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력적 정파가 민주노동당을 구한다
        2007년 11월 12일 08: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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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투자국가 논쟁의 의미

    올 해 진보적인 학자들 간에 사회투자국가라는 개념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진보정치연구소가 발행하는 미래공방 4호에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음)

    사회투자국가란 사회복지정책에 있어서 투자적 성격을 대폭 강화하여 서구국가들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복지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선이라고 볼 수 있는데-좁게는 기든스의 제 3의 길로 볼 수 있고 넓게는 신자유주의에 대응하는 유럽 사민주의의 새로운 노선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일부 학자들이 이러한 노선을 우리의 사회복지부문에 받아들이자고 주장을 하였고 이에 대한 반대론이 제기되면서 사회투자국가 논쟁이 발생하게 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사회복지의 투자적 성격을 강화하는 사회투자국가론은 사회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반복지 담론에도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를 찬성하고 있다.

    반면 다른 학자들은 보편적 복지제도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복지의 투자적 성격을 강조하게 되면 사회정책이 경제정책에 종속되면서 오히려 복지수준이 더 퇴보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이 점에서 김연명 교수는 사회투자전략이 사회복지정책부문에 국한되어 운용된다면 새로운 복지담론으로서 수용할 수는 있지만 국가전체의 운용담론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파악하고 있음)

    근데 필자가 이 사회투자국가 논쟁을 주목하는 이유는 학자들뿐만 아니라 정치인들도 사회투자국가론을 수용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단순한 이론 논쟁으로만 볼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사회투자국가론이 학자들의 개인적인 선택을 넘어서 정치세력의 노선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미 친노 진영의 핵심인 유시민과 김두관 전 장관 등이 사회투자국가론을 설파하고 있으며 정동영 후보 진영 또한 사회투자국가론을 수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정동영 후보 진영의 의원들이 임채원 연구원의 「신자유주의를 넘어 사회투자국가로」라는 책을 교과서처럼 읽는다고 한다)

    더욱이 이번 대선에 출마한 문국현 후보 또한 교육과 학습복지를 강조하는 공약을 주장하면서 사실상 사회투자국가론의 논리를 일부분 수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대선 이후 야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은 정동영 진영과 친노 진영 그리고 문국현 후보 모두 한나라당과 대립되는 정치적 노선을 구축하면서 사회투자국가를 전면적으로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는 측면에서 사회투자국가론의 정치적 영향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2. 대선 이후의 정세 변화 : 사회투자국가론의 전면화와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위기

    이회창 전 총재가 출마하면서 대선 구도는 보수세력들 간의 내전 형태가 되어버렸으며 상대적으로 범여권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물론 아직 범여권은 대선을 포기하지는 않았겠지만 12월에도 범여권 후보의 지지도가 뚜렷하게 상승하지 않는다면 범여권은 향후 총선을 대비한 정계 개편을 수면 아래에서부터 준비할 가능성이 높다.

    김근태와 정동영 계열 그리고 친노 진영 간의 주도권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고 문국현 후보 또한 가세하겠지만 공통적으로는 한나라당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보다 개혁적인 노선을 경쟁적으로 견지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나 참여정부세력들은 신자유주의에 경도되어 있음에도 한나라당과 대립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중도개혁주의라고 포장해야 하고 집권실패의 책임도 털어 내야 하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이념으로 사회투자국가론을 적극적으로 내재화하고 설파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들이 보수 세력들의 통상적(?)인 이합집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이런 흐름들이 민주노동당에게 앞으로 좋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이 집권하게 되면 국민들은 반대급부로 총선에서는 상대적으로 야당을 더 지지할 가능성이 높은데 진보세력과 자유주의세력의 차이를 적극적으로 구분하지 못하는 국민들은(이러한 혼란은 정치 환경의 후진성에 그 원인이 있지만 민주노동당이 그동안 자신만의 색깔을 잘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같은 진보라면 이왕이면 민주노동당보다는 당선가능성이 높은 자유주의세력에게 지지를 몰아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가 급속도록 하락될 수 있다.

    더욱이 자유주의세력이 수구보수여당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서 사회투자국가론을 들먹이면서 전략적으로 좌쪽으로 이동해온다면 민주노동당의 이념적 영토도 일정 정도 잠식당할 것이다.

    3. 민주노동당의 구조적 어려움

    문국현 후보에 대해서 외부에서 민주노동당과의 연대의 대상이라고 분류한 이유는 당의 공약이 사회투자전략을 일정 정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민주노동당 스스로가 다른 정치세력과는 차별화할 수 있는 담론을 제대로 생산해내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물론 그동안 민주노동당은 정책정당으로서 많은 성과를 냈고 지금도 어느 대선후보보다 훌륭한 정책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외화 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진보세력으로서 국민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예를 들면 보통 요리를 시킬 때는 메뉴판의 메뉴이름을 보고 먼저 고르는데 우리는 그러한 메뉴이름을 제대로 만들고 홍보하기보다는 음식자체를 어떻게 맛있게 만드는가에만 신경을 썼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이미지와 노선을 단번에 알려주는 주력 메뉴를 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세력이 야당으로서 사회투자국가론을 대표 메뉴로 들고 나오면서 진보세력들의 영토를 넘보고 있다면 이제는 민주노동당 또한 민주노동당다운 고유의 메뉴를 만들어 사회투자국가론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근데 민주노동당은 이런 대표메뉴를 정하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 우선 민주노동당은 다 알다시피 다양한 이념을 가진 정파연합당의 성격을 띄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사안에 대해서 반대는 하기 쉽지만 각 정파들의 노선과 입장이 많이 달라서 뭔가를 공동으로 내세우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사회연대전략이 내부의 반발에 부딪힌 이유도 사회연대전략이 발표되기 전에 내부적인 합의 절차가 부족한 면도 있었지만 정파들 간의 노선상의 차이도 컸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민주노동당 내 각 정파들의 노선을 평균하여 그 중간쯤을 민주노동당의 대표 브랜드로 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합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그러한 합의 절차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민주노동당이 현재 일상 운영에 있어서 큰 문제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대표 브랜드를 정하는 작업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당은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에 처해있을 뿐만 아니라 조직운영도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지도부 또한 리더쉽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서 이와 같은 고도의 정치적 조율이 필요한 사안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이후 진보세력에게 더 가혹해질 수 있는 정치적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이 자신만의 대표 브랜드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지만 현재의 구조 속에서는 녹록치가 않다.

    그런 측면에서 민주노동당은 사민주의 정당을 표방해야 한다는 사민주의자들의 주장은 어느정도 긍정적이기는 하나 당내 사민주의자들이 이러한 당위론적인 입장에서 벗어나서 자신들이 말하는 사민주의가 구체적으로 뭔지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서 매우 아쉽다.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했는데 왜 그것이 홍시라고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드라마 대장금의 한 장면처럼, 민주노동당은 사민주의 정당인데 어떤 사민주의가 필요하냐고 물으면 대답할 말은 없지만 이미 서구의 전통적 사민주의가 쇠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반 국민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각을 가진 당원들을 설득시키고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사민주의인지 구체적인 제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민주노동당은 사민주의 정당이기 때문에 사민주의 정당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당위성과 그 배경만 주장한다면 동어반복의 메아리로만 들릴 뿐이다. 그러므로 사민주의자들은 민주노동당이 지향하는 한국적 사민주의가 무엇인지 입론부터 세워야 할 것이다.

    4. 내년 총선은 민주노동당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 : 매력적인 정파가 필요하다.

    어쨌든 내년 총선이 끝나면 당의 여러 모순이 폭발할 가능성이 높으며 정치이념 경쟁에서도 자유주의세력들의 사회투자국가론에 밀릴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은 여러모로 어려운 국면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이러한 위기국면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총선 이전에 각 정파들이 당의 재정과 조직운영 문제를 해결하는데 힘을 모와야 하고 민주노동당의 대표 브랜드를 만드는데도 심혈을 기울어야 한다.

    선거 때에만 드러내는 내부정치용으로서의 정파가 아니라 당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함은 물론 당원들과 국민들의 호감을 불러오고 자유주의세력의 사회투자국가론과도 경쟁할 수도 있는 입론을 구체적으로 선보이는 매력적인 정파가 현재 위기의 민주노동당에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매력적인 정파야 말로 민주노동당을 현재의 위기에서 구할 뿐만 아니라 진보진영 전체를 이끌어 가면서 진보세력의 르네상스를 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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