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화 ‘대장정'에 깊이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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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1월 10일 10: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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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들이 읽기 좋은 짤막하지만 재미있고 나눌 바가 많은 글들을 엮어 <작은 책>이라는 정말 작은 잡지를 매달 선보여 주는 ‘보리출판사’를 아시지요? 얼마 전까지 <작은 책>과 그리고 한겨레신문에도 가끔씩 촌철살인의 노동일기를 칼럼으로 연재해주던 안건모 씨를 기억하세요?

    그분이 그동안 썼던 글들을 모아서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라는 책을 펴냈는데(보리), 지금은 그분이 버스 기사 생활을 청산하고 이 출판사의 ‘사장’이 되었다 하더군요. 초등학교 겨우 마치고 공장생활을 시작했고, 독학으로 공고 들어갔다 졸업 못하고 중퇴한 후 줄곳 진짜배기 노동자로 살아온 분을 ‘사장’으로 스카웃하는 출판사라니!

    그런데 안건모 사장님 말로는 버스 기사 때보다 월급이 더 줄어 한 달 100만원 남짓밖에 못 가져가는 사장님이라 합니다. 출판사 사정이 좋지 않다는 거지요.

    이 출판사에서 엄청난 책을 만들었어요. 이 책을 보고 나는 이 출판사가 아직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4·6배판의 큼직한 크기로 상하 두 권, 1,100 쪽의 엄청난 분량에 책값은 권당 3만 5천원(합이 7만원!)의 책 『대장정-세상을 뒤흔든 368일』이 그것입니다.

    도대체 책을 팔려고 만들었나 안 팔려고 만들었나, 게다가 대장정이라니, 중국 전체가 개혁개방 이래 세계 자본주의의 ‘공장’이 되기로 작심하고 돌진하고 있는지 이미 오래인 이 시점에서 1930년대 국공 내전 시기의 이야기를 누가 읽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하루하루 먹고 살기에 바쁘고 아이들 학원비 걱정에 잔업에 좇기며 사는 것이 여전한 노동자들이 어떻게 이런 호화로운 책을 사 읽을 것이라 생각했다는 것인지, 이 출판사 사람들은 도대체 제 정신이 있는 거야 뭐야, 이런 느낌이었지요.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금방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나 자신도 금방 이 책에 빠져들었지만, 보면 볼수록 어떻게 하면 이 책을 우리 노동자들이 두루 읽어 볼 수 있게 할까, 이런 조바심이 일게 된 것이지요.

       
     
     

    이 책은 ‘그림 책’입니다. 대장정의 전 과정을 926장의 생생한 그림으로 재현하고 거기에 그림의 내용을 설명하는 간결한(그러나 힘있는) 글들이 첨부되어 있는 편집입니다.

    우선 생동하는 힘찬 필치의 그림들이 보는 사람들을 사로잡고, 그림과 짝을 이룬 설명의 글들을 읽으면 그림에 담긴 장면들이 다시 생생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한 번 읽는데 이틀 밤이면 족하고, 다시 한번 읽고 나면 재미와 감동이 더 새롭고, 책장에 꼽기가 아까워 옆에 놓아 두고 자꾸 들쳐보게 되는 그런 책이더라는 말입니다.

    중국 공산당의 대장정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는 1985년에 두레출판사에서 나온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이 유일합니다. 이 책 역시 무려 567쪽의 두터운 책이고, 내용도 만만치 않아 요즘 사람들이 이런 책을 읽을 것이라고는 기대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는 『중국의 붉은 별』은 그 앞장에 교도소의 검인 필증이 붙어 있어요. 1987년인가 88년인가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며 통영의 검찰청을 항의 방문했다가 덜컥 구속된 창원지역의 노동자 한 분(‘학출’은 아니라는 점만 밝혀 두지요)이 읽어보고 싶다고 해서 넣어 주었던 책이지요.

    책 뒤에 달린 주에도 여기 저기 연필로 밑줄도 긋고 메모도 남겼으니 꼼꼼히 다 읽어본 것이 분명하군요. 아, 그랬지, 우리 노동자들도 80년대 그 어려운 상황에서 기회만 있으면 이런 책도 열심히 찾아 읽고 토론도 하고 그러면서 일했던 때가 있었지.

    중국 공산당이 절멸의 위기에 처해 수십만의 반혁명군들의 밤낮없는 공격을 뚫고 수십 개의 산과 강을 맨몸으로 건너 무려 1만 킬로미터의 죽음의 행진을 벌여야 했던 이 ‘대장정’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었습니다.

    9만으로 출발한 중국공산당 ‘홍군’은 이 장정의 마지막에 겨우 7천 명만이 살아남습니다. 그러나 홍군의 전체 수는 10만으로 불었고, 곧이어 18만으로까지 불어나지요. 그들이 걸어갔던 길은 그저 산간 오지와 습지와 평원이었던 것이 아니라 바로 그곳에 발붙이고 모진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던, 헐벗고 굶주린 중국의 농민들, 민중들의 바다 속으로 난 길이었던 것입니다.

    홍군은 가는 곳마다 자기들이 가진 것들을 이 민중들에게 나누어 주며 행군했습니다. 추격을 피해 이동할 때마다 자신이 지닌 겉옷과 모포를 벗어 늙고 병든 농민들을 덮어 주고 떠납니다.

    그 농민들이 감추어 둔 보잘 것 없는 식량을 홍군 병사에게 아낌없이 내어 주어도 그 절반만을 받고, 그것도 지주와 토호들로부터 압수한 돈과 물건들로 셈을 치르고, 그도 안 되면 다시 돌아와 갚을 약속을 담은 ‘군표’를 써 주고 갑니다.

    열 서너살의 소년병(‘홍귀’들)부터 주은래나 주덕과 같은 홍군의 최고 지도자들까지 똑같이 먹고, 입고, 자고, 걸어갑니다. 총사령관 주덕은 이미 그 나이가 오십에 이르렀으나, 장정의 전 기간 동안 자신에게 배정된 말을 탄 적이 없습니다.

    그는 부상병과 지친 낙오병들을 자기 말에 태우고 스스로 말고삐를 잡고 걸었습니다. 홍군 총정치위원인 주은래는 전략 문서와 지도가 담긴 가죽가방을 어깨에 메고 걷습니다. 습지의 한 가운데를 통과하던 밤, 그는 이 가방을 나무에 걸어놓고 다른 병사들과 같이 어깨를 걸고 큰 나무에 기대어 서서 잡니다.

       
     
     

    적의 마을을 점령하고 설치한 숙영지에서도 상황은 같습니다. 지도부가 머무는 숙소는 수비대가 삼엄한 경계를 펴는 사령부라기보다는 마을 촌로들이나 어린애들, 그리고 홍군 병사들이 너나없이 드나드는 시골 장터의 분위기입니다. 먹을 것이 생기면 이리 저리 사람들을 불러 같이 나누어 먹는 모습이지요.

    이 홍군 지도부들의 선생님이었던 서특립 노인은 말 등에 애지중지하던 책보따리만을 싣고 자신은 끝까지 걷습니다. 이런 원로 노인들은 ‘휴양중대’ 소속으로 해서 특별 보호를 했답니다. 행군 중 휴양중대를 만나면 최고 지도부들도 예외 없이 말에서 내려 인사를 드렸다지요. 그 대화 한 정면을 볼까요?

    모택동: 쉬(서특립) 선생님, 몸은 좀 어떠하십니까.
    서특립: 이보게, 난 한 번도 대오에서 떨어진 적이 없네.
    모택동: 그런데 선생님, 왜 말을 타고 다니지 않습니까.

    서특립: 룬즈(모택동의 호), 다리로, 몸으로 걸어야지 말을 타고 간다면 근본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네.
    모택동: 이치는 맞습니다. 하지만 연세가 많으시니 무리하지 마십시오. 
               리잉타오(이앵도) 동지, 일을 참 멋지게 했구료. 어르신들이 모두 무사하니 정말 훌륭하오.
    이앵도: 그분들이 얼마나 우리를 도와주시는데요.

    오늘 우리 노동상황이 아무리 팍팍하고 노동운동이 아무리 어렵다 한들, 장정 시기의 중국 혁명가들의 상황만이야 할까요. 그렇다고 우리가 지금의 어려움을 장정의 정신으로 돌파하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단지 우리도 자주 주고받는 말, 어려울수록 돌아가고 힘들수록 ‘초심’을 잃지 말자는 말의 의미를 진심으로 되새겨 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가진 것이 많을수록 생각할 것만 많아집니다. 몸이 가벼울 때라야 비로소 머리가 맑아지고 가야 할 길이 더 분명히 보이는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 운동의 어려움은 1987년 그때보다 상황이 더 어렵고 조건이 더 나빠져서일까요, 그 반대일까요.

    더 두고 읽고 싶지만, 대장정 두 권을 교육원으로 보냅니다. 돌려가며 읽어보기 바랍니다. 십시일반으로 돈 좀 모아서 더 사서 여러 사람들이 나누어보면 좋겠습니다. 노조 사무실에도 몇 권 사놓고 조합원들도 나눠 볼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요. 보리출판사가 이런 책을 계속 만들어 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출판사 사정이 좀 좋아져서 안건모 사장님 월급도 조금 올려 줄 수 있기 바라는 마음으로.

                                                                 * * *

    * 이 글은 창원 노동사회교육원 회보에도 같이 실립니다. 필자는 전 경남대 교수로 노동사회교육원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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