약을 발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 대안사회 상을 분명히 제시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러한 대안사회 비전을 ‘국가론’의 틀로 보면, 국가비전이라고 부를 수 있고(예: 사회투자국가), ‘시대론’으로 접근하면 시대비전이라고 부를 수 있다(예: 가족행복시대, 국민성공시대).

    지난 대선에서 우리가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는 민생 구호로 약진했지만, 국가비전을 제안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아마도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지난 경선과정에서 각 후보들이 코리아연방공화국, 사회공공체제, 제7공화국 등을 국가비전 ‘범주’로 제시하였을 것이다.

    진보정당과 국가 비전

    이러한 면에서 코리아연방공화국은 분명 국가비전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강령은 한반도 통일의 상으로 국가연합제나 연방제를 제안하고 있기에, 권영길 후보가 경선과정에서 제안한, 그리고 최근 선대본이 확인한 코리아연방공화국은 당 강령에 근거한 국가론이다.

    하지만 진보정당이 제시하는 국가비전은 매우 다양할 수 있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이 국가비전이듯이, 서민행복공화국(혹은 서민정부), 사회공공체제, 사람중심공화국 등도 모두 국가비전이 될 수 있다. 이 개념들은 각각 장단점을 지니고 있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은 통일의 상을, 서민행복공화국은 대안사회의 주인을, 사회공공체제는 대안체제를, 사람중심공화국은 새로운 가치를 부각시킬 수 있다.

    나는 코리아연방공화국이 통일방안을 진취적으로 설명하는 데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다른 경우에선 회의적이다. 특히 남한사회 서민들이 가장 절실히 느끼는 문제가 민생고라는 점에서 ‘공식’ 국가비전으로서 정해진 코리아연방공화국이 이번 대선에서 서민의 마음을 제대로 울리지 못할 것 같아 답답하다.

    이미 반북이데올로기가 상당히 완화되고 6.15선언까지 이루어진 상황이어서, 코리아연방공화국이 이데올로기적 탄압을 받지도 않겠지만, 특별한 관심을 끌어내지도 못할 것이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이 틀려서가 아니라 그것이 현재 서민들이 생각하는 화두가 아니기 때문이다.

    권 후보가 재래시장을 방문해서, 비정규직 집회 연설에서, 철거에 항의하는 빈민들에게, 조립라인에서 땀흘리는 노동자들에게, 농촌 들녘에서 추수하는 농민들에게 과연 이 국가비전을 외쳐 얼마나 호응을 얻어낼 수 있을까? 국가비전이라면, 이러한 자리에서 대중들에게 비전과 감동을 주기 위한 것 아니었는가? 왜 우리 스스로 쓰임새가 적은 무기를 선택하는가?

    코리아연방공화국은 17대 대선에서 별로 사용가치가 없는 용어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그만큼 대선승리에 무기력한 개념이 될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쓰임새 약한 선수를 최전방 공격수로 배치하는 ‘어리석은’ 감독인 셈이다.  

    사용가치 없는 코리아연방공화국

    어찌 되었든 코리아연방공화국이 국가비전으로 결정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개념이 어떻게 쓰이느냐의 문제다. 지금 공약집 구성에서 코리아연방공화국이 배치되는 것을 둘러싸고 논란이 거세다.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선 국가비전으로 정해진 것이므로 당연히 공약집 메인에 배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주장이 대선 국가비전을 기계적으로 남용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이들은 대안사회 비전으로서의 국가비전이 다양한 층위로 구체화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첫째, 가장 높은 수준의 국가비전은 국가체제(regime)이다. 이 경우 진보적 국가체제는 ‘사회주의’일 것이다. 여기엔 이설이 없을 줄 안다.

    둘째, 다음 국가비전은 국가유형(type)이다. 국가론에서 ‘유형’에 대한 범주가 다양하지만, 난 여기서 국가체제보다 한 단계 낮은 위상으로 ‘유형’을 사용하고자 한다. 기존 소비에트 국가론에 의하면, 사회주의로 완착되기 이전에 ‘사회주의 지향을 지닌 프롤레타리아 독재국가’가 여기에 해당될 것이며, 이번 경선에서 심상정후보가 제안한 ‘지속가능한 사회주의로 가는 길’로서 ‘사회공공체제’가 그러한 위상을 지닐 것이다.

    셋째, 그 다음 국가비전은 국가형태(form)이다. 국가형태가 국가비전인 이유는 기존 자본주의 체제를 지양하는 씨앗을 담고 있기 때문이며, 국가형태로 불리는 이유는 특정한 시대, 공간에 구속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반도를 포괄하는 진보적 대안사회로 코리아연방공화국, 남한사회로 한정된 ‘제7공화국’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제7공화국에서 사회주의까지

    이렇게 국가비전은 애초 여러 층위를 함축하는 범주이다. 높게는 사회주의 혹은 서민행복공화국일 수 있고, 낮게는 제7공화국일 수도 있다. 남은 과제는 국가비전으로 정해진 개념을 그 위상에 맞게 적절하게 사용하는 일이다.

    민주노동당은 한반도 국가형태에 해당하는 코리아연방공화국을 국가비전으로 채택하였다. 그런데 현재 마련된 대부분의 당 공약은 모두 남한사회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진보진영이 꿈꾸는 유토피아 ‘지구호혜공화국’이 대선 공약집 총괄 개념으로 적절치 않듯이, 코리아연방공화국 역시 그러하다. 만약 민중공화국, 서민정부, 혹은 제7공화국이었다면 제 격이었을 것이다. 남한사회를 대상으로 설계된 정책공약의 옷으로 들어맞기 때문이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은 한반도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공약에 맞는 개념이다. 안타깝게도 이번 대선은 남한주민들이, 남한사회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선대본에서 국가비전으로 코리아연방공화국이 정해졌다고, 이 개념이 아무 데나 배치되어서는 안된다.

    통일의 염원을 담아 장기 국가비전을 선전해야 할 때 사용하면 된다. 하지만 구체적 남한사회 혁신프로그램을 담고 있는 정책공약을 포괄하는 옷으론 적합지 않다. 이는 공약집을 어지럽히는 일이며, 어렵게 정해진 코리아연방공화국 국가비전마저 희화화시키는 자충수다.

    공약집을 어지럽히는 일

    나는 정책개발단 기획조정팀에 속해 있어, 코리아연방공화국 지지자들과 논란을 벌이곤 했다. 하지만 결국 선대본에서 코리아연방공화국이 국가비전으로 확인되었고, 안타깝게도 공약자료집 구성에도 핵심 지위로 포함되도록 결정되어 버렸다.

    이제 진보주의자들에게 남은 것을 실천을 통한 검증뿐이다. 코리아연방공화국 지지자들은 한껏 대중들을 만나 이 국가비전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실천을 벌이면 된다. 대선 기간 ‘코리아연방공화국’ 국가비전의 쓰임새가 검증될 것이고, 그에 따라 평가하고 그만큼 책임지면 된다.

    대신 코리아연방공화국을 우려하는 당원들은 넓고도 넓은 대선 공간에서 서민과 만날 대안 비전을 제시하는 데 노력했으면 좋겠다. 공식적인 국가비전 타이틀의 위상은 지니지 못하더라도, 각 공약 주제별로, 그리고 전체 메시지 생산과정에서 공간은 열려 있다.

    남은 기간 코리아연방공화국 비전과 민생 비전을 두고 실천 경쟁을 벌여야 한다. 그리고 책임을 지자. 결정만큼 중요한 것이 엄중한 평가라는 선례를 이번에 남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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