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국현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없다
        2007년 11월 13일 08: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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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국현 후보 진영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들고 나왔다. 무엇보다 ‘노동 시간’을 줄이고 ‘평생교육’을 통한 중소기업의 ‘생산성 증가’와 ‘고용 증대’를 거론한다.

    그러나 경제주의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있지 않으면서 ‘창조 한국’이란 슬로건으로 민족주의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것은 이명박 후보의 틀에 견줘 하나도 새롭지 않다. 다만 아일랜드식 ‘지식 경제’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이미 전통이 되어버린 ‘경제주의’ 패러다임의 업그레이드 판일 뿐이다. 따라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쉽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경제공약을 설명하고 있는 문국현 후보.(사진=뉴시스)
     

    경제주의 패러다임의 업그레이드 판

    국가에는 정치, 경제 체제가 있고 관료들이 포진하고 있는 정부가 있고 대통령이 있다. 아무리 약간의 수사를 덧붙이고 있지만 이명박 후보, 정동영 후보와 똑같이 FTA를 찬성하면서 중소기업을 획기적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현재 국면에서 FTA의 찬성과 반대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향후 비전과 패러다임을 달리 할 수 있는 기준점이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다시 말해 FTA를 찬성하게 되면 아무리 말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외쳐도 공허할 수밖에 없다.

    중남미는 미국과의 FTA 찬성 또는 반대로 크게 두 개의 전선으로 나뉘고 있다. 우연히도 태평양 연안 국가들이 찬성 쪽에 서 있다. 반대 국가들은 남미 통합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필자는 현재 FTA 체제에 깊숙이 들어가있는 멕시코에 살고 있다. 전에 몇 번에 걸쳐서 멕시코에 대한 글을 올렸지만, 사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필자는 멕시코 말고도 남미의 몇 나라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다. 이를 통해 남미 사람들의 일상 생활과 그들의 상식을 피부로 체험해왔다.

    진짜 하고 싶었던 멕시코 이야기

    독자 여러분들도 사회학적 시각에서 대중의 일상생활과 상식의 중요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무슨 이야긴가 하면, 멕시코에 살면서 일반 대중들의 삶의 방식과 심성이 무척 황폐해 있고 불신과 분노와 외로움에 병들어 있음을 보고 많은 충격을 받았다. 구체적으로 적시하기가 망설여질 정도다.

    최근 권영길 후보가 이명박 후보의 집권 시 가져올 5대 재앙 중에 ‘인성 파괴’를 언급한 것은 정확한 지적이라고 본다.

    오랫동안 혁명과 민중을 이야기하면서 위선적인 비민주적 정치와 부정부패에 깊이 빠져온 멕시코 특유의 정치, 경제 체제가 FTA 발효 후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더욱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에는 기득권층이 벌이는 노조 간부들에 대한 부와 권력의 일부 양도를 통한 부패의 제도화와 거대 노조의 포섭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교원 노조의 의장으로 거의 종신적인 권력과 부를 움켜쥐고 집권당인 국민행동당(PAN)과 비민주적인 야합을 추진하고 있는 전 제도혁명당(PRI) 간부인 에스테르 고르디요를 들 수 있다.

    이렇게 된 데는 역사적 이유가 있다. 멕시코 혁명 중 1914년에 일시적으로 농민과 노동자를 대변하는 사빠따와 판초 비야가 권력을 잡았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곧 까란사와 오브레곤이 이끄는 자유주의 우파세력에 의해 패배하고 만다. 이후 멕시코 혁명정신은 단지 수사로만 높이 외쳐지게 된다.

    분명히 민주화가 이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민주주의란 주류의 흐름에서 지식인, 중산층 이상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이었다. 멕시코를 대표하는 작가 환 룰포는 1955년 <뻬드로 빠라모> 라는 소설을 써서 멕시코를 불모의 땅, 유령들의 마을로 상징하며 비판한다.

    멕시코 청소년 실업률 60%

    멕시코가 가진 자산은 수많은 저임의 노동력이다. 이를 활용하기 위한 외국인 직접투자, 특히 그린필드 투자(현지 생산 공장)가 아주 활발하다. 그러나 이 같은 외국인 직접투자의 증가가 멕시코 중소기업의 약진과 고용의 증가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이미 전문가들에 의해 많이 지적되었다시피 수많은 생산, 서비스 업종에 외국인 투자가 들어오면서 기존의 전통적인 중소기업들은 경쟁력을 잃어 도산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멕시코 국립대학(UNAM)의 연구에 의하면, 현재 12세에서 24세까지 청소년 중 60%가 실업 상태에 있다고 한다. 멕시코 자유주의 우파 정부들도 고성장을 국민에게 약속했었다. 그러나 멕시코 신문 ‘호르나다’(La Jornada)는 2006년의 멕시코 가구당 가처분 소득은 1994년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보도하고 있다.

    우리는 민주체제로 넘어가는 과도기에서 아직 못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현재의 시대정신을 읽어야 한다. 박정희 정권시절의 고도 성장은 노동자의 희생 위에 얻어진 것이었음을 인정하고 신자유주의의 흐름에 무조건 순응함은 또 다시 노동자의 고통을 요구하게 됨을 인식하는 것이 과도기의 역사적 임무다.

    스페인의 패러다임 변화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체제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이상적으로 겪은 나라로는 스페인을 들 수 있다. 스페인의 경우 1936년에 쿠데타를 일으킨 후 3년의 내전을 치르면서 집권한 프랑코 극우 체제가 1975년 프랑코가 자연사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 후 몇 년간 아돌포 수아레스로 대표되는 중도 개혁세력이 집권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아돌포 수아레스가 프랑코 정권시절 각료로서 팔랑헤주의자(스페인 파시스트 세력)였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정신이 바뀌었음을 인정하고 적극적인 민주개혁을 시도하였다는 점이다. 그냥 말로만 ‘중도 개혁’이 아니었던 셈이다.

    바르셀로나에서 발행되는 잡지 ‘끌리오’(Clio)에 의하면, 스페인 공산당의 서기장을 지낸 산티아고 까릴료는 독재 체제에서 민주 체제로의 변화의 과도기를 성공적으로 보낸 아돌포 수아레스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스페인 공산당의 합법화 결정을 내릴 당시의(1977년) 상황과 그의 용기를 생각할 때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과연 그처럼 해낼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역사 속의 개인의 역할은 만약에 그가 현실을 해석할 능력이 있고 변화를 위한 조건들이 사회 속에서 성숙되었을 때 시민의 맨 앞에 설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아주 결정적일 수 있다.”

    아돌포 수아레스가 1976년 권력을 잡았을 때 그는 자신이 1939년의 승자의 아들이 아니라 패자의 아들이었음을 기억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공화파였다. 그는 체계적으로 프랑코 극우체제를 해체하는 일을 지휘했다. 그리고 그는 임기중인 1981년 1월 정치 역정의 최절정기에 스스로 권좌에서 물러난다. 믿어지지 않지만 사실이다. 이를 보면 우리의 ‘개혁’ 정치인들은 의지가 약했던 것인지 사회의 조건들이 성숙되지 않아서 였는지 잘 모르겠다.

    그 후 1982년에 프랑코 체제하에서 사회민주주의 세력으로 오랫동안 불법정당으로 있던 ‘스페인 사회주의 노동자당’(PSOE)이 집권했다. 이후 스페인의 역사는 금욕적 엄숙함에서 벗어난 ‘자유의 만개’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정말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좌파 정부가 취한 첫 번째 정책은 철저한 지방자치의 복원이었고 또한 문화적 개방정책과 대대적인 행정 개혁을 통해 관료체제를 흔들어 놓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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