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린 어쩜 '불임의 세대' 되는 건 아닐까
        2007년 11월 14일 12: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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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이 펴낸 『88만원 세대』가 널리 읽히면서 블로거들의 독후감이 양과 질에서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와 함께 일부 고교와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이 책을 읽고 토론을 진행했으며, 교수들이 이 책을 텍스트로 삼아 토론을 한 경우도 있었다.

    <레디앙>은 앞으로 ’88만원 세대’는 물론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독후감이나 리뷰 등 다양하고 생생한 목소리들을 가려서 실을 예정이다. <레디앙> 독자들께서도 참여하기를 기대한다.

    이 글은 『88만원 세대』를 참고 도서로 강의를 진행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4학년 주명준 학생이 쓴 것이다. <편집자 주>

       
      ▲사진은 필자.
     

    학기 중에 필요한 책을 빌리기 위해 지역 도서관을 자주 이용한다. 도서관에는 내 또래의 사람들이 항상 북적거린다. 주말에는 줄을 서서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 줄이 나중에 알고 보니 공부할 자리가 없어서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공부할 자리를 얻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면서도 공부를 하는 젊은 사람들의 모습을 외국에서 놀러온 관광객이 봤다면 대한민국의 학습열에 경탄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현실감이 뒤떨어진 것인지, 경쟁적인 이 사회에 익숙하지 못한 것인지 나에게 현재 우리 사회의 청년 실업난은 도서관의 진풍경으로 또는 뉴스나 신문에서 보는 그런 기사거리로 밖에 인식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중 『88만원세대』라는 책을 만나게 된다.

    이 책에서 문제제기하는 것들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나와 같은 세대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문제였던 것이다. 허나, 이번 기회를 통해서 내가 속한 세대의 문제점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왜 ‘88만원세대’인가?

    필자는 서문에서 우리 세대를 ‘88만원 세대’라고 이름 붙인 과정에 대해 보여준다. ‘월급 90만원’을 제시하면서 “통계에 능하고, 정책 마인드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국회의 대학원생들을 모집하는 구인광고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는 세금을 떼기 전에 임금으로, 비정규직 평균임금 119만원에, 전체 근로자 대비 20대의 임금 비율인 74%를 곱해 얻어진 수치가 88만원이여서 우리 세대를 88만원세대라고 명명했다는 것이다.

    경쟁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지금 우리 세대는 자신의 미래가 현실적인 문제가 닥쳐오기 전에는 ‘나는 성공할 수 있다’ 혹은 ‘나는 이길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또래들은 현재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고 당장 취업을 해야 할 우리들이 맞닥뜨려야 할 심각한 장벽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바라보고 있다. 

    왜냐하면, 비정규직의 모습은 경쟁에서 진 패배자들의 모습이며,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자신들은 당장 내가 비정규직이 아니므로 스스로의 모습을 이런 패배자들에 빗대어 생각하기조차 싫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꿈은 원대하게 가지라고들 말하지 않는가.

    우리의 꿈을 부숴뜨릴 것이 분명한 현실이 눈앞에 도래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이것을 직시하지 않고 때론 무시하면서 꿈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이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우리는 아직 상황파악을 못하고 있다.

    요즘 들어 우리 사회는 우리를 ’88만원 세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매우 현실적인 이름이다. 보통 갓난아기 작명을 할 때, 꿈이 담긴 좋은 이름을 붙여주던데, 이 이름은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행복한 몽상을 가꾸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꿈을 산산히 부숴뜨리는 이름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현실은 암울했다. 허나,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우리의 현실은 88만원 세대인 것이다.

    88만원 세대로 역사에 남을 것인가?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인데, 요즘 남자가 결혼을 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 연봉 2,500만원이란다. 우리 세대는 결혼도 못한다. 결혼을 안 해도 상관없는 사람은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결혼이 하고픈 사람한테는 큰 문제꺼리다.

    현실은 88만원이라는데, 대다수 사람들이 하고 싶은 ‘그 일’에 최소 조건이 연봉 2,500만원이라니……. 슬프다. 만약 이처럼 우리의 처지와 결혼 조건의 괴리 현상이 광범위한 사회현실이 된다면 88만원 세대는 어쩌면 출산율이 제로 가까이 돼서, 우리 세대 뒤를 잇는 한 세대를 붕 뜨게 만드는 ‘결혼 불가 세대, 불임의 세대’로 역사에 남게 되는 게 아닐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평생 소외받은 세대로 남는 길 밖에 없다. 기업의 마케팅 대상에서도 제외된 88만원세대를 챙겨줄 사람은 없다. 사회구조에 의해서 88만원세대가 되어버렸다고 징징대며 주저앉아 투정을 부린다고 받아 줄 사람도 없다. 스스로 우리의 처지를 깨닫고 문제점을 고쳐나가는 수밖에 없다. 

    정치에 관심을 갖자

    이 책의 저자 우석훈 선생이 <시사IN> 3호에 쓴 글에서 말한 것과 같이 20대 비례대표가 국회로 가야 한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또한 국회로 가진 않더라도, 우리 88만원 세대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재외교포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기에 그 국가의 정책에 의한 혜택에서 배제되어 왔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지금 우리 88만원 세대도 그와 같은 경우 아닌가. 정치에 관심을 가진다는 게 매우 고리타분하고 귀찮고 재미없는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허나, 이는 생각하는 만큼 귀찮은 일이 아니다. 적어도 88만원 세대인 우리가 유권자로서의 자신의 역할에만 이라도 충실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정치인들도 88만원세대에 대한 지금과 같은 무관심이 철회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권리를 버린 것이다. ‘정치에 무관심한’ 88만원 세대이기에 정책에 의한 혜택에서 언제나 뒷전에 있었던 거 아닌가.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권리를 잘 ‘챙겨 먹어야’ 한다.

    농촌을 살리자!

    상상을 해보자. 지금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는 우리가 농민이 되는 것이다. 농사짓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그 열심으로 농사일을 배워 본다면 불가능 한 일도 아닐 것 같다.

    처음이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친환경적인 농업을 배우고 시작해 보자. 친환경 농업은 대안 농업이 아니라, 이제 모든 농업에 적용돼야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몰락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농업에 뭔 볼일이 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경쟁논리만 가지고 접근해가면 우리 농업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는 농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한다. 농업이 살아나야 우리나라에 장기적인 희망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농업을 살리는 것은 현 상황에서 우리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다.

    많은 젊은이들의 귀농현상이 우리사회에 나타난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이 같은 사회적 변화는 자연적으로 이루어지긴 힘들다. 나와 같이 중학교 때부터 농사를 지으며 살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아닌 이상, 농민이 되라고 하는 건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라고 하는 것보다 안 좋은 말로 들릴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같은 일은 ‘운동화’돼야 한다. 생태주의 담론으로 88만원 세대를 농촌으로 이끌 수 있을까? 아니면, 다른 무슨 방법이 있을까?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이다.

    지금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는 우리가 농민이 된다면, 기성세대들은 자신들이 저지를 과오를 해결해주는 우리에게 고마워할 것이고, 우리의 후손들은 좀 더 나은 환경을 물려주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한 우리 세대에 존경을 보내진 않을까?

    우리의 역할을 농민이 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기성세대들의 경제성장 중심 사회에 대해 대항해야 한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환경문제를 근본적으로 다루다보면, 이 문제가 한 국가 내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중국의 산업화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가 우리나라에 미치는 것이 한 예이다. 이에 우리는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농민들과 연대해야 한다.

    이와 같은 나의 시나리오는 처음에는 내 삶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느꼈던 농업이 88만원 세대라는 암울한 이름을 함께 받은, 우리(예전에는 ‘우리’라고 생각 할 수 없었던) 세대가 됨으로 확대 되었다. 또한 이는 글로벌 시대에 아시아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아시아 공동체를 구상하고 있는 현 상황과 맞물려 좀 더 확대된 시나리오이다. 

    우리는 88만원 세대로 남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참 불쌍한 세대로 묘사되었다. 물론 현재의 상태로 볼 때 암울하고 미래가 없는 그런 불쌍한 세대인 것은 사실이다. 88만원 세대라는 이름과 함께 아직도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이런 ‘늙은 아기’인 나의 모습을 보면, 우리의 윗세대가 우리 세대를 불쌍하게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88만원 세대로 남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문제에 대해 우리가 먼저 인지하지 못하고, 저자들의 ‘노작’으로부터 알게 된 것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한다. 함께 공존해야 할 세대로 인식하고 손을 먼저 내밀어 준 것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감사한다.

    허나, 나는 우리 세대가 지금과 같은 암울한 현실에서 주저앉고 포기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것에만 언제까지나 맞추어가며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름은 썩고 썩어 터지게 되어 있다. 우리의 문제가 기존체제 내에서 대안을 찾을 수 없다면, 우리는 새로운 대안을 찾을 것이다.

    대안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 세대의 무한한 상상력은 우리의 꿈속에 존재했던 기존체제의 환상이 깨어질 때 날개가 돋친 듯이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세대의 상상력과 대안

    도서관에서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우리 세대들에게 지금의 그러한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어떤 희망이 있을까? 조금은 회의적이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면, 차라리 다른 나라에 가서 살면 좀 더 노력한 만큼의 받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에서 그런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어쩌면 이미 해외로 나갈 여유가 되는 사람들은 상당수 빠져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현재 우리 세대의 이름은 이제 ’88만원 세대’로 굳혀지는 것 같다. 기존세대가 우리를 지금과 같은 체제 속에서 함께 살자고 양보하며, 우리를 보듬어주지 않아도 괜찮다. 

    88만원 세대여, 차라리 이런 체제가 존속된다면 그냥 비정규직 남자. 그 바늘구멍과 같은 ‘성공’의 자리를 향해 ‘통계적으로 현실적으로’ 패배가 예정된 사람들이 모두 달라붙어서 싸우다 지쳐, 우리 사회의 모순을 온몸으로 깨닫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 나설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어쩌면 비정규직이 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핵심 가치들은 ’88만원 세대’와 같은 여러 종류의 사회적 약자를 만들어 내고 있는 기득권자들의 가치인 것 같다. 이제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우리들, 그 이름에 걸맞는 가치와 대안을 함께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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