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라, 386세대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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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1월 09일 11: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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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이 펴낸 『88만원 세대』가 널리 읽히면서 블로거들의 독후감이 양과 질에서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와 함께 일부 고교와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이 책을 읽고 토론을 진행했으며, 교수들이 이 책을 텍스트로 삼아 토론을 한 경우도 있었다.

<레디앙>은 앞으로 ’88만원 세대’는 물론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독후감이나 리뷰 등 다양하고 생생한 목소리들을 가려서 실을 예정이다. <레디앙> 독자들께서도 참여하기를 기대한다.

먼저 이 책을 참고 도서로 강의를 진행한 성공회대 학생들의 글을 몇 편 골라 싣는다. 두 번째 글을 쓴 이는 이 대학 사회복지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이혜나씨다. <편집자 주>

N(Network)세대, W(World cup)세대, P(Participation)세대. 이것이 나와 내 친구들이 중·고등학교 때 들었던 우리 세대의 이름이다. 이 이름에는 젊은(혹은 어린) 세대를 바라보는 기성세대들의 미래지향적이거나 긍정적인 눈빛이 담겨 있었다.

   
  ▲ 사진은 필자.
 

그 때는 기성세대들도 우리 세대가 미래의 꿈나무라는 희망을 품었고, 우리 세대 역시 장차 미래를 이끌어나갈 꿈나무라고 믿었다.

그러나 나와 내 친구들이 22살이 된 오늘. 우리 세대에게 붙여진 이름은 ‘88만원 세대’이다. 비정규직 평균임금 119만원에, 전체 근로자 대비 20대의 임금비율인 74%를 곱해 나온 수치라고 한다. 88만원. 철저히 수학적으로 계산된, 그리하여 인간미라고 느껴지지 않는 이름이다.

이제 ‘88만원 세대’라는 단어 속에서는 과거 젊은 세대를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따스한 눈빛은 찾아볼 수 없다. 희망 대신 안타까움, 불쌍함, 동정이 섞여 있을 뿐이다.

‘놀이’로 느끼는 10대와 ‘고통’으로 느끼는 20대

KBS-2TV 오락 프로그램 ‘상상 플러스 올드 앤 뉴’가 보여주듯이 40~50대가 아는 말은 10대들이 모르고, 10대들이 하는 말은 40~50대들이 알지 못한다. 이 프로그램은 두 가지 사실을 보여준다. 하나는 세대 간의 언어 격차가 많이 벌어졌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프로그램의 꾸준한 인기가 증명해 주듯이 세대 간의 격차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 ‘오락’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세대 간의 언어격차가 ‘오락’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세대 간의 격차를 어렵고 심각한 문제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쉽고 재미있는 놀이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이제 10대와 40~50대의 언어 격차는 놀이로 공유되어 그 격차를 좁힐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놀이로 세대 격차를 해결하는 10대들과 달리 20대들은 40~50대들과의 세대 격차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 10대들이 겪는 세대 격차가 ‘언어’라면 20대가 겪는 세대 격차는 ‘(평균)임금’으로, 세대 문제의 양상과 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 20대들은 자유, 저항을 외치며 대학시절의 낭만을 즐겼던 이전 세대와는 달리 치열하게 학점에 목숨 걸며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전 세대들은 억대 연봉을 받는 대기업의 간부가 되었고, 20대들은 평균 88만원의 임금을 받는 초라한 모습이다. 왜 이렇게 세대 간의 임금 격차가 벌어졌을까?

이 물음에 대해 내가 읽은 기사들은 『88만원 세대』를 인용하여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다음 세대’ 문제의 절반 정도는 지금의 386세대들이 부모가 되면서 생겨난 일”, “386세대가 유럽의 68세대와 달리 역사에 배신을 때리고 학벌주의와 엘리트주의를 더욱 강화시켰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현재 우리 사회를 이끌고 나가는 지도자인 386세대가 미래세대를 이끌 새 세대를 양성하는 데 관심이 없다. 오히려 자신들이 지향했던 바를 개념 없는 20대들은 이해하고 지원하지 못해 개혁이 지체되고 있다고 한심해 할 뿐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20대들에게 ‘88만원 세대’라는 낙인을 선물했다. 마치 자기 영역의 경계선을 긋는 것처럼 말이다. 세대 간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20대들은 10대들처럼 세대 간 격차를 ‘즐겁게’ 해결 할 수가 없다.

기성세대들이 말하는 해결책

이에 『88만원의 세대』의 저자는 성형수술과 영어공부가 88만원의 수렁에서 구원해주지 못할 것이니, ‘토플 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차고 짱돌을 들라’고 주문한다. 과연 20대들이 바리케이드와 짱돌을 들 수 있을까?

나와 내 친구들은 중·고등학교 때 대학 입학을 일생의 소원으로 알고 "지금의 친구가 대학까지 손잡고 함께 가지 않는다"는 선생님들의 말을 믿고 수능공부 요령에 열중했다. 대학에 가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란 환상 때문에 우리를 고통 받게 하던 환경에 대한 불평 한 마디 하지 못한 채.

그러나 그토록 소원이던 대학에 들어와서는 ‘청년 실업 600만’, ‘이태백(20대 태반은 백수)라는 말을 들었다. 환상과는 달리 대학생이 된 우리들은 학점에, 자격증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것이 주입식 교육의 산 증인이고, 교육의 마루타였던 나와 내 친구들의 자화상이다.

이렇게 사회에 대한 성찰이나 비판 없이 자라온 20대들은 바리케이드와 짱돌을 들 수 없다. 설사 손에 들더라도 누구에게 어떻게 던질 것인지 알지 못한다.

또 청년들이 집단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하면 정부나 사회적 차원의 논의가 시작된다면서, 청년실업에 대해 청년들(20대)이 모여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20대들은 10대일 때 공통적인 문제를 가지고 논의 해 본 경험이 없고, 어떠한 문제도 사회적 차원으로 제대로 논의 된 것을 본 적도 없다.

내 경험을 이야기 하자면, 중학생 때 학원에서 모의 토론을 한 적이 있는데 한 명의 남학생이 다른 학생이 이야기하는데 말을 끊고 끼어들며 자기 할 말만 했다. 선생님이 "그러면 안 된다. 왜 그렇게 하냐"고 묻자 그 친구는 "TV에서 보면 국회의원들이 이렇게 하던데, 원래 이렇게 하는 것 아닌가요?" 하고 되물었다. 그 순간 선생님은 그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싸워서 이기는 것이 토론이라고 보고 배운 20대들은 제대로 된 토론을 할 줄 모른다. 물론 배우면 할 수는 있다. 그럼 어떻게 배울 것인가. 독학으로 배우려면 좋은 교재가 있어야 되는데 좋은 교재는 찾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배워야 한다. 그 ‘누군가’는 20대들보다 먼저 살고 집단적 논의를 제대로 해본 기성세대들일 것이다.

세대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해 20대들에게 바리케이드와 짱돌을 들고, 청년 실업에 대해 스스로 집단적 논의를 하라는 말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앞서 말했듯이 20대들은 바리케이드와 짱돌을 들 줄 모르고, 집단적 논의를 할 줄 모른다. 무엇보다 이 해결책은 기성세대(386세대)들이 젊은 세대(88만원 세대)들에게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들은 먼저 젊은 세대들에게 세대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기보다 젊은 세대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교육시켜야 했다. 다시 말해 바리케이드와 짱돌을 들라고 이야기하기 전에 바리케이드와 짱돌이 무엇인지, 누구에게 던져야 하는지 알려주어야 한다.

386세대들은 자신들이 대학시절에 학생운동을 한 것을 보고 배우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피교육자의 상황과 맥락을 파악하는 교육의 전후 과정과 교육은 ‘뒤’에서 일어난다는 교육의 잠재 과정을 생략하는 것이다.

386세대들은 88만원 세대들이 자신들처럼 민족적 사명을 띠고 학생운동을 해주길 바라는 것 같다. 그러나 386세대가 대학생활을 하던 사회 환경과 88만원 세대가 대학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사회 환경은 분명히 다르다.

또 386세대들이 정치권에서 보여준 모습을 돌이켜 본다면 그들이 했던 행동과 실천이 그들이 말하던 ‘민족적 사명’(386세대가 말하는 민족적 사명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민주주의 사회, 가난한 이들도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라 생각한다)을 훌륭히 수행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것은 날로 심각해지는 사회양극화와 교육의 붕괴가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희망의 인문학

   
 
 

이제 기성세대들은 젊은 세대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지 말고 먼저 세대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한 진지한 고민을 해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성세대들이 20대에게 부여한 ‘88만원 세대’라는 이름부터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언어는 생각의 집’이라는 말대로 88만원이라는 평균임금으로 20대들을 바라보는 것은 코끼리 다리만 만져보고 코끼리를 말하는 것처럼, 20대들의 한 단면만을 보고 20대를 말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사회는 인문학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없어지고 있으며, 인문학적 가치의 위기는 사회공동체의 위기를 낳는다. 파이의 크기는 과거의 그 어떤 시대보다 커졌지만, 세상은 더 각박해지고, 불행하고 고통 받는 사람은 많아졌다.

세상의 평가 기준은 ‘행복’이 아니라 ‘돈’이 되어버렸으며, 돈이 많은 사람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또 젊은 세대들은 열정과 개성을 잃어가고, 미래에 대해 의지를 갖기보다 불안해 한다.

인문학의 위기로 인해 젊은 세대들은 스스로의 희망을 그려보지 못한 채, 기성세대들이 설파하는 희망고문을 견디고 있다. 이제 기성세대들은 희망고문을 멈추고 젊은 세대들이 스스로 희망을 말할 수 있게 인문학을 살려주고 알려주어야 한다.

KBS 수요기획 ‘가난한 자들의 철학자 얼 쇼리스의 희망수업’을 보면 미국 교육자인 얼 쇼리스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대학 수준의 인문학 교육과정인 ‘클레멘트 코스’를 개설했다. 이 과정을 마친 사람들은 "힘든 일은 머리의 힘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마음의 힘으로 극복해야 하는데, 인문학 공부를 하며 마음의 힘을 키웠다"고 말한다. 이것은 미국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이 희망수업은 한국에도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 교육을 통해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인문학은 가난한 이들에게만 희망이 되는 것은 아니다. 희망을 찾지 못해 스스로 자책하며 신음하는 88만원 세대들에게도 희망이 될 것이다. 젊은 세대들이 희망을 가지고 자신들이 처한 환경을 바꾸고 세대 간의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을 한다면 ‘88만원 세대’라는 우울한 이름 대신 희망이 묻어나는 새로운 이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88만원 세대’에 관련된 많은 기사를 읽으면서 탈출구는 없다는 생각에 절망했다. 도저히 대안을 제시할 수 없을 것 같았을 때,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그 책은 바로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이다.

평생교육 수업을 들으면서 사두었던 책이었다. 그 책을 본 순간 그 동안의 평생교육 수업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나는 ‘노숙인 다시서기 지원센터’에 가서 희망이 피어나는 인문학 수업을 참관하기도 했다.

이렇게 희망의 인문학에 대해 들으면서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평균 임금 88만원에 절망하고 있는 내 자신과 친구들에게는 적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희망의 인문학을 절망에 빠진 우리 세대에게 적용해보고자 대안으로 제시했다.

나는 ‘88만원 세대’라는 낙인이 찍힌 우리 세대들이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에 나오는 거대한 애벌레 기둥에서 울고 있는 애벌레 같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애벌레 기둥 꼭대기에는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기둥을 열심히 올라가지만 그 희망이 사라져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책 속의 애벌레는 친구 애벌레와 함께 기둥을 내려와 누에고치를 거쳐 나비가 된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기둥을 내려올 엄두도 내지 못하고 누에고치가 될 용기도 없는 것 같다. 나는 인문학이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준 것처럼 우리 세대들에게 애벌레 기둥에서 내려오는 결단을 내리고, 누에고치가 될 용기를 심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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